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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기존 연구 검토

4.1.2 서상법에 관한 유형론적 접근

가능성의 의미나 비현실성을 나타내는 문법수단이 이미 실현된 현실적인 사 건과 공기하는 현상은 유독 중국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타 언어에 서도 유사한 현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견된 언어들에 대 한 연구는 주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연구 결과가 많은 인구어이며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호주 및 미주 원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들이다. 먼저 인구 어의 사용상황을 살펴보자.

인구어에서 명제 또는 사태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 태도를 나타내는 문법적인 수단은 서법(mood)이다.2) 서법의 하위분류는 매우 복잡하지만 본장의 연구와

2) 본고는 Palmer(2001)의 양태(modality)와 서법(mood)에 대한 견해를 채택하기로 한다.

Palmer(2001)에 따르면 양태는 덜 문법화되고 주로 양태동사, 양태부사 등을 통해 화

자가 명제의 진리값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범주이고, 주로 동적양태, 의무양태, 인 식양태, 증거양태 등 네 가지의 하위분류가 있다. 반면 서법은 많이 문법화되어 동사

관련된 것은 ‘indicative’와 ‘subjunctive’이다. 이 두 가지 용어에 대응된 표현 은 주로 직설법(直述法)/가정법(假定法), 서실법(叙实法)/서상법(叙想法) 등이 있 다. 민경모(2010)는 서법의 관련 용어의 유래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였으며 그 중의 서실법(indicative)과 서상법(subjunctive)이라는 용어는 형태중심적 서법 관보다 의미⋅기능중심적 서법관에 걸맞은 용어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실 법과 서상법의 구별 각도가 본장의 고찰 대상과 더 적합하다. 일반적으로 서실 법은 현실적인 사건이나 사태를 표현하는 반면, 서상법은 가정된 사건을 드러 낸다. 그러나 인구어에서 다음 예문(10)과 같이 가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건을 나타낼 때 서상법의 형태를 취하는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가정법이라는 용어 를 사용하면 용법의 실례와 용어는 모순이 생긴다. 그러한 형태적인 수단을 선 택할 때 결정하는 요인은 명제나 사태의 현실성 여부가 아니라 화자가 그것들 에 대해 취하는 태도이다. 서법을 더 합리적으로 파악하려면 그것의 기능으로 부터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장은 서실법과 서상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로 한다. 다음 인구어에서의 구체적인 사용을 분석해 보자.

(10) Me alegra que sepas la verdad. Lunn(1995) me it pleases that know+2SG+SUBJ the truth

I’m glad that you should know the truth.

사실을 알고 있다니 기분이 좋다.

(11) It is surprising that he should be a teacher.

그가 교사라니 놀랍다.

스페인어 예문(10)에서는 동사가 서상법을 나타내는 굴절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페인어는 화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고 서술할 때 는 서실법을 사용하며 서술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때는 서상 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예문(10)에서는 화자뿐만 아니라 청자까지 모두 종속절 (subordinate clause)에 출현한 사건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어도 종속절의 동사 는 서실법이 아닌 서상법의 형태를 취한다. 영어 예문(11)에서는 조동사

의 굴절형태와 같은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문법수단을 통해 표현되며, 서실법, 서상법, 명령법 등 많은 하위분류가 존재한다.

‘should’가 일반 조동사의 기능인 의무양태나 인식양태를 나타낸다고 보기가 힘들다. Bybee et al.(1994:214)은 이를 서상법의 용법에 해당된다고 본다. 즉,

주절에 ‘surprising’이 출현하면 종속절에서는 서상법을 나타내는 표지가 대응

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should’는 일반적인 조동사가 아니라 서 상법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아프리카, 호주 및 미주 원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들에서 양태 범주는 서실법 과 서상법 대신 현실(realis)과 비현실(irrealis)의 표현 수단을 통해 표현된다.

본장의 중국어 고찰 대상과 대응하는 용법은 다음과 같다.

(12) hús-baʔa-sayi-k’awih-saʔ Palmer(2001:177)

ADM-1+BEN+IRR-name-know-PROG My goodness, he knows my name.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예문(12)는 미국 원주민 언어인 카도어(Caddo)에 있는 실례이다. 유형론학자 들은 카도어를 연구할 때 서실법과 서상법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현실과 비 현실의 용어로 연관된 현상을 묘사한다. 서실법과 서상법의 체계는 동사의 굴 절형태를 통해 표현하는 반면, 현실과 비현실의 체계는 동사의 형태 변화가 없 고 접두사, 접미사, 조동사 등을 통해 표시한다. 그러나 현실과 비현실의 차이 는 서실법과 서상법의 구분과 매우 유사하다. 즉, 화자가 서술할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면 현실의 표현 수단을 취하며 사실로 생각하지 않으면 비현실의 표현 수단을 사용한다. 예문(12)에서 그 사람이 화자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가정 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표지가 사용되었다.

이상의 예문들을 통해 많은 언어에서 이미 사실이 되는 사건이 사실이 아닌 것을 나타내는 문법수단과 공기하는 현상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의미적으로 모순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인구어의 연관된 현상에 대한 해석은 주로 Kiparsky & Kiparsky(1971)의 분 석 방식에 따른다. Kiparsky & Kiparsky(1971)는 일부 동사는 사실성 보족어 절(factive complement)과 자주 공기하며 이때 보족어절이 표현한 명제는 전제 화(presupposed)되었다고 하였다.3) 즉, 그 명제는 화자에게 사실로 인정되며

화자는 청자도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있다고 짐작한다.

Bybee et al.(1994:239)과 Lunn(1995)에 따르면 서실법과 서상법의 선택을

결정하는 요인은 명제의 진리값이 아니라 화자의 명제에 대한 단언성

(assertion) 여부이다. 즉, 명제에 대해 단언할 때는 서실법을 선택하며 비단언

성(non-assertion) 명제는 서상법의 형식을 취한다. 명제에 대해 단언할 필요가 없는 상황 중의 한 가지는 바로 주절의 술어동사가 평가성(evaluative) 동사이 며 전제화된 종속절을 요구하는 유형이다.

(13) Lo siento que est enferma. Bybee et al.(1994) it regret+1S that be+3S+SUBJ ill+FEM

I’m sorry that she should be ill.

그녀가 아프다니 정말 안타깝다.

단언성의 각도에서 보면 스페인어 예문(13)에서 종속절의 명제는 사실이지만 전체 문장의 중심은 화자의 평가에 두기 때문에 화자는 종속절의 명제가 사실 임을 강하게 주장할 필요가 없다. 즉, 그녀가 아픈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이고 문장의 전제(presupposition)이며 화자는 그것에 대해 ‘siento(sorry)’를 통해 안타까운 감정 평가를 전달하고 싶을 뿐 추가적으로 문장의 전제가 사실 임을 단언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종속절은 서실법의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서상법을 선택한다.

Givón(1995:149)은 서상법의 사용에 관한 세 가지 설명하기 힘든 수수께끼 중의 하나는 스페인어의 사실성 종속절에 서상법의 형태를 취하는 문제라고 하 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해석은 앞에서 언급한 종속절의 사실성과 주절 술어 동사의 평가성(valuative)4)을 받아들이며 서실법과 서상법의 선택의 차이는 감 정적인 반응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본다. 스페인어에서는 평가성과 감정성

3) Palmer(2001)에서 재인용. 보족어는 동사성 성분 뒤에 목적어처럼 사용되는 성분을

가리키며 종속절의 일종이다.

4) Bybee et al.(1994:239)과 Lunn(1995)은 ‘evaluative’를 사용하며 Givón(1995:149)은

‘valuative’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용어가 묘사하는 대상이 같기 때문에 본

고에서 모두 ‘평가성’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emotive) 동사의 종속절이 서실법과 서상법의 표현 방식을 모두 취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 그것들의 차이는 다음의 예문을 통해 알 수 있다.

(14) a. Lo increíble era que Pedro no lo sabía. Givón(1995) it incredible was that Pedro NEG it know+IND

The incredible thing was that Pedro didn’t know it.

놀라운 사실은 페드로가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b. Lo increíble era que Pedro no lo supiera.

it incredible was that Pedro NEG it know+SUBJ The incredible thing was that Pedro should not know it.

페드로가 그것을 몰랐다니 놀랍다.

예문(14a)와 (14b)는 화자가 페드로가 어떤 일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나타내는 두 문장이다. 예문(14b)에서는 동사가 서상법의 형태이 고 서실법의 형태인 예문(14a)보다 화자의 의외적인 태도를 더 강하게 나타낸 다. 왜냐하면 예문(14a)는 단지 화자가 놀라게 한 일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조동사를 통해 이러한 서상법의 기능을 실행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15) a. She was pleased that he agreed to come. Givón(1995)

> his agreement was not unexpected5) 그녀는 그가 오겠다고 동의해서 기뻤다.

b. She was so happy that he should agree to come.

> his agreement was unexpected

그녀는 그가 오겠다고 동의하다니 너무 행복했다.

영어에서는 예문(15b)처럼 ‘should’가 삽입되어 더 강한 감정적인 태도를 나 타낸다. 이때 ‘should’는 스페인어의 서상법의 형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should’는 원래 사건 발생 여부에 대한 판단을 드러내는 인식양태의 용법도

5) Givón(1995)에서 ‘>’는 문장의 화용적 의미를 해석할 때 사용한다.

가지고 있다. Givón(1995:149)은 인식양태가 이러한 용법과 관련이 있다고 보 고 다음과 같은 화용적인 함축을 제시하였다.

만약 어떤 사건이 인식양태적으로(epistemically) 덜 기대가 되면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의외, 선호, 혐오감 등과 같은 감정적인 평 가 반응도 강해질 것이다.

이 함축 규칙에 의하면 화자는 어떤 사건의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 단하기 때문에 그 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대해 의외와 같은 감정도 강하게 나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현실과 서상법은 다차원의 의미-화용적인

(semantic-pragmatic) 영역에 속한다.

Palmer(2001:121,177)는 종속절이 표현하는 명제가 전체 문장의 전제라는 것은 이러한 문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본다. 서상법이든 비현실 표현이 든 모두 전제를 표지하는 전제화의 용법이라고 하며, 본고가 앞에서 언급한 분 석들을 수용하여 화용론적인 각도에서 이러한 용법의 기능을 설명하였다. 화자 와 청자 사이에 의사소통을 진행할 때 서상법이나 비현실을 나타내는 문법수단 으로 전달하는 명제는 신정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서상법이나 비현실 표지와 공기하는 명제는 문장의 전제이기 때문에 항상 구정보가 된다.

(16) a. Si capisce che sono arrabiati Palmer(2001) One understands that be+3PL+IND cross

It’s clear that they are cross.

그들이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b. Si capisce che siano arrabiati One understands that be+3PL+SUBJ cross It’s understandable that they should be cross.

그들이 화가 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예문(16a)에서 화자의 생각에 그들이 화가 난 것이 청자에게 모르는 사실이 기 때문에 서실법의 방식으로 문장 전체가 신정보라는 것을 청자에게 알려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