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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 기준

II.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 그 판단 기준

2.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 기준

(1)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

대법원 다수의견에서는 환자가 “의료계약의 당사자로서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진료행위를 선택하 는” 자기결정의 주체로 인정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가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고 있을 뿐이며 이러 한 의료의 인위적 개입이 환자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과정을 방해하 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본 사안에서 법원이 인정하는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의사는 생명권과의 이익 형량을 통해 자기결정권의 우위를 인정했다기보다는 이미 환자가 죽음으로 진입한 상태에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환자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 및 가치라는 헌법적 이념에 부 합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때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환자의 인격을 존중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288) 사실 이 문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성격과 관련

288) 국내 학계 및 언론사에서는 처음에 이 사안을 ‘존엄하게 죽을 권리’ 내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 권리’의 인정 문제로 보아 ‘존엄사’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 나 최근 미국에서는 오레곤주 존엄사법(The Oregon Death with Dignity Act, 1997)에서 인

한 향후 논의를 필요로 한다.

연명의료 중단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적극적으로 생을 마감할 자유 를 논하는 ‘죽을 권리’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생명은 일련의 연속적 과정 으로 그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곳에 명확히 선을 그어 죽음의 시기를 예비할 수 없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연속과정에 연명장치 등을 통한 의료적 개입은 인위적인 갭(gap)을 만들었으며 생명 연장만을 위한 조치들을 제거하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음 과정에 돌입한 환자가 자연스러운 죽 음의 과정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자의 의사에 의한 연명장치의 탈착이 외견상으로 죽음을 개시하게 할 가능성이 곧바로 죽을 권리의 인정으로 확대 해석 될 수는 없다. 이런 견지에서 대법원도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의 허용 조건으로서 환자 생명의 회복 불가능성을 들고 있다.289)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적극적으로 ‘죽을 권리’ 내지 ‘죽음을 선택 할 권리’가 아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 혹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며 그 적용 범위도 환자의 회복불가능성을 전제로 만 가능하다.290)

(2)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사안에서 대법원의 판단 기준

의료상황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기본적으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 의’ 원칙을 통해 실현된다. 동의를 내릴 수 있는 주체는 동의 능력 곧 의사 결정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때 환자의 동의능력은 민법상 의사능력(유효한 법 률행위를 위한 통상인의 이해능력 내지 판단능력)과 유사할 수 있다.291)

정하는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에 포함시켜 논의하고 있는 바, 국내는 아직 연명치료 중단 의 허용에만 국한하여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용어 로 통일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즉 우리나라의 존엄사 논의에는 현재 안락사나 의사조력사 는 허용되지 않는다. 2009.9.28.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기본 원칙’ 발표 참조.

289) 연명치료의 범위에 관하여 다수의견은 뇌사사 및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포함 하여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의 환자로 정하고 반대의견(대법관 이홍훈·김능환)은 돌이 킬 수 없는 죽음의 과정에 진입한 환자로 좀 더 좁게 그 범위를 정한다.

290)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까지도 헌법상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직접 도출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서울서부지법 2008.7.10. 자 2008카합822 결정 참조.

291) 학설상으로는 동의는 행위능력과는 관계없고, 단지 환자의 의사능력이나 변식능력과의

관계에서만 문제된다는 견해(김민중, “의사책임 및 의사법의 발전에 관한 최근의 동향”,

그러나 의료행위에 대한 동의 혹은 승낙능력은 질병의 종류와 정도에 따 라 점진적으로 감소하거나 소멸할 수 있다. 특히 연명의료 중단 사안에서 문 제가 되는 것은 연명의료 중단의 의사가 집행되는 시점에서 환자가 이미 의식 불명상태 즉 의사결정 무능력상태에 놓인다는 점이다. 결국 연명의료 중단 사 안은 기본적으로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의사 표명시점과 집행시점 간 의 시간적 간극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집약된다.

대법원은 사전의료지시292)와 같은 미래의 조치에 대해 미리 해둔 의사표명 이 있을 경우 시간이 지난 집행시점에서도 그에 따르는 것으로 본다. 이는 환 자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본인이 숙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러 한 환자의 자기결정에 따르는 것이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 한다. 대법원의 판단기준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민사법학」제9-10호, 한국 민사법학회, 1993, 342면), 자신의 신체에 대한 정신적·육체 적 위험을 수인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만으로 족하며 일반적인 재산적 거래에서와 같은 높은 정도의 판단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석희태, “의료과오 민사책임에 관 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8, 37면), 동의하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의사능력이 있어야 하나 행위능력이나 책임능력과는 다소 상이하다는 견해(이영환, “진 료과오에 있어서의 의사의 민사책임에 관한 연구”, 동아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48 면), 동의를 법률 행위적 의사표시로 볼 수 없고, 행위능력규정이 환자의 동의에 유추 적 용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동의능력은 행위능력이 아니라 의사능력과 변식능력을 기준으로 그 인정여하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견해(김천수, “안락사 내지 치료중단과 불법 행위책임”, 「의료법학」, 제6권 제1호, 대한의료법학회, 1984, 45면), 환자가 치료행위에 대하여 동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법상의 행위능력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는 견해(고명 환,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환자 측 사전의료지시서의 법적 효력에 대한 연구”, 「연세 의료·과학기술과 법」제3권 제2호, 2012, 20면) 등이 있다.

292)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통과 이후 사전의료지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사용하여

야 하지만, 여기 제2절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대법원 판결 검토 부분에서는 판결문에서 제시된 사전의료지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림 6>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사안에서 대법원의 판단기준

1) 사전의료지시가 있는 경우: 환자의 명시적 의사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경우에 대비하 여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경 우에는 비록 진료 중단 시점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환자의 의사가 바뀌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전의료지시에 의 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간주한다.293) 이러한 사전의료지시는 환 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 원칙과 유사하지만 사전의료지시는 집행 시점에서 대리 해석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해석상의 가정적이고 상상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294) 이런 측면에 293) 대법원이 들고 있는 유효한 사전의료지시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① 의사결정능력이 있 는 환자가 ② 의료인으로부터 직접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③ 그 정보를 바 탕으로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진지하게 구체적인 진료행위에 대한 의사를 결정하 고 ④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이 환자 자신이 직접 의료인을 상대방으로 하여 작성한 서면 이나 의료인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의사결정 내용을 기재한 진료기록 등에 의하여 진료 중단 시점에서 명확하게 입증될 수 있을 것.

294) 주호노, “존엄사의 허용요건과 법제화의 방향”, 「한국의료법학회지」제21권 제1호,

서 환자 본인의 자율적인 결정이지만 제한적 요소를 지닌다.

이렇게 사전의료지시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시 간적’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295)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사 전의료지시의 이론적 정당화 문제와 연결되는데 이 부분은 이하 상술 한다.

2)-1 사전의료지시가 없지만 객관적 의사 추정이 가능: 환자의 묵시적 의사 사전의료지시 제도는 그 실행상 한계를 가지며296) 대부분의 경우 사전의료 지시를 준비해두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사전에 명시적인 의사표명이 없을 경 우 어떻게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판 단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의료의 중단을 선택하 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

고 보았다.297) 주의할 점은 결과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

2013, 111-112면.

295) 오늘날 사전의료지시를 지지하는 의료법 및 생명윤리에서의 지배적인 흐름은 의사능력

을 상실한 사람의 권리를 의사능력 있는 사람이 가진 권리의 확장으로 간주한다. 이를 확 장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풀이하자면 사람들이 현재의 이익에 대한 자신의 선호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자율성의 권리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존속이익 (surviving interests)에 대한 자신의 선호에 미리 영향을 미치는 선행적 자율성(precedent autonomy) 권리를 갖는 것이다. 오세혁, 정화성, “사전의료지시서의 한계”, 「의료법 학」, 제11권 제2호, 대한의료법학회, 2010, 257면. 위 논문에서는 확장이론이 1983년 「의 학 및 생명의료 및 행동학적 조사에 있어서의 윤리문제의 연구를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 회(President’s Commission for the Study of Ethical Problems in Medicine and Biomedical and Behavioral Research)의 사전의료지시에 관한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며 앨런 뷰 캐넌, 댄 브록, 로날드 드워킨 등에 의해 지지되면서 사전의료지시에 대한 정당화 근거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296) 사전의료지시의 활용도는 매우 저조하며, 환자의 연명치료에 대한 선호의 확인의 어려 움과 안전성 확보가 어려우며, 대리인에 의한 사전의료지시 해석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고, 결론적으로 자율성을 가장한 후견적 의사결정의 유효성 문제 등이 제기된다. 고명 환, 위의 논문, 27면.

297) 본 판결에서,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를 추정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제시된 증거로는 ①

환자가 3년 전 남편이 심장 질환으로 임종을 맞게 되었을 무렵 생명연장시술을 거부한 사실, ② 인공호흡기 등 기계에 의하여 연명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 실, ③ 병석에 누워 간호를 받는 등 남에게 누를 끼치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사실, ④ 교통사고로 생긴 팔의 상처를 타인에게 보이기 싫어 여름에도 긴 팔 옷을 입고 다닌 사 실, ⑤ 환자의 현재 상태 및 회복가능성에 관한 사정, ⑥ 독실한 기독교신자로인 점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