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近代移行期 妓生系 春香敍事의 확립과 변모
2) 사랑의 獨自性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의 춘향은 이도령과의 결연 과정에서 독자 성과 능동성을 보여주며 ‘문제적 개인’으로 형상화된다. 춘향이 기생이라 는 신분을 부정하면서 이도령과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결연을 이루는 까 닭이다. 춘향의 이러한 면모는 관습적 세계의 질서에 익숙한 인물의 시각 에서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춘향의 사랑은 남원고사의 서술자가 말하였듯 조선후기의 사회의 관습적 시각에서 볼 때 ‘이상한’
일이었다.41)
40) “(어사가) 한번 속여 보려 하고 음성을 변하여 분부하되, ‘노류장화는 인개가절 이라. 들으니 너 만한 창기 년이 수절을 한다 하니 수절이 무슨 곡절고. 네 본관 사또 분부는 아니 들었거니와 오늘 내 분부도 시행 못할 소냐. 너를 이제 방석(放 釋)하여 수청으로 정하는 것이니 바삐 나가 소세하고 빨리 올라 수청하라.’”(남원 고사, 156면)
춘향은 이도령과 대등한 위치에서 결연을 이루는데, 결연의 전 과정은 춘향이 독자적으로 주관한다. 춘향이 이도령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이도 령의 부름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춘향은 이도령과 대면하여 자신이 희 구하는 사랑의 성격을 천명하고, 이도령을 집으로 초대하여 영원한 사랑 을 맹세하는 불망기를 받는다. 일련의 결연 과정에서 춘향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비기생계 춘향서사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에 월매 가 개입하여 결연 과정을 주관하는 것과 비교할 때,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의 춘향은 결연 과정에서 능동성과 독자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결연 과정에서 춘향의 독자성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때는 춘향이 이도령 을 직접 대면하고 지인지감(知人之鑑)을 느끼는 장면이다. 춘향은 기생 신분으로서 관장 자제 이도령의 부름을 거부하지 못해 광한루로 향한다.
이도령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가는 모친 월매가 형벌을 당하리라는 방자 의 겁박에 못 이겨 춘향은 이도령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광한루에 이르 러 이도령의 풍모를 직접 확인한 춘향은 다음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춘향이 이 말 듣고 추파를 잠깐 들어 이도령 살펴보니 이 또한 만고영 걸(萬古英傑)이라. 광미대구(廣眉大口)에 활달대도(闊達大度) 언어수작(言 語酬酌)하는 거동 한소열지기상(漢昭烈之氣像)이오, 당현종(唐玄宗)의 풍 신(風神)이라. 명만일국(名滿一國) 재상되어 보국안민(輔國安民)할 것이 요, 귀골풍채(貴骨風采) 헌앙(軒昂)하여 이적선(李謫仙)의 후신(後身)이 라. 두자미(杜子美) 취과낙양(醉過洛陽)에 귤만거(橘滿車)하던 풍신을 웃 을 것이요, 적벽강상(赤壁江上) 위군(魏軍)에 낙담하던 주랑(周郞)의 위풍 을 압도할지라. 춘향이 내심에 탄복흠선(歎服欽羨)함을 마지 아니 하나 사 색(辭色)치 아니코.42)
춘향은 이도령을 대면하고는 그가 유비(劉備)나 당현종(唐玄宗)과 같은 영걸이며, 이백(李白), 두목(杜牧), 주유(周瑜)와 같은 풍채를 지닌 인물 임을 알아본다. 그리하여 춘향은 이도령이야말로 자신이 평소 이상(理想)
41) “이 세상에 매우 이상하고 신통하고 거룩하고 기특하고 패려하고 맹랑하고 희한 한 일이 있것다.”(남원고사, 5면)
42) 남원고사, 21~22면.
으로 여겼던 낭군의 상(像)에 부합하는 인물임을 간취하게 되는데, 춘향 은 평소 다음과 같은 낭군을 이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첩의 원하는 바는 제요도당시(帝堯陶唐時) 적 소부(巢父) 허유(許由) 같은 사람이나 월(越)나라 범소백(范少伯) 같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으면 한(漢) 광무(光武) 적 엄자릉(嚴子陵) 같은 이나 당(唐) 나라 이광필(李 光弼) 같은 사람 진(晋)나라 사안석(謝安石) 같은 이나 삼국(三國) 적 주 공근(周公瑾) 같은 이나 송(宋) 나라 문천상(文天祥) 같은 이나 이런 사 람 아니오면 대원수(大元帥) 인(印) 빗겨 차고 금단에 높이 앉아 천병만 마를 지휘간에 넣어두고 좌작진퇴(坐作進退)하옵시는 대장 낭군이 원이오 니 만일 그렇지 아니하오면 백골이 진토 되어도 독숙공방하오리다.”43)
춘향이 남편으로 꿈꾸었던 인물은 소부(巢父)나 허유(許由), 엄자릉(嚴 子陵)과 같은 고결한 선비 또는 범려(範蠡)나 문천상(文天祥)이나 사안석 (謝安石) 같은 명신(名臣), 아니면 이광필(李光弼)이나 주유 같은 명장 (名將)이었다. 춘향은 기생이지만 한 사람의 남성과 독점적 애정관계를 맺고자 꿈꾸어왔다. 또한 자신의 천한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영웅적 면 모를 지닌 남성을 남편으로 원하고 있었다. 이에 춘향은 관습적 세계의 질서에 익숙한 인물의 시각에서는 이상하고 맹랑한 인물, 즉 문제적 인물 이 된다.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지인지감은 경판 35장본 춘향전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춘향이 추파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보니 광미대구 방면봉안 한소열지기 상이오, 명만일국 재상되어 충량지신 될 듯 풍채 헌앙하여 이적선의 풍도 로다. 내념에 탄복하고.44)
경판 35장본 춘향전의 춘향 역시 이도령이 평소 자신이 꿈꾸어왔던 이상적 남편의 상에 부합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다. 남원고사 및 경 판 35장본 춘향전에서 춘향이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리기까지 춘향의 판
43) 남원고사, 22면.
44) 경판 35장본 춘향전, 8면.
단에 관여하는 인물은 없다. 즉 남원고사 및 경판 35장본 춘향전에 나타나는 춘향의 지인지감은 춘향 결연의 독자성과 능동성을 단적으로 보 여주는 예이다. 춘향은 이도령에게 지인지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별 실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대등한 지위에서의 결연을 요구하 는바,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확고히 한다.
위에서 상론하였듯,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의 춘향은 이도령에게 별실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자신의 신분을 부정한다. 그리고 춘향은 이도령에게 자신을 관습적인 기생으로 여기지 않아야 결연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하여 말한다.
“또한 진정의 말씀 하오리다. 도련님은 귀공자시고 소첩은 천기라. 지금 은 아직 욕심으로 그리저리 하였다가 체귀(遞歸)하신 후에 미장가전(未丈 家前) 도련님이 권실 아니 하오리까. 권문세가(權門勢家)와 진신거족(縉紳 巨族)에 요조숙녀(窈窕淑女) 권귀하여 금슬종고(琴瑟鐘鼓) 즐기실 제, 헌 신 같이 버리시면 속절없는 나의 신세 가련히도 되겠구나. (…중략…) 아 무래도 이 분부 시행 못하겠소.”45)
춘향은 부친의 임기가 끝나 이도령이 상경하면 신분이 동등한 양반 가 문의 규수와 혼인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천첩(賤妾)으로서 이 도령만을 그리워하는 가련한 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춘향은 언제 버 려질지 모르는 천첩의 지위로 이도령과 결연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이 는 춘향이 이도령에게 신분상의 격차를 넘어, 보다 대등한 지위에서 결연 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언제 버려져도 좋을 천첩의 지 위로 이도령과 결연하기를 원치 않았던 춘향은 이도령에게 영원한 사랑과 신의의 약속을 명기한 불망기를 써 줄 것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도련님 굳은 뜻이 굳이 그러하실진대 요마소첩(幺麽小妾)이 불승황공 (不勝惶恐)이라. 어찌 봉승치 아니리잇고. 다만 세사(世事)를 난측이오니 후일 빙거지물(憑據之物)이 없지 못할지라 일장문서를 만들어 소첩의 마 음을 실해옵소서.”46)
45) 남원고사, 22~23면.
이에 이도령은 다음과 같은 불망기를 써 준다.
낙양(洛陽) 과객(過客)이 산천경개 구경코저 우연히 광한루에 올랐더니 생각 밖 천연(天緣)이 지중하여 삼세숙원(三世宿願) 만나오니 이 이른 천 생배필이라. 백년기약 맹세할 제 천지일월성신(天地日月星辰) 후토십방세 계(后土十方世界) 제불제천(諸佛諸天) 한가지로 살피시니 산천(山川)은 이변(易變)이나 차심(此心)은 난변(難變)이라 천고가인(千古佳人) 행봉 (幸逢)하여 동거동혈(同居同穴) 맺사오니 (…중략…) 초무상중지기(初無桑 中之期)로 금수월하지연(今遂月下之緣)이오니 기위배약지리(豈爲背約之 理)리오. (…중략…) 수물소려(須勿所慮)하여 이차위신(以此爲信)하라. 모 년 모월 모일 삼청동 이몽룡은 삼가 서하노라.47)
이도령은 불망기를 통해 산천은 변해도 자신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 며, 춘향이라는 천고가인과 백년기약을 맺어 살아서는 함께 살고 죽어서 는 함께 묻힐 것임을 맹세한다. 또한 자신과 춘향의 만남은 애초에 상전 (桑田)에서의 밀통(密通)이 아니며, 월하노인이 맺어준 부부의 인연이므 로 이 기약을 저버리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 불망기를 신표(信 標)로 삼으라고 말한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이러한 내용의 불망기를 받고서야 “심중(心中)에 대희(大喜)”하여 이도령과의 결연을 승낙한다. 불망기를 통해 이도령과 자신의 만남이 밀통이 아니라 부부의 연을 맺는 행위이며, 사랑의 약속이 영원하리라는 점이 증빙되었기에 춘향은 이도령과의 결연을 결행하는 것 이다. 요컨대 춘향은 불망기를 받음으로써 언제 버려져도 좋을 천첩으로 서가 아니라, 아내의 대우를 받으며 보다 대등한 관계에서 이도령과 결연 한다.48) 이 또한 자기의 신분을 부정하며 일반적인 기생으로서 살고자
46) 남원고사, 23면.
47) 남원고사, 24~25면.
48) 성현경은 남원고사의 춘향을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속하는 배우자 선택권‧사랑 권‧결혼권 등을 희구하는 인물로 보았으며, 불망기는 춘향과 이도령 사이에 작성된 계약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계약을 통해 불평등한 수직 관계였던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느 정도 평등한 수평적 관계로 조정된다고 해석한 바 있다.(성현경, 앞의 책, 392~393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