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얼굴, 머리모양, 옷차림 뿐 아니라 몸매 즉 신체에까지 여 성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양상은 1990-2000년대의 한국 순정 만화에서 감지되는 특징이다. 1990년대에 발간한 만화 잡지를 통해 데뷔한 신인 만화가들, 즉 나예리, 박희정, 유시진 등은, 기존 순정만 화의 호리호리하고 선 고운 남성 캐릭터에게 조금 더 “남성적인” 용 모를 부여했다. 어깨가 더 벌어지고, 손발이 크고, 손가락이 길고 단 단하며, 팔과 어깨, 가슴과 복부에 잔 근육이 붙은 신체로 소녀들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하되, 여성에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의 미 묘한 발육 정도를 지키는 남성 신체였다.
[도판 22] 나예리, 『네 멋대로 해라』 컬러 일러스트, 원본 재료 및
규격 미상, 1997, ⓒ나예리
이러한 새로운 몸을 보여주기 위해 남성 캐릭터의 신체를 노출하 는 장면도 상당히 많아졌다. 골격이 드러나도록 몸에 얇게 감기는 옷 을 입고 있거나, 벌어진 셔츠로 흉근이나 치골근을 노출하거나, 아예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1990년대 이전의 순정만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특징이다. 남자 캐릭터가 탈의를 하 고 있더라도 여자의 몸이 아닌 것을 확인시켜 주는 정도의 최소한의 묘사만 있었을 뿐, 그 몸의 아름다움이나 성적 매력을 표현하지는 않 았었다.
남성 신체를 성적인 맥락에서 보여주는 변화의 시작점에는 나예리 의 만화가 있다. 그가 사용하던 거칠고 강한 펜선은 소년들의 길고 단단한 몸에 잘 어울렸고([도판 22]참조), 콘트라포스토를 활용하여 치골근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신체 표현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유시진의 남성 캐릭터들에서는 골격과 더불어 근육 표현이 두드러 진다. 『쿨핫』에서 시작된 건장한 신체에 대한 탐구는 『신명기』에 서 더욱 발전하였다. [도판 23]을 보면, 길다란 골격에 근육이 적절히 붙어 완만하게 굴곡진 우아한 실루엣을 이루고 있다.
학원물인 『쿨핫』에서는 남성 캐릭터가 신체를 노출할 계기가 별 로 없었다면, 『신명기』에서는 판타지라는 설정을 활용해 남성 신체 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도판 23]에서 왼쪽 이미지 중앙의 인 물은 타마라의 동생 환웅으로, 고전적인 의상을 입고 있음에도 패션 모델을 연상시키는 포즈로 날씬한 허리의 윤곽과 긴 다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오른쪽 이미지에서 두 번 등장하는 남성은 타 마라의 주위를 맴도는 해모수인데, 깊게 파인 네크라인 안으로 가슴 과 복부를, 짧은 밑단 아래로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장면 외에
도 해모수는 항상 몸을 과하게 드러내는 복장으로 등장한다. 허랑방 탕한 쾌락주의자라는 설정이 그의 신체를 노출하는 단정치 못한 옷차 림의 빌미로 보일 정도이다.
[도판 23] 유시진, 『신명기』 연재 페이지 중 일부, 원본 재료 및 규격 미상, 1998~1999, ⓒ유시진
주목할 점은, 여성 캐릭터에게는 이러한 신체노출을 적용하지 않 는다는 사실이다. [도판 23]오른쪽 이미지 상단 네모칸 안의 여성 캐 릭터가 주인공 타마라인데, 소매는 없지만 가슴을 다 덮는 의상을 입
고 있다. 다른 만화가들의 여성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년만 화에서는 여성 캐릭터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는 데 비해 순정만 화의 여성 캐릭터들은 대개 마른 몸으로 표현되며, 신체의 굴곡을 보 여주더라도 입고 있는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선에서 그친다. 즉 여성 은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남성만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