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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예정과 수난으로서의 저항

III. 近代移行期 非妓生系 春香敍事의 출현과 그 특징

2) 운명의 예정과 수난으로서의 저항

탈현실적 서사가 첨입된 춘향서사에서는 춘향의 운명이 천정(天定)으로 설정되면서 춘향의 신관 사또에 대한 저항의 의미 역시 변모한다. 탈현실 적 서사가 첨입된 춘향서사 가운데 특히 「남창 춘향가」의 서사는 전면적 으로 천상계의 예정에 따라 전개된다. 「남창 춘향가」는 적강 모티프를 원 용하여 춘향은 본래 직녀성의 시녀였고 이도령은 태을성군이었던 것으로 설정한다. 천상계에서 사랑을 나눈 죄로 옥황에게 벌을 받아 인간세계로 적강하였기에, 인간세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은 이미 천상의 인연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서사가 구성된다. 이로써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결 국 완성되리라는 결말은 이미 「남창 춘향가」에 예정되고 있다. 인간세계 는 천상계의 하위에 존재하며, 인간은 천상계의 의도와 결정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남창 춘향가」에서 천상계의 의도는 춘향의 꿈을 통해 현 시된다. 춘향은 신관 사또로부터 형벌을 당하고 혼절하였을 때 다음과 같 은 꿈을 꾼다.

이 몸이 호접(胡蝶)되어 바람결에 싸이어서 편편히 높이 떠서 위로만 오르는데 가만히 요량하니 팔구만 리 오르더니 찬 기운이 뼈저리고 맑은 빛이 눈부신다. (…중략…) 한참 구경하노라니 구름옷 안개치마 나 어린 여동(女童) 하나 옥환여의(玉環如意) 손에 쥐고 고이 걸어 나오더니 나를 보고 반기면서 성군(星君)께서 부릅시니 어서 들어가자기에 마음이 괴이 하여 공순히 대답하되

“인간의 천한 몸이 우연히 여기 와서 지명도 모르는데 어떠한 성군께서 어찌 알고 부르리까.”

여동이 대답하되

“가 보면 알 것이니 내 뒤를 따라오라.”

여동과 함께 수십 보 들어가니 화채(畵彩) 영롱 좋은 집에 문 위에 붙 인 현판 천장전(天章殿) 세 글자를 황금으로 크게 쓰고, 그 뒤에 또 있는 집 현판에 영광각(靈光閣), 운모병풍 둘러치고 옥화점(玉華簟) 폈으니 산 호구 수정렴과 향주머니 난사(蘭麝)기운 정녕 인간 아닌 곳에 어떠한 한 부인이 빙초의상 환피의 취봉보요 관을 쓰고 백옥 베틀 황금 북에 칠양금 (七襄錦)을 짜시거늘 계하(階下)에서 사배하니 여동에 분부하여 대상(臺

上)으로 인도하여 별설 일탑 앉힌 후에 성군이 분부하되

“네가 이집 알겠느냐. 세상사람 하는 말들 저 물이 은하수요, 내 별호가 직녀성. 네가 전에 이 곳 있어 나와 함께 지내던 일 망연히 잊었느냐.”

다정히 묻삽기에 다시 꿇어 여쭈오되

“인간의 천한 몸이 창녀의 자식으로 여염 생장하였으니 이 곳 어찌 아오 리까.”97)

「남창 춘향가」의 춘향은 꿈속에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다스리는 성군 인 직녀성의 부름을 받고 천장전으로 향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남창 춘향가」의 서술자는 춘향이 옥중에서 꿈을 꿀 때 황릉묘에 이르는 춘향서 사에 대해 대타적 의식을 표출하며, 춘향이 꿈속에서 천장전에 이르는 것 으로 개작하였다. 「남창 춘향가」의 서술자는 아황과 여영을 모신 사당인 황릉묘라는 배경이 작품에 천상계를 개입시키는 데에 있어 적절치 못하다 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창 춘향가」의 서술자는 천상계를 일월 성신을 관장하고 인간세계의 질서를 주관하는 신선들의 세계로 인식하였 다. 인간세계의 질서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천상계라야 작품 안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운명을 예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남창 춘향 가」는 춘향이 꿈속에서 이르는 장소를 황릉묘가 아니라 천문(天文)을 관 장하는 천장전으로 개작하고, 춘향이 만나는 천상 존재를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성으로 설정한다.

춘향이 인간의 천한 몸으로 천장전에 오게 된 까닭을 묻자 직녀성은 다 음과 같이 말한다.

“전생에 하던 일을 자세히 들어보라. 네가 나의 시녀로서 서왕모의 반도 회에 내가 잔치 참여할 제, 네가 나를 따라왔다 태을성군 너를 보고 애정 을 못 이기어 반도 던져 희롱하니 네가 보고 웃은 죄로 옥황이 진노하셔 둘 다 적하인간, 너의 낭군 이도령은 태을의 전신이라. 전생의 연분으로 이 생 부부되었으나 고생을 많이 시켜 웃은 죄를 다스리자 이 액회를 만 났으니 감심(甘心)하고 지내며는 후일에 부귀영화 측량이 없을 것을, 약한 몸에 중한 형벌 횡사(橫死)도 가려(可慮)하고, 좁은 성정 설운 마음 자결 할까 위태키에 너를 지금 불러다가 이 말을 이르느니 이것을 먹으면은 장 97) 「남창 춘향가」, 49~51면.

독이 즉차(卽瘥)하고 허다 고생 다 하여도 아무 탈이 없으리라.”98)

직녀성의 말에 따르면 「남창 춘향가」의 춘향은 천상계에서 저지른 잘못 으로 인해 인간세계에서 수난을 겪는다. 인간세계에서 춘향의 수난은 이 도령과 이별한 뒤 수절하며 신관 사또의 수청 명령에 항거하다 형벌을 당 하게 된 일을 가리킨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 및 이별, 그리고 이도령과의 이별로 인한 춘향의 수난은 모두 천상계의 의도에 의하여 예정된 일이다. 나아가 「남창 춘향가」에서 는 춘향의 수난은 물론 수난 이후의 운명까지 예정된다. 춘향이 인간세계 에서의 수난을 천상에서 지은 죄에 대한 벌로 달게 받아들이면, 종국에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직녀성은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남 창 춘향가」에서 춘향의 신관 사또에 대한 항거는 천상계에 의해 예정된 수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꿈에서 직녀성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들은 춘향은 자신이 천상계의 일원으로 인간세계에 적강한 존재임을 인지하게 된다. 직녀성은 춘향이 장독(杖毒)으로 인해 인간세계에서 횡사할까 염려하여 춘향에게 천상세계 의 음식을 먹인다. 춘향은 천상계의 음식을 먹고 인간으로서의 건강과 수 명을 보장받는다. 또한 천상계의 음식을 먹은 춘향은 “정신이 상쾌하여 직녀성군 모시고서 반도회 갔던 일이 어제 같이 황연”히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이에 춘향은 직녀성의 시녀로서 천장전에 계속 머물고자 하나, 직 녀성은 춘향을 인간세계로 돌려보낸다.

“하늘이 정하신 일 임의로 못 할 테요, 너의 노모 너 기다려 시각이 바빴 으니 어서어서 돌아가서 이 고생 겪은 후에 인간 오복을 누리다가 이곳으 로 도로 와서 만날 날이 있을 테니 섭섭히 알지 말고 급급히 돌아가라.”99)

직녀성은 춘향의 인간세계에서의 수난과 복록이 모두 하늘에 의해 정해 진 일이므로, 인간세계에서 예정된 생을 누리고 천상계로 돌아오라고 당 부하며 춘향을 인간세계로 복귀시킨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남창 춘향

98) 「남창 춘향가」, 51면.

99) 「남창 춘향가」, 51면.

가」의 춘향에게 이 꿈은 헛된 남가일몽이 되지 않는다. 꿈이 현실에 지속 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꿈에서 깬 춘향은 자신이 아무리 중한 형벌을 당했다 한들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기절하였을 제 이상한 일이 있어 정녕 죽지 않을 테니 이야기나 들어 보소.”100)

월매는 춘향의 꿈 이야기를 헛소리로 치부하나, 춘향은 자신의 운명이 천상계에 의해 예정되어 있음을 작중에서 거듭 환기한다. 이도령이 걸인 의 형상을 하고 옥으로 찾아오자 춘향은 이도령의 기한(飢寒)과 자신의 수난이 곧 끝날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긴한 증거 또 있는 게, 연약한 이 기질에 혹장(酷杖) 맞고 죽었을 제 혼이 날아 천상에 가니 직녀성군 하는 말씀, 네 전신은 내 시녀요 네 낭군 은 태을선관. 이 고생을 겪은 후에 부귀영화하리라고 정녕 분부하시더니 서방님은 아니 오고 독한 매를 또 맞으면 이 목숨이 횡사하고 직녀성군이 헛말한가 주야 걱정하였더니 오늘 저녁 임 오시니 이번 나는 아니 죽네.

좋을시고 좋을시고.”101)

춘향은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운명이 천상계에 의해 예정 되어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 그리고 서술자는 다시 개입하여 탈현실적 서 사의 첨입과 이에 따른 춘향 운명의 예정이 모두 의도적인 개작임을 말한 다.102) 요컨대 「남창 춘향가」는 천상계가 예정한 운명에 따라 서사가 전 개되도록 구성되어, 현전하는 춘향서사 가운데 탈현실적 서사의 첨입에 따른 개변이 가장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춘향서사이다.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인 이고본 춘향전에서도 춘향의 운명은 천상계에 의해 예정된 것으로 나타난다. 「남창 춘향가」와 같이 이고본  춘향전에서도 춘향이 중한 형벌을 당하고 옥에 갇혀 꿈을 꿀 때 춘향의

100) 「남창 춘향가」, 47면.

101) 「남창 춘향가」, 77면.

102) “다른 가객 몽중가는 옥중에서 어사 보고 산물을 한다는데 이 사설을 짓는 이 는 신행길을 차렸으니 좌상 처분 어떠할지.”(「남창 춘향가」, 77면)

운명이 예지된다. 춘향은 꿈속에서 황릉묘에 이르는 바, 아황과 여영은 춘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춘향아 네 들어라. 전생 일을 모르리라. 부용성(芙蓉城) 영주궁(瀛州 宮)의 운화부인(雲華夫人) 시녀로서 서왕모 요지연(瑤池宴)의 장경성(長 庚星)에 눈을 주어 반도(蟠桃)로 희롱타가 인간에 전고하여 인간 공사 겪 거니와 불구에 장경성을 서로 만나 영화부귀할 것이니 마음을 변치 말고 열녀를 효칙(效則)하여 천추에 유전하라.”103)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이고본 춘향전의 춘향은 운화부인의 시녀로서 서왕모가 주최한 요지연에서 장경성과 애정을 주고받은 까닭에 적강하였 다. 춘향은 천상계에서 죄를 지었기에 인간세계로 내려와 수난을 당한다.

아황과 여영은 춘향에게 지금은 수난을 겪고 있지만, 장경성 즉 이도령을 다시 만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의 운명을 예지해 준다.

이고본 춘향전에서 역시 춘향의 수난은 천상계에서의 득죄로 인한 숙명 으로 형상화된다. 그 결과 춘향의 수난은 「남창 춘향가」에서와 같이 예정 된 운명이 되며,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현실적 의미는 퇴색된다.

그러나 이고본 춘향전에서는 탈현실적 서사의 첨입이 서사 전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남창 춘향가」에서와 같이 춘향이 자신이 적강 한 인물이라는 점과 자신의 운명이 천상계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환기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기에 그러하다. 이 점을 통해 보아도 「남창 춘향가」에서 탈현실적 서사의 첨입은 춘향서사의 전변 과정 에서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에서는 춘향의 출생 과정을 통해 춘향에게 초월적인 능력이 부여되면서 춘향의 운명이 예정된다. 완판 84 장본의 월매는 마흔이 넘어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자식을 얻기 위해 치성 을 드리기로 결심한다.

“천하 대성(大聖) 공부자(孔夫子)도 이구산(尼丘山)에 빌으시고 정나라 정자산(鄭子產)은 우성산에 빌어 나계시고 아동방 강산을 이를진댄 명산 103) 이고본 춘향전, 2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