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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옥산거도권>은 전선이 은거하던 장소를 그린 그림이지만, 그 는 자연의 실제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다. 산수라는 소재는 도구일 뿐이며, 그림의 진정한 목적은 산수를 그림으로써 고식을 부 활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당대의 인물화와 청록산수, 그리고 남송대에 는 잊혀진 오대(五代)-북송대의 강남산수를 다양하게 참조하였다.33) 이와 같은 의고주의는, 전선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고 더 풍부한 작업 세계를 펼친 조맹부의 작업에서도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남송의 나약함을 상기시키는 그림 역시 피하고 자 하였을 것이다. 그는 송대보다 당대의 화가들이 더 뛰어나다고 생 각하였으며, 송대 화가들의 흔적을 자신의 그림에서 전부 없애겠다고 도 하였다.36)

[도판 7] 조맹부, <인기도(人騎圖)>, 종이에 채색, 1296, 30x32cm, 중국 고궁박물관.

[도판 8] 전(傳)한간, <조야백(照夜白)>, 종이에 수묵 채색, 당(唐)대, 30.8x33.5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36) Cahill. 앞의 책, p.38.

그는 말 그림을 잘 그렸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인기도([도판 7])>는 그가 당대 한간(韓幹: ca. 715-781)의 말 그림을 보고 이해한 바를 적용한 것이다. 둥글고 후육한 표현은 분명 송대 이전의 당대 화풍을 참조한 결과이다([도판 8] 참조).37)

캐힐은 <사유여구학도권([도판 9])>에서는 당대의 청록산수 뿐 아 니라 산수화가 처음 그려지기 시작한 육조시대의 고졸한 양식도 발견 할 수 있다고 한다.38) 산에 비해 지나치게 큰 나무들의 어색한 비례,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 사이로 공간이 열리도록 한 구성, 인물을 위 치시킬 자리를 “한 칸짜리 공간(space cell)”처럼 표현한 점 등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전선의 <부옥산거도권>에서와 마찬가지로 깊이감 이 얕은 공간이 경물을 나란히 늘어놓은 구도 역시 고식의 부활로 볼 수 있다.

조맹부의 대표작 <작화추색도권([도판 10])>과 <수촌도권([도판 11])>역시 고식을 부활시킨 그림이다. <작화추색도권>의 작산과 화 산은 마치 평지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고졸한 방식으로 표현되었고, 나무나 건물의 크기는 원근법적 비례를 따르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도 이 두 그림에서는 그가 동원과 거연의 양식을 발굴하여 인용한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동원의 <한림중정도([도판 12])>와 비교해 볼 때, 가로로 넓게 펼쳐지는 풍경과 지면을 표현하는 구불구불한 필선이 공 통적으로 발견된다([도판 11-1]참조).

37) 양 신 외 5인. 앞의 책, p.148.

38) Cahill. 앞의 책, p.40.

[도판 9] 조맹부, <사유여구학도권(謝幼輿丘壑圖卷)>, 비단에 수묵 채색, ca.

1287, 27.4x117cm, 미국 프린스턴대학 미술관.

[도판 10] 조맹부, <작화추색도권(鵲華秋色圖卷)>, 부분, 종이에 채색, 1296, 128.4x7493.2cm, 대만

고궁박물원.

[도판 11] 조맹부, <수촌도권(水村圖卷)>, 종이에 수묵, 1302, 24.9x120.5cm, 중국 고궁박물관.

[도판 11-1] 조맹부, <수촌도권(水村圖卷)>, 부분, 종이에 수묵, 1302, 24.9x120.5cm, 중국 고궁박물관.

[도판 12] 동원, <한림중정도(寒林重汀圖)> 족자, 비단에 수묵, ca. 950, 181.5 x 116.5cm, 일본 쿠로카와 고문화연구소.

앞서 조맹부는 북경에서 관직 생활을 할 때 고전 회화작품을 접하 고 수집할 기회가 있었음을 언급하였다. 또한 화북 지방에는 오대의 이성(李成: 907-960), 곽희(郭熙: 1023-1085) 등의 화북산수가 계승되 고 있었기에, 캐힐은 그러한 환경을 접한 조맹부 역시 그림에 이곽파 의 요소를 도입하게 되었으리라 추측한다.39) <강촌어락도([도판

13])>는 조맹부가 청록산수와 이곽파의 화북산수를 한 작품에서 복합 적으로 참조한 작품이다. 전경의 거대한 소나무들과 납작하게 표현된 지면, 그리고 근경-원경-중경의 질서정연한 구도 등이 그가 도입한 북송 산수화의 유산이다. 전선과 마찬가지로, 조맹부 역시 과거의 여 러 미술을 작품 안에서 복합적으로 되살렸음을 알 수 있다.

[도판 13] 조맹부, <강촌어락도(江村漁樂圖)>, 비단에 수묵 채색, 1279-1322, 28.6x30cm,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39) Cahill. 위의 책,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