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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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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 및 제재

1. 징벌적 손해배상

가) 정책동향

현행 제도에서는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행위에 대해 과징금과 형벌을 부과할 수 있고 피해 당사자는 실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동일 유형의 법 위반 사건은 빈발하고, 피해자 또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하도급법상 기술탈취 및 유용에 국한해 제한 도입했던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를 폭넓게 확대 적용하는 법 개정안에 발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률 개정안의 내용은 <표 13>과 같다.

<표 13>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법률 개정안 주요 내용

발의자 내용

공정거래법

정호준(민,‘13.1.10)

· 부당공동행위에 대해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이만우(새,‘12.8.27)

노회찬(진,‘12.9.12) · 부당공동행위, 불공정거래 등에 3배 손해배상제 도입

하도급법

이상직(민,‘12.10.15) · 감액, 부당 경제청구, 경제적 이익의 부당요구에 대한 4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노회찬(진,‘12.9.13) · 하도급법 전체 위반에 대한 3배 손해배상제 도입 전병헌(민,‘12.9.5) · 부당 단가인하, 감액, 부당결제 청구, 경제적 이익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이목희(민,‘12.9.3) · 부당 결제청구 및 경제적 이익의 부당요구 위반에 대한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발의자 내용

하도급법

노웅래(민,‘12.8.2) · 부당 반품, 감액, 부당결제청구에 3배 손해배상제 도입 이현재(새,‘12.7.6) · 서면미교부, 인력 탈취,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오제세(민,‘12.6.8) ·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3배 손해배상제 도입

진영(새,‘12.5.30) ·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10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부당 단가인하의 요건 완화(현저성 요건 삭제)

본래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핵심은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행위를 ‘징벌’한다는 취 지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실손해배상보다 많이 배상토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나라에서 논의되는 규제방안은 고의뿐 아니라 과실로 인한 행위에도 징벌적 배상을 부 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마저 피해자가 아닌 행 위자에게 부담시키고 있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즉, 이러한 규제방안은 헌법상의 적법 절차 원칙, 과잉금지 원칙,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 등과 충돌한다는 것이 쟁점의 주요 내 용이다.

나) 외국의 입법례 비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세계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미국 등 일부 영미법계 국가에 서만 사용되는 예외적인 제도다. 18세기 사회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규정하는 형법질서 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던 영미법 국가들에서 처음 도입됐다. 바로 형법이 수행해야 할

‘징벌’을 보완하기 위해 특정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형법질서가 확립된 현 재는 이에 대한 위헌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일한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과 형벌을 동시에 부과하는 것이 과잉제재가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헌법상의 적법절차 원 칙에 위배되는 제도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적법절차 원칙에 따르면 국가가 국민을 징벌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절차에 따라 행 위자의 위법성을 엄격히 밝혀야 한다. 반면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소송절차를 통해 결 정되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억제, 예방하기 위한 징벌효과는 형법과 유사하다. 하지만 징

벌을 당할 위험성은 형사소송보다 훨씬 커진다. 이에 따라 법률적 위험이 높아지는 만 큼 적법절차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 왔다. 이런 논란 과 관련,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때 일반적인 손해배상 소송에서 요구되는 위법성 입증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10)

유럽연합 회원국 중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나라는 영국, 아일랜드 정 도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2008년 수평적 카르텔에 국한하여 2배 손해배상을 인정하 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유럽 법체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 로 도입에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11) 또한,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동시 부과 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이중처벌 문제와 관련해 영국법원의 2007년 Devenish 판결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영국법원은 유럽집행위원회가 과징금 부과 시 여기에 추가해 징벌 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동 판결에서는 ‘과징금과 징 벌적 손해배상은 경쟁제한적 행위의 처벌 및 억제라는 동일한 목적을 수행한다. 따라서 유럽 집행위원회에 의해 이미 과징금이 부과된 경우에는 (비록 리니언시 제도에 따라 과 징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은 경우라도) 이중처벌금지원칙(ne bis in idem)에 따라 징벌 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12)

다) 문제점과 평가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집단소송은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소송을 통해 분쟁을 해결 한다는 점에서 일견 시장 친화적인 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속성상 기회 주의적으로 악용, 남용될 소지가 크고 관련된 기업에 미치는 파괴력이 상당하다는 점에 서 극약처방과 비견된다. 이 때문에 유로존 국가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을 꺼릴 만큼 세 계 보편적인 제도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 리 행정부의 공적 규율이 강한 상황이다. 여기에 추가로 강력한 사적 집행수단을 도입하

10) William H.Volz, Michael C. Fayz, “Punitive Damages And The Due Process Clause: The Search For Constitutional Standards”, University of Detroit Mercy Law Review, 1992

11) European Commission, Whit Paper on Damages actions for breach of the EC antitrust rules, COM (2008)

12) Wouter P. J. Wils, “The Relationship between Public Antitrust Enforcement and Private Actions for Damages” World Competition, Vol. 32, No.1 (2009)

는 것이 합당하고 바람직한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만약 도입하는 경우에는 행정부 주도의 공적 규율 시스템을 대폭 완화하는 등의 제도 인프라 정비가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다.

먼저 공적 규율을 대표하는 과징금 제도는 우리나라에는 있지만, 미국에는 없다. 우 리나라는 ‘과징금’이라는 행정 제재금이 일종의 미국식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대신해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과징금은 과징금대로 부과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여기에 징 벌적 손해배상을 추가로 도입하는 것은 과잉규제와 이중처벌이라는 법체계상의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이중처벌 구조 속에서 소송에 연루되면 해당 기업은 최종 판결과 관계없 이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점에 유의해 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하고 다른 대안적 중재제도의 도입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의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헌법상의 적 법절차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바로 ‘부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원)사업자에게 부담시 키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적 약자인 소비자(공정거래법)나 협력업체(하도급)가 대 기업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음을 배려한 때문일 것이다. 또는 현행의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책임은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업자에게 전가하기 때 문에, 제도의 경로의존성에 따라 연장선상에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 해배상제도에 내재한 파괴력과 기회주의 속성, 그리고 헌법상의 적법절차 원칙을 고려 해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를 제기하는 측에서 입증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

사적 집행이 가장 활발한 미국 법원에서 조차 ‘독점금지법상 손해(antitrust jury)'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피해를 주장하는 자는 경쟁의 상실로 인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만 손 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등 매우 엄격한 조건에서 제도를 운용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책 논의를 보면, 제재와 처벌은 강화하면서 입증책임은 (원)사업자에게 전가하거나 입증부 담을 대폭 낮추자는 게 대부분이다. 제재와 처벌의 수준이 강해질수록 불공정성 입증과 판단은 좀 더 신중해야 하지만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라) 정책방향

징벌적 손해배상은 미국 중심의 제도이며 우리나라와 유럽에서는 행정당국이 부과 하는 ‘과징금’이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다 양한 영역에 확대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동일한 행위에 과징금과 형벌 로 제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극약처방 성격을 갖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가하는 것 은 법체계상에도 문제가 있다. 또한, 경제 전반의 효율성에도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손해배상에 징벌적 성격을 가미해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불공정 행위로 이해당 사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문제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충분 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이 입법적 결함 때문인지, 아니면 법집행 과정 또는 사법적 구체절차의 미흡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어렵사리 소송을 시작해도 소송절차가 복잡하고 최종판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 이 문제다. 추가로 실손해배상 원칙 하에 소송 당사자의 기회비용 및 거래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바로 소송비용 대비 이익이 적은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만약 이 경우라면 입법 보강보다는 사법제도의 개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행위로 인한 피해구제 절차는 보강이 필요하다. 예를 들 면 중소기업 법률지원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이 소송 외 방법으로 신속 히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안적분쟁해결제도(ADR)의 개선도 필요하다. 문 제원인에 대한 분석과 함께 기존 제도개선 노력을 한 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여 부를 검토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만약 도입하는 경우에도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적용 범위는 고의 및 중과실 행위에 국한하고, 피해를 주장하는 측에 입증책임이 가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징벌적 배상과 과징금, 벌금이 동시에 부과되지 않도록 공정거래 제재수단 전반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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