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간단히 언급하였듯이 2000년대 들어서 우리사회에는 생의 말기의 의 사결정 문제와 관련하여 두 번의 판결 - 보라매병원 사건277)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사건278) - 이 있었다.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생의 말기 상황에서 의사능 력을 상실한 환자의 연명의료장치 중단에 관한 결정과 관련되며 의사능력을 상실한 환자를 대신하여 환자의 가족에 의해 연명의료장치를 제거해달라는 요 청으로 시작되었다. 법원의 판단은 전자의 경우 환자 가족의 요구로 담당 의 사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되자 의사의 생명유지의 무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사의 행위에 대하여 살인방조죄에 해당한다 는 결정279)을 내린 반면, 후자의 경우 환자의 자율적 의사의 추정과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연명의료장치 제거를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상이 한 결과는 두 사건 사실관계의 확정단계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보라 매 병원 사건은 해당 환자의 혈종제거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여러 정 황으로 미루어 보아 환자에게는 회복가능성 혹은 생존가능성이 있다고 볼 여 지가 있었으나280) 신촌 세브란스 병원 사건은 당해 환자에게 회복가능성이 전 277) 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도995 판결.
278) 대법원 2009.5.21. 선고 2009다17417 판결.
279) 보라매병원 사건은 1심법원에서는 수술에 참여하고 퇴원수속을 시킨 담당 의사 A(신경 외과전문의), B(레지던트)에게 살인죄의 죄책을 인정하였으나 제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파 기하고 A와 B를 살인방조죄로 판결하였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하였다.
280) 당시 환자의 상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대광반사와 충격에 대한 반응 속도가 점점
혀 없어 생명연장 조치가 무의미한 경우로 보았다.281)
이상에서와 같이 두 판결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동종의 사건 이 될 수 없으며 더 정확히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사건만이 이 경우에 해당한 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두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두 판결문을 비교하면 서 생의 말기 의료적 의사결정 문제와 관련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원 의 인식 변화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법원은 “환 자의 추정적 의사가 의심스러울 때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였다. 즉 생의 말기 의료적 의사결정 사안은 환자 의 의사보다 의사의 생명보호 의무에 더 무게를 두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 다. 또한 의사무능력 상태에 놓인 환자의 경우 가족들의 설명을 근거로 환자 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의료진을 최종적 판단 주체로 보아
“의사의 양심적 결단”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1심 법원은 “설 령 환자의 퇴원요구가 있었다 할지라도 의사는 의료행위의 중지가 사망의 결 과를 초래하는 때에는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과는 상관없이 치료를 계속 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함으로써 심지어 환자의 명시적 의사결정 이 있는 경우라도 의료행위의 중단에 대한 결정에서는 극히 신중한 판단을 내 릴 것을 유도하고 있다.282)
사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이른바 전통적인 의료 후견주의에 입각한 판 단으로 볼 수 있다.283) 2심 법원 역시 “생명을 연장하는 의미 밖에 없는 치 료행위를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진지한 치료중지 요구에 응하여 의사의
빨라지고 이름을 부르면 스스로 눈까지 뜨려고 하는 등 그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던” 반 면에 이 사건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한 가족들은 그간 환자가 가해온 가정폭력과 경 제적 무능력, 환자의 치료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 등의 사정을 의료진에게 호소한 것으로 하며 퇴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확인된다.
281) 한편 환자의 회복 불가능성을 판별하는 과정은 두 사안 모두에서 그렇게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촌 세브란스 병원 판결에서 대법원의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 허용 판결이 내려진 후, 실제로 환자의 연명의료 장치를 제거하였는데 그 후에도 환자는 수개 월을 생존하다 사망하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본 판결에서 환자의 회복 불가능성에 대 한 의료진의 판단의 적절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282) 서울지법 남부지원 1998.5.15. 선고 98고합9 판결.
283) 치료 중단에 관한 법원 판결을 한국 의료법에서 후견주의 이념의 변화 추이에 따라 분 석한 논문으로는, 김나경·Shawn H. E. Harmon, “한국 의료법에서 후견주의 이념의 수 용, 변형 그리고 거부 –치료중단에 대한 법원판결을 중심으로-”, 「발생과 생식」, 제14 권 제2호, 2010.
양심적 결단에 따라 이루어질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 하였다.284) 즉 환자의 진지한 의사표시 이외에도 의사의 판단을 참고할 것을 병기하고 있다. 정리하면 보라매병원 사건에서는 환자의 명시적 의사 외에도 의료행위의 목적이나 의사의 양심적 결단에 견주어 연명의료중단의 허용 여부 를 판단하였다.
반면에 신촌 세브란스병원 사건에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원의 인식에 변화가 보인다. 본 판결문에서는 “환자가 연명의료중단 등에 관하여 사전의료지시를 통해 명시적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가 바뀌었다 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전의료지시의 효력을 환자의 자기결정권 의 행사로 인정”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설시는 이전 보라매병원 사건에 서 환자의 명시적 의사 이외에도 의료행위의 목적이나 의료진의 양심적 결단 을 함께 고려하도록 하였던 점에 견주어, 의료적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환자의 지위를 훨씬 주도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85)
이렇게 간접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추적하는 것 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연명의료 결정 사안에 대비하여 환자의 자 기결정권의 성격과 그 한계를 논의할 필요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 명의료결정 사안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어떠한 관점에 서 있는가를 세밀하게 확인하는 작업은 중요하다.286) 앞서 지적하였듯이 자율
284) 서울고등법원 2002.2.7. 선고 98노1310 판결.
285) 물론 이러한 지적은 환자가 사전의료지시 없이 의사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던 본 판결
과는 직접적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보라매병원 사건과 비교하여 신촌 세브란스 사건에서는 의료적 의사결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명시적 근거로서 들고 있다.
286)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에 대한 법원의 관점은 최근 내려진“무수혈 사건”에 대한 대
법원 2014.6.26. 선고 2009도14407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수혈 사건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있는 성인 환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타가수혈을 거부한 사안으로서 본 판결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와 국가의 생명보호의무와 관련하여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생명과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이때에는 의사가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 으로 행위 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를 선언하였다. 특히 피해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인가 여부를 “피고인의 무수혈 방식 수 술 및 그 위험성에 관한 수술 전의 설명내용, 피해자의 나이, 가족 관계, 피해자가 이 사 건 수술에 이르게 된 경위, 피해자가 타가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 수혈 거부에 대한 피해자의 확고한 종교적 신념, 책임면제각서를 통한 피해자의 진지한 의사결정, 수술도중 타가수혈이 필요한 상황에서의 가족 등의 의사 재확인 등”을 종합적 으로 고려하고 있는 점은 타당하다. 필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에 대한 사법적 해석
성 능력 모델의 관점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를 구성하게 되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한계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관점 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실천적 관심에서 요청된 연명의료중단의 문제를 충분히 해소하는데 어려움을 지닌다. 필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를 보다 실천적 관점에서 구성하기 위해 자율성 역량 모델을 적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아울 러 본 대법원 판결에서 사용된 환자 의사의 추정과 관련하여서도 자율성 역량 모델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보다 객관적인 가치 판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최선의 이익 기준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