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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으로,안에서-보기 이론이 미학에 대해 가지는 함축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볼하임이 이중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는,이중성 이 뛰어난 예술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표시된 표면과 재현된 대상을 하나의 경험 속에서 동시에 의식함으로써 위 대한 화가들이 성취한 그림 표면과 대상 사이의 섬세한 조화를 의식할 수 있다.186)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또한 볼하임의 이론이 예술적 그림에 특권을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많은 이들은 볼하임이 말하는 이중성이 모든 그림들에 적용된다기보다는 예술적인 그림,그 중에서도 붓 자국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회화적인(painterly)”양식의 그림들에 대한 미 적 감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187)

그러나 과연 표시된 표면과 재현된 대상을 동시에 의식하는 것이 이른바

“예술적”그림들을 감상할 때만 일어나는 일인가?우리는 책 속의 삽화나 상품 포장지에 그려진 캐릭터들,심지어는 아이가 그린 서투른 엄마 아빠 그림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이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그 매체가 어떻게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함 께 의식하지 않는가?볼하임은 자신이 말하는 표시된 표면에 대한 의식을 붓자국에 대한 의식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우리가 이 중성 속에서 의식하는 표면 특징은 윤곽선,모듈레이션,펀치 마크,공기원 근법,세부의 섬세함,표면의 매끄러움,때로는 붓자국의 감춤까지도 포함된 다.188)

필자는 손으로 그린 그림의 경우 그것이 그려져 있는 매체가 의식되지 않 은 대상에 대한 파악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쩌면 우리 가 의식하지 못하는 초기 시각 단계라든지 그림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의

186)Richard Wollheim,“Seeing-as,Seeing-inandPictorialRepresentation”,p.216.

187)Dominic Lopes,Understanding Pictures,p.48;Jerrold Levinson,“Wollheim on PictorialRepresentation”,TheJournalofAestheticsandArtCriticism,Vol.56(1998),p.

229.나네이는 볼하임이 말하는 이중성이 대상과 표면의 이중성과 대상과 방식의 이 중성 사이에서 애매하다고 지적하면서,이 중 대상과 표면 사이의 이중성은 그림 지 각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상과 방식 사이의 이중성은 그림에 대한 미적 감상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Bence Nanay,“Is Twofoldness Necessary for RepresentationalSeeing?”,BritishJournalofAesthetics,Vol.45(2005),pp.263-272.

188)Richard Wollheim,PaintingasanArt,p.75.

눈속임 그림에 대한 경험의 경우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 림을 그림으로서 보는 것은 의식적인 경험이며,그림이 지각적 경험의 대상 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단지 그 의미만 파악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주의깊이 그림을 관찰하도록 만든다.우리가 그림을 재현으로서 보는 이상,우리는 그것을 지각적 경험을 위해서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산 물로서 본다.포드로가 지적하듯이,우리는 그림을 볼 때 그것을 그림을 그 리는 행위와 과정의 산물로서 보며 재현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면으로서 보는 것이다.189)

이중성이 그림의 미적인 측면을 포착한다는 것은 옳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중성이 예술적인 그림들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우리 주위의 수많은 그림들은 다양한 측면과 다양한 정도의 미적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그림들을 미적인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예술적인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들로 나눌 수 있는가?이중성은 예술적인 그림을 그렇지 않은 그 림들로부터 구분하는 특징이라기보다는 그림 자체에 대한 우리의 특별한 흥 미를 설명하는 특징이다.필자는 이것이 바로 볼하임이 “예술로서의 회화”

를 이야기하는 이유라고 본다.

189)MichaelPodro,“DepictionandtheGoldenCalf”,p.172.

맺음말

본고의 목표는 회화적 재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이제 우리는 닮음 이론과 상징 이론,재인 이론을 거쳐 안 에서-보기 이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닮음도,상징도,재인도 아닌 “안에서- 보기”가 재현적 그림의 본질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종이 위에 무심코 낙서를 하다가 사람 얼굴 같은 것이 그려졌다고 해보자.별다른 할 일이 없는 나는 거기에 좀 더 공을 들여 본다.머리카락 과 눈썹을 그려 넣고,눈,코,입을 다듬고,목과 상체를 덧붙여 그린다.이 제 그것은 점점 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그리고 마침내 나는 만족해 서 그것을 바라본다.나는 내가 만들어낸 사람을 본다.그러나 그 낙서가 진 짜 사람처럼 보이는가?그것은 단지 “사람 그림”처럼 보일 뿐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그린 낙서 안에서 그렇게 생긴 사람을 본다.

내가 낙서 안에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사람을 보는 것은 나의 시각 메커 니즘이 그 안에서 사람을 구분해냈기 때문이고,그것은 코끼리나 새가 아닌 사람의 모습과의 어떤 닮음 때문일 수 있다.그리고 그 그림이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면,그것은 “사람”일 것이다.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그림의 본질은 무엇인가?그것은 내가 그렇게 생긴 사람을 보게 된다는 사실 자체 이다.재현적 그림이란 바로 평평한 표면 안에서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 이다.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그것은 안에서-보기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 지고 있는 지각 능력이기 때문이다.우리가 들소를 볼 수 있는 것이 선천적 인 능력인 것처럼,얼룩진 바위 표면 안에서 들소를 볼 수 있는 것 또한 선 천적인 능력이다.그러나 이 두 능력은 같은 것이 아닌가?우리가 어쨌든 바위 표면에서 들소를 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들소를 알아보는 능력 덕분 이 아닌가?왜 “안에서-보기”라는 복잡하고 특별한 능력을 따로 상정해야 하는가?그것은 안에서-보기가 일상적인 지각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말보로 성의 그림은 실제 말보로 성보다 다른 그림들을 더 닮았 다는 굿맨의 말을 떠올려 보라.내가 그린 사람 그림은 실제 사람과 너무나

도 다르지 않은가?나는 몇 개의 선에 불과한 것 안에서 풍성한 머리카락을 볼 수 있으며 살짝 치켜 올라간 곡선에 불과한 것 안에서 웃는 입을 볼 수 있다.실제 대상과 그림 사이의 닮음이라는 끈질긴 직관을 떼어 놓는 순간, 우리는 그 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한 다.그림은 실제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무 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보게 되는 그 무엇인가는 단지 대상을 지시하기 위한 기호가 아니다.우리는 그것을 어떤 공간 안에 있는 형상으로서 실제로 본다.그것이 실제 대상을 보는 것 과도 다르고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기호를 보는 것과도 다른 의식적인 시각 경험이라는 데서 “안에서-보기”라는 개념이 요청된다.

그림의 본질이란 우리가 어떤 표시된 표면 안에서 무엇인가를 보는 경험 이라는 결론은,어떤 이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 다.그림이란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그림이 되 는 이유라기보다는 그림이라는 말과 동어반복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어떤 것이 구두의 그림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표면 안에서 구 두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과연 유의미할 수 있는가?본고는 감히 그렇다고 주장한다.그리고 본고 전체를 통해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노력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안에서-보기라는 경험이 어떤 더 기본적인 개념으로 도 분석될 수 없는 자연적인 능력이라는 사실에 있다.표시된 표면 안에서 무엇인가를 보는 경험은 실제로 어떤 대상을 대면하여 보는 경험과도,또 어떤 기호들의 조합으로부터 의미론적 내용을 해석해내는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별개의 종류의 경험이다.안에서-보기는 그 스스로 하나의 특 수한 지각 능력을 이룬다.

본고가 차례로 검토해 본 닮음 이론과 상징 이론,재인 이론은 회화적 재 현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으 로서 이해될 수 있다.닮음 이론이 인간의 지각 능력과 독립적인 속성의 공 통성을 주장한다면,상징 이론과 재인 이론은 회화적 재현이 인간의 산물로 서 인간의 지각 및 상징의 관례와 동떨어져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깨 닫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다.그러나 상징 이론이 재현과 관계되는

자연적인 지각 능력을 배제한 데에서 실패한다면,재인 이론은 상징을 해석 하는 지각 능력으로 재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데에서 실패한다.회화적 재현은 상징이라는 관례에 구속되기 전의 지각 경험에서 출발한다.그러나 그러한 지각 경험이 의도적인 행위의 목적이 되는 순간,그것은 인간 사회 의 관례의 일부가 되고 재현이 탄생한다.안에서-보기 이론과 다른 이론들 간의 차이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어쨌든 회화적 재현에 지 각과 관례가 관련된다는 사실은 재인이론과 상징 이론,그리고 닮음 이론에 서도 수용될 수 있다.그러나 본고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회화적 재현의 본질은 그 시각적 경험에 있다는 점이다.그림 안에서 무엇인가를 보는 경 험은 다른 것으로 설명될 수 없는 그 자체만의 독자적인 지각 경험이다.그 것은 그러한 보기를 만들어내는 표면과 매체,방식을 보면서 동시에 그것들 이 만들어내는 대상을,그 그림 안에서 펼쳐지는 광경 안에서 시각적으로 의식하는 경험이다.

본고가 안에서-보기 이론을 지지하는 결론을 내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집 중한 부분은 그림에 대한 지각을 그 대상에 대한 실제 지각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다.재인 이론이 지적하듯이,그림 안에서 어떤 것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실제로도 그 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지각 능력이 필요하 다.안에서-보기 이론 역시 이러한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안에서-보기에는

“재인적 측면”이 관련된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에서-보기가 실제 대상 에 대한 재인으로서 분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림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을 넘어선다.안에서-보기가 일상적 보기 를 넘어선다는 것은 두 가지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다.우리는 첫째,그림 안에서 실제 볼 수 있는 대상들 외의 것들을 볼 수 있다.우리는 그림 안에 서 실제로 본 적이 없는,그리고 볼 수도 없는 유니콘,마녀,이야기 속 주 인공들,상상의 괴물들,천사들,그 밖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우리가 실 제로 보는 것은 항상 어떤 특정 여인이지만,우리는 그림 안에서 그것이 누 구인지 말할 수 없는 그저 젊은 여인,그저 학자를 볼 수 있다.또한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누군가이지만,우리는 그림 안에서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젊은 남자를 볼 수 있다.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