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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센의 역량 접근법

1. 역량의 두 가지 차원

부터 역량 이론의 철학적 토대를 다지고 역량 개념을 세부적으로 구분하였으 며 10가지 인간의 핵심 역량 목록을 제시하고 이를 인권 및 규범학 논의에 적 용하였다. 그 중에서도 여성 인권, 빈곤, 건강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한 것으 로 평가된다.

센과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의 토대를 다졌으며 그 두 이론으로부터 다양 한 파생 이론들이 배출되고 동시에 많은 비판들도 제기되었다. 두 역량 접근 법에 대한 비판과 대응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본고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는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필자가 시도하는 자율성 역량 모델의 개념 적·방법론적 기초 도구로 사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들 이론을 고찰 한다.

필자는 제2장에서 새로운 자율성 이해의 시도로서 관계적 자율성 논의를 검토하였다. 자율성을 관계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은 자율성에 대한 실질적 접 근으로서 제3자의 개입 여지를 허용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핵심은 어떻게 주 체의 개별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에서 오는 영향들이 자율성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가에 있으며,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역량 접근법의 규범적 논의들이 단초를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제 1 절 센과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 검토

를 효용으로 보아 결과에만 천착한다고 비판하는 점에서 롤즈의 정의론과 공 통된다.

롤즈는 정의로운 제도 구상을 목표로 공리주의의 성취(효용)가 아닌 성취를 위한 수단(기본재 혹은 자원)에 주목하여 정의로운 분배 방식을 구상한다. 롤 즈는 정의로운 제도란 “공정한 절차에 따르는 것이며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 는 사회의 기본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렇게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의로 운 몫이 분배될 것으로 낙관한다.129) 그러나 센은 현실 세계에서의 완전한 절 차적 정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롤즈의 정의론과 비교하자면, 롤즈의 기획은 성취가 아닌 성취수단으로 관심을 이동시킴으로써 자유의 가치를 부각시켰다 는 점에서 이론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워진 자 원을 성취를 위해 활용하는데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전환능력 (conversion ability)’의 차이는 롤즈의 절차적 정의론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중 요한 변수이다.130) 아마도 센은 롤즈 이후의 자유주의적 평등 개념이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다양성(human diversity)131)”을 정의론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분명하게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센의 기획은 절 차적 정의론에서 실질적 정의론으로의 관심 전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자원을 가지더라도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129) 센은 이러한 롤즈의 방법론을 ‘선험적 제도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정의의 본질을 탐

구하면서 완벽하게 정의로운 제도를 추구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론은 제도에 의해 나타 나는 사회의 특성이나 사람들의 실제 행동, 사회적 상호 작용 등의 비제도적 특성을 간과 하는 이상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센은 이러한 방법론과 차별화된 자신의 방법론을 ‘현 실에 기반 한 비교 접근방식’으로 구별한다. 이는 완벽하게 정의로운 제도의 구상이 아 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부정의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며, 이러한 방 법은 선험적인 제도 구상이 아닌 상대적인 비교 방식을 통해 사람들의 실제 행위와 제도 의 선택 문제에 착안하는 것이다. 김대근, “Amartya Sen의 정의론의 방법과 구조”, 「법 철학연구」제14권 제1호, 2011, 183-186면; Amartya Sen, The Idea of Justic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5-7면.

130) Amartya Sen, 위의 책, 65-66면.

131) 센은 인간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제시하였는데 앞서 제2장 제4절 마지막 부분인 자율성 역량의 다양한 요소들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인간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기 본적인 능력의 차이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예들은 다음가 같다. 개인적 차원에서 환자의 신진대사 능력이나 임산부의 영양 능력,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이동 능력의 차이, 환경 적 측면에서 극도로 덥거나 추운 환경에 사는 사람들의 노동능력 차이, 재난발생이 잦은 지역 주민들의 생존 및 위기대처 능력의 차이, 사회적 측면에서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한 지역 거주민의 신체적 건강이나 안전능력의 차이, 문화적 측면에서 가부장적 문화에서의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정치참여능력의 차이들이 있을 수 있다.

곧 사람마다 향유하는 자유의 정도차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롤즈의 정의론이 성취에서 자원으로 공간이동 함으로써 자유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 하였다면, 센의 정의론은 자원에서 역량으로 공간이동 함으로써 자유의 중요 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질적 자유의 보장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사 람들마다 각기 향유하는 자유의 정도가 다르다고 할 때 이러한 자유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것이 바로 역량이다.132)

센의 역량 개념은 두 가지 차원 - 도구적 측면과 본질적 측면 - 을 가진 다. 역량의 도구적 측면은 기능(function) 개념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된다.133) 기능이란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어떤 것이나 어떤 목표로서 적절한 기능은 적 절한 영양 섭취, 좋은 건강 유지, 나쁜 병에 걸리지 않기, 조기사망에서 벗어 나기 등의 기본적인 성취부터 행복한 생활, 자기존중 확보, 공동체 생활에 참 여하기와 같은 좀 더 복잡한 성취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삶이란 상호 연관된 존재와 행위로 구성된 일종의 기능 집합과도 같다.134) 이러한 기능집합 은 언제나 충족되거나 실행 가능하지 않으며 다양한 기능들의 실현을 위한 가 능한 조건들이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능과 연계된 역량 개념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능 집합들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 내지 조건이라는 점 에서 도구적 측면을 가진다.

그러나 역량 개념을 도구적 맥락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성취를 가능하게 하 는 도구로서 역량의 분배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배의 과정에서 수 혜자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불인정이 초래될 수 있다.135) 역량 접근법의 옹호자

132) Amartya Sen, 이상호·이덕재 역, 「불평등의 재검토」, 한울 아카데미, 1999, 71-77면.

133) 역량 접근법에서 기능(function) 개념은 논의의 출발점으로서 중요하다. 센은 다양한 기

능들이 개인의 존재를 구성하므로 이런 구성요소들을 평가하는 형태로 복지평가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의 철학적 기초는 인간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아리 스토텔레스의 목적론에 둘 수 있다. 특히 기능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재능력 (dynamis)이 실현된 참된 기능의 상태로서의 ‘ergon’ 관념을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역, 「니코마코스윤리학」, 도서출판 길, 2013, 제1권 제7장.

134) Amartya Sen, 위의 책, 80면.

135) 이러한 비판과 대응에 대하여는 목광수 교수의 위의 논문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지고 있

다. 간단히 요약하면 역량을 도구적 측면으로만 이해할 경우 낸시 프레이져(Nancy Fraser) 와 토마스 포기(Thomas Pogge)가 비판하였듯이 역량 접근법은 인정(recognition) 혹은 존 중(respect) 개념을 포함할 수 없고 오히려 수혜자의 자존감을 훼손할 수 있다. 이는 인간 의 다양성 가치에 토대를 두는 역량 접근법이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러 한 비판적 견해들로 Nancy Fraser·Axel Honneth, 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A

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역량 개념이 본질적 측면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 다.136) 역량 개념의 본질적인 측면은 자유와의 연관 속에서 설명되는데 다양한 기능 조합들을 성취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substantive freedom)로 이해될 수 있다.137) 성취할 수 있는 자유(freedom to achieve)로서의 역량은 인간 삶을 풍 요롭게 하는데 본질적인 요소이다. 성취 수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로서 역량을 이해하는 것은 더 큰 자유 관 념을 구성하는 기획이다.138)

역량의 본질적 가치는 역량 접근법에서 역량의 분배나 강화의 기준을 세우 는데 기여할 수 있다. 가령 정치적인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단식하는 경우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 단식하는 경우를 비교할 때, 성취 수단의 측면에서 동일한 단식 상황에 있지만 성취에 이르는 실질적 자유의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굶는 것과 스스로 단식을 선택하는 것은 서로 구별된다.139)

이때의 실질적 자유로서의 역량은 행위주체성(agency)과도 연결된다. 센은 행위주체성을 주체가 행동하여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넓은 의미로 이해하 고, 자율적 주체(agent)는 스스로의 가치와 목적에 따라 자신의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행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기

Political-Philosophical Exchange, Verso, 2003; Thomas Pogge, “Can the Capability Approach be Justified?”, Philosophical Topics 30(2), 2002, 167-228면.

136) 특히 로리 켈레어(Lori Keleher)는 역량 개념은 도구적 가치뿐만 아니라 본질적 가치이

며, 본질적 가치는 분배 방식 이외의 교육을 통한 역량 이행(empowerment)등과 같은 방식 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Lori Keleher, Empowerment and Development, ProQuest Dissertations Publishing, 2007; 목광수, 위의 논문, 226면, 각주 20에서 재인용.

137)Amartya Sen, 박우희 역, 「자유로서의 발전」, 세종연구원, 2001, 104면. 센은 자유 개념 역시 두 가지 - 기회(opportunity)와 과정(process)의 차원에서 모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고 설명한다. 과정(process)이란 행동 혹은 의사결정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을 말하 며, 기회(opportunity)란 개인적·사회적 환경이 주어진 상태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실제적 기회를 말한다. 소위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이 처한 상황, 여건, 실제 기회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선택의 과정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과론자들은 과정의 본질을 간과하 고 오직 기회에만 주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양자 간에는 논쟁의 대립이 있어왔다.

센은 자유의 두 가지 측면인 자유의 구성적 측면과 도구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며 인 간 자유의 증진이 발전의 주된 목적이자 동시에 중요한 수단이 됨을 강조한다. Amartya Sen, 위의 책, 57-78면.

138) Amartya Sen, 위의 책, 36-38면. 더 큰 자유를 갖는 것은 그 사람의 전반적 자유를 위해 그 자체로서 중요하며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올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139) David A. Croker, Ethics of Global Development: Agent, Capability, and Deliberative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157-15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