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닮음 이론이든 주관적 닮음 이론이든,재현에 대한 닮음 이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림의 재현 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닮음을 알아 차려야 한다.닮음 이론에서는 그림이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은 그림이 그 대상을 닮았기 때문이거나 그 대상과 닮게 경험되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림에서 대상을 알아보아야만 그림과 대상 간의 닮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닮음은 재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 라 재현에 의존하게 된다.
2차원적인 그림과 3차원적인 대상은 닮았다기에는 서로 다른 점이 너무 많다.경험된 시각장 형태 역시 마찬가지이다.캐리커처나 역원근법으로 그 려진 그림 등이 그 그림과 시각장 형태에서 유사한 변형된 대상을 닮은 것 으로 경험된다거나 대상의 제대로 된 묘사를 왜곡시킨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그림과 시각장 형태에서 닮게 경험되는 대상이 그 그림의 재현 대상이라는 주장은 그 설득력을 잃는다.또한 한 그림의 시각장 형태가 다 양한 대상의 시각장 형태와 유사하게 경험된다면,우리는 먼저 그림이 재현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본 후에야 그 그림의 시각장 형태와 그림이 재현 하는 대상의 시각장 형태가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된다.
분명한 것은,우리는 그림을 그림으로서 인식해야만이,즉 그것이 어떤 대 상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이 그림과 그 대상의 관계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다.여기서 볼하임의 지적을 살펴보자.
...닮음의 개념은 악명 높게 함축적이거나,또는 어쨌든 맥락 의존적이다:
또한 재현이라는 제도나 관행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사람에게,어떻게 한 회화나 드로잉과 그것이 재현하는 것 사이에 성립하는 닮음이 보이게 될 지,또는 심지어 지적될 수는 있을지 알기란 어렵다.
때때로,참으로,우리는 한 그림 앞에서 ‘그렇지만,이 얼마나 A와 똑같 은가!’라고 외친다.그러나 이것은 처음에는 내 주장에 대한 반례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왜냐하면 우리가 만약 이 경우 닮음을 귀
속시키는 ‘이것’을 설명하고자 노력한다면,우리는 우리가 한 말이 ‘이 형태 가 A와 똑같아’보다는 ‘이 사람이 A와 똑같아’라는 쪽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해서 닮음의 귀속은 재현의 언어 내 에서 일어나며,따라서 재현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24)
볼하임의 주장은,닮음이란 재현의 맥락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우리 는 먼저 그림이 어떤 사람을 재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 “사람”
이 A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그림이 어떤 사람을 재현한 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다면,재현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림과 그 대상과의 닮음을 찾고자 할 필요가 없다.우리가 어떤 그림이 누구를 재현하는지 알 기 위하여 그 사람과 닮은 점을 찾기 전에 그 그림이 어떤 사람을 재현한다 는 것을 알아차린다면,그 그림이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을 재현한다는 것 을 알아차린다고는 왜 할 수 없겠는가?닮음은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 이나 그림의 경우 비교는 필수적이지 않다.우리는 단지 그림을 보고 그것 이 무엇을 재현하는지 알아차릴 뿐,그 그림과 무엇이 닮았는지 비교하기 위하여 대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록 재현과 독립적인 닮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재현을 이해하는 것의 원인으로서 닮음이 요청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 다.이들은 모든 그림들이 그 대상들과 공유하고 있는 닮음이 무엇인지 말 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각 경우 안에서의 그림과 대상 사이 의 닮음은 원칙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고 본다.25)그러나 수많은 회화적 스 타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때,그 각각에 대하여 서로 다른 닮음들을 상정 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닮음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론적으로 무용한 것으로 만든다.우리가 어떤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한다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직관이 어떻게 그 답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기보
24) Richard Wollheim,Art and its Objects(2n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Press1980),p.18.
25)Crispin Sartwell,“NaturalGenerativityand Imitation”,BritishJournalofAesthetics, vol.31(1991),pp.58-67;AlanH.Goldman,“TheAestheticValueofRepresentation inPainting”,PhilosophyandPhenomenologicalResearch,Vol.55(1995),pp.297-310.
다는 그러한 직관을 설명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고 그럼으로써 그러한 직관을 정당화하는 것이다.그림과 그 대상이 닮았다는 직관을 유지 하기 위해 반드시 그림을 닮음으로써 정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닮음이라 는 개념 없이도 그림을 설명할 수 있다면 굳이 그 원인으로서 닮음도 있다 고 말하는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회화적 재현이 닮음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면,과연 무엇에 의해 설명되어야 할 것인가?본고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내가 그림을 볼 때 우선적으로 나에게 보이는 것은 대상과 닮은 형태나 대상이 내 시각장에 제시되는 형태와 닮은 형태가 아니라 대상 그 자체라는 것이다.내가 어떤 초상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을 보지 않고서,이를테면 그것과 사 람과의 어떤 닮음 때문에 그것이 어떤 사람을 재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떤 풍경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호수를 향해 이어져 있는 울타리와 그 안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보지 않고서 그 그림이 호숫가의 목장을 재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나는 그림을 보면서 그 대상을 어떤 공간 안에 있는 것으로 말 그대로 “본다”.그렇다면,재현은 이 대상을 보는 경험을 중 심으로 하여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본고의 주장은 명백히 경험 기 반 이론,그 중에서도 “안에서-보기”라는,그림을 보는 특별한 경험으로써 재현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을 지지하고 있다.그러나 이 이론을 더 탐구 해보기 전에,우리는 닮음이라는 개념을 요청하지 않고도 회화적 재현을 설 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경쟁적 이론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력한 후보가 있다.그 하나는 상징 이론이고,다른 하 나는 재인 이론이다.그러나 이들 이론이 안에서-보기 이론과 대립되는 이론 이라기보다는 안에서-보기를 인정하면서도 회화적 재현에는 안에서-보기보다 더 근본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론들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필자는 이들 이론에 대한 검토와 비판을 통해,결국 안에서-보기 라는 개념이 회화적 재현에 대한 설명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보이도 록 하겠다.이제 본 논문의 Ⅱ장과 Ⅲ장에서 이 두 이론들을 차례로 검토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