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각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 이론가로 넬슨 굿맨을 꼽을 수 있다.그는 회화적 재현과 언어를 포함한 모든 의미 체계를 상징체계로서 보고,상징으 로서의 회화의 관례성과 체계의존성을 강조한다.그에 따르면 언어와 회화 적 재현이 구분되는 것은 단지 언어 체계와 회화 체계 자체가 가진 형식적 인 특징들의 차이 때문이지 회화적 재현이 언어적 재현과 달리 지각에 기대 기 때문은 아니다.75)이러한 굿맨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고,이는 지각주의자들이 굿맨의 비지각주의 뿐만 아니라 그림을 일종의 상징체계로 서 보는 관점마저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즉 그림은 자연적인 지각 능 력을 발동시키는 것으로서 언어와 같은 관례적 상징체계가 아니라는 것이 다.그러나 로페스는 굿맨의 주장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그의 이론이
75)NelsonGoodman,LanguagesofArt(1976).굿맨에 따르면 회화적 상징체계는 구문론 적,의미론적으로 조밀하고 상대적으로 충만하다는 특징을 가진다.그리고 그 결과로 회화적 체계는 무한히 많은 가능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그 캐릭터들과 관련되는 무한 히 많은 수의 가능한 지칭 대상들을 가지며,회화 표면 위 표식들에 대한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의 속성들에 대해서 가장 작은 차이라도 그 표식이 어떤 캐릭터에 속하는 지,그리고 어떤 지칭이 할당되는지에 영향을 끼친다.자세한 설명은 본고 Ⅱ장의 1 절을 참고하라.
회화적 재현에서의 지각을 배제한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그는 굿맨의 이론에서 형식주의와 상징 이론을 분리시킨 다음,형식주의를 폐기 하는 대신 그의 상징 이론을 받아들인다.로페스는 상징체계가 기호들의 집 합과 그 기호들과 대상들을 연결시키는 원칙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면,그림은 분명히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76)이 그 대상과 연결되는 상징체계 에 속한다고 말한다.그러나 그림이 어떤 지각적 원칙에 의해 그 대상과 서 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그림이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묘사에 대한 지각적 설명과 양립가능하다.
로페스는 굿맨의 묘사 이론을 일곱 가지의 논제로 요약한다.ⅰ)묘사는 회화적 상징체계 속에서의 지시이다.;ⅱ)묘사는 회화적 상징체계 속에서의 속성 부여(predication)이다.77);ⅲ)한 상징체계 안에서 지시와 속성 부여는 독립적이다.;ⅳ)허구적 묘사는 회화적 속성 부여이다.;ⅴ)회화적 지시와 속성 부여의 원칙들은 단지 습관적인 것이다.;ⅵ)회화적 닮음과 사실주의 는 그 체계가 사용 맥락 안에 얼마나 확립되었는가의 문제이다.;ⅶ)회화적 상징체계는 아날로그성과 상대적 충만성이라는 형식적 속성에 의해 구분된 다.78)로페스는 이 일곱 가지의 논제들 중 ⅰ)과 ⅱ)를 받아들이는 대신 ⅲ) 과 ⅴ),ⅶ)은 거부하며,ⅳ)와 ⅵ)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인다.이 것이 의미하는 바를 자세히 살펴보자.
위의 논제들 중 ⅰ)과 ⅱ)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림을 언어와 유사한 상징 체계로서 보는 것이며,또한 어떤 그림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 속한 체계
76)로페스는 그림에서의 자국,경계,윤곽,형태,색,명암,질감 등 그림이 그 대상을 재 현하는 데 사용되는 시각적 속성들을 “디자인(design)”이라고 부른다. Dominic Lopes,UnderstandingPictures,p.3.
77)굿맨은 그의 유명론 때문에 “속성(property)”보다는 “술어(predicate)”라는 용어를 선 호하나,본 논의의 맥락에서는 “술어”를 “속성”으로 바꾸어 사용해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78)DominicLopes,UnderstandingPictures,pp.58-68.이 중 굿맨의 이론을 ⅴ)로 해석 하는 데 대해서 로페스는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굿맨은 실제로 “거의 어떤 그림이라 도 거의 무엇이든 재현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해석하기에 따라 이 말은 그림에 관한 관례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로페스의 논의 에 대해서는 본고 p.35를 보라.
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즉 그림이 상징하는 바는 체계 상대적이다.
한 디자인은 한 체계 안에서 F-그림으로 분류되더라도 다른 체계 안에서는 G-그림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또 다른 체계 안에서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러한 점을 인정하는 것은 회화 체계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는 대신,모든 회화 체계들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공 통적인 회화적 특징에 대해 간과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진다.여기서 ⅴ)를 거부하는 것은 그러한 위험에 대해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회화 체계가 가 진 다양성에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그러한 한계가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림이 지각적 대상이기 때문이다.바로 이 지점에서 로페스는 굿맨과 다른 방향을 향한다.즉 로페스는 회화적 지시와 속성 부여의 원칙들이 단지 습 관적이라는 굿맨과 달리,회화적 상징체계가 어떤 대상을 지시하고 속성을 부여하는 원칙들은 지각적 메커니즘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이러한 입장은
ⅶ)을 거부할 근거를 마련해 주는데,회화적 상징체계가 지각에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회화 체계가 다른 상징체계와 그 형식적 속성들만으로 구 분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지각적 속성에 의해 구분된다는 것을 주 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림이 지시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림의 지각 적 속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림이 지시하는 바가 우리의 지각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이는 그림이 지시하는 바가 그림의 속성 부 여적 내용과 관련 있음을 의미한다.따라서 ⅲ)을 거부하게 된다.
로페스의 주장에서 관건은 회화적 상징체계 자체를 다른 종류의 상징체계 -특히 언어 체계로부터 구분하는 동시에 다양한 회화적 상징체계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을 어떻게 성공시키는가 하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회화적 상징 체계가 그 지각적 속성으로 인해 언어적 상징체계와 구분된다는 것을 인정 하면서도 공통적인 지각적 속성으로 인해 회화 체계들 간의 구분을 간과하 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로페스는 여기서 샤이어가 지적한 자연적 생성성에 주목한다.회화적 재현에 대한 숙달은 어떤 언어에 대한 숙달과는 달리 생성력이 있다.어떤 그림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은 다른 그림들도 그 것이 재현하는 대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안다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생 성시킨다.이러한 회화적 숙달의 생성력은 하나하나 그 상징이 의미하는 바
를 배워야 하는 언어적 숙달의 과정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으로,회화적 재현에 대한 이해가 관례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이 된다.그러 나 그림을 상징체계로 보는 것이 관례성을 함축하는 것은 아님을 볼 때,생 성력과 그림에 대한 상징 이론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오히려 로페스는 이러한 회화적 재현 이해 능력의 생성력에 대한 이해가 굿맨의 상징 이론에 의해 보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는 한 체계 내의 회화적 재현에 대한 이해 능력이 다른 체계의 회화를 이해하는 능력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화적 체계들 사이에는 겹침이 있으며,따라서 한 체계 내의 회화적 재현 에 대한 이해 능력은 다른 체계의 회화를 이해하는 “부분적인”능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79)예를 들어 알베르티적인 회화 체계에 대한 숙 달은 입체파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바로 이 점에서 회화 적 재현 이해 능력은 언어 이해 능력과 매우 다르다.우리가 한국어를 잘 안다고 하여 그것이 영어의 어떤 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점은 또한 그림에 대한 지각적 이론에 제한을 가하기도 하는데,그것은 한 체계 내의 그림에 대한 이해 능력이 다른 모든 체계의 그림들을 이해하도록 하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즉 묘사에 대한 지각적 이론은 어떤 지각자가 왜 한 체계의 회화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 다 른 체계의 회화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