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터랙션 퍼포먼스(Interaction Performance)
5.5 센서빌리아(sensibilia)
5.5.3 전이성(transferability)
게 매달린 투명한 유리 안에 임의로 움직이는 나비처럼 생긴 작은 쇳조 각은 관객이 다가갈 때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 랜덤한 움직임만으로 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활력을 느끼게 하지만 쇳조각이 유리벽 에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청명한 소리들이 더해지면서 생명력이 힘을 더 한다. 반면 Harvey & John Studio96)의 ‘Scent Drops(2017)’97)는 배치된 작은 물체를 비틀어 특정한 향기를 뿜게 할 수 있는데 동시에 귀에 대면 그 향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향기를 귀로 듣는다’는 메타포를 인터랙션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각과 촉각, 청각과 후각 등의 복수 감각 을 인터랙션 퍼포먼스에 협력적으로 활용한 센서빌리아의 활용 예인 것 이다. <그림 81>
큼 민감하고 정확하여 가장 효율적인 감각이다. 다만, 시각중심주의로부터 의 탈피에서 일군의 사상가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바는 시각에 의해 소외 되어 있던 여타 감각들을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중심주의로부 터의 탈피는 시각이라는 감각의 역할과 의미를 고의적으로 축소하여 받아 들인다는 의미보다는 다른 감각의 역할과 의미를 확대하여 감각적 균형 혹은 협력을 추구한다는 의미라 하겠다.
이미 시각은 다른 감각과 협력적이다. 망막이 피부가 진화한 하나의 형태 라는 사유와 통찰의 차원만이 아니다. 음식의 색깔이 맛과 풍미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Spence 등, 2010, 2016), 색깔은 향취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Zellner, 1991, 2013)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식품류의 패키 징 디자인은 이런 시각의 감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본 재료와는 무관한 노란 색소를 첨가하여 맛과 향에서 바나나를 연상시킨 바나나 우 유의 예만 보아도 그렇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눈은 만질 수 있다. 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물체가 부드러운지 딱딱한지 감지할 수 있고(Cellini 등, 2013), 디자인된 사물의 색과 텍스쳐를 봄으로써 촉감을 느낄 수 있다. Lupton(2018)은 표현적인 의미에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역동성에서 청각과 촉각 같은 여러 가지 감각을 감지할 수 있다고 평한다. 접시 위에 떨어져 깨지기는커녕 튕기고 쌓이는 달걀과 같은 역설적인 표현에서 재미를 추구한 애니메이션 ‘For Approval(Mainframe, 2017)’98)은 이런 시각의 촉각성을 역이용하기도 한다. Bina Baitel Studio99)의 ‘Lash Clock(2015)’100)도 시각적 촉감의
98) https://bit.ly/3do0QTe 99) https://bit.ly/3EtS1Di
그림 82 전이성 사례 : For Approval(좌), Lash Clock(우)
작용을 이용한 디자인의 예라 할 수 있다. 시계의 눈금에 털을 두르고 시 간이 지남에 따라 그 부분의 털의 간격이 벌어지는 방식으로 시간을 표시 하는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은 털을 원형의 시계의 둘레에 적용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눈을 연상하게 한다. 우리 몸의 일부-눈과 눈썹-를 연상하게 됨으로써 시간을 표시하는 털의 움직임이 마치 눈썹이 움직여 간질거리는 것과 같은 촉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미감을 배가한다.
<그림 82>
인간의 주된 감각인 시각을 통해 촉감을 감지하는 디자인적인 시도는 시 각 중심으로 협소화된 조형 언어에 대한 반작용의 측면이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시각의 틀 안에서 제한된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확장하여 더 풍 부한 감각 효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디자인의 기능성을 향상시키거나 사용 자의 미적 경험을 확장하는 방편이 된다.
DaVinci와 같은 원격 수술용 로봇에서 시각의 촉각성은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에게 수술 부위의 촉감은 환부의 진행 정도와 절제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원천이다. 로봇을 이용한 원격 수술에서 스코프를 통해 전달되는 영상을 확인하며 로봇 팔을 조종하여 수술을 집 도해야 하는 집도의에게 촉감이 제한된다는 점은 중대한 한계일 수 있다.
센서와 모터를 활용해 환부의 촉감을 전달하는 기술은 일부 시도되기도 하고 현재 개발 중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은 기술 이다. 현재 집도의는 시각적으로 환부의 촉감을 판단한다. 스코프로 보이 는 환부의 모습과 집도의의 감각적 경험이 조합되어 환부의 촉감을 간접 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이를 ‘감각 치환(sensory substitution)’이라 하 여 어떤 감각이 다른 감각의 자리를 대신 채워주는 것을 뜻하며, 감각 전 이의 실용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Platoni, 2017).
인터랙션 디자인의 영역에서 GUI 디자인의 시각 표현의 역사에서도 시각 의 촉각화 효과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GUI 디자인은 컴퓨팅에 의해 만 들어지는 정보를 사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각 요소로 표현하는 디자인 이다. GUI의 2차원 시각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스큐어모 피즘(Skeuomorphism)은 실재적인 형태와 텍스쳐를 시각요소로 차용한 다. 양장된 가죽 표지, 거친 종이면, 분필가루가 뭍은 칠판과 같은 표현을 통해 재질의 촉감을 느끼게 하거나, 버튼이나 레버 같은 물리적 조작 형태 를 차용하여 운동감을 더하는 등의 디자인을 적용하였다. 2차원적 시각
요소에 촉각적 센서빌리아를 부여함으로써 감각적 전이 효과를 주는 것이 다. 애플을 중심으로 한때 유행처럼 번진 스큐어모피즘은 초기 GUI 디자 인의 감각적 미감을 잘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Kinect와 같은 AR(augmented reality) UI는 시각의 촉 각화 현상을 UI에 활용한 예이다. 화면상에 실제의 환경에 겹쳐진 가상의 이미지로서의 요소들이 현실의 요소로 느껴지도록 하는 AR UI는 시각적 인 요소를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인터랙션 디자인의 전략에서 시각적 센서빌리아들은 다른 감각을 자극하도록 활용되는 것이다. 이는 감 각적 경험의 확장이자 인터랙션 경험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감각의 전이 현상이 가능한 또 다른 원인은 어떤 감각들은 쌍으로 밀접하 게 연관되거나 감각의 원천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보 형태를 띠고 있어 발생하기도 한다. 후각과 미각의 밀접한 연관은 그 예이다.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느끼는 순간은 숨을 들이쉴 때가 아니라 내쉴 때라고 한다. 즉, 숨을 내쉴 때 음식의 냄새가 코를 통해 나가면서 후각을 자극하여 그 맛 을 결정하거나 배가한다는 것이다. 코를 막고 사이다와 콜라를 마셨을 때 그 맛을 분간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앞에서 미각이 시각, 촉각 등 과 협력한다고 하였지만, 후각과는 보다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하겠 다.
소리의 원천은 진동이다. 진동이 매질(공기)에 파동을 만들고 파동의 힘이 우리의 귀에 전달되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진동이 우리의 피부에 닿 으면 촉각이 된다. 클럽의 거대한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강한 비 트가 실제로 몸을 쿵쿵 때리는 타격으로 느껴진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와 치의 사운드 알림 디자인은 진동을 고려하여 디자인된다. Google의 사운 드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Conor O’Sullivan은 ‘햅틱과 사운드는 모두 파동입니다. 그래서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다룹니다’고 말한다(Lupton, 2018). 스마트폰의 알림 사운드가 울릴 때 그 진동으로 인해 탁자와 주변 을 울리는 것까지를 고려하여 디자인한다는 의미이다.
‘골전도 이어폰’이라 불리는 이어폰들은 청각 원천의 진동 특성을 활용한 다. Liron Gino의 Vibeat는 목에 걸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일종의 휴 대용 스피커이다. 이 스피커는 피부와 뼈를 진동하여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이 디자인은 이어폰이 귀를 덮어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담이 나 위험을 극복하거나 청력이 없거나 부족한 이에게 소리를 들려준다는
기능적 장점 외에도 진동이 소리가 되어 들리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과 새 로운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Ultrahaptics의 컨트롤러는 소리의 진동을 활용한 다른 인터랙션 디자인의 예이다. 일련의 초음파 센 서를 나열한 이 컨트롤러는 귀로 들을 수 없는 영역의 소리인 초음파를 활용해 우리 손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컴퓨팅 정보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림 83>101)
‘귀로 색깔을 듣는 남자’ Neil Harbisson102)은 학습을 통해 감각의 공유 에 의한 감각 전이 현상을 실현하였다. 그는 자신을 ‘Eyeborg(사이보그에 빗대어 스스로의 실험성을 드러내는 조어)’라 부른다. 선천적으로 색맹이 었던 그는 머리 위에 카메라를 달고 눈앞에 찍히는 장면의 색깔 정보를 소리로 변환하여 듣는다. 오랜 숙련 과정을 거친 후 이제는 자연스럽게 눈 으로는 볼 수 없는 색깔을 소리로 구분해 낸다. 옷, 음식, 심지어 사람의 인상까지도 소리로 들어 구분하는 그는 저녁 만찬을 오케스트라로 표현하 기도 한다. 소리로 색깔을 판단하는 그는 반대로 어떤 음악을 듣거나 소리 를 들었을 때 곧바로 색채를 연상한다고 한다. 학습을 통해 하나의 감각 정보를 다른 감각 정보로 변환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David Eagleman103)의 연구팀은 카메라를 통한 색깔 정보가 아닌 상대방 이 말하는 단어 정보를 진동으로 바꿈으로서 그 뜻을 이해하도록 시도하 였다. 이들은 베스트 자켓에 내장된 진동자들을 이용해 들리는 단어를 일 정한 규칙의 진동 패턴으로 표현하도록 하였다. 실제 청각 장애를 가진 이 들에게 실험하여 소리를 듣지 않고도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놀라운 결과
101) https://bit.ly/3djmGaA, https://bit.ly/3rHPQJ3 102) https://bit.ly/3kK8TOZ
103) https://bit.ly/2WbVlSI
그림 83 전이성 사례 : Vibeat(좌), Ultrasonic controller(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