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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업적 영역으로의 은둔: 팬픽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65

독자나 관람자가 이미 원전에 대한 사전 지식을 습득한 상태에서 감상할 것을 예상하고 제작된 2차 창작물 역시 팬들의 영역 밖에서는 온전히 이해되기 어려우므로 태생적으로 범 대중적이지 못한 장르이 다. 또한, 순정만화는 변방의 문화일지언정 대중문화의 하위 장르로서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데 반해, 팬픽션이나 팬아트는 아예 상업적 유통 자체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이미 존재 하는 원전이나 인물을 소재 삼아 제작한 창작물이므로, 만약 상업적 으로 유통할 경우 원전의 지적재산권·초상권 소유자와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86)

물론 이것이 팬픽션이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향유 되는 일차적인 이유는 아니다. 팬픽션을 쓰고 읽는 여성들은 금전적 이익보다는 외부의 검열로부터 자유롭게 상상과 유희를 나누고 즐기 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2차 창작물에도 저작권은 존재하고,87) 소위

86) 대부분의 한국 연예기획사는 팬들의 환상이 어떤 식으로든 연예 상품의 지속적 인 소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2차 창작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 하지는 않는다. 김대현, 이재민의 주장처럼 “팬덤의 2차 창작물은 원작을 오래 기 억하게 하고 연예인의 다음 활동에 대한 기대심리를 높여 줌으로써 대중문화상 품의 수명을 지속적으로 연장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김대현, 임재민. 「팬 덤 문화의 생산과 수용방식에 대한 연구 –팬 픽션과 팬 일러스트레이션 중심으 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제 42호, 2016.3, p.332 참조.

“네임드(named)”라 불리는 유명 팬픽션·팬아트 작가들은 자신들의 글·그림·만화 등을 소규모로 출판하여 팬덤 내에서 판매하기도 하지 만, 이러한 정도의 이윤 추구는 팬덤 안에서만 머무르며 범 대중적인 시장으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팬북이나 팬아트북은 시중 서점이나 온 라인 서점에는 시판되지 않고 2차 시장에서도 구할 수 없으며, 그 작 가가 속해 있는 팬덤 내에서 일정 기간에만 열리는 창구(가입이 필요 한 온라인 카페의 임시 게시판 등)를 통해 한정적으로 판매된다. 이 러한 작품이 만약 대중문화 시장으로 이행하고자 할 경우, 작가는 이 름을 바꾸고 작품도 바꾸어 활동하는 등, 2차 창작물의 영역과는 분 명한 구분을 짓는 편이다.

일례로 Snowqueens Icedragon이라는 필명의 한 작가가 미국의 TV 드라마 <트와일라잇(Twilight)>(2008-2012년간 방영)의 팬픽션 Master of the Universe를 팬픽션 사이트인 fanfiction.net에 2009년 8 월에 게재했다가 소설로 출판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팬픽션은 큰 인기를 얻어 2011년에 소설책으로 출판되는데, 저자는 캐릭터의 이름 을 모두 바꾸고 제목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로 바꾸었으며, 본인의 이름도 제임스(E. L. James: 1963-)라 고 표기해 출판하였다. Fanfiction.net에서도 Master of the Universe 를 삭제하였다.88) 원작이었던 팬픽션과의 연결을 끊어 두 영역을 분

87) 팬픽션 커뮤니티 내에서도 다른 작가의 글에 대한 표절은 금기시된다. 팬아트 이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공유할 때도 반드시 작가의 이름(주로 온라인상 의 필명)과 출처를 밝혀야 한다.

88) 이 소설은 2015년 영화화되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한국어 제목 은 이 영화의 국내 개봉 제목을 따른 것이다. 현재 팬픽션 원본은 삭제되기 이전 미리 저장한 독자들이 pdf형태로 암암리에 유통하고 있다. Cuccinello, Hayley C.

Fifty Shades Of Green: How Fanfiction Went From Dirty Little Secret To Money Machine. Forbes.com. 2017년 2월 10일 12시 20분 참조.

리했다고 볼 수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사용한 데 대 한 저작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2차 창작 물이 원래의 형태대로 주류 문화에 진출하는 것을 막은 셈이 되었다.

이는 주류 대중문화의 상업적 논리가 2차 창작의 영역으로 번져 검열 과 통제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 하에 대량생산되거나 유통될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팬픽션·팬아트는 소수 팬덤 내에서의 순수 유희로서의 목 적이 더 강하다. 상업성보다는 팬덤만이 이해하는 즐거움을 극대화하 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원전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한다는 비난을 받 을 소지가 없도록 비상업적인 영역에 숨어 있어야 자유로운 유희가 가능하다.

제 3 절 이중 은둔(2): 작품 안에서 은둔하는 주체

이 장에서는 여성향 서브컬쳐의 이중 은둔 중 두 번째, 작품 안에 서 여성 주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한 양상에 대해 알아본다. 즉 작품 안에서 여성 작가 및 여성 독자의 위치가 명확히 포착되지 않도록 하 는 전략과, 그 효과를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