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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전선과 조맹부가 여러 개의 지향점 을 가져온 것은 “지금 여기”를 일부러 빼놓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 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처한 이 시대도 싫고, 그러한 현실을 초래한 직전의 왕조도 싫다면, 아예 역사가 없는 새로운 양식 을 창안하는 해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선과 조맹부는 굳이 먼 과거에 이미 있었던 양식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부활시켰다. 물론 캐힐 이 지적했다시피 이는 서양미술과는 달리 중국미술이 과거를 참조함 으로써 발전을 꾀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42) 그들이 남 송이 아닌 왕조 강박적으로 참조할수록 남송과의 단절 의지 역시 부 각됨을 부인할 수 없다. 남송 원체화는 패망한 왕조의 나약함을 상기 시키는 미술인 동시에, 침략 왕조인 원의 궁정에서 후원하던 미술이 다. 따라서 유민 화가들에게는 이중으로 혐오스러운 대상이었을 것이 다. 그들은 일부러 당시의 주류 미술과 확실하게 계통이 다른 화풍을 보란 듯이 찾아옴으로써, 자신들이 지향하는 곳이 “어디가 되었든 지 금 여기만은 절대로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효과를 초래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들은 인물화에서 는 당대, 산수화에서는 오대와 북송대를 분산적으로 지향하며, 심지어 한 그림 안에서 여러 시점을 복합적으로 지향하기까지 한다. 한 화면 에서 서로 다른 시기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있고 싶어하는 위치를 하나로 포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작가 및 작가와 동조 하는 향유자는 작품 안에서 분산하여, 이 시대 저 시대를 돌아다니며 은둔하게 되는 효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그들의 작법을 통해 되살아난 과거는 모두 현실적으로 복권

42) Cahill. 앞의 책, p.35.

시키기에는 너무 먼 대과거이다. 그들의 그림에서 불복종의 의지를 읽어 내더라도—그나마도 고전에 대한 숭상으로 은폐하였지만— 그것 이 구체적인 반역을 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현 체재 를 무엇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즉 주장하는 바가 무 엇인지 규명할 수 없다. 주장 자체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다만 불 만이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당시의 주류를 일부러 따르지 않았 으며, 그 사실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주체의 입장을 규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공격을 피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불만을 보전시키는 효과도 있다. 입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불만의 정체 역시 범주화할 수 없다는 뜻이며, 따라 서 회유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만이 있음은 분명하나 그 정체도 규모도 알 수 없으니 제도권이 그 에 대처할 방법도 없으며, 따라서 불복종은 작품 안에 영속적으로 매 복하고 있게 된다.

지금까지 원대 유민화가의 은둔에 대한 분석은 헵디지(Dick Hebdige)의 서브컬쳐에 대한 해석을 응용한 것이다. 헵디지는 서브컬 쳐의 주체가 좌표를 포착할 수 없도록 표현한 방식을 설명하며 영국 의 백인 노동자 계층의 펑크(punk)를 예로 들었다. 물리적 신체는 조 국이자 고향인 영국에 있지만 직업도 미래도 가질 수 없는 소외된 백 인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있을 곳이 없음을 표현하고자 저승에서 온 사람처럼 분장하였다는 것이다.43) 그는 “도심의 흑인 청년들이 레게 (reggae)를 통해 ‘경계를 넘어’ 상상 속의 다른 곳(아프리카, 서인도제

43) 딕 헵디지. 이동연 역. 『하위문화: 스타일의 의미』. 서울: 현실문화연구, 1998, p.93.

도)에 자신을 위치지울 수 있었다면, 펑크족은 현재의 시간에 얽매여 있었다. 그들은 전망없는 미래를 가진 영국에 묶여 있었다”고 하였 다.44) 흑인들과 달리 돌아갈 곳이 없던 펑크 청년들은 “세상을 향해 그곳에 있는 동시에 아직 ‘거기에’ 없는 죽은 백인의 얼굴을 내세웠 다”고 한다.45)

이러한 해석은 원대 유민화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유민화가 들 역시 물리적으로는 고향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이 속했던 왕조로 돌아갈 수 없었고, 원 제국의 통치자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주변화되 었으며, 특히 원 초기에는 정부의 억압과 통제가 강력했기 때문에 예 술적 표현에도 제약이 많은 현실에 갇혀 있었다. 전선과 조맹부가 자 신들의 위치를 이제는 없는 먼 과거의 여러 시점으로 분산시킨 것은, 어찌 보면 현실에서 정말로 있을 곳이 없이 “남겨진 사람들”의 심리 를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민족 통치로 인해 고향을 볼 수 없는 처지가 된 친구를 위해 조맹부가 그린 <작화추색도>는, 실제로 도 돌아갈 수 없는 장소를 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기법으로 그린 것 이다. 실버겔드는 “그 청록색채는 어떤 실제에서 멀리 떨어진 시간과 지점의 고향을 생각하는 경치나 혹은 천당선경(天堂仙境)”처럼 보이 게 하는 효과를 낸다고 하였다.46) 조맹부는 직접 가서 본 장소를 그 리면서도 여러 시점의 과거를 연상하게 함으로써 마치 오래 전에 사 라진 장소, 또는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장소처럼 연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들의 땅에 살면서도 주인의 자리에서 쫓겨난 유민들 의 상실감과 회한이 증폭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소될 길 없는 상실감

44) 딕 헵디지. 위의 책, p.94.

45) 딕 헵디지. 위의 책, p.94.

46) 제롬 실버겔드. 앞의 글, p.340.

을 그림에 품은 것은, 곧 현 왕조를 주인으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있으나 주변인으로서 호명되는 것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비주류는, 눈에 띄지 않는 영역으로 몸을 숨기는 동시에 작 품 안에서도 주체의 위치를 포착하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은둔함으로 써 불만을 지속시킨다. 이러한 전략은 여성향 서브컬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의 규범을 비트는 전복적 유희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제 3 장 여성향 서브컬쳐의 은둔하는 주체

이 장에서는 현대 문화에서 주체를 은둔시키는 특징을 지닌 장르 로서 여성향 서브컬쳐를 다루고자 한다. 이 장르는 주류 문화로부터 숨어있을 뿐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향유하는 여성 주체 역시 작품 안에서 은둔하는 특징이 있다.47) 여성향 주체가 정체를 숨기는 이유 와 그 방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제 1 절 여성향 서브컬쳐의 개념과 범위

서브컬쳐 중에서도 “여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서브컬쳐가 이 논문에서 다룰 분야이다. 본 논문에서는 여성향이 두드러지는 순정만

47) 창작과 향유의 “주체”로서의 “여성 주체”는 문학 연구에서도 다루어진다. 정미 지는 ‘문학소녀’에 대한 연구에서 “여성독자, 특히 여학생 독자층”의 중요성을 설 명하며, 이들을 “단지 문학 뿐 아닌 공연, 전시, 영화 등 모든 장르의 소비와 유행 의 창조자”이며 “인터넷 소설, 팬픽과 같은 하위장르를 개척”하는 주체로 긍정하 였다. 정미지. 「불온한 ‘문학소녀’들과 ‘여학생 문학’의 좌표: 1960년대 독서의 성 별화와 교양의 위계」. 권보드래 외. 오혜진 기획.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서 울: 민음사, 2018, pp.202.

오혜진 역시 “팬픽·웹툰·웹소설 같은 ‘비주류’ 서사 양식의 가장 적극적인 소비자”

로서의 젊은 여성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남성 동성(애) 서사’

라는, 기존(순)문학이 좀처럼 재현하려 하지 않았던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데 특 화된 ‘팬픽’이라는 장르를 자생적으로 창작·소비함으로써 여성 독자 고유의 서사 향유 방식을 주류 대중문화에 기입한 문화적 경험까지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이들 이 주도하는 문학 외의 플랫폼인 만화 등이 지닌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오혜진. 「‘이야기꾼’의 젠더와 ‘페미니즘 리부트’: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한국문 학(장)의 기율과 뉴웨이브」. 권보드래 외. 위의 책, pp.353-355, 368 참조.

화와 2차 창작물, 특히 팬픽션과 팬아트로 범주를 한정하고, 각각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