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近代移行期 非妓生系 春香敍事의 출현과 그 특징
2) 烈行의 도덕적 우위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의 전형적 텍스트인 남원고사에서 춘향은 자신의 ‘열’과 신관 사또의 ‘충’(忠)을 등치시키며 신관 사또에게 항거한 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신관의 학정이나 수탈을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자신이 수절하지 않는 것은 신관이 임금께 반역을 행하 는 것과 같다는 논리를 전개하며 항거한다.
“사또께서는 국록지신이 되어 나서 출장입상하시다가 파류불행 난세 오 면 귀한 일명(一命) 살려 하고 도적에게 투항하여 두 임금을 섬기려 하 오? 충불사이군이요 열불경이부어늘, 불경이부 죄라 하고 위력으로 겁탈하 니 사또의 충절유무를 이로 조차 알리로다. 역심(逆心) 품은 사또 앞에 무 슨 말씀 하오리까.”139)
‘충’과 ‘열’을 등치시키며 자신의 열행을 정당화하는 춘향의 면모는 다수 의 춘향서사에 나타난다. 그런데 근대이행기 비기생계 춘향서사의 춘향은 자신의 열행을 정당화하는 과정에 규범과 도덕의 문제를 개입시킨다. 비 기생계 춘향서사에서 규범과 도덕의 준수는 신분제적 질서의 문제와 결부 되어 있는바, 이 점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은 “명분도 중요하지만 예법도 중요하다”고 말 하며 이도령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다. 여기서 ‘명분’(名分)은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가리킨다. 「남창 춘향가」의 춘향은 신분에 따른 도리보다 예법(禮法)을 지키는 것, 즉 관습적 세계의 공식적 규범을 준수 하는 일을 우선시한다. 춘향에게 규범의 준수는 신분제적 위계질서를 초 월하는 명제가 되고 있는바, 「남창 춘향가」에는 신분의 상하보다 규범을 준수하는 사람이 도덕적 차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되 어 있다. 이는 춘향의 다음 발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절행에는 상하(上下) 없어 필부(匹婦)의 가진 정절 천자도 못 뺏거든 사또 탈절(奪節)하실 테요.”140)
「남창 춘향가」의 춘향은 절행의 실천에는 신분의 상하에 따른 차등(差 等)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당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천자 (天子)라 할지라도 일개 필부의 정절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정절이라는 규범을 준수하는 여성은 천자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 큼 도덕의 차원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한다는 의식의 표명이다. 이에 춘향 은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근거로 신관 사또의 수청 명령에 항거한다. 춘 향이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춘향의 ‘열’이 조선 사회의 공 식적 규범이며 사회의 구성원에게 준수할 것이 권장되던 규범이라는 의식 이 자리하고 있다. 본고는 앞서 「남창 춘향가」에 형상화된 춘향의 열이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과 같다는 점을 구명하였다. 유교적 여성 규범은 조선의 공식적 규범이므로 이를 준수하는 춘향이 도덕의 측면에서
139) 남원고사, 91~92면.
140) 「남창 춘향가」, 41면.
절대적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한편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는 비기생계 춘향서사임에도 불구 하고, 춘향이 기생 계층의 충절(忠節)을 근거로 자신의 항거를 정당화하 는 면모를 보인다.
“충효열녀 상하 있소. 자상히 듣조시오. 기생으로 말합시다. 충효열녀 없 다 하니 낱낱이 아뢰리다. 해서 기생 농선이는 동선령에 죽어 있고, 서천 기생 아이로되 칠거학문(七去學問) 들어 있고, 진주 기생 논개는 우리나라 충열로서 충열문에 모셔 놓고 천추 행사 하여 있고, 청주 기생 화월이는 삼층각에 올라 있고, 평양 기생 월선이도 충열문에 들어 있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생열녀문 지은 후에 정경 가자 있사오니 기생 해폐(害弊) 마옵 소서.”141)
기생 계층의 충절을 근거로 신관 사또에게 항거하는 춘향은 기생계 춘 향서사인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 김동욱 소장 낙장 51장본 춘 향전, 박순호 소장 49장본 춘향전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비기생계 춘 향서사인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에 형상화된 항거 장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춘향의 발화는 “충효열녀(忠孝烈女) 상하(上下) 있소”라는 말이다.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의 춘향은 ‘충‧효‧열’이라는 조선 사 회의 공식적 규범을 준수하는 데 있어 신분의 상하에 따른 차등은 없다고 주장한다. 신분의 상하에 관계없이 공식적 규범을 준수하는 사회의 구성 원이라면 누구든 도덕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의식이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장자백 창본 춘향가에서는 신관이 목민관으로서의 도리를 행하지 않 고 악정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전하에 별교(別敎)하사 각골 수령 보내실 제 치민(治民)하러 보내셨지 수절 정절 잡아들여 훼절시키려 보내었소.”142)
141)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 348면.
142) 장자백 창본 춘향가, 147면.
춘향은 신관 사또가 임금이 수령으로 내려보내신 뜻을 어기고, 수절하 는 여성을 훼절시키려는 악정을 행한다고 말한다. 훼절을 요구하는 신관 은 이미 도덕적으로 부정하기에, 춘향은 신관의 관장으로서의 권위를 인 정하지 않는다. 근대이행기 비기생계 춘향서사는 조선의 신분제 사회를 현실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춘향은 양반 관장의 위력(威力)보다 자신 의 열행을 우위에 두는 면모를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장자백 창본 춘향 가의 춘향은 “제 지체 부족하여 위력공사(威力公事) 당한 일이 분기(憤 氣)가 충천(衝天)하여 벌렁벌렁”143) 떨면서 신관이 사대부로서 사기사 (事其事)를 모른 채 죄 없는 자신에게 형벌을 내린다고 항거한다.144) 춘 향은 관장의 도리를 모르는 신관에 대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것이 다.
김동욱 소장 75장본 춘향전의 춘향 역시 항거 과정에서 신관의 악정 을 언급한다.
“삼강오륜 □□□□ 상중하가 있소이까. 제 아무리 천인이나 일부종사 뜻이 있어 올라가신 구관 자제 도련님과 백년언약 맺삽기로 진즉 대령치 못하였으나 새 사또 좌정 후에 기특하다 칭찬하여 화방의 천한 이름 홍화 문에 빛내올까 밤낮으로 바라옵더니 칭찬 고사하고 수청들라 분부하니 열 불여음이요 생불여사옵니다.”145)
춘향은 우선 삼강오륜이나 일부종사와 같은 규범의 실천에 있어 신분에 따른 차등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김동욱 소장 75장본 춘향전의 춘 향 역시 독서를 통해 유교적 규범을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부종사의 의지를 형성하였던 인물이므로, 춘향의 ‘열’은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춘향은 신관이 백성의 수절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자신 에게 수청을 분부한다고 하면서 신관의 악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정 절을 지킨 백성에 대한 포양(襃揚)은 본래 지방관의 임무인데, 신관이 이
143) 장자백 창본 춘향가, 151면.
144) “사대부 사또님이 사기사(事其事)를 모르시고 사면공론 생각 없이 위력공사 마 옵소서.”(장자백 창본 춘향가, 153면)
145) 김동욱 소장 75장본 춘향전, 253면.
러한 임무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이를 신관 개인의 일탈적인 악정으로 여길 뿐 지배체제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나라의 성덕(聖德)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신관 사또가 백성의 정절을 금단하는 해괴한 정사를 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이다.146)
박순호 소장 68장본 춘향가의 춘향 역시 신관 사또가 관장으로서의 역할과 도리에 충실하지 못함을 비판한다.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사또님은 나라의 봉명(奉命)하여 죄 줄 놈 죄 를 주고 상 줄 놈 상을 주고 민정(民政)을 착실히 살펴다가 전하 전에 바 치시면 그 아니 충신이요. 수절하고 있는 계집 훼절하란 사또님이요. 가망 없고 무가내요.”147)
비기생계 춘향서사에서는 신관의 악정이 춘향의 발화를 통해 구체적으 로 적시되면서, 춘향의 신관에 대한 도덕적 우위가 더욱 선연해지는 효과 가 나타난다. 그 분량이 한글 9만 6천여 자에 달하는 기생계 춘향서사인
남원고사에서 춘향은 신관 사또의 악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 다.148) 문제적 개인의 자유의지로 형성된 열을 실행하기 위해 신관 사또 의 수청 명령을 거부하고 있음을 주장할 따름이다. 남원고사에서 신관 의 치민(治民)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월매의 “신관 사또 내려와서 치민선 정 아니하고 생사람 죽이러 왔네”라는 탄식과 남원 부민의 발화를 통해서 만 문면에 드러난다. 남원고사의 춘향이 항거 장면에서 문제 삼는 것은 신관 사또의 ‘충’이지 신관 사또의 관장으로서의 도리나 ‘악정’은 아니다.
한편 일부의 비기생계 춘향서사에서는 춘향이 신관 이외의 양반 계층에 대해서도 도덕적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이는 춘향이 어사의 수청 명령에 항거하는 장면을 통해 확인된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어사 가 수청을 명령하자 다음과 같이 항거한다.
146) “나라의 성덕으로 남원 부사 제수하사 치민하러 보내셨제 남의 정절 금단하라 해괴히 내렸겠소.”(김동욱 소장 75장본 춘향전, 258면)
147) 박순호 소장 68장본 춘향가, 391~392면.
148) 남원고사의 분량이 한글 9만 6천자에 달한다는 사실은 김동욱, 「춘향전의 비 교적 연구-「남원고사」를 춘향전문학의 최고봉으로 조정하면서-」, 87면에서 확인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