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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近代移行期 妓生系 春香敍事의 확립과 변모

3) 慣習的 世界와의 갈등

춘향의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은 춘향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 인물 들과 갈등을 겪고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형상화된다. 루카치에 따르 면 독자성을 확립한 문제적 개인은 객관적인 세계의 관습과 간격을 형성 하며 적대적 성격을 보인다.55)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의 춘향은 모친 월매를 비롯하여 천인 신분에 속한 방자나 군노사령(軍奴使令) 등 관속들과도 갈등을 겪으며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춘향이 ‘춘향서사’에서 동일 계층의 인물과 갈등을 겪는다는 점은, 대개 월매와의 대립을 근거로 하여 논의되었다. 춘향서사에서 춘향은 순수한 가치를 대변하나 월매는 속물성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에 대립한다는 견해가 주를 이루었다.56) 월매는 당장의 이익을 우선하는 현실 안주형의 인물이자,57) 봉건 권력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이해되었으며,58) 춘향은 이와 반대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로 여겨졌 다. 그러나 월매와 춘향의 대립은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에 보이는 특징적 면모이다. 근대이행기 비기생계 춘향서사에서는 월매와 춘향이 동 일한 가치를 지향하며 서로 대립하지 않는 까닭이다.59)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에서 춘향과 갈등을 겪는 동일 계층의 인물 은 월매에 국한되지 않는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자신과 동등한 신분에 속한 방자 및 하급 관속인 군노사령과도 갈등을 겪는다. 남원고사의 방 자는 이도령에게 춘향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오. 춘광(春光)은 이팔(二八)이요, 인물은 일 55) 게오르그 루카치 저, 반성완 역, 앞의 책, 71~72면 및 80~81면 참조.

56) 황패강, 「춘향전 연구」(한국고소설연구회 편, 춘향전의 종합적 고찰, 아세아문 화사, 1991), 226∼228면 참조.

57) 정하영, 「월매의 성격과 기능」, 앞의 책, 92∼99면 참조.

58) 박희병, 앞의 책, 455∼458면 참조.

59) 김지윤, 「춘향서사에서 월매 역할의 변이」, 고전문학연구 56, 한국고전문학회, 2019, 127~162면 참조.

색(一色)이요, 행실은 백옥(白玉)이요, 재질은 소약란(蘇若蘭)이요, 풍월 (風月)은 설도(薛濤)요, 가곡(歌曲)은 섬월(蟾月)이라. 아직 서방 정치 아 니코 있으나 성품이 매몰하고 사재고 교만하고 도뜨기가 영소보전(靈霄寶 殿) 북극천문(北極天門)에 턱 건 줄로 아뢰오.”60)

방자는 춘향의 외모와 자질을 인정하면서도, 춘향의 성품에 대해서는 매몰하고 사재고 교만하고 도뜨다고 말한다.61) 방자의 춘향에 대한 이러 한 인식은 경판 35장본 춘향전에도 유의할 만한 변모없이 나타난다.

“저 아이는 과연 본읍 기생 월매 딸 춘향이라. 춘광은 십육이요 인물은 일색이요 행실은 백옥이요 재질은 소약란이요 풍월은 설도요 가곡은 섬월 이라. 아직 서방을 작치 않고 매몰하고 교만한 품이 영소보전에 턱을 건 줄로 아뢰오.”62)

경판 35장본의 방자 역시 춘향을 교만한 인물로 인식한다. 방자는 왜 춘향을 매몰하고 교만한 인물로 인식하게 되었던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방자와 춘향이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방 자는 도령의 명을 받고 춘향을 부르러 와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만일 향기로운 말로 맵시 있게 혀를 부려 초친 무럼을 만든 후에 항 라 속것 가래를 싱숭생숭 빼어내어 아주 똘똘 말아다가 왼편 볼기짝에 붙 였으면 그 아니 묘리가 있겠느냐. 남원 것이 네 것이오, 운향고가 아름 치 라. 네 덕에 나도 관청 고자(庫子)나 하여 거드럭거려 호강 좀 하여 보자 꾸나.”63)

남원고사의 방자는 춘향에게 기생으로서 이도령을 유혹하여 물질적 이익을 얻으라고 권유한다. 또한 방자는 자신이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에

60) 남원고사, 15면.

61) 방자의 춘향 인식에 대해서는 “자신의 현실적 신분을 부정하는 인간은 강인한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현실 속에 안주하는 여느 사람들에게는 사재 고 도고하여 매몰하고 도뜬 것으로 비쳐짐직하다”는 해석에 제기된 바 있다.(박희 병, 앞의 책, 420면)

62) 경판 35장본 춘향전, 6면.

63) 남원고사, 18면.

일조한 만큼 관청 고자라는 직책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얻기를 기대한다.

방자는 춘향을 남성 손님을 통해 물질적 이익을 얻고, 실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기생으로 여긴다. 조선시대에 지방관이나 권세 있는 양반 의 비위를 맞추어 물질적 이익을 얻고 각종 청탁에 개입하여 실리를 추구 하는 기생의 면모는 기생 계층의 일반적 속성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 다.64) 방자 역시 춘향을 일반적 기생으로 여기고 실리를 추구하며 살 것 을 권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이를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니 가면 누구를 어찌 하나, 날로 죽이나, 생으로 발기나. 비오는 데 쇠꼬리처럼 부딪치지 마라. 날 굳은 날 개새끼처럼 지근지근히 굴지 말고 말하기 싫으니 어서 이거라.”65)

남원고사의 춘향은 방자 외에도 자신을 관습적 세계의 일반적인 기생 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통해 물질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들과 갈등을 겪 는다. 신관 사또의 명을 받고 춘향을 잡으러 온 군노사령 역시 춘향과 갈 등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춘향이 본디 사재고 도고하여 매몰하고 도뜬 까 닭에 관속들은 이미 춘향에 대한 혐의를 품고 있던 터였다. 관속의 한 부 류인 군노사령은 춘향을 잡으러 가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보아라 여숙아. 내가 틀린 말이 있거든 아무리 동관(同官)이라도 곧 욕을 하여라. 아이년이 도령하고 한창 이렇다 할 제 하루는 도령 아이 보 러 들어오는 때에 내가 마침 문을 보다가 ‘이 애 춘향아 너무 그리 마라.

도령님 보고 나오는 길에 비장청(裨將廳)에 들어가서 서초(西草) 조금 얻 어가지고 오려무나. 언제라 언제니 네 덕에 발강 담배 맛 조금 보자꾸나’

이리하였지. 어느 시럽장의 아들이 틀린 말 하였겠느냐. 그 아이년이 말하 는 것을 개방귀로 알고 우리를 도무지 터진 꼬아리로 알아 눈을 거들떠도 보지 아니하고 홈치고 감치고 대치고 뒤치고 삥당그르치고 들어가니 말한 내 꼴이 어찌 되었나니. 네면 어떻게 분하겠나니.”66)

64) 조광국, 앞의 책, 81〜86면 참조.

65) 남원고사, 18~19면.

66) 남원고사, 75면.

사령은 이도령이 남원 관아에 있을 적에 춘향을 통해 서초 담배를 얻어 보려하였으나, 춘향이 자신의 요구를 무시하자 춘향에게 혐의를 품게 된 다. 사령은 춘향과 같이 천인 신분에 속한 관속으로서, 이도령과 결연한 춘향이 관아의 물품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춘향을 통해 고급의 담배를 얻어 보려고 시도하다가 무안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남 원고사의 춘향은 물질적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방자와 그 가치관을 두 고 대립하였던바, 사령의 물질적 이익에 대한 추구 역시 용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령과 춘향의 갈등은 지방관아에 속한 관속 계층 내의 신분적 위계 문 제와도 유관하다고 생각된다. ‘사령’은 문졸(門卒) 또는 나장(羅將)이라고 도 하는데,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사령이 본래 근 본 없는 떠돌이이며 가장 천하고 교화하기 어려운 부류라고 하였다. 그럼 에도 사령은 관속으로서 혼권(閽權), 장권(杖權), 옥권(獄權), 저권(邸 權), 포권(捕權)과 같이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어 하층 민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존재라고 하였다.67) 사령은 춘향과 같이 천인 신분에 속한 관속이지만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기에 향촌사 회의 하층민들에게 상당히 위세를 부렸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생은 관 속 가운데서도 가장 핍박받는 계층이었다. 기생은 그 신분이 천인으로 동 등한 관노(官奴)조차도 꾸짖고 욕하며 하대하는 계층이었다.68)

남원고사에 나타난 사령과 춘향의 갈등은 조선후기 사회의 현실을 반 영하여 형상화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평소 ‘사재고 도고하여 매몰하고 도뜬’ 성격과 행동으로 관속들 사이에서 빈축을 사고 있던 춘향이 지방관 아의 관속 가운데 상당한 위세를 확보하고 있던 사령을 경시하자, 사령은 춘향에 대해 깊은 혐의를 품는다. 사령은 신분제 사회의 관습적 질서 속 에서 확립된 위세를 춘향에게도 관철시키고자 하였으나, 춘향은 신분제

67) 정약용, 다산연구회 역주, 역주 목민심서 2, 창비, 2018, 154~159면 참조.

68)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 강계부(江界府)의 관노(官奴)들은 기생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면서 기생을 꾸짖고 욕하며 핍박하였다. 즉 기생은 천인(賤人) 신분의 관노 에게도 하대와 핍박을 당하는 조선 후기 최하층의 신분이었다.(박영민, 「19세기 지방관아의 교방정책과 관기의 경제현실」, 민족문화연구 50, 고려대 민족문화연 구원, 2009, 1∼42면 참조)

사회의 관습적 질서에 적대적인 인물이기에 사령과 갈등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69)

춘향에게도 위세를 떨치고자 하는 사령과, 사령의 태도를 경시하는 춘 향의 갈등은 다수의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에 나타난다. 남원고사

와 친연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동양문고본 춘향전은 물론 완판 26장 본 별춘향전, 완판 29장본 별춘향전, 고려대 도서관 소장 54장본 춘 향전(일명 고대본 춘향전),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 이고본  춘향전 등에서도 춘향을 잡으러 나가는 군노사령이 평소 춘향에게 혐의 를 품고 있었다는 점이 명시된다. 그러나 남원고사보다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비정되는 기생계 춘향서사에서는 사령이 춘향에게 혐의를 품게 된 계기가 남원고사에서와 다소 상이하게 서술된다. 춘향과 사령의 갈등은 다만 신분과 지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형상화되며, 물질적 이익의 추구를 두고 대립하는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1909년에 필사 된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에는 사령의 춘향에 대한 혐의가 다음 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그 제 어밀 붙고 발기갈 년 춘향이란 계집애가 양반 서방 했노라고 마 음이 도도하여 우리 보면 태를 빼고 오며가며 혹시 말을 붙인대도 청이불 문(聽而不聞)하고 옷자락만 제 치마에 스칫하면 대야에 물 떠 놓고 치마 길 부여잡고 조물조물 빤다더니 걸리었다 걸리었다 춘향이가 걸리었다. 그 물이 천 코면 걸리는 코가 있네. 이번 가서 너나 내나 그 년 사정 두는 놈 은 제 에메 오금지에 들기름 칠을 하느니라.”70)

69) 남원고사의 군노사령이 춘향에게 자신의 위세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는 점은 사 령의 다음 발화에서도 확인된다: “고이하고 흰말이다마는 한다하는 토포행수(討捕 行首) 병방군관(兵房軍官) 육방아전(六房衙前) 삼반관속(三班官屬)이라도 상해는 저에게 설설 기는 체 하거니와, 무슨 일이 숙혐(宿嫌)이 있는 이는 앙심을 잔뜩 먹고 있다가 집장(執杖) 곧 할양이면 엄지가락을 진뜩 눌러 속으로 곯게 엉덩이를 끊는 수가 있거든 하물며 저 즈음이. 어허 절통이 생긴 년 같으니. 그 말 곧 하려 하면 넋이 오르더라. 제 이도령이란 것이 무엇이니. 강류석부전(江流石不轉)이라.

우리네는 매양이지. 이번에 불러다가 만일 매가 내리거들랑 너도 사정(私情) 두는 놈은 내 아들놈이니라.”(남원고사, 75~76면)

70) 신학균 소장 39장본 별춘향가(김진영 외 편, 춘향전 전집 13, 박이정, 2004), 49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