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되었듯이 1950년대 말 이후 전통적인 유기 식기나 제기는 일 상에서 폐기되는 과정을 겪으며, 그 상품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 다. 이에 따라 유기 점주를 비롯한 장인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장인 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그 지속을 위해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했 다. 이러한 대안 모색 과정은 대부분의 안성 유기점들이 문을 닫게 되는 1960년대부터 정권에 의해 추진된 관광 포클로리즘과 밀접히 연관되어 진
행되었다.
1961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지상주의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 았고(朴正熙 1963: 244~292), 이러한 정책 속에 근대화․산업화는 민족경제 건설을 위한 선결 과제로 등장하였다. 아울러 식민지 근대화 과정을 겪은 대부분의 비서구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근대화는 서구화와 동일 선상에서 이해되었다. 이에 따라 현대사회에서 전통이라 규정되는 대부분의 토착 생활방식과 문물들은 근대화를 위해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것으로 규정되었으며, 전근대와 근대는 극명한 대립구도 하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생활전반에 걸친 근대화 과정 속에 일상에서 거의 폐기되 어 가고 있던 유기가 상품으로서의 생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근대 화 된 상품으로 거듭나야 했고, 근대와 유기의 이러한 만남은 정권에 의 해 추진된 경제건설을 위한 관광정책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관광은 “선진 개발국들”의 저개발국가에 대한 전세계적 부의
“재분배 메커니즘”으로 관광발달은 저개발국의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Marie-Francoise Lanfant 1980: 19; 전경수 1994: 5 재인 용)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박정희 정권 하의 관광산업은 수출입국을 지향 한 경제정책에 따른 외화획득을 위한 황금산업으로 인식되었다.
“觀光産業을 外貨稼得면에서 보면 일반 輸出産業의 58%에 비해 92%라는 높은 稼得率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輸出立國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 는 국제수지개선을 위한 무형수출산업으로 크게 脚光을 받고 있다.”
(『매일경제』1972.11.09.일자 기사)
박정희 정권의 관광진흥정책은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 6월 정부는 관광을 위한 외자도입 및 차관을 적극 권장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법령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一일 하오 김(金光玉) 교통부장관은 앞으로도 관광사업을 적극 진흥하겠다 는 요지로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① 국내 외국인의 관광여행을 적극장려하며 관광여행을 하고자하는 외국 인에게는 만반의 편의를 제공한다.
② 구두선에만 그쳤던 공문화 된 출입구 절차의 간소화를 효과적으로 이 행한다.
③ 주한「유엔」군 휴가 장병의 국내관광여행과 휴식ㆍ오락에 불편이 없도 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④ 관광사업진흥기본자금을 설정하여 관광‘호텔’을 비롯한 제반 관광시설 을 민간사입으로 최단 시일 내에 완비한다.
⑤ 관광사업진흥법 및 기타 여러 가지 법령을 최단 시일 내에 정비한다.
⑥ 관광사업을 위한 외자도입과 차관을 적극 권장한다.
(『경향신문』1961.06.02. 기사)
이에 따라 같은 해 8월 22일 「관광사업진흥법」이 제정ㆍ시행되었다.
이 법에는 여행알선업자, 관광호텔업자, 관광시설업자, 통역안내업자, 토 산품153)판매업자 및 여객 운송업자 등 등록했거나 등록 예정에 있는 관광 업자에게는 국고로 경비의 일부를 보조거나 장기 저리로 융자해 주고, 관 광사업을 목적으로 시설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직․간접 제세를 면제해 주는 내용을 규정하여 관광 진흥을 꾀했다. 아울러 1962년에는 외국인 관 광객 및 주한 유엔군을 상대로 관광사업을 벌여 연간 1억불의 외화를 획 득한다는 목표로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를 설립하였다(『경향신 문』1962.04.04. 기사). 이러한 관광 진흥의 분위기 속에서 1960년대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을 위해 경복궁 수정전에는 한국 민속관이 개관하게 되었다.154)
정부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와 같은 관광진흥정책은 1965년 태평양지
153) “토산품”은 조선시대 읍지 등에는 “토산” 이라 하여 농수산물 중심으로 각 지역의 특 산물을 언급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각 지역의 특산물•조선 물산•관광 상품 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관광상품으로서 토산품의 의미는 해방 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말 전통문화상품 등의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 지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전통문화상품·관광상 품, 국산품, 지역 특산품 등의 의미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154) 한국민속관은 1946년 개관 후 6.25 전쟁으로 국립박물관에 흡수되었던 국립민족박물 관의 후속으로(『동아일보』 2009.04.16. 기사) 1961년 문화재관리국 문화재보존위원회 3 분과에서 민속박물관 설립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 이래 문화재전문위원이었던 장주근을 중심으로 1964년부터 각 지역의 민속품을 수집하여 1966년 10월 개관하였다.(張籌根 1968)
구관광협의회 제14차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됨을 계기로 더욱 활성화되었 다. 당시 신문지상에는 향후 한국광광의 방향은 문화재관리국의 민속촌 건립계획이나 어느 미국인이 언급한 “南大門을 저렇게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大門을 열어 사람이 다니게 하고 그 앞에 李朝時代의 服裝을 한 守門將을 두라”고 한 충고 등이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경향신문』1965.3.24.일자 기사). 현재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관광 의 전형적인 모습이 정책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제3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포함되었고, ‘교통부 (交通部)’를 시행처로 1972년 “관광진흥종합개발계획(觀光振興綜合開發 計劃)”이 수립되었다. 이에 따라 1972년 ~ 1976년까지 “관광 부문 4백 88억원, 항공부문 3백20억원 등 도합 8백8억원의 내외자를 투자, 연간 1 백만명의 외래관광객을 유치하여 2억달러를 벌어들인다”는 구체적 계획 이 제시되었다. 이렇게 정부는 그동안 “소극적이고 부분적으로 추진되어 온 관광진흥정책을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으로 전환하여 전략산업으 로서의 기틀을 구축”하고자 하였다(『매일경제』1972. 11.09.일자 기사).
관광진흥을 위한 이러한 적극적 정책방향은 “소외된 근대적 관광객”이 근대화과정에서 잃어버린 고유성(authenticity)을 자신이 살고 있는 근대적 시간과 장소가 아닌 아직 근대성의 침해를 받지 않은 오염되지 않고 원시 적이며 자연적인 다른 곳에서 찾고 싶어 한다는 낭만주의적 전제에 기반 한다(MacCannell 1976: 160; Erik Cohen 1988: 374~375). 서구 중산층을 주 요 방문객으로 상정하고(넬슨 그레이번 1986/1983: 36), 그들의 관광 경향 을 겨냥한 이와 같은 정책방향은 필연적으로 그 편의를 위한 관광개발을 수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전통적 형태들을 급속한 파괴로 내모 는 졸속한 관광을 위한 건립”이 시작되었다(Bausinger 1990/1961: 135). 그 리고 이 과정에서 주요 방문객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오염되지 않은 환경‧
풍경․토착 문화는 2차 가공된 것으로 변화되었으며,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상업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관광지 지역민들의 소외와 불만 이 분출되는(Bausinger 1990/1961: 135) 모저가 우려했던 포클로리즘의 부 정적 측면이(이상현 2010: 91~110) 노정된다. 아울러 인멸되었거나 인멸위
기에 있던 전자본주의 사회의 전통과 민속은 현대적 상품으로 “환생”하 여 국가와 관광추진세력 및 지역주민의 수입원천이 되었다(Dan Ben-Amos 1990: ix).
이러한 전통과 민속의 현대적 환생의 하나로 등장한 것은 여행객들의 관 광기념품(souvenirs)을 비롯한 전근대사회 일상생활용품의 전통문화상품화 이다. 196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유기의 일상생활용품으로서의 상품가치가 현저히 저하된 후 유기점주 및 장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일상에서 사멸한 전통과 민속의 상품화였다. 이러한 선택으로 조선후기 일상생활용 상품으로 탄생한 유기는 관광객들에게 관광지의 고유성을 회 상시켜 줄 전통문화상품이 되었고, 한국문화의 표상으로 해외수출의 길에 도 오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기 점주들과 장인들은 장인이자 상인이었 던 자신의 정체성에 전통문화상품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전통 계승자로서 의 정체성을 더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관광사업자이자 관광 상품 생산자 로서의 정체성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장인과 그 생산물의 변화된 정체성에 의해 유기가 다시 생활기물 로 돌아오기까지 안성맞춤유기는 외국인기호품, 관광기념품, 한국 민예품, 모조 골동품 등 전통문화상품으로 그 정체성을 변화시켜갔으며, 장인들 역시 그 생산자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