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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하임은 적절한 시각적 경험이 회화적 재현을 결정한다고 본다.146)관찰 자가 적절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재인 능력,즉 그 대상을 알아보 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따라서 우리가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대상을 재현한 그림에 대해 적절한 경험을 하고 있다면,우리는 경험을 하는 동시

146)Richard Wollheim,“OnPictorialRepresentation”,TheJournalofAestheticsandArt Criticism56:3(Summer1998),p.217.볼하임은 회화적 재현에 대한 이른바 “경험 기 반 이론”을 대표한다.경험 기반 이론들은 회화적 재현이 그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이 장에서 소개될 곰브리치의 환영 이론, 튼의 믿는 체하기 이론,홉킨스의 경험된 닮음 이론이 이러한 경험 기반 이론에 속한 다.

에 적절한 재인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된다.볼하임은 이런 점에서 회화적 재현에 대한 경험은 지각적인 것임을 강조한다.그는 아이들이 그림책을 봄 으로써 많은 사물들을 알아보게 된다는 데 주목한다.그에 따르면 우리가 재인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그 대상,혹은 그 종류의 대상을 시각적으 로 의식하는 경험을 통해서이다.볼하임은 이러한 재인 능력이 단지 성향적 인(dispositional)의식이 아닌,재현 대상에 대한 실제(actual)의식에서 나타 나기를 요구한다.어떤 대상과 유사한 것을 보고 나서 그와 유사한 것을 문 제의 그 대상인 것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단지 추론적인 능력이지 진정 한 재인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이러한 고찰로부터 볼하임은 회화적 재현 에 대한 세 가지 조건을 이야기한다.첫째,한 그림이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 면,그 그림이 그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을 결정하는 적절한 경험이 있다.둘 째,만약 적절한 관찰자가 그 그림을 본다면,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그는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다.셋째,이 경험은 재현된 대상에 대한 시각적 의식을 포함한다.147)

볼하임은 그림에 관한 상징 이론과 닮음 이론들이 이러한 세 가지 조건들 중 특히 세 번째 조건,즉 우리가 재현 대상을 지각적으로 의식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자신의 이론만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그에 의하면 재현에 적절한 경험이란 그림의 대상을 그림의 표면 “안에서 보는”경험이다.안에서-보기는 일상적 보기와 는 구별되는 특별한 지각적 경험이며,재현에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앞 선다.안에서-보기는 그 경험이 독특한 현상적 특징을 가진다는 점에서 일상 적 지각과 구분된다.적절하게 표시된 표면을 보면서,우리는 표시된 표면 과,다른 어떤 것 앞에 있거나 뒤에 있는 무엇인가를 동시에 시각적으로 의 식한다.이것이 바로 볼하임이 “이중성(twofoldness)”이라고 부르는 특징이 다.

볼하임이 처음 이중성 이론을 제안한 것은 우리가 재현적 그림을 볼 때 캔버스와 재현 대상을 번갈아 지각한다는 곰브리치의 주장에 대한 대안으로

147)Ibid.,p.219.

오리-토끼 그림

서,우리가 회화의 표면과 그것이 재현하는 바를 동시에 지각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곰브리치는 “설득력 있는”회화적 재현에 대한 경험 을 “환영(illusion)”으로서 설명한다.환영을 본다는 것은 그림을 그림으로서 가 아니라 비록 가짜이기는 하지만 대상인 것처럼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림을 그 대상으로 착각하지 않는다.곰 브리치는 그 이유를 우리가 그림을 볼 때 물감이 칠해진 표면과 그것이 재 현하는 대상을 번갈아 경험하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한다.그는 케네스 클락 의 일화를 예로 든다.클락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면서,뒤로 물러서서는 그 그림이 재현하는 대상을 볼 수 있고 가까이 다가서서는 그것을 이루는 붓 자국과 물감을 볼 수 있었으나 앞으

로 뒤로 번갈아 움직여보아도 물감 자 국들이 어떻게 대상의 모습으로 변형되 는지는 결코 볼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곰브리치는 이를 유명한 오리-토끼 그 림148)에 대한 경험에 비유하는데,그에 따르면 오리-토끼 그림에서 우리가 오 리를 보거나 토끼를 볼 수는 있어도 오

리와 토끼를 동시에 볼 수는 없듯이,우리는 물감이 칠해진 캔버스와 그것 이 재현하는 바를 동시에 볼 수 없다.따라서 그림이 재현하는 바를 보는 경험은 마치 그 대상의 환영을 보는 경험과 같다.149)그러나 많은 이들이 비 판하였듯이 이는 잘못된 유비이다.곰브리치가 보이고자 했던 것은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그림을 보는 경험과 그림에서 재현된 바를 보는 경험이 동시 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지만,오리-토끼 그림에서 오리를 보는 경험과 토끼를 보는 경험은 모두 그림에서 재현된 바에 대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148)곰브리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1953)에서 이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빌려온다.원래 이 그림은 독일의 한 유머 잡지에서 처음 등장하였으나,미국의 심리 학자 조셉 재스트로(Joseph Jastrow)가 그의 1899년 논문에서 사용함으로써 주목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9) Ernst Gombrich,Art and Illusion: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Pictorial Representation,2ndedn.(Princeton:PrincetonUniversityPress,1961),pp.5-6.

볼하임은 우리가 그림을 볼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현되는 대상 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 다는 점을 지적한다.우리는 그림이 재현하는 대상을 보면서도 동시에 그림 의 표면이나 붓 자국 등의 매체를 보고 있다.우리는 오리-토끼 그림에서 오 리를 보면서도 동시에 오리를 묘사하는 선들을 볼 수 있다.따라서 그림을 보는 경험은 표면 보기와 대상 보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험으로 이해될 수 있다.150)그러나 후에 볼하임은 자신의 주장을 수정,심화하는데,그에 따르 면 이중성은 서로 다른 두 경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형태적 (configurational)국면과 재인적(recognitional)국면이라는,구분할 수는 있으 나 분리할 수는 없는 두 개의 국면을 가진 하나의 단일한 경험으로서 이해 되어야 한다.151)이 두 국면은 그것의 기원이 되는 표면이나 대상에 대한 경 험이나 지각과 기능적으로 동등할 수는 있으나 현상적으로는 완전히 달라서 비교불가능하다.그러나 “하나의 경험”에 대한 볼하임의 설명은 이 지점에 서 멈추고 만다.그림을 보는 경험이 그림 표면의 붓 자국을 보는 경험과도 다르고 그림이 재현하는 대상을 보는 경험과도 다르다면,그것은 어떤 종류 의 경험인가?우리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이 경험이 어떤 것인지 과연 이 해할 수 있는가?152)

150)Richard Wollheim,“Seeing-as,Seeing-inand PictorialRepresentation”,Artandits Objects,2nd edn.(1980),pp.213-214.이것이 바로 볼하임이 『Artand ItsObjects 개정판의 부록으로 실린 이 글에서 회화적 재현에 대한 경험을 이른바 “-로서 보기 (seeing-as)로서 성격화했던 초판에서의 입장을 수정한 주된 이유이다.우리가 만약 x를 f로서 본다면,x는 f에 의해 가려지고,우리는 f를 떠받치고 있는 x를 보지 못하 는 것이 된다.이는 분명히 환영주의적인 함축을 가진다.

151) Richard Wollheim,Painting as an Art(London and New York;Thames and Hudson1987),p.46;“OnPictorialRepresentation”,p.221.

152)많은 이들이 이러한 점에서 볼하임의 이론은 불완전하다고 비판한다.Malcolm Budd, “On Looking at a PictureKendall Walton, “Seeing-In and Seeing Fictionally” (둘 다 JamesHopkinsand Anthony Savile(eds.),Psychoanalysis,Mind andArt:PerspectivesonRichardWollheim(Oxford:Blackwell,1992)에 수록);Dominic Lopes,Understanding Pictur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p. 44;

RobertHopkins,‘'Explaining Depiction’',PhilosophicalReview,Vol.104,No.3(July 1995),p.439;MarkRollins,“PictorialRepresentation:Whencognitivesciencemeets aesthetics”,PhilosophicalPsychology,Vol12,No.4(1999),p.401;John Hyman,The

안에서-보기에 대한 볼하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회화적 재현에 적절한 경험을 할 때 우리는 표면과 대상을 동시에 지각하는 것이며,그것은 하나 의 단일한 경험의 두 국면으로서 그림의 표면 그 자체를 보는 경험이나 실 제 대상을 보는 경험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 단일한 경험의 두 국면은 각각 표면을 표면으로서 보는 경험과 대상을 직접 보는 경험과 어떻게 관련되고 어떻게 다르며,안에서-보기에서 서로 어 떻게 통합되어 있는가?볼하임 자신은 안에서-보기란 특별한 지각적 능력으 로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으로서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안에서-보기의 현상적 특징에 대한 더 이상의 탐구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단지 안에서-보기의 기능,즉 안에서-보기가 어떻게 재현을 설명할 수 있는 지를 보이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153)그러나 많은 이론가들은 볼하임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비판하면서 안에서-보기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시도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지점들이다.볼하임이 말하는 “표면”이란 무 엇을 의미하는가?그것은 말 그대로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물감이 칠해진 캔 버스라는 뜻인가,아니면 그로 인해 그림 그려진 대상을 알아보게 되는 형 태,색,질감 등의 이른바 디자인 속성이라는 뜻인가?안에서-보기 경험에서 표면 혹은 디자인 속성은 의식적으로 경험되는 것인가,아니면 단지 무의식 적으로 처리되는 것일 뿐인가?그림 안에서 보는 경험은 대상을 보는 경험 인가,대상과의 닮음에 대한 경험인가,아니면 대상을 본다고 상상하는 경험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