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
1. 역량의 역동적 이해
누스바움은 역량(capabilities)148) 개념을 세 가지 발전 단계인 기본역량, 내 부역량, 결합역량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역량의 역동적 이해는 각 발 전 단계에 미치는 사회적 요소들의 영향력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역량의 구분에서 첫 단계에 해당하는 기본역량은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겸비한 내적 기량을 의미한다. 물론 대부분 어느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쳐 기 능화 되는데 다음 단계로 발전되기 위한 씨앗과도 같다. 이러한 기본역량은 스스로 개발되기도 하지만 외부 환경이나 지원을 통해서 내부역량으로 발전될 수 있다.
내부역량은 개인이 스스로 필수적인 기능을 행사하기 위해 충분히 개발된 상태를 말한다. 내부역량이 내적으로 충분히 성숙한 단계라 할지라도 외적인 조건들과 결합하여야만 비로소 최종적인 기능의 실현이 달성된다.
누스바움을 이를 내부역량들의 내적 적합성(innate fitness)에 이르고 외부 조건들(external conditions)과 적절하게 결합하는 것을 통해 최종단계의 결합역 량이 된다고 설명한다.149)
이하 <그림 3>에서처럼 누스바움이 구분하는 각 역량의 단계들을 구분하여 그림으로 제시하였다. 결국 역량은 기본역량에서 내부역량으로 또 결합역량으 로 발전해간다.150)
148) 누스바움은 사람들의 삶의 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복수적이며 질적으로 구별된다
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역량들(capabilities)’이라는 복수형 명사를 사용한 다. 건강, 신체적 온전성, 교육, 기타 개인적 삶의 측면들은 왜곡 없이는 단일 기준으로 환 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Martha C. Nussbaum, Creating Capabilities, The human Development Approach,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11, 18면: 한상 연 역, 「역량의 창조」, 돌베개, 2015. 센의 역량 중심 접근법에서도 역량의 다원성과 비 환원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굳이 복수형 명사를 쓸 필요는 없을 것으로 사료되어 본고에서 는 ‘역량’으로 통일한다.
149) 누스바움은 결합역량을 초기연구에서 외부역량(external capabilities)이라고 불렀으나 내
적 부합도 중요하다는 점을 반영하여 결합역량으로 변경하였다. Martha C. Nussbaum, 위 의 책, 84면.
150) Martha C. Nussbaum, Women And Human Develop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84-85면.
<그림 3> 누스바움의 역량의 구분
이러한 역량의 역동적 이해에서 필자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각 단계의 역량들이 각각 관계적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러한 영향들이 결국 다 음 발전 단계로의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가령 인간의 기본역량이 발전되어 성숙하게 발현된 내부역량이 되기까지는 외부 환경이나 지원이 중요하다. 이러한 외부 환경이나 지원에는 교육이나 훈 련과 관련한 요소들이 생각될 수 있다. 또한 내부역량이 기능으로 발휘되는 결합역량이 되기까지는 성숙된 내부역량의 내적 부합 이외에도 외부조건들이 결합되어야 한다. 외부적 조건들이란 개인이 속한 사회 제도 및 법규범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필자는 누스바움의 역량의 역동적 이해는 ‘역량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규범적 요청으로 연결된다고 본다. 누스바움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공정책이 나 제도는 각인의 기능실현보다는 역량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역량의 발전가능성’은 역량 접근법의 이론적 정당화 에서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기능이 아닌 역량에 목표를 두는 “공공 정책은 각인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각
인의 역량의 원칙(a principle of each person’s capability)을 존중해야 한다”
고 답할 수 있다. 각인의 역량 원칙이란 “인간이 참된 기능을 실현할 수 있 기 위해 각인의 역량은 발전되어야 한다.”로 풀이할 수 있다.151)
인간의 삶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자가 추구하는 좋은 삶에 대한 관념은 객 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각자의 고유한 삶의 번영 을 위해 필요한 역량은 발전되어야 한다는 요청은 보편적일 수 있다. 누스바 움은 “이러한 주장이 하나의 기초적 직관(basic intuition)임을 인정하지만 특 정 형이상학이나 목적론적 관점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도덕관(a freestanding moral idea)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152)
센 역시 자유의 발전을 본질적인 가치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역량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도덕적 직관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도덕 적 직관을 정치적 의무로까지 확장하는 누스바움과는 입장을 달리한다. 센과 달리 누스바움은 이러한 역량 접근법의 제도적 구상을 모색한다. 이런 배경에 서 누수바음이 제시하는 인간의 핵심 역량 목록은 중요한 규범적 함의를 가진 다. 누스바움의 역량 구분에서 최종단계에 해당하는 결합역량은 핵심 역량들 (Central Capabilities)이라고 달리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적인 삶과 번영 을 위해 요구되는 역량들이다.
이하 <표 3>은 누스바움이 제시한 10가지의 핵심역량 목록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표는 역량 접근법을 소개하는 누스바움의 여러 문헌들에서 자주 소개되는데, 이하의 표는 가장 최근의 문헌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151)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50), 5면.
152)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50), 6면.
<표 3> 누스바움의 10가지 핵심 역량들153)
1. 생명(life): 정상적인 수명까지 살 수 있을 것; 너무 이른 시기거나 혹은 자신의 생 명이 심하게 감퇴되어 살고 있다는 의미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사망하지 않을 것.
2. 신체적 건강(bodily health): 건강한 재생산을 포함하여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 을 것; 적절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을 것; 적절한 주거를 가질 것.
3. 신체적 완전성(bodily integrity): 자유롭게 장소를 이동할 수 있을 것; 성폭력 및 가정폭력을 포함한 폭력적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 성적 만족 및 재생산을 위한 선 택을 위한 기회들을 가질 수 있을 것.
4. 감각, 상상력, 사상(senses, imagination and thought): 상상하고 생각하고 추론하 기 위해 감각들을 사용할 수 있을 것 -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진정으로 인간다 운”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 즉 글씨 쓰기나 기초적인 수학이나 과학적 훈련을 포 함하지만 결코 이것에 한정되지 않는, 일련의 적절한 (인성) 교육을 통해 익히고 함 양되는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 경험하거나 작품을 만들거나 스스로 선택한 종교 적, 문학적, 음악적 일들과 관련하여 상상력이나 사고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 정치 적 발언과 예술적 발언 모두를 존중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행사의 자유의 보장 에 의해 보호되는 방식들로 자신의 정신을 사용할 수 있을 것. 즐거운 경험들을 가 지며 이득 없는 고통은 피할 수 있을 것.
5. 감정(emotions): 우리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을 것; 우리 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부재에 슬퍼할 수 있을 것; 일반 적으로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 있고, 그리움이나 감사, 정당한 분노를 경험할 수 있을 것. 자신의 감정의 발전이 두려움이나 근심에 의해 저해되지 않도록 할 것. (이 역량을 지지하는 것은 인간 연합의 형식들이 인간의 발전에 있어서 중대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6. 실천이성(practical reason): 선 관념을 형성하고 자기 삶의 계획에 대한 비판적인 숙고를 할 수 있을 것. (양심의 자유와 종교적 의례의 자유의 보호를 포함한다.) 7. 유대(affiliation): A. 타인들과 함께 타인들을 위하여 살 수 있을 것, 타인을 인정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보여줄 수 있을 것,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교류에 참여할 것; 타인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 (이 역량을 보호하는 것은 그러한 형태의 유 대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제도들을 보호하는 것, 또한 결사의 자유와 정치적 표현 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B. 자기존중과 모욕당하지 않기에 대한 사회적 토대를 가질 것; 타인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을 것.
이는 인종, 성, 성적 지향, 민족, 신분, 종교, 출신국가에 근거하여 차별받지 않을 규 정을 포함한다.)
8. 인간외의 종에 대한 관심(other species): 동물, 식물, 자연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과 연관되어 살 수 있을 것.
9. 놀이(play): 웃고, 놀고,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을 것.
10.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control over one’s environment): A. 정치적 :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정치적 선택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정치적 참여권을 가지 고 언론 및 집회의 자유의 보호를 받을 것. B. 물질적 : (부동산 및 동산에 해당하는) 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며 타인과 평등하게 재산권을 가질 것; 타인과 평등하게 고용 을 추구할 권리를 가질 것; 부당한 압수와 수색으로부터 자유를 가질 것. 노동에서, 실천이성을 행사하며 다른 노동자들과 상호 승인의 의미 있는 관계에 참여하면서, 인간으로서 일할 수 있을 것.
153)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48), 33-34면.
누스바움은 이러한 핵심 역량의 목록들은 범문화적인 연구들을 바탕으로 인류 공통의 경험으로부터 추출해 낼 수 있는 것들이며 언제든 수정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러한 핵심 역량들이 인류의 보편적인 좋은 삶과 연관될 수는 있지만 좋은 삶에 대한 포괄적인 선관념이 아닌 부분적인 선관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핵심 역량들은 각자 좋은 삶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본 토대일 뿐이다. 이러한 목록 을 제시하는 이유 역시 사람들이 각자 삶의 번영을 위해 핵심적이라 할 만한 역량들의 구체화 영역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지 역량이 그 자체로 가 치라는 입장과는 구별된다.154) 나아가 이러한 10가지 핵심역량들은 인권의 구 체적 내용이 될 수 있으며 정치공동체는 이러한 역량들에 대해서 사회적 최소 한의 기준을 정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역량들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할 정치적 의무를 도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