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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보이는 대상을 지각적으로 경험할 필요가 없다면,아날로그성이 회화적 재현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셋째,로페스와 굿맨이 갈라지는 또 하나의 지점은,로페스는 그림과 대상의 의미론적 관계가 회화적인 것의 본성을 밝히지 못한다는 굿맨의 생각을 간과한다는 점이다.로페스는 모든 그림은 상징이라는 기본 전제에 따라,그림의 대상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 든 재현은 재인에 의한 지시 혹은 속성 부여로서 간주될 수 있다고 생각한 다.그러나 굿맨이 밝히고자 한 것은 회화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는 지시로 서의 회화적 재현이었다.로페스는 모든 재현은 상징이라는 굿맨의 기본적 전제를 충실히 따랐지만,사실상 굿맨의 이론에서 회화성은 상징성에 우선 한다.굿맨이 그림에서의 지각성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그는 그림 과 그것이 상징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의미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거부한다.따라서 만약 굿맨의 이론에 어떤 지 각성이 보충되어야 한다면,그것은 상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의 지각성이 라기보다는 상징 이전의 지각성이어야 한다.

을 전달한다는 것이다.우리는 그림을 통해 그 대상의 외양을 재인하고,그 림을 이해한다.그러나 그것이 고흐의 구두 그림이 가지는 내용의 전부인 가?로페스가 간과하고 있는,혹은 무시하고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우리가 그림을 볼 때는 일상적인 지각과는 다른 경험을 한다는 사실이다.홉킨스는 로페스의 이론이 그림이 요구하는 과정과 그 대상에 의해 촉발된 과정 사이 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물론 로페스는 그림의 경험은 실제 지각과는 달리 2차원적으로 제시되는 대 상을 재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홉킨스가 지적하듯이,그 말은 우리 가 그림을 이해한다는 명백한 사실 이외에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더 설명해 주지 못한다.93)

우리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가?물론 우리는 그 그림의 모델이 되었을 실제 구두를 재인한다.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직관이 존재한다.그것은 그 그림의 내용은 실제 구두에 관한 내용을 넘어 선다는 것이다.로페스에게 있어 모든 종류의 “그림”의 범례라고 볼 수 있 는 것은 사진이다.사진이야말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 과 기능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그는 모든 그림에 믿음이 필수 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손으로 그린 그림 역시 투명한 매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림과 사진의 차이는 단지 믿음을 가진 매개자로서의 화가가 존재 하느냐 아니냐의 여부만이 아니다.우리는 그림을 볼 때,사진과는 사뭇 다 른 관점에서 접근한다.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실제 대상으로부터 인 과적으로 산출된 결과물로서 본다.따라서 우리의 관심사는 그것이 전달하 는 실제 대상의 외관이다.그러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화가가 만들어낸 것 으로서 내 눈에 보이는 것,지각의 대상으로서의 그림 자체를 본다.어떤 경 우에는,손으로 그린 그림일지라도 우리가 그 정보 전달적 내용만을 파악하 기를 요구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그가 잘 모 르는 지역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간단한 지도를 그려 준다고 해 보자.

93)RobertHopkins,“TheSpeaking Image:VisualCommunication and theNatureof Depiction”,Contemporary Debatesin Aestheticsand thePhilosophy ofArt,Matthew Kieran(ed),BlackwellPublishing(2006),p.157.

고흐 <구두>(1886)

그 지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실제 도로들의 구조를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이 다.그 지도를 그린 선의 굵기나 색,질감 등은 별 상관이 없다.또는 레고 블록 맞추기 설명서를 보자.그 설명서를 볼 때 우리가 주목하는 내용은 어 떤 모양의 블록이 어느 위치에 끼워져야 하는지의 정보이지 그림 그려진 선 과 색,혹은 그림의 스타일이 아니다.그러나 고흐의 구두 그림을 볼 때 우 리가 주목하는 것은 단지 그 속에

서 재인되는 구두가 아니라 그 구 두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선과 색, 구조,붓 자국,나아가 그 그림을 이루고 있는 것 전체로서의 “그렇 게 그려진 구두”라는 내용이다.94) 이 사실은 우리가 정보 전달적 그 림과 이른바 “예술적” 그림들을 나누기를 요구하는가?어쩌면 그 럴 수도 있다.95)그러나 필자는 그

림들이 과연 정보 전달적 그림과 예술적 그림들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94)회화적 재현의 내용은 그것이 재현하는 실제 대상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서서 그림의 매체 자체와 융합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직관을 지지하는 많은 이론가들이 있다.MichaelPodro,“Depiction and the Golden Calf” in Norman Bryson,MichaelAnn Holly and Keith Moxey(eds.),VisualTheory:Painting and Interpretation(Oxford:PolityPress,1991),pp.163-189;Keith Lehrer,“Representation in Painting and Consciousness”,PhilosophicalStudies,Vol.117,No.1 (2004),pp.

1-14;Patrick Maynard,Drawing Distinctions:The Varieties of Graphic Expression (Ithaca:CornellUniversityPress,2005),p.89를 보라.

95)월쉬는 정보전달을 그 주된 목적으로 하는 비-예술 그림과,정보의 소통을 그 기능 으로 갖지 않는 예술적 그림을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Dorothy Walsh,“Some Functions of PictorialRepresentation”,British JournalofAesthetics21(1981),pp.

32-38.영 역시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의미론적 재현(semanticrepresentation)

보여주기”를 하는 예증적 재현(illustrativerepresentation)을 나누고,예술에서의 재 현은 의미론적 재현이 아니라 예증적 재현이라고 주장한다.그는 도로표지와 같이 관 습적 기호로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그림은 “그림으로서”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니 라고 말한다.그리고 그 도로표지가 그림으로서 기능한다면 그 내용이 달라진다고 본 다.JamesYoung,ArtandKnowledge,London:Routledge(2001),p.43.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이나 벽지,엽 서,컵,접시 등에 장식된 그림들은 정보 전달적 그림인가,예술적 그림인 가?그보다,우리가 과연 정보 전달적 그림들을 볼 때조차 그 정보 전달적 내용만을 보는 것인가?우리는 경우에 따라 어떤 사람의 생김새를 알려 주 기 위해 그린 그림을 보면서도 그 정보적 내용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그려진 모습,그 그림 자체의 질감과 구성을 즐길 수 있다.적어도 정보 전달적 그림들을 그렇게 감상하면 안 될 이유는 없다.이 사실은 로페 스가 생각하듯 우리가 정보 전달적 그림,민중의(demotic)그림을 중심으로 묘사의 이론을 구성해야 할 것이 아니라,이른바 “예술적”그림,인간이 의 도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적 산물로서의 그림 개념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재인 이론은 회화적 재현이 그 정보 전달적 내용을 어떻게 가지는가에 대 해서는 적절한 대답일 수 있다.그러나 그림이 가지는 특별한 회화적 내용 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력을 가지기 힘들다.로페스가 말하는 기본적 묘사는 “묘사”,즉 어떤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 개념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우리 주변에는 기본적 초상이나 기본적 묘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허구적 그림들,장식적 그림들,예술적 그림들,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그림들은 기 본적 묘사를 훨씬 넘어서는 내용을 가진다.96)이런 그림들을 설명하기에 기 본적 묘사의 개념은 너무 빈약하며,때로는 초점을 빗나간 듯이 보인다.본 고는 회화적 재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정보 전달적 내용으로부터 넓혀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좁혀 들어가야

96)반티나키는 회화적 재현의 내용은 항상 배경지식과 맥락에 의존적이라는 데서 로페 스의 “기본적 묘사”개념을 비판한다.그녀에 따르면 첫째,기본적 묘사 역시 회화적 재현이라는 관행 자체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재인 능력 이상을 요구한다.둘째,로페스가 말하는 기본적 묘사에 속하는 것들 중 많은 그림들이 그 대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함축된 언급을 한다.셋째,우리는 배 경 지식 없이는 어떤 그림이 기본적 묘사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없다.Katerina Bantinaki,“TheOpticality ofPictorialRepresentation”,TheJournalofAestheticsand ArtCriticism,Vol.66,No.2(2008),pp.187-188.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이제 다음 장에서 회화적 재현의 본질은 그 것이 불러일으키는 경험에 있다는 본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