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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적 의사결정에서 최선의 이익 기준

III.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과 최선의 이익 기준

2. 의료적 의사결정에서 최선의 이익 기준

최근 의료 윤리 담론에서 등장하는 환자의 자율성 원칙과 대립되는 기준으 로 최선의 이익 기준이 등장하고 있는 바, 이하에서는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이 라는 맥락을 한정지어 최선의 이익 기준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1) 의학적 관점에서의 이익

대체로 의료윤리 담론에서 등장하는 최선의 이익은 의학적 측면에서 환자 의 이익에 집중되어 있다. 대체로 의학적 측면에서 최선의 이익은 “의료 전 문인들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의 이익이 될지를 결정할 수 있는 내용들”에 해당된다. 이러한 의학적 소견이 언제나 객관적이고 확실 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의료전문가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에 권위가 인정되 는 편이다. 문제는 의료결정과정에서 의료 전문인의 판단과 환자의 의사가 대 치되는 경우에 발생하는데, 의료진의 판단은 선행의 원칙에 근거하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 기준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환자는 자율성 원칙에 근 거하여 환자 본인의 의사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관련 사안을 아래에서 소개한다.234)

사례A. 의사는 환자를 진찰한 후 척수조영술(myelogram)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그 검사로 최종 결론을 내리기 어렵고 재검사가 필요하였지만, 그 검사는 또한 심각한 병적 이상을 암시하고 있다. 환자가 검사 결과에 대해 물었을 때 의사는 만일 환자에게 사실을 알릴 경우 환자가 우울해 하거 나 초조해 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행의 원리에 근거하여 잠정적으로 부정적인 정보를 알리 지 않기로 하였다. 물론 두 번째 검사 결과에 대해서 환자에게 완전히 알릴 것이다. 일시적으로 부정적 검사결과를 환자에게 알리지 않는 의사의 의도는,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정서적 고통을 잠시 동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선의의 목적을 가진다.

사례B. 탈장수술을 받기위해 수술 전 약을 복용한 환자는 침대 양 옆의 레일을 올리지 않았으면

234) Tom L. Beauchamp·James F. Childress, 위의 책(주3), 382-385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환자는 약을 복용하고 졸린 상태에서 침대에서 떨어질 위험이 있어서 레일을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현재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환자의 간호를 책임지는 간호사는 환자의 요청을 무시하고 침대의 레일을 올렸다. 현재 정신이 또 렷하더라도 방금 약을 먹어서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며 갑자기 졸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해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는 결정을 내렸다.

위의 두 사례 A, B는 비첨과 췰드리스가 의료 영역에서 자율성 존중 원리 보다 선행의 원리가 우선시되는 경우들이 있으며 그 예로서 들고 있는 사례들 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두 원리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조건들을 아래와 같 이 제시한다.

① 환자가 중대한 예방 가능한 해를 입을 상황에 있을 것.

② 후견적 개입에 의해 그러한 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

③ 후견적 개입을 통해 환자에게 발생하는 이익이 환자에게 미치는 위험보다 클 것.

④ 환자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 외에 대체할 합리적 대안이 없을 것.

⑤ 후견적 개입의 대안들 중에서, 환자의 이익을 보장하고 위험을 줄이면서도 자율성을 가장 적게 제한하는 대안을 선택할 것.

이러한 조건들은 침해되는 자율성의 정도와 그러한 침해를 통해 확보되는 환자의 이익 사이의 균형 여부에 따라 선행원리에 의한 후견적 개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경우이다. 즉 사례A의 의사와 사례B의 간호사는 환자의 자율적 의 사보다도 잠재적으로 발생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행동한 것이며 이는 자율 성 능력 모델의 관점에서 본다면 명백히 자율성 원칙보다 선행의 원칙을 우선 한 것이다. 이때 선행의 원리에 의한 후견적 개입은 프랑케나가 제시한 네 가 지 의무에서 (i) (ii) (iii)까지의 범위로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후견적 개입은 의료 영역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두 원칙의 충돌에 대 하여 비첨과 췰드리스는 위의 5가지 조건들을 통해 두 원칙의 균형을 찾는 다.235)

235)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근본적으로 자율성과 선행의 원리의 대립 구도를 전제한 논의이

다. 이러한 전제에는 자율성이 침해당하지 않아야 할 권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인 데(자율성 능력 모델), 만약 자율성이 우리가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가치라는 전제에 선다 면, 환자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일 자체가 환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서 자율 성과 선행은 상호 대립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자율성 역량 모델).

(2) 복지적 관점에서의 이익

비첨과 췰드리스의 논의는 대체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의학적 관점’

에 한정지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치료행위가 단순한가 복잡한가, 자연 적인가 인위적인가, 비침습적인가 매우 침습적인가, 저렴한가 비싼가, 의례적 인가 모험적인가에 따라 구분한다면, 이들이 제시한 조건들 - 환자의 자기결 정권과 선행의 원리 사이의 균형 기준 - 로 설명할 수 없는 사안들이 존재하 게 된다. 그리고 이때 선행의 원칙에 의한 후견적 개입은 프랑케나의 구분에 따를 때 (iv)에 해당할 것이다.236)

이러한 범위에 속하는 치료행위는 핵심적으로 생명유지(life sustaining) 기 술과 같은 무의미한 의료에 대한 결정 사안이다. 매우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 지만, 이 경우 단순히 의학적 이익의 측면에서만 고려될 수 없다.237) 왜냐하면 자율성은 우리의 행복과 삶의 질 측면에서 간단히 무시될 수 있는 사항이 아 니기 때문이다.238) 치료가 선택적인가 의무적인가와 관련하여 최선의 이익 기 준은 삶의 질 판단에 상당한 비중을 두게 된다. 이때 고려되는 이익은 의학적 이익보다 광의의 개념으로서 ‘복지적 이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미국의

“의학과 생의학 그리고 행동과학 연구에서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통령위원 회“의 입장에서 밝히고 있는 최선의 이익 개념은 가족의 복지를 포함하는 광 의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의사능력을 상실한 환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치 는 결정의 영향은 어떤 이의 최선의 이익을 결정하는데 고려될 수 있다. 대부 분의 사람은 그들 가족이나 가까운 교우의 안녕에 중요한 이익을 갖기 때문이 다.239)

236) Tom L. Beauchamp·James F. Childress, 위의 책(주3), 282-283면.

237) 반면에 폴 램지(Paul Ramsey)는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환자들을 위해 어떤 치료가 의무

적이고 또 어떤 치료가 선택적인지 알기 위해서는 의학적으로 어떤 치료가 권유되는지 결 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Paul Ramsey, Ethics at the Edges of Life, Yale University Press, 1978, 155면.

238) 조선우, “온정적 간섭주의는 자율성의 이익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온정적 간섭주의 와 환자의 자율성 및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대한 고찰”, 「한국의료윤리학회지」제17권 제3호, 2014, 297면.

239) President's Commission, Deciding to Forego Life-Sustaining Treatment; Tom L.

Beauchamp·James F. Childress, 위의 책(주3), 303면 재인용. 물론 비첨과 췰드리스는 환 자의 의학적인 최선의 이익에 반하여 그 환자에게 다른 동기나 이타심을 전가시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비판한다. 위의 책, 303면.

정리하자면 필자가 제안하는 자율성 역량 모델은 자율성의 외연을 확장하 여 의사결정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요소들에 주목한다. 마찬가지로 이 러한 확장은 최선의 이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최 선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에는 (i) 환자의 의학적 측면에서의 이익 이외에도 (ii) 환자의 재정적 측면에서의 고려, (iii) 환자의 가족 및 친지들에 대한 배려 차원 에서의 고려, 그리고 (iv) 환자의 자율성 행사와 관련하여 체감하는 삶의 질과 관련된 주관적 행복 차원의 고려가 포함될 수 있다.240) 이런 측면에서 광의의 이익은 일종의 복지적 이익이며 여기에는 누스바움이 제시한 핵심역량 목록들 이 포함될 수 있다.

만약 환자의 이익을 복지적 차원에까지 확장할 경우 이때 최선의 이익 기 준은 단순히 제3자에 의한 대리 결정(substituted decision-making)을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환자의 결정을 지원하는(supported decision-making)하는 방향으로 이행하게 된다.241) 이러한 이행은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의미하는 데 단순히 환자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판단능력이 불충분한 사람들이 국가로 부터 일방적인 시혜조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복지향상을 위해 주체적 으로 결정하는 존재로서 자기결정 지원의 강화를 의미하는 담론으로의 전향을 의미한다.242)

이런 관점에서 개별적인 자율적 지원을 강조하면서 복지체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영국의 정신능력법(Mental Capacity Act 2005)243)는 필자가 제안하는 자율 240) 조선우, 위의 논문, 297면. 이 논문에서는 환자의 선호에 입각한 주관적 행복과 삶의 질

역시 환자의 최선의 이익 안에서 사고될 수 있을 때 자율성 존중의 원칙과 선행의 원칙에 입각한 온정적 간섭주의의 충돌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를 피력하는데 기 초가 된 연구로는 Edmund D. Pellegrino & David C. Thomasma, For the Patient’s Good:

The Restoration of Beneficience in Health Care,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29면.

241) 이명현, “영국 성년후견법을 통해 본 복지사회 구상: 의사결정능력법(Mental Capacity Act)의 자기결정지원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제12권 제3호, 2012, 409면.

242) 이때의 자율성의 이상은 사적 자치 원리로 표상되는 자기지배가 아니라 자기실현에 있 다. 이때의 이익은 단순히 시장거래에서의 이익확보의 차원을 넘어 삶의 질에 대한 총체 적 관점에서의 고려를 요구한다. 전통적으로 복지패러다임은 사람들의 재산에 관한 것이 었으나 21세이 이후 본인 스스로 선택하는 건강이나 행복, 안전과 같은 전인격적인 복지 향상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복지의 객관적인 수준을 충족할 경우 재산관리나 신상보호를 승인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야기한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우리 민법상 새로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43) 영국의 정신능력법은 영국 성년후견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법이다. 이 법은 198년 변호사협회(Law Society)에 의해 제안된 이후 15년 간의 개혁의 성과물이다. 영국에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