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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자율성 역량 모델의 적용

1. 대법원 판결의 자율성 능력 모델 관점과 그 한계

(1) 사전의료지시제도의 한계

본 대법원 판결 이유에서 드러난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는 종래의 자율 성 능력 모델의 관점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환자에게 사전의료지시가 있는 경우 대법원은 “비록 진료 중단 시점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은 아 니더라도 환자의 의사가 바뀌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전의료 지시에 의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사전의 료지시를 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를 구성하는 것은 종래의 ‘충분한 설 명에 의한 동의’를 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리를 구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환자의 의사표명 시점과 이행 사이의 시간적 간격으로 인하여 발생 할 수 있는 가변적 변수들로 인하여, 의료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체적 상황 을 면밀히 반영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가정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 한계를 지닌다.

더 근본적으로는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한 환자의 의사결정을 단지 오직 환자의 독립적인 판단에만 맡길 수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사회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는가에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서구와 달리 가족 중심적인 유교 문화 의 영향으로 연명의료 결정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료적 의사결정은 개인의 독 립적인 결정을 통해 내려지기보다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 혹은 가까운 관계의 지인들과의 의견 소통을 통해 내려지는 것이 더 빈번한 상황이다. 이러한 우 리의 현실은 개인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율성 능력 모델에 제대로 맞지 않는 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자율성 역량 모델이 지향하는 독립적인 자기결정권의 보장은 호스 피스 및 완화의료와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이 안정되고 활성화되어 있는 토대 없이는 그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는 명목상의 주장에 그치고 말뿐이 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전의료지시제도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보완 없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명목하게 실제로 는 가족들이 심리적, 경제적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환자의 의사를 강제하 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2) 환자의 의사 추정의 이중 기준

대법원 판결에서 보이는 자율성 능력 모델의 관점은 환자의 사전의료지시 가 없는 상태, 즉 환자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까지도 환 자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근거지우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특히 대법원 다수의 견은 객관적으로 환자 의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경우에까지 자율성 능력 모델 의 관점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로 “환자가 평소 일상생활을 통해 가족, 친구 등에 대하여 한 의사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 평소의 생활태도 등”을 예시하고 있으 며 이와 함께 “환자의 나이,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회 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치료과정, 질병의 정도, 현재의 상 태 등”의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그 의사를 추 정하여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299) 이때 대법원이 설시하는 “객관적인 사정 을 종합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의사를 추정해야한다”는 환자 의사의 추정 기준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자율성 능력 모델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법원이 제시하는 이러한 환자 의 사의 추정 기준은 매우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환자의 추정적 의사에 근거한 자기결정권의 존중으로 연명의료중단을 허용하면서 객관적인 관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본래 자율성 능력 모델의 관점을 일 관되게 따른다면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합리성’과 ‘객관 성’이 담보되지 않을 때이며 주관적인 의사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과 주 관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

299) 이은영 교수는 대법원의 객관적 의사추정의 기준을 환자의 최선의 이익[객관적 기준]과 환자의 평소 생활 태도 등[주관적 기준]으로 구분한다. 이은영, “연명치료 중단의 입법화 방안에 관한 연구: 성년후견제도의 도입과 관련하여”, 「의료법학」제10권 제2호, 2009, 216면.

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300) 따라서 자율성 능력 모델의 관점에 따르면 환자 의 자기결정권과 최선의 이익은 충돌하는 기준이 되며 대법원 이러한 이중 기 준을 적용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2. 자율성 역량 모델의 적용과 최선의 이익 기준

본 판결에서 ‘환자 의사의 추정’을 위해 대법원이 고려한 객관적 자료 로는 “환자의 나이,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회복 불가능 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치료과정, 질병의 정도, 현재의 상태 등”의 객관적 사정을 종합할 것으로 설시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서 열거된 자료들을 이익의 관점에서 구분해보면 첫째, 의학적 이익의 관점에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한 요소로서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회복 불가능한 사 망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치료과정, 질병의 정도 등을 고려하고 있으며, 둘 째, 복지적 이익의 관점에서 환자의 나이, 환자의 현재 상태 등을 고려하고 있다.

자율성 역량 모델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과 최선의 이익 기준이 서로 대립 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종래의 자기결정권 논의는 자 율성의 범위를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로 좁히고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환자 에 한해서만 제3자의 후견적 판단을 통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에 필자의 자율성 역량 모델에서는 자율성 역량 개념을 통 해 자율성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자기결정권의 논의 안에 자율성 역량의 다 양한 요소들을 통해 최선의 이익 기준이 포함될 수 있게 구성할 수 있다. 대 법원의 다수의견의 설시를 따라 환자의 추정적 의사에 근거하여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정당화하는 위험을 초래하기 보다는 환자의 추정적 의사도 고려하지 만 현재 환자가 처한 상황 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환자 본인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논리적 모순 을 피하고 보다 명확한 판단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301)

300) 이석배, “연명치료중단의 기준과 절차: 대법원 2009.5.21. 선고 2009다17417 판결이 가 지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형사법연구」제21권 제2호, 2009, 162면; 비슷한 견지에서 비판으로는 최경석, 위의 논문, 239-240면; 김나경·Shawn H. E. Harmon, 위의 논문, 152 면.

301) 최지윤·김현철, 위의 논문, 171면.

연명의료 결정에 관하여 자율성 역량 모델을 적용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한 환자의 자율성 행사를 통한 주관적 행복과 전 반적인 삶의 질 (혹은 죽음의 질)에 대한 객관적 고려를 종합적으로 할 수 있 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검토하면 서 보이는 논리적 모순이나 한계는 자율성 역량 모델을 통해 보완되고 극복될 수 있다. 이하에서 본 대법원 판결 이후 촉발된 환자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 률의 입법 과정과 주요 쟁점들 및 법률 시행을 위한 향후 과제들을 검토하고 자 한다.

제3절 자율성 역량 모델의 관점에서 환자연명의료결정법 률(법률 제14013호) 검토

앞서 검토한 신촌 세브란스병원 판결 이후 우리사회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제도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입법을 위한 논의에 착수하였다.

처음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기 시작한지 8년 그리고 본 대법원 판결 이후로 근 7년 만의 기나긴 논의 끝에 드디어 “호스피스·완화의료및임 종과정에있는환자의연명의료결정에관한법률(이하 환자연명의료결정법률, 법률 제14013호)”이 2016년 2월 3일 제정되었다. 동 법률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이해집단들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위해 여러 차례의 입법 안의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었고, 발의된 입법안에 대해서도 거듭 수정을 거치 는 등 많은 노력이 투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논의 끝에 연명의료 결 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고 이제 2018년 2월 시행을 앞두고 구체적인 시행 령 및 절차 정비와 관련한 논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동 법률이 통과되기까지 매우 복잡한 입법 과정을 거쳤는데 주요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8대 국회에서 총 세 차례의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 한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나302)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폐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 몇 가지를 언급하면, 우선 신촌 세브란스병원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입법 필요성이 공론화되었다. 또한 보건복지부 산하 종교계·의료계·법조계·시민사회단체·입법부 추천 전문가 들 총18명의 사회적 협의체가 구성되어 2009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총 7 차의 회의를 거쳐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한 중요한 합의사항을 발표하였다.303)

302) 제18대 국회(2008-2012) 임기동안 총 세 차례에 걸쳐 발의된 법률안은 다음과 같다.

① 2008.12.9. 김충환 의원 대표발의,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제1802935호)

② 2009.2.5. 신상진 의원 대표발의, ‘존엄사 법안’(의안번호 제1803730호)

③ 2009.6.22. 김세연 의원 대표발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제1805232호)

303) 2010년 7월 14일 각 언론사에 발표된 이 협의체의 주요 합의사항은 다음의 네 가지 사 항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연명치료중단의 대상 환자: 말기환자로 제한함. ②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 범위: 수분 및 영양공급 등 일반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없으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특수연명 치료에 한하여 중단가능. ③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절차: ‘사전의료지향서’ 작성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