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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망의 발달과 안성장의 성립

으로 볼 수 있어 토지생산성에서 특별한 면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약 50년 후인 1893년 자료에 안성은 타 지역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토지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장이 발달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근거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월등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안 성 자체의 인구나 토지 생산성 등 생산력 지표는 안성장의 발달에 있어 주요한 요소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도와 지방간의 행정․재정적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했다.(崔永俊, 2004:

146~169)

1770년(영조46년) 간행된 신경준(申景濬)의 『도로고 道路考』에는 팔도 육대로가 제시된다. 제 1로는 한양에서 서북방으로 고양(高陽)을 거쳐 의 주(義州)에 이르는 의주로(義州路)이고, 제2로는 동북방으로 양주(楊州), 철 원(鐵原), 함흥(咸興), 회령(會寧) 등을 거쳐 경흥(慶興)에 이르는 경흥로(慶 興路), 제3로는 한양에서 동쪽으로 양근(楊根), 원주, 춘천, 강릉 등을 거쳐 평해에 이르는 평해로(平海路)이다. 제4로는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동래 로(東萊路)인데, 용인, 양지, 양성, 안성, 죽산, 충주, 진천, 단양, 제천, 문 경, 대구, 밀양 등을 거친다. 제5로는 제주로로 과천, 수원, 진위, 천안, 은 진, 평택, 신창, 전주, 남원, 광주, 화순을 거쳐 배로 제주에 이른다. 제 6 로는 김포, 인천을 거쳐 강화에 이르는 강화로(江華路)다. 안성은 이 대로 중 제4 동래로로 한양에서 경상도 지역으로 연결되는 대로상에 있으며, 직곡(直谷)에서 용인땅 남쪽으로 천동점(泉洞店) 20리 → 장수리(長水里) 20리 → 양성현 10리 → 안성군 20리의 경로로 한양과 대로로 연결된다.

이후 김정호가 19세기 중반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동여도지 東輿圖 志』「정리고 程里考」에는 봉화대로와 수원별로를 추가하여 전국 도로망 을 10대로와 제주로 총 11로로 분류하고 있다.31) 여기서 안성은 제4 동래 대로와 제8 해남대로와 관련이 된다. 동래대로는 서빙고 나루(西氷庫津)를 지나 판교점(板橋店)을 거쳐 용인, 양지를 지나 죽산의 좌찬역(佐贊驛). 백 암(白岩), 진촌(陣村), 비석거리(碑立街), 광암(廣岩)으로 해서 경상도 주요

31) * 1대로 의주대로 : 경기도 6읍, 황해도 23읍, 평안도 42읍 * 2대로 경흥대로 : 경기도 6읍, 강원도 10읍, 함경도 25읍 * 3대로 평해대로 : 경기도 3읍, 강원도 16읍

* 4대로 동래대로 : 경기도 5읍, 충청도 5읍, 경상도 58읍 * 5대로 봉화대로 : 경기도 4읍, 충청도 5읍, 경상도 58읍 * 6대로 강화대로 : 경기도 7읍

* 7대로 수원별로 : 경기도 2읍

* 8대로 해남대로 : 경기도 4읍, 충청도 26읍, 전라도 35읍 * 9대로 충청수영대로 : 충청도 18읍

* 10대로 통영별로 : 전라도 17읍, 경상도 8읍 * 제주로 : 8대로의 다음

도시로 연결된다. 이 길은 『도로고 道路考』에서와 같이 용인 직곡(直谷) 에서 천동점(泉洞店)을 거쳐 장수어리(長水於里)를 지나 양성으로 해서 안 성에 이를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이 외에도 동래대로로 직곡에서 죽산으로 향하는 길로 조금 더 내려와 용인 김령역(金岺驛)에서 백암(白 岩) 가는 지름길이 안성으로 바로 연결되기도 하고, 김령역에서 양지(陽 智)로 가서 좌찬역으로 가기 전에 안성으로 연결되는 직로도 있다.

제8 해남대로는 한양에서 수원을 거쳐 진위를 지나 갈원(葛院), 양성 땅 인 가천역(加川驛)과 소사점(素沙店), 아교(牙橋), 홍경비(弘慶碑), 성환역을 지나 천안, 여산, 삼례, 전주까지 직로로 연결되고, 전주에서 남쪽으로 갈 라져 전라도 주요도시로 연결된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이 길은 진위에 서 양성을 거쳐 안성으로 바로 연결되거나 가천역을 거쳐 양성, 안성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조선후기 안성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통하는 해남로와 동래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었으며, 충청도와 연접해 그야말로 삼남지방 의 물산이 모였다 서울로 가는 요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성의 도로망은 조선의 교통체계가 고려의 것을 계승하고 있는 것과 같이 고려시대 이미 어느 정도 갖추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사』권82 지(志) 권제36 “참역(站驛)”조항에 의하면 광주도(廣州道) 소속 15개 역에 당시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죽산의 분행역(分行驛)과 좌찬역(佐贊驛)이 제시되어 있으며, 용인의 김령역(金領 驛)을 거쳐 양재를 통해 북쪽으로 연결되고 있다.32) 또 충청주도 소속의 34개 역에는 양성 가천역(嘉川驛)이 있어 남으로 천안 등 충청도 주요도 시와 연결되며, 북으로는 수원과 연결된다.33)

이렇게 고려시대 형성된 도로를 중심으로 한 역 체계는 조선 초기에도 지속되었다. 1454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 世宗實錄地理志』(朝鮮總督

32) 「廣州道掌十五. 德豐·慶安·長嘉·安業·南山【廣州】, 良梓【果州】, 金領【龍駒】, 佐贊·分行

【竹州】, 五行·安利【利川】, 無極【陰竹】, 遙安【陰城】, 丹月·安富【槐州】」

33) 「忠淸州道掌三十四. 同和·長足·菁好【水州】, 嘉川【陽城】, 栗峯·雙樹·猪山·長池【淸州】, 長 楊·堆粮【鎭州】, 燕山驛·金沙【燕歧】, 蒲谷【全義】, 成歡【稷山】, 新恩【天安】, 金蹄【豐歲】, 長世【牙州】, 昌德【新昌】, 理興【溫水】, 日興【禮山】, 廣庭·日新【公州】, 坦平【公州】, 銀山

【扶餘】, 維鳩【新豐】, 楡楊【定山】, 汲泉【伊山】, 洪州驛·光世【大興】, 金井【靑陽】, 得熊【余 美】, 夢熊【貞海】, 靈楡【嘉林】, 非熊【鴻山】」

府中樞院編 1937 :30~60)에 의하면 안성에 강부역, 양성에 가천역, 죽산에 분행과 좌찬역, 용인에 김령역과 구흥역 등이 제시되어 있어 고려시대 역 체계와 대동소이하다.

군 현 명 사방경계(四境)

죽 산 현 분행역(分行驛) 좌찬역(佐贊驛)

동쪽 : 양지16리, 남쪽 : 진천21리 서쪽 : 안성17리, 북쪽 : 양지36리 안 성 군 강부역(康富驛) 동쪽 : 죽산13리, 남쪽 : 직산24리 서쪽 : 양성13리, 북쪽 : 양지12리 양 성 현 가천역(加川驛) 동쪽 : 안성9리, 남쪽 : 직산30리

서쪽 : 진위11리, 북쪽 : 용인10리 용 인 현 구흥역(駒興驛)

김령역(金岺驛)

동쪽 : 양지25리, 남쪽 : 양성50리 서쪽 : 수원13리, 북쪽 : 광주15리 [표 2-4] 『세종실록지리지』의 역과 사방경계

이후 1530년 간행된『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제시된 안 성과 인근지역의 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안성에 는 중앙에 강부역이 있고 동쪽 10리 경 죽산방면으로 광실원이 있어 안성 과 경계지역에 있던 죽산의 장항원과 연결되었고, 이는 다시 동쪽으로 태 평원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음죽현의 유춘역(留春驛)과 장해원(長海院)을 거쳐 동쪽으로 강원도 지역까지 이르게 된다. 또 군(郡) 서쪽 5리 지점에 대비원이 있어 전라도로 향하는 해남대로 상의 양성 소사(素沙)지역 인근 소초원과 도로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동서로 이어진 안성의 역 원들을 통해 서해에서 죽산을 지나 동부지역까지 연결된 조선후기 안성시 장길(安城市路)로 불리던 안성의 동서로 역시 16세기 초에는 갖추어져 있 었음을 알 수 있다(李荇 等 권8; 권10; 권16; 권19).

군현명 역 원 사 방 경 계 안성군

강부역(康富驛): 동쪽5리 광실원(光實院): 동쪽10리 대비원(大悲院): 서쪽5리

동쪽: 죽산현경계16리 남쪽: 직산현경계25리 서쪽: 양성현경계17리 북쪽: 양지현경계89리 서울: 1백52리

죽산현

분행역(分行驛): 현 북10리 좌찬역(佐贊驛): 현 북50리 태평원(太平院): 현 동 5리 통리원(通梨院): 현 남20리 장항원(獐項院): 현 서20리 이원(梨院) : 현 서북15리

동쪽: 음죽현경계22리 남쪽: 진천현경계26리 서쪽: 안성군경계23리 북쪽: 양지현경계49리 서울: 1백70리

양성현

가천역(加川驛): 현 서15리 선 원(禪 院): 현 동 5리 소초원(所草院): 현 남 30리

동쪽: 안성군경계 3리 남쪽: 직산현경계27리 서쪽: 진위현경계19리 북쪽: 용인현경계15리 서울: 1백 12리

진위현

장호원(長好院): 현 남 2리 이방원 : 현 북 10리 백형원 : 현 남 10리 갈원(葛院): 현 남 20리

동쪽: 양성현경계13리 남쪽: 직산현경계37리 서쪽: 수원부경계12리 북쪽: 용인현경계33리 서울: 1백18리

양지현 승보원(承寶院): 현 남 40리 (구 酸梨院)

동쪽: 이천부경계12리

남쪽: 죽산현경계47리 안성군경계81리 서쪽: 용인현경계17리 북쪽: 광주경계40리 서울: 1백11리

용인현

구흥역(駒興驛): 현 남 5리 김령역(金岺驛): 현 동 30리 보시원(普施院): 현 서 10리 홍화원(弘化院): 현 남 20리 김령원(金岺院): 김령역 3리

동쪽: 양지현경계24리 남쪽: 양성현경계45리 서쪽: 수원부경계16리 북쪽: 광주경계15리 서울: 65리

음죽현

유춘역(留春驛): 현 동 5리 무극역(無極驛): 현 남 30리 장해원(長海院): 현 동 13리

동쪽: 여주경계 16리 남쪽: 충주경계15리 서쪽: 죽산현경계26리 북쪽: 이천부경계29리 서울: 1백95리

이천 도호부

오천역(吾川驛): 부 서 22리 아천역(阿川驛): 부 북 20리 잉읍원(仍邑院): 부 북 22리 관천원(貫川院): 부 남 5리

동쪽: 여주경계22리 남쪽: 음죽현경계40리 서쪽: 양지현경계37리 북쪽: 광주경계21리 서울: 1백41리

진천현

장양역(長陽驛): 현 북 22리 태랑역(台郞驛): 현 남 14리 시태원(時泰院): 고을 안 영제원(永濟院): 현 동 14리 광혜원(廣惠院): 현 북 38리

동쪽: 충주경계27리 남쪽: 청주경계28리 서쪽: 직산현경계38리 북쪽: 죽산현경계39리 경도: 234리

협탄원(脇呑院): 현 서 34리 직산현

동쪽: 진천현경계33리 안성군경계21리 남쪽: 천안군경계10리 목천현경계21리 서쪽: 평택현경계22리 북쪽: 안성군경계25리 경도: 189리

평택현 화천역(花川驛): 동 5리 상원(上院): 서 5리

동쪽: 직산현경계10리

남쪽: 아산현경계8리 천안군경계12리 서쪽: 수원부경계20리 북쪽: 수원부경계10리 서울: 124리

[표 2-5]『신증동국여지승람』의 안성 인근지역 역과 사방경계

1770년대 영조 말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성군읍지 安城郡邑誌』

에는 강부역이 가사면(加士面) 소재이며, 영남대로 북부로 경기좌도34) 찰 방 관할의 양재도(良才道) 상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안성시장은 이 양재 도 상의 강부역 인근 안성천변에 형성되었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충청 도 지방에서 안성으로 연결되는 길은 도기동을 거쳐 하나의 길로 합쳐지 고 남천(南川 안성천)을 건너 안성장을 지나 양성과 양지를 거쳐 다시 서 울로 향한다. 이렇게 안성장은 서울과 남부지방을 연결하는 종단도로와 안성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동서로 상에 위치하여 동서와 남북의 물산을 유통할 수 있는 도로망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조선후기 남쪽에서 올라오 는 길이었던 영남대로와 해남대로는 안성장으로 바로 연결이 되었다가 다 시 두 길로 갈라져 서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안성의 도로망은 수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종단하는 고려시대의 역체계를 기준으로 15세기 이전 이미 삼남과 수도를 연결하는 종단도로가 형성되었 고, 16세기 초 이전에 그를 보완하는 횡단도로도 갖추어졌다. 이렇게 조 선초기부터 발달된 안성지역 교통로는 임진왜란 이후 장이 경기도 지역까 지 확산되던 시기 안성장이 성립할 수 있도록 했고, 이후 17세기경에는 대장으로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안성장은 이렇게 하여 안 성 뿐 만 아니라 주변 및 원거리 지역의 소비층까지 확보하며 발달하였던 것이다.

34) 좌도 : 수원부, 광주부, 여주목, 죽산도호부, 이천도호부, 양근군, 과천현, 지평현, 음죽현, 양지현, 남양도호부, 인천도호부, 부평도호부, 통진도호부, 안산군, 김포군, 안성군, 진위현, 용인현, 시흥 현, 양성현(『여도비지』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