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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近代移行期 非妓生系 春香敍事의 출현과 그 특징

1) 여성 규범으로서의 ‘烈’

근대이행기 비기생계 춘향서사의 주요 텍스트에서는 춘향의 열(烈)이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난다. 현전하는 비기 생계 춘향서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텍스트인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은 평소 독서를 통해 유교적 규범을 익혀온 인물로 형상화된다. 「남창 춘향 가」의 춘향은 이도령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 관념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춘향의 방에 열녀 그림 이 걸려 있었다는 점을 통해 확인된다.

대부분의 춘향서사에는 이도령의 시선에서 춘향의 방을 묘사하는 대목 이 삽입되어 있다. 그 가운데 춘향 방의 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대한 사설을 흔히 ‘사벽도사설’(四壁圖辭說)이라 칭한다. 춘향서사에서 사벽도 사설은 대개 널리 알려진 고사(故事)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구성된다. 전 형적 기생계 춘향서사인 남원고사에서는 춘향 방의 동벽(東壁)에는 상 산사호(商山四皓)를 그린 그림과 구운몽(究雲夢)의 한 장면을 그린 그 림이, 서벽(西壁)에는 도연명이 귀거래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과 엄자릉이 은거하며 낚시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남벽(南壁)에는 유비(劉備)가 제 갈공명을 초빙하러 가는 그림과 이태백이 달빛 아래 술을 마시는 그림이, 북벽(北壁)에는 강태공이 낚시하는 그림과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그

림이 걸려 있는 것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근대이행기 기생계 춘향서사에 서 사벽도사설은 유의할 만한 변모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남창 춘향가」

에서 사벽도사설은 열녀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타의 춘향서사에 삽입된 사벽도사설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사벽에 붙인 것은 열녀 그림뿐이로다. 동벽에 붙인 그림 소상강에 밤비 개고 동정호에 달 오르니 아롱아롱 죽림 속에 백의 입은 두 부인이 이십 오현(二十五絃) 타는 거동이요, 남벽에 붙인 그림 구의산(九疑山) 가을 달 에 십면 매복하였는데 천하장사 초패왕이 기음장중(起飮帳中)하올 적에 남자장(男子裝) 차린 미인 옥수로 장검 쥐고 목 찌르는 거동이며, 서벽을 바라보니 장신궁(長信宮)에 꽃이 지고 거친 풀이 만정(滿庭)한데 지나가 는 까마귀가 소양(昭陽) 일색 띄워 오니 미인이 환선(紈扇) 쥐고 바라보 는 거동이요, 북벽을 바라보니 금곡(金谷) 행락 십리금장 일조풍파 웬 일 인고. 누전갑사 분여설에 사세가 위급하니 옥빈홍안 일미인이 삼월 춘풍 낙화같이 타루(墮樓)하는 거동이라.126)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남창 춘향가」에서 사벽도사설은 아황 과 여영, 우미인(虞美人), 반첩여(班倢伃), 녹주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구 성된다. 춘향 방에 걸린 열녀도 속의 인물은 모두 자신이 모시던 남성을 위해 절개를 지키거나 남편을 따라 자결한 여성들이다. 이들은 모시던 남 성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하여 오랜 시간 열녀로 회자되어 온 인물들인 바, 「남창 춘항가」의 사벽도사설이 이러한 열녀들의 그림으로 구성되었다 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본고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62종의 춘향서사 가운데 사벽도 사설이 열녀의 그림으로 구성된 텍스트는 「남창 춘향가」가 유일하다. 「남 창 춘향가」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한 면모를 보여주는 완판 84장본 열녀 춘향수절가에서도 춘향의 방에는 이태백이 달빛 아래서 술을 마시는 장 면을 그린 <월선도>(月仙圖)와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그림 및 항아(姮娥)를 그린 그림이 걸려있는 것으로 서술된다. 즉 「남창 춘향가」

에서 사벽도사설이 열녀의 그림만으로 구성된 것은 의도적인 개작이다.

126) 「남창 춘향가」, 17~18면.

「남창 춘향가」의 춘향은 어려서부터 열녀전과 「내칙」편을 밤낮으로 공부하며 유교적 여성 규범을 학습하여 온 인물이다. 그러하기에 <열녀 도>를 방에 걸고 본보기로 삼으며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에 대한 실천 의지를 다져갔다고 생각된다.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의 열이 유교 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에 가깝다는 점은 춘향의 신관 사또에 대한 항 거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춘향은 신관 사또의 수청 명령에 항거하며 다음 과 같이 말한다.

“소녀의 먹은 마음 사또님과 다르오니 도령님이 무신(無信)하여 설령 다 시 안 찾으면 반첩여의 본을 받아 옥창형영(玉窓螢影) 지나갈 제 추야(秋 夜) 나유(羅帷) 지키다가 이 몸이 죽삽거든 황릉묘를 찾아가서 이비 혼령 모시옵고 반죽지(斑竹枝) 저문 비와 창오산 밝은 달에 놀아 볼까 하옵는 데, 재초(再醮) 수절하란 분부 시행할 수 없삽네다.”127)

위의 발화에서 춘향은 자신이 수절을 실천함에 있어 이도령이 신의를 지키는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남창 춘향가」에서 춘 향의 열이 이도령과의 상호 신의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열과 같지 않음 을 의미한다. 춘향서사에서 춘향의 열은 전통적 의미의 열과 달리, 이도 령과의 약속의 이행 및 신의의 관철로서 쌍방의 상호관계에 입각해 있다 고 논의되어 왔다.128) 그러나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은 이도령이 무신 (無信)하여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다고 하여도, 반첩여나 이비와 같 이 결연한 남성에 대해 절개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반첩여와 이비는 춘향 의 방에 걸린 그림 속의 인물들로 춘향은 이 열녀들의 본을 받아 열행을 실천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의 열은 역사 속의 전형적 열녀들이 행한 열과 같은 것으로 형상화되는바 유교적 여성 규범 으로서의 ‘열’과 등치된다.129)

「남창 춘향가」에서 춘향의 열이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과 등치

127) 「남창 춘향가」, 41면.

128) 박희병, 앞의 논문, 437~441면 참조.

129) 김지윤, 「<춘향신설>‧남창 <춘향가>‧<익부전>의 춘향 형상과 그 의미-작자 의 계층에 주목하여」, 111~115면 참조.

된다는 점은 남원고사 등 기생계 춘향서사와의 비교를 통해 더욱 명확 해진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신관 사또에게 항거하며 자신의 열행을 다 양한 인물들의 행위에 견준다. 이는 다음의 발화에서 확인된다.

“자고로 열녀 하대무지리오. 양구조어 엄자릉도 간의태후 마다하고 자릉 대에 피우하고, 수절의사 백이숙제 불식주속하려 하고 수양산에 채미가를 노래하고, 천하진인 진도남도 화산석실 수도하고, 대순이비 아황여영 혈루 류황 따라 있고, 유한림의 사부인도 수월암에 엄적하고, 낙양의녀 계섬월 도 천진루에 글을 읊어 평생 수절하였다가 양소유를 따라가고, 태원 땅 홍 불기도 난세에 뜻을 세워 만리장정 종군하여 이정을 따랐으니 몸은 비록 천하오나 절개는 막는 법이 없사오니 물 밑에 비친 달은 잡아내어 보려니 와 소녀의 정한 뜻은 차생에 앗지 못하오리이다.”130)

남원고사의 춘향은 간의대부(諫議大夫)라는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 은 거한 후한(後漢) 때의 선비 엄자릉, 주나라 무왕에 의해 은나라가 멸망하 자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간 백이(伯夷)와 숙제 (叔齊), 벼슬을 마다하고 화산에 은거하였던 송(宋)나라 때의 도사(道士) 진도남(陳圖南) 등 절개를 지킨 은사(隱士)를 열녀로 지칭한다. 또한 춘 향은 아황과 여영, 사부인, 계섬월, 홍불기를 열녀로 지칭하며 이들의 절 행에 자신의 열행을 견준다. 남원고사에서 춘향의 열은 다분히 ‘절’(節) 에 가까운 관념으로 형상화되며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의 열과 등치되지 않는다.

남원고사의 춘향은 <집장가>에서도 자신의 열행을 개자추(介子推) 나 오자서(伍子胥)의 행위에 빗댄다.131) 월매 역시 춘향의 수절을 제갈공 명, 백이‧숙제, 개자추, 굴원(屈原)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132)

130) 남원고사, 88~89면.

131) “이별 낭군 떠난 후에 이군불사 본을 받아 이부불경하려 하고 이 마음을 굳게 먹어 이 세상을 하직하여 이비의 절을 따라 이월한식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오리 다.”(남원고사 90면); “오륜행실 지킨 나를 오히려 모르시니 오월비상 나의 함원 오자서의 동문결목 같이 오매에 사무치니 오형을 갖추어서 오차에 발기거나 오리 오리 오리시오.”(남원고사, 90면)

132) “한군사 제갈량도 갈충보국하려다가 오장원 추야월에 장성이 떨어지고 등피서 산 백이숙제 불사이군하려다가 수양산 중 아사하고 주류천하 개자추도 할고사군하

판 30장본 춘향전의 월매 또한 춘향의 정절을 굴원, 백이‧숙제, 아황‧여 영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133) 남원고사 및 경판 춘향전

 등 전형적 기생계 춘향서사에서는 춘향의 열이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서 의 열이 아니라 ‘절’(節)에 등치된다.

근대이행기 비기생계 춘향서사에서 춘향의 열이 유교적 여성 규범으로 서의 ‘열’에 등치된다는 점은 장자백 창본 춘향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장자백 창본 춘향가의 춘향 역시 평소 독서를 통해 유교적 규범을 학습 하고,134)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일부종사의 의지를 형성한 인물이다.135) 춘 향은 신관 사또에게 항거하며 자신의 수절이 일부종사를 실천하기 위함임 을 천명한다.

“기생이라 하옵는 게 근본 절행은 없사오나 올라가신 구관 사또 자제 도련 님과 백년기약 깊이 맺어 일부종사 바라오니 과연 분부 시행 못하겠소.”136)

신관 사또는 춘향을 이념적으로 회유하는데, 식부인이나 예양(豫讓)과 같이 재초(再醮)를 하고도 절행으로서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으니 이들을 따라 수청을 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자백 창본 춘향가의 춘향은 신관 사또에게 항거하며 자신의 열행을 낙창공주와 녹주의 열행에 견준다.

“낙창(樂昌) 월궁(越宮)의 수치와 녹주 금곡의 절행을 아는 바로 충불사 이군과 열불경이부절을 본받고자 원이온데 수차 분부 이러하옵시니 열불

려다가 면산 중에 불타 죽고 삼려대부 굴원이도 위국진충 애쓰다가 멱라수에 빠져 있다. 너도 열녀 되려거든 개천 구멍에나 빠지려무나.”(남원고사, 111면)

133) “춘향 어머 미음 그릇을 들고 오며 하는 말이 저리하면 네가 정절을 지키어 이 름을 죽백에 올리느냐. 애고 애고 설움이야. 이 설움도 또 있는가. 만고충신 굴원 도 부득기지함에 멱라수에 빠져 죽고, 불사이군 백이숙제도 충절을 지키어 수양산 에 주려 죽었으니 이를 효칙하여 열녀 되려거든 상강에 빠져 죽음이 그 아니 마땅 한가.”(경판 30장본 춘향전, 79면)

134) “칠세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을 나날이 가르치니”(장자백 창본 춘향 가, 71면)

135) “또 한 편을 바라보니 춘향이 일편단심 일부종사 뜻을 두고 글 한 귀 지어 침 상에 붙였으되 대우춘종죽이요 분향야독서라. 자작지필 붙였으니 춘향 절개 알리 로다.”(장자백 창본 춘향가, 69~71면)

136) 장자백 창본 춘향가, 1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