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공화주의 가치와 형사정책 원리
2. 형사정책 구성원리로서 자기통치 증진
자기통치 증진을 목표로 하는 형사사법은 공화주의적 제도 일부다.315) 자기통치 증진이라는 공화주의 목표가 형사사법체계 지도원리로서 의미 가 있으려면, 자유주의, 응보주의, 공리주의, 예방주의와 비교하여 차별된 정책을 제시하고, 형사정책 연구주제의 전환과 현행 실무와 차별되는 정 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316) 브레이스웨잇과 페팃은 공화주의 일반 적 전제인 겸억(parsimony), 권력견제(checking of power), 질책
(reprobation), 재통합(reintegration)을 자기통치 증진 목표에 대한 해석원리
로 제시한다. 공화주의적 관점을 형사정책에서 실현하는데 기본원리가 된다.
첫째, 모든 범죄화, 그리고 형사사법기관의 감시, 수사, 체포, 기소와 처 벌은 누군가의 자기통치를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침해한다. 반면 형사사
314) M.N.S.Sellers, Republican Legal Theory, 15.
315)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0.
316)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6.
법적 개입이 약속하는 이익은 거의 언제나 개연적인 장래의 일이다. 따 라서 형사사법적 개입을 주장하는 쪽이 그 정당화 입증책임을 져야 한 다. 겸억의 가정은 가능한 한 최소의 형사사법조치를 선호한다. 네 가지 전제중에서도 겸억이 가장 중요하다.317)
둘째, 권력견제의 원리는 자기통치의 주관적 차원에 대한 고려에 근거한 다. 즉 자기통치는 누구나 형사사법으로부터 적합한 처우를 받을 것이라 는 인식이 확신에 이르지 못할 때 저하된다. 따라서 형사사법기관 권한 은 사람을 부당하게 다루는데 행사되지 못하도록 항상 견제되어야 한다.
형사사법기관을 적절한 견제에 종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시민의 권리, 즉 범죄책임없이 처벌받지 않을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의 인정이다. 경찰,검사,법관에게 재량이 부여된 경우에도 항소, 청구, 재 량권한 행사에 대한 견제제도를 통해 시민의 자기통치가 보호된다. 즉 개인에 대한 형사사법의 처분이 자의적이나 악의적이 아니라, 공적으로 인정된 요건에 따라 행사된다는데 대한 확신을 부여해 준다. 따라서 형 사사법기관 견제 제도는 개인으로 하여금 형사사법체계로부터 평등한 대 우를 받는다는 중요한 인식을 확실히 해주는데 기여한다.318)
셋째, 공화주의는 형사사법체계가 범죄에 대한 공동체 내에서의 일정한 효과적 질책(reprobation) 내지 불승인(disapproval)을 보장하기 위해서 구 성된다고 가정한다. 질책이라는 형태의 패러다임은 범죄자에 대한 도덕 적 논증과도 연관된다. 이는 범행의 잘못됨을 이해시키고 범행에 대하여 수치심을 알게 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적 관 점에서는 질책과 같은 도덕적 대응이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만, 공화주의에서는 범죄로 인한 자기통치에 대한 위협에 도덕적인 대응 이 특별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처벌 내지 보상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덕성 있는 시민의 행태와 태도를 택하도록 하기 때문이 다. 사회화제도319)는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의 수치스러움을 깨닫게 하여
317)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7.
318)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7-88.
319) 공적 이익을 위해 개인의 행동을 조직하는 제도 방식에는 시장유형 제도와 형 성적 제도가 있다. 형성적 제도는 강제적 제도와 사회화 제도로 구분된다. 사회화 제도(socializing institution)는 행동성향뿐만 아니라 성찰방식의 변화를 의도한다.
덕성 있는 시민으로서의 행태적 태도를 늘 숙고하는 습관을 익히도록 한 다. 범죄의 수치스러움을 깨닫게 함으로써 범죄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사회로부 터 적극적으로 불승인되는 행동이며 따라서 범죄를 행한 사람들은 부끄 러워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320)
사회화 제도는 형사사법영역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회화 제도는 범죄를 방지하고 시민을 보호하는데 있어 최선의 경우다. 대부분 의 사람들이 절도나 살인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사회화는 사람들의 내면에 범죄의 악함과 수치스러움에 대한 강력한 인식을 길러준다.321) 서구사회 범죄율의 지속적인 범죄율 감소의 공통된 원인으로서 가정, 학 교, 교회 등의 지역사회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맡고 있다.
공화주의는 다양한 형성적 제도, 특히 사회화 제도의 추구를 통해서 자 기통치를 증진한다는 관점이다. 시민성(citizenship)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 조하면서,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을 시민성의 전제조건으로 보지만, 시 민적 덕성이 인간존재에 고유한 덕성이라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부패를 막고 시민들을 덕성 있게 행동하도록 이끌 수 있는 형성적 제도의 구축 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달리 형성적 제도 에 대해 긍정적 입장이다.322) 공화주의 형법이론이 사회화 제도를 선호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강제적 제도보다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더 나은 수 준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범죄로부터의 이익여부를 계량하는 시민들보 다는 범죄를 수치스럽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으로 여기는 시민들이 모일 때 사회는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더욱 확보할 수 있다. 범죄율이 낮은 사 회일수록 범죄자를 효과적으로 질책한다. 또한 사회화제도는 형사사법제
즉 성찰이라는 덕성적 습관을 습득케 하기 위해서 성찰이라는 존경될 만한 특성 을 익히게 하거나, 옮고 그름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갖게 하거나, 성찰을 거친 행 위주체가 비-덕성적인 행동을 할 경우 동료시민들에게 공개되어 공적 비난대상 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도록 해 주는 방법들을 활용한다.
320)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8-89.
321)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2.
322)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4.
도가 어떻게 범죄의 수치심을 일깨우는지 시민들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요청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법적 제재가 왜 부과되는지 강 제 받는 대상일 뿐 이해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자기통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 반면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점 을 깨닫게 한다면 자기통치의 주관적 요소는 강제제재의 경우처럼 위협 받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공화주의 형사사법이론은 형사사법체계가 강제적 처벌에만 한정되지 아니하고, 범죄자에 대한 질책에로 지향되어 야 한다고 전제한다.323) 여기서 범죄방지의 효과적 요소로서 사회화제도 를 선호하는, 즉 가정, 학교, 교회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중요성을 인정하 는 공화주의 형법이론의 관점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질책에 대한 요청은 양형판단을 비롯한 형사사법체계의 다 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공화주의 이론이 지도적 원칙이 될 때 경찰, 검사, 법관과 일반시민까지 질책의 기획 (project of reprobation) 참여를 요청받게 된다. 현행 성폭력범죄자 등에 대한 신상정보공개와 취업제한 제도는 초보적 수준에서 질책의 기획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공화주 의 형법이론은 이러한 질책의 기획 제도화를 정당화해 주면서 제도개선 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자기통치 개념은 범죄 및 처벌과 관련해서 타인에 의한 개인의 신체 또 는 재산에 대한 침해로부터의 보호를 요청하지만, 도덕적 논증이나 타인 에 의한 불승인으로부터의 보호까지 요구하지는 아니한다. 자유주의 관 점은 공동체가 부과하는 질책이 다수에 의한 횡포가 될 수 있다고 비판 한다. 하지만 사회적 불승인을 동원할 능력(capacity to mobilize social
disapproval)이 없는 공동체라면, 자유에 대한 침해로부터의 보장도 확실
히 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라면 서로 다름을 인정받을 자유를 침해하는 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도 작동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 화주의적 의미에서 좋은 사회란 형법을 위반하고 자유를 침해한 자들에 대한 질책을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사회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질책 을 부과해 낼 수 없는 사회라면 가진 자유마저도 침해자들에게 빼앗기게
323)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89.
될 것이다.324)
넷째, 자기통치 증진의 목표는 형사사법체계로 하여금 공동체 안에서의 재통합 추구를 요청한다. 특히 각각 범죄와 처벌로 인해 자신의 자기통 치가 침해당한 시민들을 위해 자기통치의 회복 (restoration of dominion) 을 추구해야 한다. 공화주의 이론에서 자기통치의 증진에 초점을 맞춘다 면, 범죄피해자와 전과자가 완전한 자기통치를 누릴 수 있도록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마땅하다. 재통합의 우선 대상은 범죄피해자다. 피해 자의 피해내용은 인격적 침해다. 피해자가 다른 인간 존재에 의해 침해 받지 않을 권리(rights to non-interference)를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 라는 취급을 받은 결과다. 피해자의 자기통치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가 피해자로 하여금 그 자신의 인격이 저하 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자기통치가 존중받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상징적으로는 범죄 를 비난하고 범죄자를 질책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실체적으로는 피해 배상이나 원상회복으로 행해진다.
직장내 성희롱 내지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피해자의 인 격에 대한 존중감의 회복은 상징적 차원에서는 공동체 질책(직장내 질 책)을 통해 행해진다. 가해자의 사과나 참회의 표현이 그 예다. 그렇지만 상징적 회복조치는 배상이라는 실체적 회복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배상은 가해자가 직접 행할 때 가장 강력하게 피해자에게 피해자의 자기 통치가 가치 있다는 사실을 회복시켜 준다.325) 가해자가 배상능력이 없 는 경우라도 공동체가 배상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자기통치의 가치가 회복 되었음을 인식시켜 줄 수도 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통한 재통 합은 사람들의 자기통치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보호한다는 점에서도 정 당화된다. 사람들은 범죄라는 불행에 고통을 받게 될지라도 공동체가 그 고통의 치유를 위해 도울 것임을 알게 된다.
자연재해의 피해는 범죄 피해보다 더 규모가 크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 연재해를 범죄보다 덜 두려워한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공동체가 힘을 324)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90.
325) J.S. Braithwaite/P.Pettit, Not Just Desert,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