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터랙션 내러티브(Interaction Narrative)
4.1 내러티브
의 차원을 제공한다. 이를 “이야기의 힘(2011)”이라고 강조하기도 하는데, 그런 예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자이로드롭<그림 10>은 놀이공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놀이기구 중 하나다. 태운 사람들을 현기증 나게 아찔한 상공까지 태우고 올라간 후 갑자기 빠른 속도로 떨어뜨려서 그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동경 Disney Sea에는 Tower of Terror라는 건 물이 있다.<그림 10> 거대한 이 중세 스타일의 건물은 폐쇄된 호텔이다.
관객은 로비를 지나면서 이 호텔의 주인인 하이타워 경이 아프리카 탐험 에서 가져온 저주받은 인형으로 인해 의문의 사고로 엘리베이터에서 사라 졌다는 안내를 받는다. 엘리베이터에 앉고 나면 맞은편에 나타난 인형으로 부터 마지막 경고를 받는다. 어둠 속에서 오르기 시작한 엘리베이터는 갑 자기 하강하고 다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탑승객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자이로드롭과 타워오브테러는 높이에서부터 갑작스러운 하강이라는 물리 적으로 같은 메커니즘으로 관객을 흥분시키는 놀이기구이다. 그러나, 타워 오브테러는 이 물리적 메커니즘에 이야기를 입혀서 관객을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관객의 흥분도를 증폭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한 다. 똑같은 메커니즘이 이야기를 통해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성취하도록 만 들고 있는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서커스는 서민들이 애호하는 행사였다. 까마득한 높이 에서 아슬아슬하게 재주를 넘는 사람의 모습을 조마조마 손에 땀을 쥐기 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사자나 코끼리,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마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재주를 부리면 환호했다. 그러다가 동물 학대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서커스는 점점 쇠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등장한 것이 ‘태양의 서커스(Cirque de Soleil)’였다.<그림 11> 이 서커스는 이전
그림 11 태양의 서커스(좌)와 프로레슬링(우)
의 서커스처럼 아슬아슬한 묘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아름다운 무대와 의 상, 분장 등 환상적인 시각미로 관객들에게 이전에 갖지 못했던 경험을 주 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연출가 Michel Laprise가 언급했듯 단순히 묘 기를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매우 예술적”이고 “캐릭터가 있는 보다 연극 적인 공연”5), 즉 이야기를 따라가며 더 몰입하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 다.
이야기의 힘이 작동한 또 하나의 예는 프로레슬링이다.<그림 11> 프로레 슬링이 레슬러들끼리 미리 짜고 하는 쇼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도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가 광적인 팬덤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레슬 러 하나하나에게 독특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캐릭터들 간의 관계성을 부여 하여 쇼 전체가 연속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팬들은 이 연속 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이 따르는 레슬러의 캐릭터에 몰입한다. 예전의 단순한 폭력과 기술의 레슬링과 비교하면, 거대한 피지컬을 가진 레슬러 간의 라이벌 의식과 부딪치는 권력 관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새롭고 몰입적인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상품을 소비자의 인상에 강하게 남기는 전략적 방법으 로서 이야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기능적인 특징을 단순 전 달하는 방식보다 스토리 내에 상품을 배치하거나 혹은 나아가 제품이 만 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인상에 더 강하게 남을 수 있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나 상품의 홍보 에 내러티브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위의 예들에서처럼 서사는 어디에나 있다는 Barthes(1975)의 언급이 상징 적인 의미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기억 속에 어떤 인상을 잡아 두거나, 마음을 건드려 변화시키거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이야기의 힘, 2011) 가장 효율적이고 간명한 방식이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널리 활용되는 것이다.
4.1.2 내러티브의 메커니즘
내러티브의 미학과 인터랙션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내러티브의 본
5) KBS 특파원 스페셜 “태양의 서커스, 신화의 비밀” 인터뷰
질적 속성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러티브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단계를 가진다고 주장된다. Chatman(2003)은 내러티브를 그것의 내용인
“이야기”와, 그것이 표현된 “담론”으로 구분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Bal(1999)은 사건의 연속인 “파블라(pabula)”, 특정 방법으로 제시된 파블 라인 “이야기”, 언어의 기호로 구성된 전체인 “텍스트”로 구분하기도 하였 다. 예를 들어, 미운오리새끼와 신데렐라는 본질적으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행복해진다는 같은 구조를 갖는 이야기이다[파블라]. 다만 본질 구조 는 주인공, 배경, 사건 등의 조합으로 미운오리새끼가 되거나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스토리]. 같은 신데렐라는 영화, 연극, 소설, 동화 등 다양한 방 식으로 표현되어 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텍 스트, 담론].
내러티브는 “일련의 사건(event)”(한일섭, 2009)이다. 연속되는 사건들이 모여 어떤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내러티브는 핵심적인 사건-핵 (nuclei), 중핵(kernels), 구성적 사건-과 보조적인 사건-촉매(catalyzer), 위성(satellites), 보충적 사건-로 이루어지게 된다(Abbott, 2010). 내러티 브의 중핵은 “서사적 논리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제거될 수 없”는 사건이 며, 위성은 “제거될 경우 미학적으로 빈약해질지라도 플롯의 논리를 혼란 시키지는 않”는 사건을 말한다(Chatman, 2003).
내러티브는 “사진처럼 완전히 ‘완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끼워 넣을 수 있는 행위나 의미 함축의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Chatman, 2003)”이다.
이런 선별적인 특성은 이야기를 덜 읽거나(underread), 더 읽게 (overread) 하는 것이 가능케 하며, “언급되지 않는 채 지나치는 틈새들 을 사건들과 특징들, 물질들로 메꿀(Abbott, 2010)” 수 있도록 한다. 우리 는 추론의 메커니즘을 동반하여 모든 세부 사건이 나열되지 않아도 전체 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문제를 겪지 않는다. 이야기가 역동성을 갖기 위 해서는, 심지어 반드시 불가피하게 누락된 부분이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Abbott, 2010; Wolfgang Iser 인용).
생략이나 순서의 도치와 같은 내러티브의 선별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해 될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개연적일 때이다. 사건과 사건이 유기적인 관계 를 가지고 “제시된 부분에서 다른 부분들로 나아가”(Chatman, 2003)기 때문이다.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왕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 왕비가 죽었다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두 사건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다고 여기고 그 인과 관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인과 관계에 의해 하나씩 삭제해 나가는 것이고, 결국 마지막 으로 남은 하나의 가능성이 어떤 필연으로 느껴질 때 비로소 이야기가 완 성된다. 이러한 개연성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내러티브는 “그럴듯한(plausible)” 것일 때 힘을 갖는다. 서사물을 “자연화 (naturalizing)”하여 “실제적인 것보다는 그럴듯한 것에 호소하는” 것은 내러티브의 핍진성의 전통이다. 핍진성은 우연히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본 질적으로 이상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요컨대 ‘현재의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인 것이다(Chatman, 2003). 어떤 준거에 의해 그렇게 여기 든지 간에, 사건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의 문을 품지 않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이야기의 핍진성이 발현될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우주에 나가보지 않았어도 우주는 이렇게 생겼고 우주선은 이렇게 동작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많은 SF의 내러티브가 전개될 수 있는 이유이다. 김연수(Kim, 2014)는 “소설 속의 세계가 긴밀하게 짜 여 있어서 현실과 무관하게 나름대로 독립적인 세계를 이루는 세계를 이 루는 성질”을 핍진성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성공적인 내러티브는 “종결의 결핍(lack of closure)”, “초조함과 호기심
… 서스펜스와 놀라움의 연속”에서 달성된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내러티브 는 “기대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기대를 저버리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거나, 궁금증을 유발하거나 유발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도록 유도 한다(Abbott, 2010).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기울이고 흥분을 느끼 는 것은 그 이야기의 다음을 기대하고 이야기는 그것을 배반하기 때문이 다[기대 층위].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스스 로 답변함으로써 이야기를 이끈다[질문 층위].
내러티브는 추상에서 힘을 잃고 구체성에서 힘을 얻는다(Prince, 2015).
일반적인 사건이 아니라 특별한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인상을 확보한다.
사건들의 특수성(particularity), 별개성(discreteness), 특정성 (specificity)에서 이야기는 차별화되고 서사성(narrativity)을 얻는다. 밋밋 하고 평범한 사건이 연속되는 이야기보다는 그 안에 특별하고 인상적이며
“자극적인(McKee, 2002)” 사건이 있으므로 우리는 더 집중하고 인상에 남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