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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맞춤브랜드화를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

18세기경부터 안성유기는 안성맞춤이라는 명성을 확고히 했으나 이를 영 업 전략에 활용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산 사기에 밀려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안성 유기장들의 활동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시기 유기점을 운영하고 있던 유기장들은 안성유기의 명성에 기대어 자신 의 상품 가치를 높이고자 전통담론을 활용했다. 이러한 전략이 가장 먼저 확인되는 것은 변문옥의 안신유기상점이다. 이후 1928년 설립된 안성유기 제조주식회사에서는 장구하게 이어져온 우수한 안성유기의 전통을 이어가 고 있음을 “안성맞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보다 더 적극적으로 부각 시켜 당사 상품에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안성 유기제조주식회사는 식민지 하 외래문물에 밀려 유기뿐만 아니라 토착 산

업 전체가 그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된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조선의 산업 과 조선인의 삶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된 조선물산장려운동과 발 맞추어 안성유기의 민족적 전통성뿐만 아니라 품질의 우수성까지 담보해 줄 수 있는 용어로 “안성맞춤”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광고문 첫머리에는 우선 ‘안성맛침’의 유래를 설명하며 안성유기가 쌓 아온 전통을 집약하는 용어로 이를 선택하였고137), 안성유기는 ‘안성맞 춤유기’로 명명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안성유기의 전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로서 ‘안성 맞춤’의 활용은 해방 후 급격히 늘어난 안성의 유기업계로 이어졌다. 해 방의 기쁨에 고조되어 민족문화와 전통이 강조되던 시대적 조류 속에 전 국적으로 유기점들이 확산되어 호황을 누리게 되자 안성의 유기점 점주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안성맞춤’의 명성을 자 신의 상품에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윤기병의 안성유기제작소를 비롯한 안성 지역 내 유기점이나 안성출신 유기장이 운영하는 타 지역 유 기점의 광고에도 “안성맟침 안성유긔” ․ “안성맞츰유기” 등 안성유기 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에는 안성맞춤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들 찍었다. 그거(안성맞춤) 안 찍으면 팔리지가 않는다” - D씨

“안성맞춤은 다 썼다” - 쌍둥이 형제

“늘 좋거나 나쁘거나 안성사람은 안성마춤이라고 불렀으니까” - P씨

아울러 안성유기장들의 제작품에는 “안성맟임 尹”․“안성맞침 光”․

“안성맟임 廉”ㆍ“안성맞침 白城(?)鍮器 白”ㆍ“안성맛침 正”등 안성 맞춤과 자신의 상표나 상호를 함께 명시하여 안성맞춤은 안성지역에서 생 산된 유기임을 나타내는 지역제품 브랜드가 되었고, 각 제작점의 상표나 상호는 제작자를 구분해주는 정도의 역할만을 할 뿐이었다.

137) 『동아일보』 1928.09.21.; 09.28; 10.12; 10․18; 10.26; 11.08; 11․15; 11․20 광고문 등 참조

안성유기제작소

“안성맟임

정광사유기제작소

“안성맛침 正

광안사유기제작소

“안성맞침 光

염창석 유기점

“안성맟임 廉 [표 4-4] 상품에 새긴 각 유기점의 상표

“안성맛침” “안성맛침유기”

[표 4-5] 안성맞춤 유기 명문

그리고 상품 뒷면에 표시하는 명문에 상호나 상표 등은 넣지 않고 “안 성맛침” ․ “안성맛침 유기”라고만 새기기도 해 안성유기임만 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안성맞춤이라 길게 쓰지 않고 “마침유기 광○유기점 품질보증”138)이라 하여 안성맞춤을 줄여서 맞춤만 쓰기도 했다.

아울러 외국인들에게 판매할 목적이거나 수출품의 경우에는 여기에

‘KOREA’를 더 넣어 “안성맞임 KOREA 尹” 이나 “안성맞침 KOREA 信”으로 명문을 새기거나 상표나 상호는 없이 “안성맞임 KOREA”만 새기기도 했다.

138)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운현궁 생활유물’ 갱기 명문 참조. 유기장 K씨에 의하면 이 유기 는 김경만이 운영하던 “光”유기점이라 하나(서울역사박물관 2004: 13~14) 『안성대관』(김 태영 1950: 57~58)에 의하면 김경만이 운영하던 유기점은 “광안사유기제작소”이며, 이 유기점 상품으로 추정된다.

“안성맞임 尹 KOREA” “안성맞침 KOREA 信” “안성맞임 KOREA”

[표 4-6] 수출용 유기의 안성맞춤 KOREA 상표

이렇게 ‘안성맞춤’은 다양한 형태로 표기139)되었지만 안성유기장들에 게 있어 자신의 상품에 정통성을 부여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한껏 올릴 수 있는 기재로 사용되었다.

안성맞춤의 명성을 통해 자신의 상품 가치를 고취하고자 하는 전략은 서 울 등 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안성출신 유기장들에게도 나타난다. 종 로에서 안성유기공업사와 안성유기상회를 운영하던 유흥렬은 운현궁 생활 유물인 갱기를 비롯하여 자신의 상품에“劉票 안성맟임”, “劉票 안성맞 춤 保証品”140), “劉票 안성맛침 안성유기商會 保証品”(안성맞춤박물관 소장 대접 명문)이라는 명문을 새겼다. 그는 1949년 2월 19일자 경향신문 의 광고문을 통해 1924년 영창유기상점에서 사용하던 문구인“鍮器界의 覇王”을 사용하며, 바로 아래에“안성맞츰유기”라 하여 안성맞춤유기가 유기계의 패왕임을 나타내주고, 상호에 “안성유기”를 집어넣음으로 이 를 자신의 유기점으로 끌어온다. 더불어 자신의 상표는 “劉票·안성맞 춤·保証品·안성유기공업사”라 그릇 뒷면에 주입되어 있으니 이 상표를 보고 구입할 것을 당부한다.

139) [표 4-4] ~ [표 4-6]까지의 명문유기는 안성맞춤박물관 소장품이다.

140)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의 이 기명에는 “단기 四二八一年 十月 제조”이라 새겨져 있어 유 흥렬의 활동시기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림 4-4]『경향신문』1949.02.19.

안성유기공업사 광고문

[그림 4-3] “劉票·안성 맛침 ·안성유기商會․保証 品” 명문(안성맞춤박물 관 소장품)

“안성맟침 종로만물 종로2가 14”

“안성 품질보증 종로 萬 만물 종로二가 14”

[표 4-7] 종로만물 안성맞춤 유기

(안성맞춤박물관 소장품) 안성유기공업사와 같은 주소인 종로 2가 14에 종로만물이라는 상호를 가 진 상점의 그릇에도 “안성맟침 종로만물”, “안성 품질보증 萬 종로만 물”(안성맞춤박물관 소장 대접 명문) 등 “안성맞춤”이라는 용어를 사 용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이는 안성유기공업사가 후에 종로만물이 되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당시 안성출신 유기장이나 유기점 점주 들은 “안성맞춤” 이나 “안성 품질보증” 등 안성맞춤 유기와의 연관성 을 드러내어 자신의 상품에 장구한 전통과 품질의 우수성을 나타내려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기 밑면 “안성·보증품·평택형제 상회”명문

[표 4-8]

평택형제상회 명문유기 (안성맞춤박물관 소장품) 이러한 안성맞춤의 명성에 기대고자 하는 유기장들의 노력은 안성뿐만 아 니라 안성과의 연관성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품의 명문에도 등장했다.

“안성맞춤 안성유기”를 연상케 하는 “특상품 안성유기점 정읍시장”등 의 문구를 새기기도 하고, “안성 보증품 평택형제상회”라 하여 안성의 보증품임을 나타내기도 해 안성유기의 명성을 자신의 상품에 부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실제 안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 는 상품도 있었을 것이다.141)

“다른 데서도 안성맞춤 많이 찍었다. 천안서도 안성맞춤 찍었다. 안성맞춤 써 있어도 안성유기 아닌 거 많다.” - 유기장 D씨

또 “水原 맛침”, “大光 맛춤”, “朴○○ 맛침” 등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와 맞춤을 결합하여 안성맞춤의 명성을 그 상품에 부가 하 고자 하는 시도들도 보인다. 유기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해방 직후 장인 들의 이러한 행보는 명품 취급을 받았던 안성유기에서부터 각지의 조악품 에 이르기까지 “안성맞춤”이라는 명문을 새기는 유행을 조성하였다 (『동아일보』1972.11.11일자 기사).

141) 평택형제상회의 유기에는 중앙에 “안성”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안성에도 형제유 기가 있었던 만큼 안성 유기점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水原맛침’ ‘大光맛춤’ ‘朴○○ 맛침’

[표 4-9] 각지의 맞춤 유기 명문(안성맞춤박물관 소장품)

이 시기 범람했던 ‘안성맞춤’으로 인해 안성맞춤이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1928년 안성유기제조주식회사에서 시작된 안성맞춤의 브랜드화 전략은 해방 후 안성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 기 전체에 사용되어 이 지역 유기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안성출신으 로 타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기장이나 타 지역의 유기장들까지 안성맞춤을 자신의 브랜드화 하여 독점적 지역브랜드의 지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1980년대 초 K씨의 유기점에서는 안성맞춤을 자신의 상표로 하고자 특 허청에 상표등록을 추진하여 “안성마춤”을 상표로 등록하게 되었다. 그러 나 ‘안성’이라는 지역명이 들어가는 까닭에 타 지역에서는 쓸 수 없지만, 안성지역 내에서는 K씨 유기점 뿐 만 아니라 누구라도 쓸 수 있어 이후 명실공히 안성지역 유기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다. 해방 후 안성지역 생산 품이면 어떤 것에나 사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타 도시의 안성 출신 장인 들 및 안성과 무관한 유기장인들 마저도 사용할 수 있었던 안성맞춤 브랜 드는 특허를 통해 안성지역에서 생산되는 유기의 독점적 브랜드가 되었 다.

따라서 안성지역의 유기점 점주들은 누구나 안성맞춤을 자신의 상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에는 “안성공예”라는 상호를 사용하던 유 기점이 “안성맞춤전통유기”가 되었으며, 안성맞춤을 상호나 상품홍보에 사용하기 위해 안성으로 이전해 오는 유기점도 생겼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안성맞춤은 이제 유기판매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상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