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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하임의 이중성 이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중적인 지각 경험이 어떠한 것인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볼하임은 안에서-보기가 형태 적 국면과 재인적 국면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단일한 경험이라고만 이야기할 뿐,우리가 그 경험을 물리적 대상으로서의 그림을 보는 경험이나 그림 그 려진 실제 장면을 보는 경험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길을 잃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페스,홉킨스,그리고 월튼은 자신의 이론이 안에서-보기의 특별한 (또는 특별하지 않은)현상적 특징을 잘 설명할 수 있 다고 주장한다.이제 그들이 각각 내세우고 있는 주장들이 안에서-보기를 설 명할 수 있는지 검토해 보기로 하자.

우선,로페스의 “굴절”개념을 살펴보자.그는 다양한 안에서-보기 경험들 을 수용하면서,그 중에서도 이중적인 경험에서 그림 안에서 무엇인가를 보 는 것은 그 그림의 디자인을 보는 것에 의해 굴절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 굴절된 경험에서 디자인 보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필자는 로페스 가 말하듯이 그것이 “디자인을 디자인으로서 보는”182)것이라면,굴절된 경 험은 볼하임이 말하는 이중적인 경험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디자인을 디자인으로서 본다는 것은 하나의 완전한 경험으로,그것이 대상 보기 국면 과 결합되어 하나의 단일한 경험을 이룬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로페스 는 자연주의적 그림을 설명하면서,“우리는 디자인을 디자인으로서 보는 동 안에는 그 안에서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묘사된 장면이 표면과 함께 보일 수는 있으나,묘사된 장면이 어떻게 표면으로부터 생겨나는가는 볼 수 없 다.”라고 말한다.그러나 자연주의적 그림에서 디자인을 디자인으로서 보는 동안에는 묘사된 장면을 볼 수 없다면,이중적 그림에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필자에게는 로페스가 디자인 보기에 대해서 설명하는 “디자인을

182)DominicLopes,SightandSensibility,p.38.

디자인으로서 보기”라든지 “묘사된 장면이 어떻게 표면에서 생겨나는가를 보기”라는 조건은 이중적 경험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강한 조건이라고 생각 된다.그러나 그가 이중적인 경험에서 무의식적인 디자인 보기를 인정한다 면,그것은 디자인 보기에 대한 로페스 자신의 주장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그가 애써 나누어놓은 자연주의적 그림과 이중적인 그림의 경계를 무너뜨린 다.그렇다면,굴절 개념을 로페스의 이론 밖으로 가지고 나와,무의식적인 디자인 보기와 대상 보기가 결합된 경험으로서 받아들일 수는 있을까?필자 에게는 이러한 선택지 또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굴절이라 는 말은 그림 안에서 보이는 것이,비록 디자인에 의해 변형된다고는 하나, 일상적인 실제 대상이라는 함축을 담고 있다.그러나 허구적,장식적 그림을 포함한 모든 그림들에 대한 경험이 실제 대상들을 보는 경험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홉킨스는 이중성의 경험이란 그림이 그 대상의 윤곽선 형태를 닮은 것으 로 경험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안에서-보기의 진정한 지각은 그림 의 형태적 측면에 대한 지각일 뿐,그림의 대상은 실제로 지각되지 않는다.

안에서-보기 경험의 부분이 되는 것은 단지 대상에 대한 “사고(thought)”일 뿐이다.183)이중적 경험에 대한 이러한 성격화는 안에서-보기의 현상적 특징 을 일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대상에 대한 지각을 부 정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과연 볼하임이 의미한 이중성인지 의심스럽다.볼 하임은 홉킨스의 이론이 그림 경험에서 재현되는 대상과 그림 표면이 하는 역할을 왜곡시킨다고 비판한다.그림 표면을 어떤 대상을 닮은 것으로서 본 다는 것은 첫째,그 대상에 대한 시각적 의식을 포함하지 않으며,둘째,그 림 표면에 우선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볼하임이 말하는 이중성과 일치하지 않는다.184)홉킨스의 이론이 우리의 그림 경험 일반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다음의 예를 한 번 생각해 보자.나는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초상화 속 인물이 내 친구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183)RobertHopkins,Picture,ImageandExperience,pp.132-133.

184) Richard Wollheim, “What Makes Representational Painting Truly Visual?”, ProceedingsoftheAristotelianSociety,Vol.77,Issue1(July2003),pp.137-139.

되었다.나는 그 그림에 그려진 이목구비가 내 친구의 이목구비와 윤곽선 형태에서 닮았음을 경험하면서 다시금 그 그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그 러나 이 예에서 초상화 속 인물이 내 친구를 윤곽선 형태에서 닮았음을 경 험하는 것은 그 그림 속 인물을 지각한 이후이다.이는 경험된 닮음보다 우 선하는 안에서-보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물론 경험된 닮 음 이론가들은 그림 속 인물을 지각하는 것 자체가 불특정 인물에 대한 닮 음 경험의 결과라고 주장할 것이다.문제는 경험이란 의식적이어야 한다고 했을 때,과연 닮음에 대한 경험이 대상 지각 이전에 “의식적으로”일어나 는가이다.그렇지 않다면,닮음에 대한 경험은 우리가 그림 안에서 어떤 것 을 보고 난 후에야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185)

이렇게 생각할 때 안에서-보기 경험은 비록 내가 그림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본다는 점에서 월튼이 말하는 “본 다고 상상하기”의 경험인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이 본다고 상상하기 경험 에서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은 어떤 현상적 속성을 가지는가?월튼의 본다고 상상하기 이론은 내가 그림 표면을 보는 행위가 그림 그려진 대상을 보는 행위가 된다고 말하지만,정작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한 다.월튼의 이론은 그림이 가지는 비실제적인 측면을 포착해내지만,모든 그 림 경험을 상상하기 속으로 휩쓸어 넣어 버림으로써 우리가 그림 안에서 어 떤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로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하게 다루 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홉킨스와 월튼의 이론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림이 재현하는 것과 우리가 그림 안에서 보는 것의 내용이 분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홉킨스 는 분리 안에서-보기를 비결정적인 그림에 대한 경험에서 나타나는 현상으 로 보고 있지만,모든 그림은 그 매체의 한계 때문에 어느 정도는 비결정적 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여기서 우리는 분리 안에서-보기를 그림 일반에 적 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월튼의 믿는 체하기 이론은 그림 이 재현 이전에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즉 그림을 보는 순간

185)이는 경험된 닮음 이론들 일반에 대해 제기되는 비판이다.본고 Ⅰ장을 참고하라.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그 지시 대상에 대한 파악보다는 그림 안에서 무엇인가를 보는(혹은 본다고 상상하는)경험이다.이러한 점에 서 안에서-보기는 재현에 인식적으로 앞선다.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 한 안에서-보기 경험이 홉킨스나 월튼이 주장하듯이 닮음에 대한 경험이나 본다고 상상하기로서 이해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볼하임이 말하는 안에서-보기가 닮음에 대한 경험도,본다고 상상하기도 아니라면 그것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볼하임이 이중성에 대해 한 말 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안에서-보기는 특별한 지각적 경험으로서,안에 서-보기를 경험할 때 우리는 적절하게 표시된 표면을 보면서 표시된 표면과 다른 어떤 것 앞에 있거나 뒤에 있는 무엇인가를 동시에 시각적으로 의식한 다.안에서-보기는 형태적 국면과 재인적 국면이라는,구분할 수는 있으나 분리할 수는 없는 두 개의 국면을 가진 하나의 단일한 경험으로서 이해되어 야 하나,각각의 국면은 반드시 지각적으로 의식되어야 한다.이 두 국면은 그것의 기원이 되는 표면이나 대상에 대한 경험이나 지각과 기능적으로 동 등할 수는 있으나 현상적으로는 완전히 달라서 비교불가능하다.필자는 이 모든 암시들이 가리키는 것은 그림 안에서 그 자신의 존재감을 가진 하나의 실체를 지각하는 경험이라고 본다.그림을 보면서,나는 그려진 모습 그대로 의 어떤 존재자가 그 그림이 만들어낸 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 경험한다.이 러한 경험에서 표면 혹은 디자인은 로페스가 말하듯이 디자인으로서 지각되 는 것이라기보다는,그 디자인에 의해서 형성된 대상에 대한 지각에 포함되 는 것이다.이렇게 보자면,로페스의 굴절 개념은 안에서-보기의 현상적 특 징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그러나 앞서도 지적했 듯이 굴절이라는 개념이 로페스 자신의 이론 내에서 모순을 일으키며,그림 안에서 보는 경험이 실제 대상을 보는 경험의 연장이라는 함축을 담고 있다 는 점을 상기해볼 때,그 개념을 구태여 가지고 오는 것은 그에 따라오는 문제점들과 불필요한 이론적 함축까지 떠안는 것이 될 수도 있다.따라서 필자는 안에서-보기를 굴절로서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볼하임의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을 택하도록 하겠다.안에서-보기라는 하나의 단일한 경험 내 에서 나는 표면의 속성들로 이루어진 어떤 대상 혹은 장면을 그 자신의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