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안전기획의 배경
2. 위험사회 형법의 전개
(1) 한국사회와 위험사회 형법론
위험사회와 안전형법 논의는 대체로 한국 사회의 시점과 지점을 특정하 지 아니한 채 일반론으로 진행되어 왔다. 현대 한국사회 형사정책 추세 와 현안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유효한 대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논의인 가? 한국사회 역시 사회해체와 개인고립의 불안, 삶을 조망하기 어려운 막막함, 위태로워져가기만 하는 사회적 형편 속에서 여느 선진산업사회 못지않게 상시적 불안이 퍼져있다. 그런데 현대 서구사회 변동 경험에 바탕을 두고 불안사회와 안전형법을 설명하는 생활세계 다원화, 삶의 조 망, 개인화, 신자유주의, 삶의 필연적 구성부분으로서의 위험, 안전을 중 시하는 삶 자체가 불안전을 생산하고, 불안이 사회를 통합한다는 따위의 이론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한국사회 변화와 형사정책 논의에 수용할 만하지는 따져볼 문제다.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보편적 비판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현실 변 화에 대한 구체적 전망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371) 한국사회 현실에 부 합되는 설명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첫째 한국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 할 때 위험의 역사적 전개 양상에 차이가 있다. 둘째, 세계화, 신자유주 의, 사회해체 등의 사회적 변화 앞에 개인화된 불안이 사회를 어떤 방향 으로 움직여 나간다는 설명 태도는 불안감정과 안전욕구에 갇힌 수동적 이고 개별적 개인만 볼 뿐, 공동의 안전에 관심을 갖고 협력하고 참여하 는 시민에 대한 관점이 없다.
살펴보면, 위험사회 형법론에는 사회통제와 안전확보에 형법이 여전히 371) Tobias Singelstein/Peer Stolle, 안전사회, 160-161.
유효한 수단이라 보고, 위험사회 특성에 따라 전통적인 형법 개념과 틀 을 일부 포기하거나 재구성해서 대응하자는 관점이 있다. 반면 형법을 전통적인 핵심내용의 형법으로 축소정비하고, 위험사회 대응은 새로운 개입법 (Interventionsrecht)에 맡기자는 관점도 있다.372) 시민의 자유와 권 리를 변함없이 보장하면서, 현대 사회의 특별하고 확대된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재구성된 형법도, 개입법 신설의 방향도 모두 검토 가능하다. 구체적 법익침해에 대해서 책임원칙에 따른 형벌을 부과하지 않고, 추상적 행위요청을 형사제재로 뒷받침하는 기능 적 형법으로의 확장변화를 뜻한다면 명분은 재구성일지라도 실질은 근대 형법의 포기나 다름없다. 위험사회 대응을 형법영역에서 분리해서 행정 법, 민사법 차원에서 해결하는 대안 역시 문제를 형법 밖으로 옮기는 것 이지 실제 해결은 못된다. 한국 사회 형법은 근대 형법의 원칙을 공고히 정립하면서도 동시에 현대 사회 변화를 수용하는 이중적 과제를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 한국 형법의 ‘전통적인 핵심내용’은 아직도 세워가는 중 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위험사회 변화현상과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요청이 현실 현안이라면, 현대 형법과 형사정책의 합리적 발전 계기가 될지, 반대로 법치국가 형법의 위기를 초래할지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는 안보가 개인 자유를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로 기능 하면서 국가가 시민사회를 강력히 통제해 온 근대 경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동시에 서구 선진국에 못지않은 경제발전과 과학기술발전으로 인 한 탈근대적, 현대적 사회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 고 사회가 변화해 가는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경로가 주어져 있지는 않 다. 그런 만큼 압축성장을 돌진적으로 이뤄낸 한국사회를 비정상이라 규 정지을 필연적 이유는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누적된 위험과 당대 현안 으로 가중된 위험 앞에 안전요구와 불안감, 국가에 대한 기대와 경계가 혼재되어 있는 사회임은 틀림없다. 때문에 한국적 위험의 특수한 현실을
가리켜 ‘이중위험사회,’ ‘총체적 위험사회’ 또는 ‘후진적 위험사회’ 라고
372)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리,104-105.
이름 붙인다. 전근대적 위험이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현대화 결과로서 위험과 파행적 성장과정에서 초래된 위험이 복합되면서 고위험과 복합위 험의 사회에 이르게 된 셈이다.373) 따라서 한국 사회 위험형법과 형사정 책은 근대 법치국가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현대 한국사회 고유의 복합위 험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과제를 겹겹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더 이상 정 부가 독자적으로 대규모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움’374)을 정부 도 국민도 뼈아프게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안전형법을 구상함에 있어서 ‘정부 조직에 의해서는 효과적으 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루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협업당사자로 이루어지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역 할’375) 논의가 빠질 수 없다. 협치적 형사정책은 이러한 협력적 거버넌스 의 현실적 요청을 자유와 안전을 동시에 확보하는 정책모형으로서 구체 화한다.
(2) 위험사회론의 형사정책적 의미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범죄와 위험이 상존한다. 그래도 지금 이 곳의 위험이 가장 불안하기 마련이다. 현대사회 위험의 특징은 실제 위험도 증가하고 위험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과 정보도 늘어났으며, 지금도 불 안하지만 장래 더 위험해 지리라는 염려가 현대 사회 시점과 공간 안에 서 뒤섞이면서 강화된다는데 있다.376) 그 불안과 염려에는 형사사법체계, 그리고 정부의 안전보장 기능에 대한 불신이 포함되어 있다. 그 불신 내 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안전요구에 따라 확대강화 된 형사사법과 안전체계가 실제 범죄방지와 안전유지에 효과를 거두지
373)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리, 38,47,83-84. ;김혜경, 사회안전과 실체형법의 변화, 165.
374) 배재현, 민관협력 재난대응거버넌스 구축방안: 국정감사 시정 및 처리결과 평가보고서 9, (국회입법조사처:2016):1
375) 배재현, 민관협력 재난대응거버넌스 구축방안, 1.
376) 김한균, 현대과학기술사회 위험관리 형법 및 형사정책의 체계와 원리, 39.
못한다는 불신이다. 다른 하나는 안전요구를 근거로 확대강화된 형사사 법과 안전체계가 국가권력에 의한 자유침해와 차별 결과를 가져올 수 있 다는 불신이다. 안전확보를 위한 형사사법 강화 요구, 한정된 형사사법자 원과 형사정책적 효과에 대한 비판, 형법 확장에 대한 우려가 엇갈리는 속에 현대 형사정책이 당면한 위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상술한다.
살펴보면 위험사회론이 형사정책에 의미하는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현 대 과학기술사회가 가져올 위험은 전혀 새롭거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롭게 위험하고 범죄가 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위험을 예방해 안전을 확보하는데 형법과 형사제재가 효과적 수단이다. 셋째, 위험을 예방하고 새로운 범죄에 대응할 현대 형법 구축을 위해서는 근대 법치국가적 보장 완화도 필요하다.
위험사회론에 근거한 형사정책은 규제기능화, 법익개념 완화, 추상적 위 험범 확대, 상징형법 확대가 특징이다. 즉 위험 예방과 규제 기능이 강화 된다. 환경, 금융, 의료, 제조물, 사이버 등의 영역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형사특별법은 형법이 광범위한 예방 도구로 전화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적 유해성에 이르지 아니한 사회적 위험성도 보호법익으로 삼는다.
위험예방을 위한 형법의 선제적 투입을 위해 추상적 위험범 규정이 늘어 난다. 일부는 정치적 목적이나 사회적 불안해소를 위한 상징적 수단으 로 변화한다.377)
위험사회론 맥락에서 볼 때 법치국가 원칙은 국가 활동에 대한 규범적 기준이지, 국가가 범죄방지와 피해회복을 위해 어떤 내용의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책적으로 지도하기 어렵다. 형사정책 프로그램에 대 한 비판의 내용적 근거가 법치국가원칙 논증뿐이라면 대안 없는 이상으 로만 남게 될 수 있다.378) 문제는 범죄와 위험에 정당하고도 효과적으로
377) 김일수, 전환기의 형사정책, 22-23.; 이승준, “새로운 위험의 등장과 형법의 임 무변화”, 형사정책 24(2) (한국형사정책학회, 2012): 112-114.; 류전철, “위험원의 제거와 형법의 과제”, 아주법학 4(2), (아주대학교 법학연구소, 2010): 208-210.;
하태훈, 21세기 한국형사법학의 과제와 전망, 143.; 허일태, “위험사회에 있어서 형법의 임무,” 비교형사법연구 5(2) (한국비교형사법학회,2003): 211.; Winfried Hassemer, Strafrechtspolitik, 배종대/이상돈 편역, 형법정책, (서울:세창출판사, 1998): 200-202.
378) Tobias Singelstein/Peer Stolle, 안전사회, 154-156.
대응할 수 있는 형사정책, 위험규제를 위한 형법 개입을 기대하는 시민 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형사정책이다. 위험사회 형법모형 에 대한 우려는 많으나 위험사회 경향에 대응하는 형사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법치국가 원칙의 본질은 인간 존엄과 자유 를 지키기 위함이다. 실제 존엄과 자유를 누려야 할 시민이 일상생활에 서 경험하는 내용과 평가를 살펴봐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변화하는 형 법 현실 속에서 개인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 구자와 전문가와 정책담당자는 서로 원칙과 현실을 함께 살피며 협업을 모색해야 한다.
(2) 안전사회와 형사정책
위험사회에서 새롭게 대규모로 나타나는 위험은 실제 안전현실과 관계없 이 주관적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사회구성원이 체감하는 두 려움과 불안감에 주목하는 불안사회 개념이 등장하는 이유다. 이 개념은 불안감이 해소된 상태를 안전사회로 보도록 만든다.379) 현대과학기술에 따라 새롭게 등장했거나, 어떻게 실현될지 알 수 없을 재난과 위험이 있 는 한편, 종래의 재난과 위험이 현대생활형태에 따라 가중되거나 예방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한 안전정책은 적극적으로 예방수단에 투자 하고 재난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기반을 강화하는 정책과, 형법적 수단으로 위험원 (危險源)을 사전제거 내지 억지하는 정책이 있 다. 실제 위험원의 실현이나 대규모 재난 발생은 드문 일이지만, 단 한 번의 사태만으로도 안전에 대한 신뢰는 증발되고 광범위한 불안이 폭증 한다. 투자와 기반구축은 오랜 시간이 걸리며 가시적 효과가 쉽게 드러 나지 않지만, 위험원 내지 위험한 자에 대한 처벌과 격리는 불안감 일시 적 완화에는 보여줄 만한 성과가 된다. 불안감과 안전욕구가 일반적인 사회감정으로 자리 잡게 되면 더 자주 형법적 개입을 요구하게 되는 이
379) 김재윤, “위험사회에 있어 형법의 팽창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비교형사법 연구 7(1), (비교형사법학회, 2005): 33.; 김혜경, 사회안전과 실체형법의 변화, 152.; Tobias Singelstein/Peer Stolle, 안전사회,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