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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 능력에서 자율성 역량으로

III.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의 적용 가능성 검토

2. 자율성 능력에서 자율성 역량으로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자율성 능력은 처음부터 온전하게 주어진 속성이 아 니라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점차 개발되어 발현되는 능력이다. 또한 사람에 따 라 이 능력의 발달 정도는 차이가 나며 평생에 거쳐 개발될 수 있다. 더욱 중 요하게는 자율성 능력이 개인 외부의 관계적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개인의 자율성 능력은 고 정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과 연관 지어 논의될 필요가 있 다.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개인적 자율성 개념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의사결정 능력을 협의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본고에서 시도하는 관계적 자율성을 포괄 하는 보다 확장된 능력으로서 ‘자율성 역량’ 개념을 사용한다.

<그림 1> 자율성 능력과 자율성 역량의 관계

이러한 필자의 구분에 따라 자율성 능력과 자율성 역량 개념의 상관관계를 위의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의사결정능력과 자율성 역량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기보다는 상호 연관된다. 또한 자율성 역량 개념은 자율성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복합적 요인들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에서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자율성 능력과 자율성 역량의 관계는 자율성 능력과 자율성 역량이 서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임을 보여주면서 더 중요하게는 자율성 능력이 자율성 역 량의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되거나 감소될 수 있는 역동적 관념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관계적 자율성을 통해 규범적으로 확장된 논의는 자율 성 역량 개념을 통해 보다 통합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의료적 의사결정과정에 종래의 자율성 능력 모델을 그대로 대입할 경우 간 과되는 환자의 실존적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의사결정과정의 특수성을 면밀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율성 역량 모델은 자율성 능력 모델의 이원화 전략을 거부하고 다층적 전략을 세우고 후견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본격적으로 자율성 역량 모델을 제안하기 전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 결해야 한다. 즉 관계적 자율성을 통해 확장된 자율성 개념을 규범적 논증에 활용될 수 있기 위한 정당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역량 중심 접근법의 논의를 검토하도록 한다. 나아가 공적인 개입을 허용하는 자율 성 역량 모델은 허용할 수 있는 공적 개입의 유형과 한계를 어디까지로 제한 하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장 자율성 역량 모델의 기초로서 역량 접근법 검토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124)은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의 개발경 제학에서 개척되어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s)를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보고서에서 처음 등 장한 ‘역량(capability)125)’은 국가 간 삶의 질을 평가하는 비교 지표들의 묶 음으로서 국가 개발 정책을 위한 논의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역량 개념은 센 을 통해서 경제개발 이론을 넘어 윤리학 및 정의론의 영역에 도입된다. 1980 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개발 윤리학(Development Ethics)은 경제발전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는지, 삶의 질(quality of life)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성찰을 촉발시켰으며 여기에는 특히 역량 접근법의 역할이 컸다.126) 또한 이러한 윤리적·철학적 담론을 넘어 당시 ‘Equality of What?’을 중심으로 활발한 논쟁이 진행되었던 평등 및 정의의 담론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127)

이러한 역량 접근법은 이후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에 의해 철 학적·이론적으로 발전되었다.128) 누스바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성 연구로 124) 역량 접근법(capability approach)은 단일한 하나의 이론(theory)이 아니라 역량을 중심으 로 구성된 다양한 이론들을 포괄하는 이론체계(framework)에 가깝기 때문에 역량 접근법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25) 목광수 교수는 역량 접근법에서 사용하는 역량 개념에는 잠재된 능력, 실질적인 능력의 의미와 함께 객관성을 담보해야 하는 의미도 포함한다고 한다. 목광수, “역량 중심 접근 법과 인정의 문제 - 개발윤리와의 관련 하에서 고찰”, 「철학」제104권, 한국철학회, 2010, 217면.

126) 초기 개발 윤리학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basic needs)를 충족시켜주는데 주안점을 두었 는데, 객관적으로 명확한 지표를 제시하여 다양한 개발 문제들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 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무시하고 수혜자들을 분배과정에서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단점을 지녔다. 반면에 역량 접근법은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강조하지만 다양성을 강조하고 행위 주체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단점을 극복한다.

목광수, 위의 논문, 각주4; Des Gasper, The Ethics of Development,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4.

127) Amartya Sen, “Equality of What?”, Peter Vallentyne (ed.), Equality and Justice 5, Routledge, 2003. 이 논문은 1979년 태너 강연(The Tanner Lecture on Human Values)에서 센이 발표한 내용으로서 역량 접근법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부터 역량 이론의 철학적 토대를 다지고 역량 개념을 세부적으로 구분하였으 며 10가지 인간의 핵심 역량 목록을 제시하고 이를 인권 및 규범학 논의에 적 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여성 인권, 빈곤, 건강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한 것으 로 평가된다.

센과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의 토대를 다졌으며 그 두 이론으로부터 다양 한 파생 이론들이 배출되고 동시에 많은 비판들도 제기되었다. 두 역량 접근 법에 대한 비판과 대응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본고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는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필자가 시도하는 자율성 역량 모델의 개념 적·방법론적 기초 도구로 사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들 이론을 고찰 한다.

필자는 제2장에서 새로운 자율성 이해의 시도로서 관계적 자율성 논의를 검토하였다. 자율성을 관계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자율성에 대한 실질적 접 근으로서 제3자의 개입 여지를 허용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핵심은 어떻게 주 체의 개별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에서 오는 영향들이 자율성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가에 있으며,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역량 접근법의 규범적 논의들이 단초를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제 1 절 센과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