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중심산업으로 했던 조선시대 생산력 지표는 크게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인구, 생산물이 발생되던 토지의 두 가지 측면에서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인구적 측면에서 안성에 장이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이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1454년 완성된 『세종실록 世宗實錄』의 부록인『세종실록지리지 世宗實 錄地理志』에 의하면, 당시 경기도는 1목(廣州牧) 6도호부(都護府) 32군현 (郡縣) 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호구(戶口)는 호수(戶數)가 총 20,882호, 인 구가 50,352명이었다. 안성의 호구는 호수가 424호에 인구가 1,763명으로 호당 인구수가 4명가량 되며, 호는 경기도 평균 호수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인구는 평균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 당시 안성 인근 주 요지역의 호구는 다음과 같다.
평택현 179호 704명 철원도호부 351호 770명 직산현 553호 2,111명 부평도호부 429호 954명 천안군 506호 2,385명 공주목 2,167호 10,049명
[표 2-1]『세종실록지리지』의 안성인근지역 호구
군 현 면(面)27) 리(里) 호(戶) 인 구
계 남 여
안 성 25 84 4,589 17,028 8,173 8,855 전 주 30 618 20,947 72,505 34,388 38,117 은 진 14 56 5,062 19,389 9,650 9,739
이 자료를 토대로 볼 때 일정정도 수치상의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안성이 인구적 측면에서 장이 성립할 정도의 대단한 이점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기 이후 안성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16세기 말 ~ 17세기 경 안성의 인구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찾기 어렵다.
읍치를 중심으로 읍내에는 많은 지역에 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배 후 소비층의 확보가 용이하여 장이 성립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 으로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호구가 많아 번성한 것은 장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08년 『만기요람』에 의하면 당시 장시는 경기도에 102곳, 충청도에 157곳, 강원도에 68곳, 황해도 82곳, 전라도에 214곳, 경상도에 276곳, 평안도에 134곳, 함경도에 28곳이 있었다. 이 중 큰 장으로 경기의 광주 사평장(沙坪場), 송파장(松坡場), 안성 읍내장, 교하 공릉장(恭陵場), 은진 강경장(江景場), 직산 덕평장(稷山 德坪場), 전주 읍내장, 남원 읍내 장, 평창 대화장(大化場), 황해도 토산 비천장(兎山 飛川場), 황주 읍내장, 봉산 은파장(鳳山 銀波場), 창원 마산포장(馬山浦場), 평안도 박천 진두장 (津頭場), 함경도 덕원 원산장(德源 元山場)을 들고 있다. 1789년『호구총 수』의 기록을 통해 이들 장이 있는 지역의 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27)『호구총수 戶口總數』에는 면(面)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으로 황해도와 평안도를 비롯하여 일부지역에 방(坊)을 사용하였으며, 함경도 지역에는 사(社)를 사용하였다.
황 주 18(坊) 174 10,768 54,061 27,127 26,924 광 주 23 131 15,066 50,508 24,402 26,106 교 하 8 28 2,474 7,997 5,871 4,126 직 산 12 115 3,345 14,876 6,991 7,885 남 원 47(坊) 411 11,157 43,411 23,489 19,122 평 창 5 25 1,434 4,554 2,965 1,589 토 산 9 34 1,183 8,760 4,013 4,023 봉 산 16(坊) 47 8,789 34,314 20,542 12,782 창 원 5 106 7,364 29,452 12,216 813 박 천 5 103 4,972 17,061 8,089 8,972 덕 원 5(社) 65 2,138 9,848 5,317 4,531
[표 2-2] 1789년(정조 13년) 기준 19세기 초 대장(大場) 소재지의 호구
이 중 호구가 비교적 많은 지역은 전주, 황주, 광주, 남원 등이며, 이 지 역의 장은 광주를 제외하고 모두 읍내장이다. 이들 경우를 대도시 행정중 심지로 충분한 소비층을 확보하여 대장으로 발달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 이다. 이외 안성이 읍내장이나 호구가 앞 서 언급한 지역의 수와 비견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또 교하, 평창, 토산, 덕원 등은 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장은 대장에 속하는 등 호구 수만을 가지고 대장의 요건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안성의 경우 인구규모가 안성 한 도시만을 놓고 배후 소비층의 확보로 인한 장의 발달을 논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는 인구적 요인만으로 안성장이 발달했다고 볼 수 없으며, 장의 발달과 안성의 인구적 측면은 안성만이 아닌 안성장을 이용하는 인근지역의 인구까지 고려할 때 설명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호구와 함께 생산력의 발달은 장이 형성‧발달될 수 있는 또 다른 요건이 된다. 생산력 지표는 농촌의 경우 토지와 그 생산물이 대표적일 것이다.
안성의 경우 읍내 외 지역은 대부분 농촌지역이었기에 농촌의 보편적인
군 현 면수 1842년~43년* 1871년** 1893년***
양 주 34 10,162결 41부 1속 3,032결 39부 여 주 13 4,793결 82부 3속 2,302결 52부 1속 파 주 11 2,522결 65부 9속 1,265결 91부 3속
교 하 8 948결 76부 5속
남 양 13 2,703결 88부 9속 2,068결 88부 2속
장 단 20 2,457결 92부 1속
이 천 14 3,051결 38부 2,002결 96부 1속 음 죽 8 2,604결 70부 2속 2,504결 70부 2속 1,067결 98부 7속 죽 산 17 2,273결 97부 4속 2,273결 97부 4속 1,691결 84부 3속
통 진 11 2,183결 63부 7속
교 동 4 839결 91부 7속
인 천 10 2,282결 5부 1속 2,282결 5부 1속 1,387결 11부 3속
부 평 15 1,624결 84부 9속
풍 덕 8 1,307결 95부 4속
생산력 기준인 토지 생산력의 측면에서 장이 발달할 수 있는 요인이 있었 는지 다음으로 검토해 보겠다.
안성장이 한창 발달하였던 17~8세기의 토지 생산력 지표를 비교할 수 있 는 가까운 시기의 전결(田結) 자료들을 시대별로 조망하여 토지를 통한 당시 안성의 생산력 지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자료의 가장 이른 시기 는 1842년~43년 작성된 『경기지 京畿誌』가 있다. 이후 1871년 자료인
『경기읍지 京畿邑誌』 및 1893년 자료인 『계사실총 癸巳實總』이 있으 며, 이 자료들을 통해 본 경기도 각 군현의 토지 생산력 지표는 다음과 같다.28)
28) *『경기지』(1842년 ~ 1843년) 34읍, **『경기읍지』(1871년), *** 『개국 502~3년 경기각 읍신정사례 京畿各邑新定事例』 ‘계사실총’ 참조
안 성 19 2,623결 27부 9속 2,623결 27부 9속 2,022결 30부 8속
김 포 8 1,002결 97부 2속
영 평 5 353결 66부 8속
양 근 10 685결
4속
마 전 5 478결 7부
3속
적 성 4 445결 25부 9속
안 산 6 807결 9부 9속
삭 령 7 1,270결 49부 5속
고 양 8 1,263결 45부 8속
진 위 13 2,493결 92부 3속 2,493결 92부 3속 1,007결 80부 1속
시 흥 6 571결 88부 6속
용 인 16 4,719결 31부 9속 4,719결 31부 9속 2,035결 23부 2속
과 천 14 715결 42부 3속
양 지 11 1,010결 33부 8속 556결 66부 7속
연 천 5 639결 46부 9속
지 평 7 476결 98부
양 천 5 505결 34부
포 천 10 634결 11부 2속
양 성 14 3,057결 19부 6속 1,588결 95부 2속
영 종 4 190결 19부 1속
대부도 13 11결 95부 4속
덕적진 13 41결 43부
[표 2-3] 1800년대 경기도 지역 전결 수
1842년~43년 통계와 1871년 통계가 같은 지역이 많은 것을 통해 볼 때 1871년 『경기읍지』의 경우 당시 조사 자료가 아닌 1842년 통계자료를 그대로 사용한 지역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를 제외하고 보면 1842년경『경기지』의 통계에서 안성은 평균적인 전결수를 갖고 있는 것
으로 볼 수 있어 토지생산성에서 특별한 면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약 50년 후인 1893년 자료에 안성은 타 지역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토지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장이 발달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근거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월등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안 성 자체의 인구나 토지 생산성 등 생산력 지표는 안성장의 발달에 있어 주요한 요소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