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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의사결정능력에 따른 다층적 접근

자율성 역량 모델은 기본적으로 환자의 다양한 자율성 층위에 따라 다층적 인 접근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환자의 자율성 능력이 질병으로 인하여 감소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자율성 역량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장애요인들을 제 거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 방식들이 제시되어 야 한다.

<그림 5> 환자의 자율성 정도에 따른 다층적 접근

<그림 5>에서 보듯이 환자의 자율성 논의에서 의사능력은 일차적 구분 기 준이 된다. 환자가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본 인의 선호를 알고 진술할 수 있어야 하고 관련된 의학 정보를 이해하고 자신

의 상황에 맞게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추어야하기 때문에 통상적 으로 의사능력의 유무를 정하는 최소한의 의사능력 기준을 필요로 한다. 자율 성 능력 모델이든 자율성 역량 모델이든 최소한의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로서 환자의 의사능력은 기본적 전제이다.247) 이러한 임계선 이하 의 사람들은 대체로 기본적인 인지능력 및 판단능력에 장애에 있거나 아예 의 식이 없는 혼수상태의 환자들이 해당하며 이러한 의사무능력 환자에 대한 의 학적 의사결정은 후견인에 의한 대리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최소한의 의사능력이 인정되는 환자들의 의사결정과정을 어떻게 접 근할 것인가에 있다.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율성 능력 모델에 의하면 환 자에게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의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단순하 게 논의를 종결지어버린다. 왜냐하면 자율성 능력 모델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 이란 스스로 숙고하고 결정하는 것이 곧 자기결정이므로 개인이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판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러한 자율성의 이해를 그대로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도 적용한다.

그러나 자율성 역량 모델은 최소한의 의사능력이 인정되는 환자들을 일괄 적으로 자기결정에 맡기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 상황에 따라 보다 섬세한 고 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환자 본인의 전적인 결정에 맡길지, 적극적인 지원을 통한 공동결정 방식을 따를지, 아예 결정권을 제3자에게 위임하는 대리결정을 따를지 등 다양한 의 사결정방식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논의들 모두 자율성 담론 안에 포섭된 다. 이하에서의 설명은 다양한 방식들에 대한 예시가 될 수 있다. 우선 <그림 5>의 방식을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구분하여 설명해 본다.

1. 의사능력이 있는 환자에 대한 지원

필자가 제안하는 자율성 역량 모델은 기본적으로 자율성을 개별성과 관계 성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특히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환자가 가 지는 신체적·심리적 취약성과 상호 의존성 등을 민감하게 고려할 수 있다.

247) 최소한의 의사결정능력의 유무 판단은 자율성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전제로서 일종의

'Gate keeping'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Govert D. Hartogh, “Do We Need A Threshold Conception of Competence", Med Health Care and Philos 19, 2016, 80-81면.

자율성의 개별성과 관계성 두 요소 모두를 고려한다고 할 때 두 요소는 언제 나 동일한 정도로 강조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개별성이 강 조되기도 하고 관계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율성의 정도는 <그림 5>

에서 보이는 막대 그림을 이용하여 막대의 한 끝은 자율성의 개별성 요소로 다른 한 끝은 관계성의 요소로 정하고 정도의 차이를 명암으로 표시하였다.

의사능력이 있는 환자 중에서 의료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고려하여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에는 자율성의 개별성 요소 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물론 이 경우의 의사결정과정에도 관계성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데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의료 기술 및 의학 정보나 사회 규범 등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능력이 있는 환자라도 의학 정보의 수용에서 왜곡의 문제나 심리적 불 안과 두려움으로 인하여 객관적 인지·평가 능력에 감소가 있을 수 있다. 또 한 치료나 회복 과정이 오래 걸리고 특정한 시설이나 서비스가 요구되는 경우 환자는 제반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경제적 비용 부담은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 환자의 의사결정과정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행사한다. 실용 가 능한 의료기술이나 담당 의료진의 능력도 고려해야 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환자가 처한 일련의 상황들은 자율성의 관계성을 강하게 띠며 의사결정과정이 환자만의 개별적 판단이 될 수 없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의사결정방 식도 환자의 상황에 따라 심리적 불안 속에서 확신이 없는 불안한 본인결정 형, 가족과 함께 모든 결정을 내리길 원하는 가족공동결정형, 의료진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결정회피형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자율성 역량 모 델은 이러한 환자의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좀 더 상황에 적합한 실천적인 기준과 모형을 제시할 수 있다.

2. 의사능력 없는 환자에 대한 지원

<그림 5>에서 의사능력이 없다는 것은 ‘현재’ 의사무능력 상태임을 의미 한다. 그러나 환자 자율성 능력은 건강할 때 온전한 의사능력을 가졌으나 뇌 졸중과 같이 급격하게 의사능력을 아예 상실하거나 치매와 같이 서서히 의사 능력을 상실하기도 하는 등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또한 현재 의사능력이 전혀 없더라도 사전의료지시를 통해 미리 의사표시 를 해둔 환자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의사무능력 상 태의 환자가 사전에 내린 의사결정을 토대로 이후 의사무능력 상태에 빠진 시 점에서 환자의 의사에 따르는 것은 일종의 ‘생전유언(living will)’과 같이

‘의제된 자율성’248)을 보호하고 집행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제 영역에 해 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의 특수성을 반영하고자 필자는 그림 상에 결정 방식을 ‘제한적 본인결정’으로 표기하고249) 자율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막대 둘레를 점선으로 표시 하였다.

의사능력이 없는 환자의 경우 사전의료지시 유무를 2차적 기준으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의사능력이 없고 사전의료지시서도 없으며 환자의 의사를 추 정할 수도 없는 경우에는 자율성이 문제되는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후견인이나 제3자의 대리 결정을 따른다. 다만 사전의료지시가 없지만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을 대신하여 가족이나 후견인에 의 한 ‘대리판단(substituted judgment)’250)을 인정한다. 이때 고려되는 환자의 추정된 의사는 일종의 ‘의제된 자율성’에 해당하지만 환자의 의사를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개별성이 강하게 표시된다. 물론 이때도 의료적 의사결정과정 자체가 복합적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관계성 요소는 완전히 배제 될 수 없다.

248) 미국의 ‘생전유언(living will)’은 원래 법적인 관점에서 사후에 효력이 발생하는 유언 과 달리 생전에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보통 생전유언은 변호사의 조력 하 에 준비하는 법률문서부터 가족구성원이나 의료인에게 하는 구두 진술까지 다양한 형태로 가능하다. 정성화, 위의 논문, 173면. 생전유언은 일반적으로 작성자가 의사능력을 상실할 경우에 받고자 원하는 연명의료의 유형에 관한 지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의료지시 와 유사하며 생전유언의 효력에 따라 실제로 집행이 되는 경우 이미 환자는 의사무능력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환자가 사전에 표시한 의사에 준하여 현재 유언의 집행 시점에 근 거한다는 점에서 자율성의 의제라고 볼 수 있다.

249) ‘제한적 본인결정’이란 표기에는 또 다른 근거가 있는데 우리나라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사안에서 사전의료지시가 있는 경우에도 연명의료장치를 제거하는 시점의

‘환자의 의사가 달라졌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를 두고 있다. 사전에 이루어진 의사표시를 시간적으로 확장하여 집행하는데 있어서 최소한의 제동장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 본인결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50) 대리판단(substituted judgment)은 대리의사결정의 한 표준으로서 ‘누군가를 대신하여 그 사람이 내렸을 판단을 내린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대리의사결정(surrogate de- cision-making)과 구별된다. Tom L. Beauchamp·James F. Childress, 위의 책(주3), 2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