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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의 특징

II.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

2.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의 특징

누스바움은 이러한 핵심 역량의 목록들은 범문화적인 연구들을 바탕으로 인류 공통의 경험으로부터 추출해 낼 수 있는 것들이며 언제든 수정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핵심 역량들이 인류의 보편적인 좋은 삶과 연관될 수는 있지만 좋은 삶에 대한 포괄적인 선관념이 아닌 부분적인 선관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핵심 역량들은 각자 좋은 삶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본 토대일 뿐이다. 이러한 목록 을 제시하는 이유 역시 사람들이 각자 삶의 번영을 위해 핵심적이라 할 만한 역량들의 구체화 영역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지 역량이 그 자체로 가 치라는 입장과는 구별된다.154) 나아가 이러한 10가지 핵심역량들은 인권의 구 체적 내용이 될 수 있으며 정치공동체는 이러한 역량들에 대해서 사회적 최소 한의 기준을 정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역량들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할 정치적 의무를 도출한다.

로 설명한다. 즉 역량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은 다양한 상황과 문화에 섬세 한 인식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준적인 접근을 ‘다양한 맥락 (contextual variation)에 민감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하여는 각인의 기본 역 량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인 간의 핵심 역량 목록을 통해 각 공동체는 기본적인 환경의 범위를 정하고 각 영역의 사회적 최소한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누스바움의 설명은 애초에 완전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입론은 아니기 때문에 정의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만약 어떤 사회가 역량의 임 계 수준을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에는 여전히 부정의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157) 따라서 정의론의 측면에서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의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사회는 개인이 다양한 맥락에서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 한 수준 이하일 경우 지원해야 하지만 그러한 최소한의 기준 이상의 여건에서 는 개인은 자기실현의 목적과 방식을 스스로 선택한다.158)

이러한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적어도 각인의 선관념의 형성과 실현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피하면서 각 역량의 발휘를 위한 사회적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하는 간접적 방식을 통해 공적 개입의 여지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 개입과 관련하여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이 발생시키는 도덕적·사회적 의무가 무엇을 말하는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공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의로 활용하기에 상당히 곤란함이 있다. 특히 누스바움은 10가지 인간의 핵심 역량 들이 인권의 구체적 내용이며 국가의 헌법적 원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도 그 원리들의 실제 이행에서는 해당 국가의 내부정책에 맡겨야 한다는 실행 상의 제약을 인정한다.

157) 이에 대하여 누스바움은 모든 시민이 일정수준의 임계점을 넘은 후에도 제기되는 정의

및 분배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견해들과 양립가능하다고 말한다. Martha C. Nussbaum, Frontiers of Justice: Disability, Nationality, Species Membership,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75면.

158) Martha C. Nussbaum, “Capabilities and Human Rights”, Fordham Law Review 66(2), 1990, 288면.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의 다섯 가지 특징으로 “다양한 실현가능성(multiple realizability), 목적으로서의 역량(capabilities as goal), 자유와 실천이성(liberties and prac- tical reason),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실행의 제약(constraints on im- plementation)”을 들고 있다.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50), 105면.

사실 역량 접근법은 최소수준 이하의 시민들의 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국가 의 적극적 조치를 동반해야만 실제적 유용성을 지닐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시민들은 최소수준 이하의 역량을 기준치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할 법적 권한까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만 권리를 결합역량으로 이해하는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이 단순한 동어반복에 그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159)

가령 여성의 정치적 참여권을 결합역량을 통해 설명해보자. 여성들의 정치 참여권이 동등하게 보장되는 다수의 국가에서 여전히 여성 국회의원 수는 남 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를 결합역량의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여성들의 정치 참여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화나 종 교, 관행의 측면에서 실제로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매우 제한을 받는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요소로는 사회에 존재하는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여성 스스로의 저조한 참여의지, 가사 및 육아에 대한 여성의 과중한 부담 등 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더라도 실제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정부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증진하기 위한 잠정적 우대조치 개발과 같은 일시적인 제도적 지 원 방안 등을 마련할 수 있다.

필자는 역량 접근법의 규범적 요청이 권리담론을 보충하면서도 새로운 정 의론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으로 도출된 인간 역량 목록을 제도적 담 론으로 연결시키는 논의들을 좀 더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인 간의 핵심 역량들이 중첩적 합의의 내용이 될 수 있다는 누스바움의 답은 상 당히 불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공적 개입의 범위와 한계 를 정하는 실천적 논의에 활용하고자 하는 필자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한다.

특히 핵심 역량의 항목들에 대한 누스바움의 설명은 매우 불분명하다. 가령 159) 김연미 교수는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이 권리이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것이라고 한다. 권리 언어의 이용은 심각한 철학적 의견의 불일치가 있는 곳에 합의의 환 상을 심어줄 수 있는데 역량을 통한 설명은 권리보호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말해줄 수 있다. 김연미, “인권의 보편성과 다원성”, 「공익과 인권」제1권 제2호,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 연구센터, 2004, 75면.

항목 중에서 생명, 신체적 건강, 신체적 완전성 등은 수정가능성에서 비교적 고정적인 편이며 실천이성이나 유대와 관련된 내용들은 더 유동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말한다.160) 그러나 생명이나 신체적 건강, 신체적 완전성과 같은 인 간의 물리적 특성들이 비교적 고정적이며, 실천이성이나 유대감과 같은 정신 적 내지 심리적 특성들은 유동적인가에 대해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누스바움은 각 항목들이 개별적인 항목이지만 복합적인 방식으로 상 호 연관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롤즈가 자연적 기본 가치(natural goods)로 제시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때 각 항목 간 복합적인 상호연관성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누스바움은 10가지 항목 간에 우열관계가 없다고 밝히면서 실천이성과 유대 항목은 나머지 역량 목록 들을 정비하고 가능하게 하는 역량으로서 이를 통해 비로소 진정으로 인간다 움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장 모호한 부분은 누스바움은 그녀가 제시한 역량 목록들을 사회의 정치 적 의무의 내용으로 볼 것이냐 시민들의 권리의 내용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 도 명확히 어떠한 설명을 제시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역량 접근법을 보다 실천적 관점에서 공적 개입의 범위와 한계를 정하는데 활용하 기 위해서는 역량의 규범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에 대한 누스바움의 설명은 그다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소홀한 듯하다.161)

필자는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의 불분명함은 이 이론이 상당부분 철학 적·이론적 근거 제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즉 역량을 통해 공공정책 및 사회 정의의 토대를 제시하는 일반적 구조를 이론적으로 설명하 는 것일 뿐 공적 개입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실천적 논의를 염두한 것으로 보 기는 어렵다. 그러나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은 특히 현대 인권 철학에서 논 란이 되는 이른바 제2세대 경제적 권리에서 제3세대 사회적 권리로의 인권 확 장과 관련하여 공적 담론을 위한 하나의 아젠다로서 의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162)

160)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50), 81-83면.

161) 특히 누스바움은 인간의 본성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서부터 이해하고 정치적 자유 주의의 문제는 롤즈의 관점에 의존하는데 이를 비판하는 이론가는 누스바움이 1990년대를 전후로 입장을 달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Ian Carter, “Is the capability approach pater- nalist?”, Economics and Philosophy 30, 2014;

비록 역량 접근법의 실제적 유용성까지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역량 개념 을 활용하여 공적 개입의 여지를 마련함으로서 그 이론적 정당화의 기능은 충 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