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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자율성 역량 모델의 이해

2. 자율성 역량 개념의 역동성

자율성 역량 개념을 구성요소를 통해 정의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개념을 분 석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방식으로는 필자가 자율성 역량 개념 안에 담고자 하는 상호작용을 통한 ‘역동성’의 의미가 잘 드러나 지 않는다. 이하에서는 의사결정을 선택이나 결정을 수반하는 일련의 복합적 인 ‘과정’으로 이해할 때 나타나는 특성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이 각 요소들 이 상호작용하며 의사결정능력에 영향을 주며 바로 이러한 역동성의 차원이 자율성 개념을 파악하는데 함께 고려되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앞서 센과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을 검토하면서 역량 개념은 실질 적 자유를 보장하는 삶의 비교 지표들이란 점을 확인하였다. 이때 삶의 ‘비 교’ 지표라는 말에는 이미 개인의 내적 관점을 벗어나, 개인 외부의 관점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한다. 즉 인간의 ‘자유’란 일차적으로 개인의 내면적인 의사와 긴밀하게 연관되지만, 이러한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를 논 의하는 것은 이미 개인의 내면적 요소뿐만 아니라 개인의 외부적 요소들과의 상호작용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 논의 차원이 이동하는 것이다.

센과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역량 개념을 통해 인 간의 자유와 삶의 질(quality of life) 및 복리(well-being)의 관점을 연결시키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역량 개념을 자율성에 결합하여 새로운 자율성 역량 개 념을 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종래의 자율성 개념이 인간의 이 성 중심적인 인지 능력에 한정되어 논의된 반면에, 자율성 역량 개념은 감정 등의 심리적 속성, 생명과 건강과 같은 신체적 속성, 나아가 인간 외부의 관계 적 속성들과 상호작용하는 의사결정능력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자율성 역량 개념의 역동성은 중요한 특성이다.

(1)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

자율성 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초기 구상은 센이 제 시한 ‘인간의 다양성(human diversity)’에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변수들에는 ‘개인의 이질성(personal heterogeneities)’, ‘환 경의 다양성(environmental diversities)’, ‘사회적 환경의 차이(variations in social climate)’, ‘상대적 관점의 차이(differences in relational per- spectives)’, ‘가족 내에서의 분배(distribution within the family)’ 등이 해당 한다.216) 이상의 다섯 가지 요소들은 센이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총체로 제시한 것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변수들은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로 볼 수 있으며 아 래 <표 4>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을 크게 인적 요소들(personal factors)과 비(非)인적 요소들(non-personal factors)로 구분하고 다시 비(非)인적 요소들에는 제도적 요소들과 비(非)제도적 요소들로 구분할 수 있다.

<표 4>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

인적 요소들 (personal factors)

비인적 요소들 (non-personal factors)

제도적 제도 외적

▷ 육체적 특성들

:건강, 신체능력 및 특징(성별, 나이 등)

▷ 정신적 특성들

개인의 성격, 취향, 기호, 목표, 인지능력 (지적능력, 언어능력, 가치판단 능력, 논 리적 추론능력 등), 감정, 도덕적 감수 성, 상상력 등

▷ 정치 제도

▷ 경제 제도

▷ 사회 규범

▷ 법

▷ 자연환경(기후, 지리적 위치 등)

▷ 인간관계(가족 및 공동 체 문화, 애착관계 등)

▷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 종교

<표 4>에서 제시된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을 누스바움이 열거한 10 가지 인간의 핵심 역량 목록들을 통해 지표로서 더 명확히 재구성할 수 있다.

216) Amartya Sen, Development as freedom, New York : Knopf : Anchor Books, 1999: 박우희 역, 「자유로서의 발전」, 세종연구원, 2001, 99-100면.

<표 5> 누스바움의 핵심 역량들의 분류

구분 1 구분 2 해당 항목

개인 내적 측면

신체적

1. 생명 2. 신체적 건강 3. 신체적 통합성

정신적

4. 감각, 상상력, 사상 5. 감정

6 실천이성

개인 외적 측면

대인/대상 관계적 7. 유대

8. 다른 종에의 관심

사회·환경 체계적 9. 놀이

10. 환경에 대한 통제

인간의 핵심 역량들은 개인의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으 며 개인의 내적 측면은 다시 신체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로 구분한다. 신체적 요소에는 생명, 신체적 건강, 신체적 통합성 등이 해당되고 정신적 요소에는 감각, 상상력, 사상, 감정, 실천이성 등이 해당된다. 개인 외적 측면들은 주로 개인을 둘러싼 관계망을 의미하는데 대인/대상 관계적 요소들로서 그로부터 발생하는 유대감이나 다른 종에 대한 관심이 해당되며, 사회·환경 체계적 요 소들로는 가령 여가 활동을 의미하는 놀이와 정치적 혹은 물질적 환경 등이 있다.

이러한 분류를 통해 종래의 자율성 능력 개념과 자율성 역량 개념을 대조 해보면, 자율성 능력 개념은 기본적으로 맥락-독립적인 차원에서 개인의 의사 결정능력과 관련한 요소들로(개인의 내적 측면-정신적 요소들: 4.감각·상상 력·사상, 6.실천이성) 그 고려 범위를 제한한다. 반면에 자율성 역량 개념에는 이러한 제한 없이 해당 의사결정 사안에 따라 항목 10가지 요소들이 모두 고 려될 수 있다.

물론 자율성 역량의 각 항목들은 모든 사안들에서 동일하게 영향력을 행사 한다고 볼 수 없다. 각 요소들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달리하며 복합적으로 의사결정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성적자기결정권이 문제되는 사안에서는 개인의 내적 측면: 3.신체적 통합성, 4.감각·상상력·사상, 5.감정,

개인의 외적 측면: 7.유대감(개인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의 인정 이나 판단), 9.놀이, 10.환경에의 통제(종교/문화/사회규범 등의 영향) 등이 영향 을 미칠 것이다. 한편 본고에서 주목하는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서는 특히 1.

생명, 2.신체적 건강(과 질병상태), 3.신체적 통합성, 정신적 특성으로서 항목 4,5,6, 나아가 7.유대감(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이나 보호자의 역할 등), 10.환경 에의 통제(실질적으로 접근 가능한 의료기술 및 제도, 의료 서비스의 질, 치료 에 수반되는 시간적·경제적 비용) 등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과 그 상호작용을 인정하는 함의는 다음과 같 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 개인의 사유작용에는 이성뿐 아니라 감정, 건강 과 같은 심리적·신체적 요소도 함께 작동한다. 이를 확대 해석 하면 의사결 정은 다양한 개인의 내적·외적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상호작용이며 따라서 순전히 사적인 정신작용으로만 간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 한 인식의 변화는 자율성 논의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 문제에 천착하 기보다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구체적인 상황에 더 주목하도록 만든다. 둘째, 만 약 의사결정과정이 순전히 개인의 독립적인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옳다면,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 대 한 책임도 결정의 당사자에게만 환원시킬 수 없게 된다. 즉 의사결정과정을 일종의 상호작용으로 인식하는 것은 결정의 결과에 대해서도 공동의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각인의 자율성 역량을 증진시켜야 하는 적 극적 의무를 지며, 각인이 보다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데 관 심을 가지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책임도 진다고 말할 수 있다.

(2) 자율성 역량 개념의 역동성

이렇게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자율성 역량 개념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 명 방식은 “A는 무엇이다”라는 식으로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렵다보니 설명 의 모호함을 수반하게 된다. 필자는 제3장을 통해 역량 접근법에서 사용되는 역량 개념이 역동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하였고 특히 누스바움의 역량 개 념에서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누스 바움의 역량 개념은 기본역량, 내부역량, 결합역량으로 세분되고, 이러한 각

역량들은 일련의 발전 단계로서 설명된다. 즉 기본역량이 일정한 개발을 통해 내적 성숙단계에 이르러 내부역량이 되고 이 내부역량은 외적 조건들과 결합 하여 결합역량이 되는데 바로 이 이러한 결합역량이 최종적 완성 단계이며, 이는 인권의 구체적 내용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자율성 역량 개념이 그 설명 상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역량의 역동성’을 수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자율성 역량의 역동성은 곧 “자율성 역량의 발전 내지 증진”이라는 자율성 의 새로운 이상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종래의 자율성 능력 관점에 의하면 자 율성의 이상은 ‘자기지배’라는 폐쇄적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이상은 자아 와 타자를 분리하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함으로써 사적 영역에 대한 불가침적 선언의 의미를 가진 자기결정권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자율성 역량 관점에 의하면 자율성의 이상은 ‘자기실현’이라는 열린 구조를 가진다. 이 러한 이상은 자아와 타자의 분리가 아닌 상호의존성을 전제하며, 발전에 대한 어떠한 청사진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역량의 발전을 위해 상호 조화와 협력을 도모하는 이상을 창조할 수 있다. 이때의 자기결정권은 타자를 배제하 여 획득되는 배타적 처분권이 아니라, 자기실현을 위한 토대를 조성하는 혹은 실질적 기회를 요구할 권리가 된다.

둘째, 자율성 역량의 역동성은 의사결정이 맥락-독립적인 이성적 사유과정 의 결과물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의 변수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종합적 탐구 과정임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공동체가 개인의 의사결정과정에 간 섭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기보다 각인의 의사결정능력을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력 의무를 가진다는 상반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정리하자면 자율성 역량 개념은 기존의 자율성 능력 개념의 구성요소들 이 외에 가치 요소를 포함하며, 이 가치요소는 자율성 능력에 영향을 주는 관계 적 요소들의 상호작용 방식을 통해 논해질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자율성 역량 개념을 자율성 개념의 평면적 확장으로만 이해한다면, 자율성 개념의 구성 요 소들을 추가하여 자율성의 달성 조건을 엄격하게 만드는 것이 되며 이는 오히 려 자율성의 고려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율성 역량 개념의 역동성은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