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論
2) 연구 방법
본고는 춘향서사의 전변 과정에 나타난 춘향이라는 인물의 변모 양상을 살펴 춘향이라는 인물의 형상에 내포된 의미의 변화를 고찰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이를 위해 춘향이라는 인물을 어떠한 관점에서 검토할 것인가 의 문제가 제기된다. 본고는 모든 춘향서사에서 춘향이 기생이라는 신분 을 벗어나기 위해 탈기생화를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춘향은 객관적 세계가 부여한 신분을 벗어나려는 면모를 공통적으로 보여주는바, 본고는 춘향을 ‘문제적 개인’(問題的個人)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한다.
생득적 신분이 기생임에도 일반적인 기생의 삶을 거부한 춘향이라는 인 물이 문제적이라는 점은 이미 여러 선학들에 의해 논의되었다. 고을의 수 령이 기생의 딸을 능멸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normal]로 여겨지던 시대 에 이에 반항하고 당돌하게 기녀의 인격을 주장하며 정절을 내세운 춘향
3 「옥중가」 기생의 딸 신분 변동 없음
4 외설춘향전 성참판의 딸 이도령 만나기 전
대비정속 5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 기생의 딸 이도령과 결연한 후 대비정속
은 비정상적인[abnormal] 인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30) 천인 기생 춘향 이 한 남성을 선택하여 배우자로 삼고 정조를 지키며 해로하고자 한 것은 평등한 개인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의 발현이라고 해석되기도 하였다.31)
춘향의 성격이 ‘abnormal’하며 당돌하다는 말과 춘향이 자유의지를 발 현하였다는 말은 모두 춘향이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는 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기생 신분이지만 하나의 자존적(自尊的) 인격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부정하고 일부종사(一夫從死)하며 인간다운 삶 을 희구하는 춘향, 즉 탈기생화를 추구하는 기생 춘향은 바로 ‘문제적 개 인’이다.32)
서사의 주인공을 ‘문제적 개인’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게오르그 루카치 (Georg Lukάcs, 1885~1971)가 주창한 것이다. 춘향이라는 인물의 성격 을 문제적 개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언급되 었으나, 루카치의 이론에 의거하여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면밀히 검토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본고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논의를 바탕으로 춘향의 문제적 인간으로서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구명하 고 춘향서사가 문제적 개인의 서사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고자 한다.
루카치는 ‘서사적 개인’(敍事的個人), 즉 소설의 주인공은 외부세계에 대한 낯설음으로부터 생겨나며 따라서 자신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내면의 독자성(獨自性)을 확립한다고 보았다.33) 또한 소설 주인공의 내면성은 객관적인 세계의 관습과 간격을 형성하며, 이에 주인공과 객관적 세계는 상호 이질감 및 적대적 성격을 드러낸다고 하였다.34) 이러한 서사적 개 인 가운데 특히 ‘문제적 개인’은 존재하는 세계의 현실과 존재해야만 하 는 당위적 이상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내면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인물을 말한다. 그리고 소설의 진행은 문제적 개인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30) 김태준 저, 박희병 교주, 증보 조선소설사, 한길사, 1990, 195~198면 참조.
31) 성현경, 「춘향전론(1) -남원고사의 구조와 의미-」, 한국옛소설론, 새문사, 1995, 393~401면 참조.
32) 박희병, 앞의 책, 420면 참조.
33)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άcs), 반성완 역, 루카치 소설의 이론, 심설당, 1998, 71~72면 참조.
34) 게오르그 루카치, 반성완 역, 위의 책, 80~81면 참조.
서, 문제적 개인은 소설 속에서 명백한 자기인식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을 한다.35)
주지하듯 루카치의 논의는 서구 근대 소설의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다. 본고에서 검토하는 근대이행기 춘향서사는 근대 소설의 형식으로 창작된 서사 텍스트가 아니기에 루카치의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본고는 춘향이라는 인물의 성격 을 구명하는 데에 루카치의 ‘문제적 개인’이라는 개념을 원용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판단한다. 춘향서사는 창작과 향유가 일어난 당대 조선사회의 현실을 전면적으로 반영한 문학으로서 반영론적(反映論的) 관점에서 해석 할 수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이론 으로 춘향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구명할 수 있다면, 한국 문학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춘향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문제성이 더욱 선연히 드러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루카치의 문제적 개인에 관한 논의를 춘향이라는 인물에 적용해 보면, 춘향은 자신의 신분을 강하게 부정함으로써 신분제 사회의 질서에 대해 적대적인 면모를 보인다. 또한 춘향은 신분제가 통용되는 관습적 세계의 질서에 익숙한 인물들과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 즉 한 남성 에 대한 사랑을 지키며 기생 아닌 인간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 해 이도령이라는 인물과 독자적으로 결연하고 신분제 사회의 지배권력에 저항하며 자신을 확립해 나간다. 이처럼 춘향서사의 주인공 춘향이라는 인물은 ‘문제적 개인’인 것이다.36)
본고는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이 춘향서사의 전변 과정 속에 서 어떠한 양상으로 변모하는가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춘향 개인의 형상 은 물론 텍스트 내에서 춘향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인물의 형상 및 춘향 과 주변인물의 관계에도 주목하는 연구 방법을 취한다. 서사 텍스트에서 한 인물의 성격과 특질은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35) 게오르그 루카치, 반성완 역, 위의 책, 84~86면 참조.
36)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역시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소설의 주인공은 주인공의 배경을 이루는 사회와 대립하기에 고독한 주관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하였 다.(프레드릭 제임슨, 여홍상‧김영희 역, 맑스주의와 형식, 창비, 2014, 210~211 면 참조)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에서는 신분 문제와 관련하여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이 발현되므로 본고는 이 점에 주목한다. 근대 춘향서 사와 현대 춘향서사는 신분제 철폐 이후에 등장한 춘향서사로서, 춘향의 신분 문제를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와 대등한 수준에서 다루지 않는다. 따 라서 근현대 춘향서사에서는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면모가 근대이 행기 춘향서사와 비교할 때 어떠한 차이를 드러내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 다.
본고는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에서 현대 춘향서사에 이르기까지 62종의 텍스트를 연구의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그 가운데 근대이행기 춘향서사가 51종에 달하여, 연구 대상 설정에 대한 불균형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본고는 춘향서사의 전변 과정에 나타난 근현대 춘향서 사의 변모 양상과 의미를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와의 비교 위에서 고찰하기 위해서라도,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 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근대이행기 춘향서사 연구는 대개 특정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에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의 공통적 특질 및 근대이행기 비기생계 춘향서사의 공통적 특질은 충분히 구명되지 못하였 다고 생각된다. 이에 본고는 연구 대상의 양적 확대를 통해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의 범주에 따른 특성을 일반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구명해 보고 자 한다.
본고는 춘향서사의 개별 텍스트를 가능한 수평적 위치에 두는 연구 방 법을 택한다. 춘향서사의 개별 텍스트 가운데는 여타 춘향서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텍스트가 있는 반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텍스트도 있다.
그러나 본고는 춘향서사의 개별 텍스트를 기존의 춘향서사에 대한 해석으 로서 대등하게 이해하는 관점을 취하며, 이에 따라 각각의 텍스트를 수평 적 위치에 두고 고찰한다.
본고는 대부분 작자가 밝혀지지 않은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에서, 작자가 밝혀진 근현대 춘향서사까지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근대이행기 춘향 서사는 작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텍스트 문면에 나타 난 춘향에 대한 인식과 춘향 형상의 변모를 중심으로 고찰할 수밖에 없
다. 이러한 연구의 난점을 고려하여 본고는 작자가 밝혀진 근현대 춘향서 사 역시 텍스트 문면에 나타난 변모의 양상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이는 근대이행기 춘향서사와 근현대 춘향서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균형성을 확 보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본고는 춘향서사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문 학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춘향서사의 전변을 연구하고자 한다는 점을 언급 해 두고자 한다. 본고는 춘향서사에 나타난 춘향의 형상에는 작자 및 향 유자의 춘향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하여 춘향 서사의 전변 양상과 전변에 내포된 의미의 변화를 연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