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서울의 갤러리 구에서 개최한 제 3회 개인전 <Stolen Hearts> 에서는 2회 개인전 이후의 작품부터 2012년 귀국 이후의 작
품까지 전시하였으므로,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명작의 차 용은 직접적인 방식과 간접적인 방식 모두 사용하였으며, 미술사 외 의 대중적 시각문화도 차용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20】 <武帝(The Martial Emperor)>, 120x108cm, 장지에 채색,
2012.
【작품 21】 <Crimson/White>, 49x39(cm), 장지에 수묵 담채, 2014.
영화 포스터나 광고, 패션 화보 등의 대중매체가 현대 시각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가 한 세기를 넘어섰다. 그간 순수예술의 명 작 못지 않은 기념비적인 이미지들이 생산되었으며, 그 이미지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맥락을 바꾸어 가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본인 역시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에는 틀림없으나, 이전까지 순수 미술 작품을 주로 차용한 이유는 고급문화가 지니는 권위 때문이었 다. 그러나 점차 대중문화에서도 “고전”으로 간주되는 작품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 유학 생활이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었다. 고급 문화의 역사가 훨씬 긴 유럽에 비해, 미국은 영화나 팝음악 등 대중 문화가 발전한 국가이다. 미국의 현대 미술가들 역시 대중문화를 고 급문화와 비슷한 위상을 지닌 것으로 여기며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적 극적으로 유입시키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 에 본인 역시 대중예술이 지닌 권위—적어도 영향력—을 새롭게 인식 하게 되었고, 작업에 차용할 만한 원전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작품 22】 <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 49x39cm, 혼합 재료,
2015.
[도판 35] 작자미상, <햄릿으로 분한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as Hamlet in Hamlet)>, 1948, 23.9×17.8cm,
엽서 인쇄, 영국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
<武帝(【작품 20】)>의 인물 포즈는 한국에서 에로틱 영화로 유 명한 <엠마누엘 부인>의 포스터에서 따 왔으며, <Magnolia(【작품
5】)>와 <Crimson/White(【작품 21】)>는 연예인의 화보를, <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작품 22】)>는 영화 <햄 릿>(1948)에서 주인공인 햄릿으로 분한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Laurence Olivier, 1907~1989)가 연상되도록 그렸다([도판 35]참조).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참조하면서, 대중문화가 개발해 온 시각언어 란 특정 행동의 즉각적 촉발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경쟁사보다 더 빨리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 대량 소비로 이끌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언어였다. 단순하고 명료한 메 시지를 전달하던 수단을 사용하면서 내용만 비판적인 메시지로 교체 한다고 하여 똑같이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러한 기대 하에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형식에 어울 리지 않는 내용, 즉 한 번에 알아들었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남는 내용이라든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내용이 삽입되 었을 때 일어나는 불협화음이야말로 의심과 질문의 촉매 역할을 하리 라 기대하였다.
2016년에는 본인의 작업의 내용을 정리한 단행본 『위반의 집』을 출간하였다. 책에서는 본인의 그림 속 남성 신체, 즉 여성향의 증거로 서의 신체는 주류 문화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자리가 주어지지 않은 존재임을 설명하였다. 아울러 학부 시절 “사라진 남성 신체를 찾아 오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이래, 그 신체가 왜 사라졌는지를 밝혔고, 어디서 데려오면 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불러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작업 활동을 통해 탐구하여 온 과정을 서술하였다.
『위반의 집』에서는 그를, 그리고 그를 만들어 낸 여성적 상상을, 제 도권에 의해 하위문화로 쫓겨난 존재로 제시하고 “X군” 이라고 칭하
였다.
여성적 상상의 산물을 제도권 미술의 공간에 위치시킬 발생하는 어색함이야말로 그림에서 즉각적으로 읽히는 메시지들보다 중요하다.
또는 그 어색함과 불편함 자체가 메시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러한 경험을 유발시키는 화면을 만들고자, 2015~2016년간에는 그림 속 인물을 마치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모습으로 연출하 였다. 이전까지의 작품에서는 미소년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당연하다 는 듯 받아들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이 시기의 그림 속 남자들 은 그렇게 편안한 모습이 아니다. <Crimson/White(【작품 21】)>와
<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작품 22】)> 속 인 물의 얼굴은 마치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듯 눈두덩이 부어 있고 붉게 상기되어 있다. 그들은 옮아다니는 병과 같은 존재이며 환영받 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상태가 편안할 리 없다는 상상을 그림에 반 영하였다. 그들이 왜 불편해야만 하는지, 그림 안팎으로 여러 의문을 이끌어 내고자 행한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