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近代移行期 妓生系 春香敍事의 확립과 변모
2) 계층 안에서의 갈등 완화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의 춘향은 관습적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천인 계층의 인물인 방자‧군노사령‧월매와 갈등을 겪으며 문제적 개인으로 서의 면모를 확고히 한다. 그러나 일부 기생계 춘향서사에서는 춘향과 동 일 계층 사이의 갈등이 완화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먼저 방자의 춘향에 대한 인식의 변모를 살펴본다.
남원고사의 방자는 춘향이라는 인물을 매몰하고 교만하다고 평하며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다음의 발화 에서 확인된다.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오. 춘광은 이팔이요, 인물은 일색이요, 행실 은 백옥이요, 재질은 소약란(蘇若蘭)이요, 풍월은 설도(薛濤)요, 가곡은 섬 월(蟾月)이라. 아직 서방 정치 아니코 있으나 성품이 매몰하고 사재고 교 만하고 도뜨기가 영소보전(靈霄寶殿) 북극천문(北極天門)에 턱 건 줄로 아뢰오.”132)
남원고사의 방자는 춘향의 용모와 자질이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였
131) 유향(劉向) 저, 이숙인 역, 열녀전(列女傳), 예문서원, 1996, 71면 참조.
132) 남원고사, 15면.
으나, 춘향의 성격에 대해서는 매몰하고 사재고 교만하고 도뜨다고 평하 였다. 그러나 일부 기생계 춘향서사의 방자는 춘향의 용모와 자질은 물론 성품에 대해서도 훌륭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방자의 춘향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은 현전하는 춘향서사 가운데 1804년에 창작된 「춘향신설」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 「춘향신설」에서 방자의 역할을 하는 관복(官僕)은 이도령에게 춘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비록 창가의 하찮은 소생이라고 하나 몸가짐은 사대부 집안의 규수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기루(妓樓)의 번화한 곳에서 생장했으면 서도 함부로 덤비는 벌나비가 감히 그 향기를 훔치지 못하며 담장에 핀 꽃이요 길가에 선 버들이지만 그 성품을 미혹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133)
「춘향신설」의 관복은 춘향이 기생 신분이지만 사대부 규수와 같은 행실 을 가졌으며 무엇에도 미혹되지 않는 굳센 성품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방자가 춘향의 성격을 이해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기생계 춘향서사 에는 「동창 춘향가」,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 고려대 도서관 소 장 54장본 춘향전 등이 있다. 신재효의 「동창 춘향가」에서 방자는 이도 령에게 춘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춘향의 설부화용 남방에 유명하여 설도(薛濤)의 문장이요 탁문군(卓文 君)의 음률(音律)이며 침선 재질 열행 정절 조선에 제일이요, 당세에 무쌍 이라. 나 어린 도련님이 호래척거(呼來斥去) 못 하지요.”134)
방자는 춘향의 용모와 문장, 음률이 조선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는 춘향이 기생으로서의 직분에 출중하였음을 뜻한다. 또한 방자는 춘 향이 기생이면서도 여공의 하나인 침선에 능하고 재질이 훌륭하며 열행과 정절을 행하여 당대에 둘도 없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동창 춘향가」의 방 자는 춘향이 용모와 자질은 물론 여성 규범의 준수에 있어서까지 조선 제
133) “雖曰娼家之餘生, 操行無異於士大夫之閨養, 是以生長於繁華之處, 而狂蜂浪蝶, 莫 敢偸其香, 墻花路柳, 不能迷其性.”(춘향신설‧현토한문춘향전, 130면)
134) 신재효, 「동창 춘향가」, 109면.
일이라고 말하는바, 춘향이 지향하는 열과 정절을 이해하는 면모를 보인 다. 춘향에 대해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방자는 춘향이 함부로 부 를 수 있는 일반적인 기생이 아니라는 점까지 이도령에게 부연하여 말한 다.
한편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에서는 방자가 춘향에 대해 다음 과 같이 말한다.
“저의 본심이 도도하와 여공재질과 문장겸비와 삼강행실을 본받고자 하 와 백화출입에 글귀도 생각하고 신선공부하느라고 날마다 저리 노나이다 .”135)
신학균 소장 별춘향가의 방자는 춘향이 기생이지만 도도한 까닭에 여 공을 익히고 문장을 지으며 삼강행실을 본받고자 한다고 말한다. 방자는 춘향의 성품을 도도함으로 집약하여 말하는데, 남원고사의 방자 역시 춘향을 도도한 인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춘향의 도도함이 발현되는 양 상은 두 텍스트에서 각기 다르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도도함, 즉 사재 고 교만하고 도뜬 성품으로 인하여 관습적 세계와 갈등을 겪고 대립하였 다. 그리하여 방자는 춘향이 도도함으로 인해 북극천문에 턱을 걸 만큼 관습적 세계의 질서와는 이질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 신학균 소장 별춘향가의 방자는 춘향이 도도함으로 인하여 관습적 세계의 여성 규범인 여공과 삼강행실을 본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려대 도서관 소장 54장본 춘향전의 방자는 춘향이 “본심이 도고하 여 가무를 전폐(全廢)”하였다고 말한다. 또한 방자는 춘향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평한다.
“춘향은 기생이라 하나 인의예지 삼강행실이 사부인의 굳은 절개 상산 (湘山)의 아황‧여영 만고의 높은 절행 흉중에 품었으니 임의로 홀대 못하 오리다.”136)
135)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 461면.
136) 구자균 교주, 「고대본 춘향전」, 305면.
고대본 춘향전의 춘향 역시 방자로 하여금 도고하다는 평을 들으나, 춘향은 도고함으로 말미암아 가무를 익히지 않고 기생으로서의 역할을 거 부한다. 그러나 방자는 이러한 춘향을 이질적으로 여기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춘향은 도고함으로 인하여 유교적 규범을 습득하고,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에 등장하는 사부인이나 순임금의 비(妃)인 아황 과 여영처럼 관습적 세계의 여성 규범인 절행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형성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방자는 이러한 춘향을 그 신분이 기생이라 해도 임 의로 홀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 인식한다. 고대본 춘향전의 방자 역시 춘향의 정절에 대한 의지를 이해하는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군노사령의 춘향에 대한 혐의는 대부분의 기생계 춘향서사에 나타나지 만, 박순호 소장 69장본 별춘향전의 경우 사령이 춘향을 동정하는 면모 를 보인다.
사또 대로하여
“만일 춘향을 시각 지체하다가는 공형(公兄) 이하로 각청 두목을 일병태 가(一竝笞加)할 것이니 빨리 대령 못 시킬까.”
육방(六房)이 소동 각 청 두목이 넋을 잃어
“김번수야 이번수야 이런 별 일이 또 있느냐. 불쌍하다. 춘향 정절 가련 케 되기 쉽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가자.”137)
박순호 소장 69장본 별춘향전의 사령들은 평소 춘향에 대해 혐의가 없고,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열행을 이해하고 동정한다. 사령들의 춘향의 열행에 대한 이해와 동정은 기실 현전하는 비기생계 춘향서사의 일부 텍 스트에 나타나는 양상이다. 예를 들어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사령들은 춘향을 바삐 대령시키라는 신관 사또의 명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육방이 소동, 각 청 두목이 넋을 잃어
“김번수야 이번수야 이런 별 일이 또 있느냐. 불쌍하다 춘향 정절 가련
137) 박순호 소장 69장본 별춘향전(김진영 외 편, 춘향전 전집 9, 박이정, 1999), 264면.
케 되기 쉽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138)
비기생계 춘향서사인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사령이 한 말 은, 기생계 춘향서사인 박순호 소장 69장본 별춘향전에서 사령이 한 말 과 흡사하다. 이는 기생계 춘향서사와 비기생계 춘향서사 사이에 부분적 으로 영향의 수수가 발생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기생계 춘향서사 와 비기생계 춘향서사 사이의 영향 수수는 춘향과 동일 계층의 인물 사이 에 발생하였던 갈등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판단된다. 춘향 과 관습적 세계가 갈등하지 않고, 관습적 세계의 인물이 춘향을 이해하는 양상은 춘향이 관습적 세계의 질서에 포용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관습적 세계의 인물과 춘향 사이의 갈등이 완화되는 기생계 춘향서사의 변모는 월매와 춘향의 관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의 월매는 관습적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인물로, 춘향과 시종일 관 갈등하며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부각하였다. 그러나 일 부 기생계 춘향서사의 월매는 춘향의 열행과 정절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 인다. 이러한 변모는 동양문고본 춘향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양 문고본 춘향전은 남원고사와 상당한 친연성을 가진 세책본 춘향서사 이지만 남원고사에 없는 월매의 치성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139)
춘향모가 목욕재계 정히 하고 새 소반에 새 그릇에 정한수 정히 놓고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명천이 감동하사 서울 계신 이몽룡씨 전 라 감사를 하옵거나 전라 어사를 하여 내려와서 우리 춘향 살려주게 하옵 소서.”140)
동양문고본 춘향전의 월매는 이도령이 입신양명하여 신관 사또로 인 해 고난을 겪고 있는 춘향을 구원해주기를 기대하며 치성을 올린다. 앞서
138)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 345면.
139) 월매의 치성장면은 1869년에 필사된 남원고사 권4에는 없으나 1900년에 필 사된 동양문고본 춘향전 권8에는 삽입되어 있다. 두 작품은 30여년의 시간적 상 거를 두고 필사되었던 바, 30여년 사이에 월매의 치성 장면이 서울에서 유통된 세 책본 춘향전에 삽입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40) 동양문고본 춘향전, 3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