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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안전기획의 배경

1. 범죄통제의 대중정치화

20세기 후반 시작되어 21세기로 이어지는 형사정책 변화 특징 중 하나는 범죄문제의 대중정치화(politicization)332)다. 종래 법률가, 전문가 중심 형 사정책은 정치변동이나 사회여론으로부터 비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법 치국가형법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합리적인 범죄방지 정책을 펴나갈 공간을 지켜왔다. 형사정책 역시 현실 정치(politics)의 일부이지만, 대중 정치 현안이 되면서 양면적인 문제로 자리 매김 된다. 즉 시민의 관심과

332) Ian Loader/Richard Sparks, “Situating criminology: On the production and consuming of knowledge about crime and justice,” Mike Maguire/Rod Morgan/Robert Reiner 편, The Oxford Handbook of Criminolog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제5판, 2012): 12.

참여를 통해 형사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정책적 효과성을 증진할 기회인 한편, 대중정서영합적인 형사정책으로 사회 자원을 낭비하고 갈등을 유 발함으로써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333) 물론 범죄문제의 대중 정치화 현상을 규범적으로 부인하거나 경험적으로 승인할 수만은 없다.

합리적 관점을 채택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증진하되 부정적 요소를 통제 하는 방향으로 조직해 내는 정책이 필요하다.

(1) 범죄통제와 국가역할 변화

형사정책 현실변화와 앞으로 예상되는 변화는 범죄통제와 사회질서 유지 에서 국가 지위변화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대 국가가 공적 안보와 사 회 안전의 유일한, 또는 가장 효과적인 보장자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있겠는가?”334)

20세기 중기까지 형사사법과 형사정책의 특징은 자유주의적 법치이념, 복지 기반 재사회화 정책, 범죄학 전문지식이 결합된 형태로서, 국가기관 이 범죄통제를 독점하고 안전체계의 정점에 위치하는 이른바 ‘형사복지 국가(penal welfare state)’의 제도구조와 정책틀로 정립되어 왔다는데 있 다.335) 첫째, 범죄는 장소적·사회적 특정 범위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자 명한 개념으로 이해된다. 범죄통제의 과제 역시 분명하다. 개별 범죄자 특성을 파악하고 교정한다. 둘째, 범죄의 근원은 사회문제다. 따라서 범 죄 근원은 공공주거와 교육 등 사회복지 정책 중심으로 해결하고, 개별 범죄자는 교정적 처우프로그램을 통해 사회로 복귀시킨다. 셋째, 범죄통 제 정책은 전문가와 전문지식 영역으로 본다. 형사정책을 전문가 영역으 로 본다 함은 형사정책 결정과 집행이 상대적으로 정치의 직접적 영향으 로부터도, 시민 관심이나 감독으로부터 자율적이며, 경험적 범죄학 연구 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336)

333) Eric Hilgendorf, 이상돈/홍승희 편역, 형법의 세계화와 전문화, (서울:박영사, 2010): 74-75.

334) Ian Loader/Richard Sparks, Contemporary Landscape of Crime, Order, and Control, 79.

335)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26-27.

하지만 형사복지 국가 이념과 정책 기반을 흔드는 사회변화가 일어난다.

범죄증가와 범죄피해 일상화가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공식통계상 범 죄율 증가가 곧 범죄의 만연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범죄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는데 문제가 있 다.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라, 국가의 복지정책과 형사정책 전문가의 교정 정책을 통해 범죄원인도 줄고 범죄도 줄게 되리라는 기대가 흔들리기 때 문이다. 환경공해 등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위험의 등장 뿐만 아 니라, 사회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은폐되었던 가정폭력, 아동학대와 같은 범죄현상은 더욱 부각된다. 범죄통제를 독점한 국가의 안전보장 약속에 대한 신뢰는 줄어들고, 범죄문제 해결에 관해 형성되었던 사회적 합의 역시 흔들린다.337)

정치적으로는 복지국가에 대한 회의적 비판이 시장논리와 개인책임을 강 조하는 정치를 등장시켰고, 형사정책 역시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에 대한 대중적 요구를 정치화하는 방향으로 전화된다. 즉 기존 형사사법체 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범죄문제에 대한 정서적 여론을 대처하기 위 해 오히려 형사사법체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강화한다.338) 즉 구금형 강 화형태로 양형을 통제하는 형사입법이 도입되고, 실제 구금형 집행도 늘 어난다.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거세처분, 소년범죄자에 대한 병영훈련

(boot camp)과 같은 충격적 기법339)이 정책방안으로 논의되고, 성폭력, 소

년비행 등 범죄에 대한 두려움의 정서를 촉발하는 범죄현상에 형사제재 수단이 집중된다. 테러대응 명분의 경찰권한 강화와 형사사법 기관의 통 합확대가 안전과 질서회복 명분으로 추진된다.

336)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29-34.

337) David Garland, The Culture of Control, 106-110.;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리, 159-160.

338) Ian Loader/Richard Sparks, Contemporary Landscape of Crime, Order, and Control, 81.;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 리, 160-161.

339) Merry Morash/ Lila Rucker. "A critical look at the idea of boot camp as a correctional reform" Crime & Delinquency 36(2) (1990): 204-222.; Stephen Nathan, Boot Camps: Return of the Short, Sharp Shock (Prison Reform Trust, 1995)

정리하면, 20세기 중반 이후 범죄와 범죄율 증가 문제가 사회 주요 현안 이자, 시민들의 일상경험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국가 형사사법기관과 범죄학 전문가의 범죄통제 독점은 지속된 상태에서, 범죄문제 해결에 대 한 국가능력에 대한 의문에 맞서 더 많은 국가형벌수단과 더 많은 형사 사법자원을 통해 대응하였다. 서구 국가에서 변화경험과 현대 한국 사회 변화는 체계와 문화의 차이가 있지만, 배제와 격리 중심의 제재 강화, 예 방적 개입의 강조는 공통된 변화의 특징이다. 다만 범죄통제구조에서 사 회경제적 변화와 국가역할 변화의 결과는 정부(government) 확대로만 이 어지지는 않는다.340) 협치적 형사정책은 범죄통제의 통치방식(governance) 변화를 설명해 주는 모형이다.

(2) 형사정책의 정치도구화

형사정책이 현실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다만 범죄를 두려워하고 안전문 제에 예민해져 가는 사회적 정서를 민주적 의사반영의 절차를 거쳐 사회 정책적으로 해결하고 형사정책적 대응부담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역할 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이익을 취하고 형사사법체계 강화 기회 로 삼는다면 부정적 의미에서 정치화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영미국가 형사정책의 특징은 엄벌주의 경향이 정부 정책 과 정치적 수사(修辭)에서 뚜렷이 드러난다는 점이다.341) 물론 국가의 엄 벌정책이 현대 형사정책만의 특징은 아니다. 다양한 정치적 권위와 사회 통제 수단을 갖춘 현대 국가에 이르러 엄벌을 통한 국가권력의 과시 필 요가 줄었을 뿐이다. 그런데 다시 과시적인 엄벌주의로 되돌아간다면 정 치적 권위가 약화되고 사회통제 수단이 불충분해졌기 때문이다. 현대 국 가의 엄벌주의는 강한 국가권력의 실현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권력 약화 의 징후342)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형사정책에 대한 ‘정치화’ 지적은 대체로 부정적 의미를 담

340)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리, 161.

341) David Garland, The Limits of the Sovereign State, 445.

342) David Garland, The Limits of the Sovereign State, 445.

고 있다. 첫째, 형사정책 기획과 결정이 전문가 영역을 벗어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에 매달리는 정치가와 대중정서에 호소하는 대중매체에 좌우 되어 결과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단편적인 정책이 된다는 뜻이다.343) 둘째, 범죄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가 대중정치화됨에 따라 형사제재적 수단과 형사사법제도 확대·강화를 통해 안전을 약속하고 시민의 상식과 정책참여를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修辭)나 정책약속이 증가했지만, 실제 로는 개별 형사사법기관의 행정효율 향상과 통합관리운영에 초점이 맞춰 지면서 정책가치가 서로 갈등하게 되었다.344)

한국사회에서 형사정책 정치화 현상은 영미국가와는 맥락과 양상에서 차 이가 있지만 엄연한 현실 일부다. 범죄에 대한 강경대응을 두고 정권을 다투는 차원의 정치화까지는 아닐지라도 이른바 ‘공안정국’345) 현상은 형사사법을 정치도구화 하는 경우다. ‘범죄와의 전쟁’과 같은 강경진압의 유사한 사례도 있다. 형사정책의 정치화를 대중영합주의 의미로 이해할 경우346) 예컨대 성폭력범죄와 관련하여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형벌과 관 리감독제도 강화를 앞 다투어 추진하는 현상 역시 정치도구화의 사례라 볼 수 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처벌과 피해자 보호 법제 확대강 화는 단순히 대중정서영합적 엄벌주의로 폄하할 문제만은 아니다. 부정 적 의미에서 정치화로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형사정책에서 사회적 약 자 지향성과 시민 참여 강화의 계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관료와 전문 가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시민이 일상적 삶을 경험하는 지역사회 현장에 서 시민의사를 반영하며 조정해 나가야 할 일이라는 점에서 범죄방지와 피해회복 정책은 긍정적 의미에서 정치적 과제다.

(3) 전문가 중심 형사정책의 한계

343) Ian Loader/Richard Sparks, Situating criminology, 12.

344) Ann James/John Raine, The New Politics of Criminal Justice, (London &

New York: Longman, 1998):4.

345) 한국 현대사에서 ‘공안정국’은 권위주의 정권시대의 적나라한 국가폭력 자행 시 기를 지나 민주화 이후 시대에도 국가안보사건을 악용하여 기획되고 형사사법기 관 차원에서 이행되는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346) 김일수, 전환기의 형사정책, 65.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 약화와 시민의 무관심에 따른 문제에 대응하는 정 책은 사회과학과 관료체계에 의존한다. 복잡한 사회관계를 관리하고 서 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임무를 행정가와 전문가에 맡겨 정치 로부터 중립적인 관리체계를 유지하려는 구상이다.347) 이는 앞서 살펴본 형사복지국가에서 형사사법기관이 주도하는 범죄통제를 뒷받침하는 기반 이 전문가와 전문지식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정치적 영향에 좌우되거나 시민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지 않도록 실무전문가와 전문연구자가 정 책방향과 집행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도록 했다.348)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영미국가에서 형사정책 전문가의 역할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객관적으로 정책기획과 평가를 주도하는 지위를 가졌 던 전문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정치인들과 언론에 의해 범죄문제 심각성 과 형사사법 실패, 그리고 시민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 극적으로 부풀려 지는 가운데 획기적이면서도 간명한 해법을 찾는 정치적 요구를 감당하 기 어렵게 되었다. 기존 인력과 자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업무 일 뿐만 아니라, 실제 효과는 의심스러워도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 져야 했다.349)

더구나 범죄와 범죄피해 증가라는 사회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지 못하 고, 과학적 지식의 불확실성이나 한계가 드러날수록, 전문가들 사이에 의 견이 대립하고 다른 전문분야와 충돌할수록 의심 대상이 된다. 더 알게 되면서 더 모르게 되는 역설적 상황 또한 전개된다.350) 현대 사회에서 사회과학 전문가의 영향력 상실 추세는 형사정책학 경우도 다를 바 없 다. 더구나 이른바 전문가도 너무 많아서 정책 입장마다 동원할 수 있는 각종 전문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민에게도 정책결정자에게도 인정받 기 어렵고 영향력을 잃어간다.351)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서유럽에서, 그 리고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형사정책학 발전과 그 사회적 영향력 확대

347) Michael Sandel, 민주주의의 불만, 284.

348)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리, 159.

349) Ann James/John Raine, The Politics of Criminal Justice,6.

350) 전상진, 사회학의 위기에 대처하는 또다른 방법, 14-15.

351) Eric Hilgendorf, 형법의 세계화와 전문화,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