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보기에 대한 볼하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회화적 재현에 적절한 경험을 할 때 우리는 표면과 대상을 동시에 지각하는 것이며,그것은 하나 의 단일한 경험의 두 국면으로서 그림의 표면 그 자체를 보는 경험이나 실 제 대상을 보는 경험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이 단일한 경험의 두 국면은 각각 표면을 표면으로서 보는 경험과 대상을 직접 보는 경험과 어떻게 관련되고 어떻게 다르며,안에서-보기에서 서로 어 떻게 통합되어 있는가?볼하임 자신은 안에서-보기란 특별한 지각적 능력으 로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으로서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안에서-보기의 현상적 특징에 대한 더 이상의 탐구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단지 안에서-보기의 기능,즉 안에서-보기가 어떻게 재현을 설명할 수 있는 지를 보이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153)그러나 많은 이론가들은 볼하임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비판하면서 안에서-보기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시도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지점들이다.볼하임이 말하는 “표면”이란 무 엇을 의미하는가?그것은 말 그대로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물감이 칠해진 캔 버스라는 뜻인가,아니면 그로 인해 그림 그려진 대상을 알아보게 되는 형 태,색,질감 등의 이른바 디자인 속성이라는 뜻인가?안에서-보기 경험에서 표면 혹은 디자인 속성은 의식적으로 경험되는 것인가,아니면 단지 무의식 적으로 처리되는 것일 뿐인가?그림 안에서 보는 경험은 대상을 보는 경험 인가,대상과의 닮음에 대한 경험인가,아니면 대상을 본다고 상상하는 경험 인가?
반대한다.그에 따르면 회화적 재현에 있어 근본적인 것은 회화 경험이 아 니라 그림이 묘사하는 바에 대한 파악이며,안에서-보기는 그에 의존하는 것 이다.그는 모든 회화 경험이 볼하임이 주장하는 “강한”이중성을 가진다는 데에도 반대한다.154)그의 전략은 안에서-보기 경험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기 보다는 안에서-보기를 다양한 양상을 가진 것으로 확장함으로써 다양한 회 화 경험을 수용하는 것이다.따라서 그에게 있어 “안에서-보기”란 볼하임이 주장하는 대로의 이중성을 가진 경험이라는 함의 없이,단순히 묘사된 장면 의 재인에 관련된 보기를 가리킨다.
로페스의 안에서-보기 이론에서 독특한 점은 그가 표면 속성(surface properties)과 디자인 속성(design properties)을 구분한다는 점이다.155)디자 인 속성이란 자국들의 형태,색,질감 등의 표면 속성들 중에서도 안에서-보 기를 지지하는 속성들만을 가리킨다.예를 들어 그림 안에서 보이는 대상의 윤곽을 이루는 경계선은 표면 속성이자 디자인 속성인 반면,관찰자에 대한 그림의 방향은 표면 속성이기는 하나 디자인 속성은 아니다.따라서 디자인 속성은 표면 속성의 부분 집합을 이루며,디자인을 보지 못하는 것이 표면 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로페스가 표면 속성과 디자인 속성을 구분하는 이유는 안에서-보기에서의 이중성이 다양할 수 있음을 주 장하기 위해서이다.즉 환영적이지 않은 그림 보기 경험에는 안에서 보는 동시에 디자인을 보는 경우 뿐 아니라 안에서 보는 동시에 표면을 보는 경 우도 포함된다.
로페스가 가장 먼저 문제 삼는 것은 눈속임 그림(trompe-l'oeil)이다.눈속 임 그림은 회화적 재현의 경계에 놓인 사례로서,눈속임 그림을 적절한 시 점에서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림 에 묘사된 장면을 실제로 본다고 착각한다.따라서 눈속임 그림에 대한 경 험은 볼하임이 주장하는 이중성을 가지지 못한다.그러나 로페스는 볼하임
154)로페스는 회화 경험에 이중성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강한 이중성”이라 부르고, 단지 이중성이 회화 경험과 일관적임만을,즉 회화 경험 중에서 이중성을 가진 경험 이 있음만을 인정하는 입장을 “약한 이중성”이라고 부른다. Dominic Lopes, UnderstandingPictures,p.47.
155)DominicLopes,SightandSensibility(Oxford:ClarendonPress,2005),pp.35-36.
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회화적 재현의 경계 밖에 놓인 것으로 간주하는 눈 속임 그림 역시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림이라고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에,회 화적 재현의 이론이 눈속임 그림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그에 따르면 어떤 재현을 그림으로서 볼 때만이 그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안에 서 보면서 항상 동시에 디자인을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림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역전시키고,오랫동안 대다수의 그림들이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그 이상으로 삼아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로페스는 또한 눈속임 그 림이 안에서-보기와 표면 보기의 이중성을 가질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눈속 임 그림이 접근하기 어려운 높은 천장에 그려지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 니라면 우리가 그것이 그림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때때로 가능하다.즉 안에 서 보는 동시에 표면을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눈속임 그림의 경험은 환 영을 경험하다가도 그것이 그림임을 알아차리는 데에 그 특별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156)
이처럼 눈속임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회화적 재현의 경험에 포섭시 키면서 그 경험이 두 가지 양상을 가질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눈속임 그 림과 자연주의적(naturalistic)그림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로페스에 따르 면,눈속임 그림이 그림임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표면을 볼 뿐 디자인을 보지는 못한다.로페스는 이것이 자연주의적 그림에도 해당 한다고 생각한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연주의적 그림을 볼 때 그 대상을 실제로 본다고 착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연주의적 그림을 볼 때 항상 안 에서 보는 동시에 디자인을 본다는 것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안에서 보는 동시에 표면을 보는 것으로도 환영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환영이 일어 나기 위해서는 디자인 뿐 아니라 표면까지 보지 못해야 한다.로페스에 따 르면 자연주의적 그림이 환영이 아닌 이유는 안에서-보기가 디자인 보기와
156)DominicLopes,UnderstandingPictures,p.50;SightandSensibility,pp.38-39.하이 만 역시 눈속임 그림이 환영을 끝까지 유지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것이라기보다 는 그 환영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솜씨를 즐기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 이라고 말한다.그러나 하이만이 지적하듯이,이를 인정한다면 볼하임의 이론 역시도 눈속임 그림을 재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John Hyman,The Objective Eye(ChicagoandLondon:TheUniversityofChicagoPress,2006),pp.132-133.
항상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단지 안에서-보기와 표면 보기가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즉 자연주의적 그림을 경험할 때에도 우리는 안에서 보 는 동시에 그 표면을 볼 뿐,대상과 디자인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다.곰브리치가 환영주의를 증명하기 위해 든 케네스 클락의 예를 언급하면 서,로페스는 이 예가 우리가 묘사된 장면을 보는 동시에 표면을 보지는 못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기보다는,묘사된 장면을 보면서 표면을 볼 수는 있 을지 몰라도 표면이 그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즉 디자인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57)안에서 보는 동시에 표면은 볼 수 있지만 디자인은 보지 못하는 경우 역시 일종의 유사 환영이라고 한다면, 로페스는 이러한 의미의 환영 또한 회화 경험에 포함될 수 있음을 인정한 다.따라서 로페스는 눈속임 그림과 자연주의적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환영 이 모든 회화 경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회화 경험의 한 종류로 포함 될 수 있다고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약한 환영주의를 받아들인다.
이제,볼하임이 주장하는 강한 이중성 이론을 받아들일지 로페스가 주장 하는 다양한 안에서-보기 이론을 받아들일지는 자연주의적 그림을 경험할 때 우리가 과연 안에서 보는 동시에 디자인을 보지 못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158)만약 자연주의적 그림을 경험할 때에도 안에서 보는
157)DominicLopes,SightandSensibility,p.38.
158)로페스는 다양한 안에서-보기 경험들을 눈속임 그림,자연주의,유사-이중성,이중 성,현실주의적 보기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나(SightandSensibility,p.40),이 중 유사-이중성(대상을 먼저 알아보아야 그것을 이루는 표면 특징을 볼 수 있는 경 우)과 현실주의적 보기(그림 자신이 바로 묘사 대상이 되는 경우)의 경우는 필자의 판단으로는 안에서-보기의 현상적 특징을 논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먼저 유사-이중성의 경우,그것이 만약 실제로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해 그려졌고 우리가 그 의도를 알고 나서는 그 그림 안에서 재현 대상을 볼 수 있다면, 유사-이중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이중적인 안에서-보기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 각된다.만약 그 그림의 화가가 재현하고자 의도하지 않았으나 우연의 일치로 그 안 에서 무엇인가가 보일 수 있다면,그것은 단지 재현이 아닐 뿐이다.재스퍼 존스의
<국기>와 같이 현실주의적 보기를 불러일으키는 그림 역시 화가의 의도에 따라 재현 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회화적 재현의 경계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유사- 이중성과 현실주의적 보기 그 어느 쪽이든 (또는 눈속임 그림 역시도)매우 드물며 일반적인 재현이라기보다는 속임수나 장난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로페스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지엽적인 경우들에 과한 중요성을 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