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역량 접근법의 실제적 유용성까지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역량 개념 을 활용하여 공적 개입의 여지를 마련함으로서 그 이론적 정당화의 기능은 충 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않지만 자유를 우선시하고 유기체적 가족 모델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각인의 역량의 원칙을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164)
두 접근법의 차이점으로는 첫째, 누스바움은 인간의 핵심 역량에 대한 구 체적인 목록을 제시하는 반면에 센은 역량의 목록이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기 보다는 개별 사회의 공적 추론에 맡겨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165) 센 은 역량 목록의 수정가능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목록을 제시하는 것 은 공적 추론 영역에 대한 실질적인 축소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166)
둘째, 누스바움은 역량 개념을 기본역량·내부역량·결합역량으로 세분화 하여 설명하지만 센은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역량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제시 하기는 하나 개념적 세분화를 시도하지 않는다.167)
셋째, 누스바움은 완전한 정의론이 아닌 다양한 역량 영역에 대한 입헌적 권리로 보장될 수 있는 역량의 사회적 최소기준을 정한다. 반면에 센은 삶의 질을 평가하는 역량공간에서 역량의 기능과 연동과정에 주목할 뿐 헌법적 권 리를 염두에 둔 논의로까지 발전시키지 않는다.168)
2. 공적 개입의 정당화와 그 범위
역량 접근법은 문제를 발견하고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제에 대한 해결 책을 제시하려는 실천적 함의를 지닌다. 따라서 어떻게 각인의 역량을 강화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역량 접근법은 센 과 누스바움에 의해 그 이론적 필요성과 철학적 정당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 다 하더라도 실제 제도 안으로 끌어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역량 164)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50), 74면.
165) Amartya Sen, Beyond Liberalization: Social Opportunity and Human Capability, New Delhi:
Institute of Social Science, 1994, 78-79면; Amartya Sen, “Capabilities, lists, and public reason: continuing the conversation”, Feminist Economics 10(3), 2004, 78면.
166) Amartya Sen, “Elements of a Theory of Human Rights”,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32(4), 2004, 333면.
167) Martha C. Nussbaum, 위의 책(주150), 13-14면.
168) 그 외의 차이점으로는 넷째, 누스바움은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보다 명시적인 반박을 하
고 있다는 점, 다섯째, 센은 역량 개념을 복리(福利, well-being), 행위주체성, 자유와 성취 와 관련지어 설명하지만 누스바움은 이러한 개념들을 역량과 기능의 구분 안에 포함시켜 설명한다는 점, 여섯째, 누스바움은 역량 논의에 감정과 상상력의 정치적 중요성을 강조하 며 보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추가적으로 들 수 있다.
접근법은 역량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역량 강화를 위한 공적 개입을 허용하 는데 이 때 자유와 후견주의 사이의 긴장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초기 개발윤리학에서 주도적이었던 기본 필요 접근법(basic-needs ap- proach)은 최소치의 적절한 삶의 수준을 영위하도록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필 요를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본 필요 접근은 “수혜자들이 자신의 사회적·문화적 토대에서 기본적인 필요가 무엇인지 스스로 설정하고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외부 집단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진다는 점에서 수혜자 들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169) 역량 접근법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인간의 다양성 가치에 대한 민감한 고려를 목표로 삼고 있으나 역량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평가를 수반하기 때문에 기본 필요 접근법에 대해 제기되었던 동일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170)
가령 앞서 언급하였던 여성의 정치 참여 역량은 제도적·경제적 분배 이전 에 사회·문화적 분배의 문제이며 역량 접근법은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불평 등을 인식하고 개선하는데 장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치참여 역량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자존감을 훼손할 위험을 가진다. 어린이나 노약 자, 환자의 역량 평가는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일 수 있으나 성차별이나 동성 애, 인종 차별 등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거나 차별이 지속되어 온 영역에 대한 역량 평가는 불인정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171)
센은 실질적 자유로서의 역량을 행위주체성과 연결 지어 인정 개념을 수용 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역량의 도구적 차원과 본질적 차원이 어떠한 방식으
169)목광수, 위의 논문, 224면.
170) 역량 접근법은 자연적 우연성에 입각한 차이를 다양성(horizontal)으로 간주하기 보다는 서열화 된 등급(vertical)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수혜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수혜자의 자존 감을 훼손한다. Thomas Pogge, “Can the Capability Approach be justified?”, Philosophical Topics 30(2), 2002.
171) 이 문제를 공적 개입의 이원화를 통해 우회할 수도 있겠다. 제시된 사례처럼 역량의 우 열 평가를 수반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개입 보다는 간접적인 개입 방식을 택하 는 것이다. 사실 사회·문화적 차별은 사회 집단의 의식 변화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제도적 강제보다는 교육 등을 통한 의식 개혁 등의 간접적 개입을 택한다. 반면에 역량 평가에서 가치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인 평가가 가능한 영역에 대하여 는 제도적인 개입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회 전략은 역량 접근법에 가해 진 비판에 대한 성실한 대응은 아닐 것이다. 결국 역량 접근법을 통한 공적 개입의 정당 화 논거는 중요하다.
로 병치하는지에 만족스럽게 해명하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누스바움이 이 문 제에 대하여 명확하게 언급한 적은 없으며 역량에 대한 역동적 이해로부터 역 량은 발전되어야 한다는 역량 접근의 규범성을 도출하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현재의 역량 평가가 불인정 문제를 초래할 수는 있지만 역량의 발 전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속적이지 않고 한시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 하고 싶다.172) 또한 개인의 역량을 사회적 최소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공적 개입은 수혜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인의 역량의 원 칙에 따라 개인을 인격으로서 대우하는 것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역량 접근법의 규범적 함의는 공적 개입의 허용을 정당화하는 것과 연관된다. 공적 개입을 허용하는 도덕적 정당화 근거로는 각인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이 각인의 실질적 자유의 확보를 위한 기회를 주는 것이며 자유주 의 공동체는 이러한 목표를 위해 각인의 역량을 증진할 적극적 의무를 가진다 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 자유의 확대라는 설명은 공적 개입의 정당화 사유는 되더라도 공적 개입의 범위와 한계를 제시하는 구체적 기준은 되지 못 한다. 역량 접근법이 역량의 증진을 위해 공적 개입을 허용한다고 할 때 아무 런 제한 없이 모든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기존의 자유주의 모델이 연성 후견주의를 통해 최소한의 개입만을 허용하는 것 보다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개입을 허용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직관적 수준의 이해에 대하여 이하에서 더 구체적인 논증을 시도해보도록 한다.
제 2 절 역량 중심 접근법과 후견주의
후견주의 논쟁에서 역량 중심 접근법의 정확한 입장은 무엇이며 그 구체적 전략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필자가 제안하는 자 율성 역량 모델의 제안을 위한 핵심적 논의에 해당한다. 센과 누스바움의 역 량 접근법을 검토하면서 구체적으로 역량의 이행과 관련하여 두 이론가는 일 반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제시할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적 개입을 통해 각인 의 역량 강화를 위한 실천적 차원에 대하여는 설명을 발견할 수 없었다.
172) 나의 현재의 역량 평가가 열세하더라도 그러한 평가에 자존감 문제를 거론하며 비판에
머물기 보다는 현재의 역량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 문제 제기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하에서는 두 이론가에 대한 직관적 설명들을 통해 역량 접근법의 실천적 관점에서 이론의 구체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실천적 논의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이론적 장애 사유는 바로 후견주의의 문제이다. 기본적으 로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뿌리를 두는 역량 접근법이 후견주의를 수용함으로써 자기 모순적인 이론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량 이론을 활용하여 공적 개입의 범위와 한계를 정하는 기준으로 활용하 고자 한 필자의 관심은 사실 센과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의 이론적 범위를 넘어선다. 두 역량 접근법과 후견주의의 관계를 논의하는 가운데 이러한 두 접근법의 한계가 더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한계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은 향후 필자의 입장을 전개하는데 필수적이다.
이하에서 후견주의 논의들을 검토하면서 자율성 역량 모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량 접근법의 이론적 유용성을 정리하고, 보다 실천적 관점에서 후견주 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인지 시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