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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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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성과, 장소간의 강한 상호연계성에 기초한 네트워크 사회와 관련하여 공간 의 상호관계를 파악한다. 그러나 1960년대의 지역 계획과 최근의 이러한 논의 사 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최근의 논의는 ‘자연적’인 흐름과 연계를 보장 하는 정부 지원의 적정 수준을 ‘탐색’ 하는 것을 강조한다.

“성장지역주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경제력이 쇠락한 지역 중, 기반 시설 개선이나 지원금 형식으로 정부의 자원이 집중되는 곳의 경제성장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이렇게 시발된 경제성장은, 그 지역의 배후지역에 유치된 기업들과의 연계를 통해 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되며, 이는 지역경제가 더 이상의 정부지원 없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계속 된다(Smith and Farmer, 1985: 59).”

이는 철저히 정부주도의 개발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는 인센티브를 통해 산 업을 재배치하고 공공투자를 통해 민간부문의 활성화를 꾀한 1970년대와 1980년 대의 정책들과 방향을 같이한다. 비록 1963년까지는 이러한 정책이 일반적인 경 제계획의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스코틀랜드 정부는 신도시 개발과 ‘신도 시에서의 경제성장을 스코틀랜드 센트럴 벨트 경제 재건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Wannop and Smith, 1985: 210). 또한 신도시 개발공사의 정책 집행과, 신도시 개발을 광역 지역계획과 연계시키는 것은 이 지역성장을 이루는 핵심 요소였다. 리빙스턴은 이러한 새로운 인식의 상징이었으며, 초기 지역계획 의 핵심 목표를 충족시킨 대표적인 예였다.

시 지정으로 시작된 일련의 지역 개발 과정의 하나였다. 비록 리빙스턴의 신도시 지정이 1963년 발간된 중앙 스코틀랜드 백서보다 이른 것이었으나, 그 논리적 정 당성은 1963년 이후 체계화된 광역 지역 전략에 의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어 바인의 신도시지정은 이러한 광역 전략의 진일보로 여겨졌다. 어바인은 중앙 스 코틀랜드 지역의 공간 개발을 마무리하기 위한 계획, 즉 기존의 지역경제개발 대 상 지역을 클라이드만(Firth of Clyde)까지 연장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바인의 개발은 ‘애이쉬어(Ayrshire)에 산업발전을 주도할 성장의 중심지를 마 련’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스트킬브라이드와 함께 어바인은 1946년에 세워진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 행정청 장관은 1943년에 3개의 지역 위원회 - Clyde Valley, Central and South East Scotland, 그리고 East Central Scotland –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가 있은 후 2년 간의 작업을 거쳐 광역전략에 입각한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이 세워졌다. 이 계 획에는 글래스고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글래스고우 인구밀도 완화가 계획 목 표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과잉 인구의 교외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4개의 신도시를 건설할 것과 지역 내 소도시들을 확대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점은 ‘쇠퇴하는 전통적인 산업을 신흥 산업으로 대체’

하는 지역정책 목표를 가지고, 전체 클라이드 밸리 하위지역을 하나의 ‘경제 단위’

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은 <그림 1-1>에서 보다시피 센트럴 벨트의 서쪽만을 포함하고 있다(어바인부터 스터링쉬어(Stirlingshire) 까 지, 그리고 글래스고우의 북쪽 부분까지). 이 지역계획은 앞서 언급한 중앙 스코 틀랜드 백서보다 거의 20여 년 전에 수립된 것으로서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시를 대부분 교외화에 따른 새로운 주거지 건설의 수 단으로 생각하던 시절에 이 지역계획은 이미 국가산업의 재배치 정책과 관련하 여 신도시 건설을 해야 함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 정책은 ‘공업단지의 공 급, 지방정부에 의한 산업지역・지구제’, 그리고 낙후지역에 대한 종합적인 활성 화 방안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계획이 담고 있는 산업 정 책과 인구 분산화에 대한 언급을 보면, “(산업재배치는) 인구 분산계획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신산업은 반드시 혼잡한 중심도시와 떨어진 신도시에 입지하 도록 유도하여 신도시 유입 인구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인구와 일자리를 예정된 신도시에 동시에 입지시키도록 하는 것이 이 지역계획의 목표였다. 이러한 ‘단일 경제’ 관점은 여러 지방 정부가 함께 참여한 교통계획에 반영됨으로써 실현되었다. 1966년 어바인의 신도시 지정은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에 의해 이 지역 기반 시설 개선이 시작된 지 20년 후에 이루어 진 것이다. 이 지역계획은, 이 지역을 에딘버러, 그리고 잉글랜드와 연결 하는 새로운 도로와 고속도로 확충을 강조했고, 이 지역의 지리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터널 건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도로 건설과 함께, 전철화와 현대 화를 통한 철도 개선도 추진되었다. 글래스고우 인근에 위치한 지역 공항을 활성 화하는 등, 항공 수단의 연계성 확보도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보았다. 광역 지역 내, 그리고 지역 간 연계성을 제고하는 목표는 전략적인 지역계획의 부재로 그 실현이 지연되고 있었으나, 1946년 제정된 신도시 법에 따라 이스트킬브라이드 가 1947년 신도시로 지정됨으로써(영국 전체로는 6번째 신도시였고, 스코틀랜드 에는 첫 신도시였다), 이 지역계획의 추진에 힘이 실렸다. 다만,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에 포함된 교통계획은 주거지 개발이나 교외인구 문제와 관련된 것보다 는 덜 관심을 받았다. 지방 정부는 이 지역 계획이 제시한 기반 시설 개선안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1947년에 새로운 교통법(Transport Act)이 제정됨에 따라 철 도망이 전국적으로 연결이 가능해졌는데, 영국 교통부는 이 지역의 하위지역에 직접 철도 현대화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1960년대까지 애이쉬어와 스코틀랜드 센트럴 벨트의 다른 지역에서 이미 도로 와 철도 시스템이 개선되었으며, 따라서 어바인에 입지한 신도시 개발은 보다 나 은 지역 연계성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도시 기반 시설 과 비교한다면 훨씬 나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에는, 1943년에 작성된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을 광역에 걸쳐 집행할 행정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45년에 제정된 산업재배치법(Distribution of Industry Act)은 성장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신도시 법은 교외화와 계

획, 신도시 건설 등을 다루고 있었고, 교통법은 기반 시설 개선에 새로운 가능성 을 열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법은 각자의 영역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뿐 종합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방과 지역계획의 역할은 여전히 미 약했다. 리빙스턴 예에서 본 바와 같이, 당시 스코틀랜드 행정청이 지역계획의 감독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역 계획에 대한 논쟁이 표면화되기는 하였으나, 일부 지역만이 실질적인 계획 능력 이 있었던 당시, 스코틀랜드 행정청은 지역계획 감독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 였다. 1960년대 초기, 영국 정부가 발주한 많은 지역경제 연구가 이어지면서, 제1 기 신도시 건설기간에서 얻은 경험은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 다. 남부 잉글랜드에서 성장에 따른 문제점들, 북동부 지역의 경제쇠퇴 현상 등 이 신도시 건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연구가 이어지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중앙 스코틀랜드백서(대부분의 아이디어는 Clyde Valley Regional Plan 에 기초 하고 있었지만)는 지역계획 논쟁에서 중대한 진일보를 담고 있었다. 1962년 Scottish Office의 대규모의 조직 개편에 따라 백서 내용은 더욱 신뢰를 얻게 되 었다. ‘물리적, 경제적, 교통계획을 연계하여 그동안 스코틀랜드 보건부(Scottish Health Department)와 내무부(Scottish Home Department)에 나뉘어져 있던 행 정 기능을, 새로 설립한 스코틀랜드 개발부(Scottish Development Department) 로 통합하였다. 스코틀랜드 개발부는 처음 클라이드 밸리 지역계획에서 시작하 여 중앙 스코틀랜드백서에 반영되었던, 광역 지역 의제들을 실현해 나가는데 필 요한 정책 수단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는 법률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어바인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 신도시로 지정되었다. 리빙스턴은 스코 틀랜드 지역주의 초기에 신도시로 지정된 반면, 어바인은 보다 지역 경제계획에 대한 의욕이 충만하고, ‘성장 지역(growth area)’ 개념이 무르익던 무렵에 신도시 로 지정되었다. ‘이스트킬브라이드, 글렌로시스, 쿰버날드, 리빙스턴 등과 함께, 이 성장 지역 전략은 1962년 당시, 단지 교외화 지대로만 여겨졌던 도시들에게까 지 적용되었으며, 스코틀랜드의 다섯 번째 신도시인 어바인은 특히 성장 거점’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어바인의 공식적인 신도시 지정 이전에도 이미 어바

인의 잠재성은 명백해 보였다.

"어바인은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전후시기에 이미 형성된 주거지 였으며, 사실상 성장 지역이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행정청은 이 지역의 산업 확 장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은 이 지역에 공업단지를 구성하고, 공장 부지를 공급하며, 이주해 오는 노동자들을 위한 좋은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 등 양질의 도시환경을 마련하고 시행함으로써 실현 가능해졌다(ibid, 59)."

어바인의 경우, 인구 분산은 부수적인 목표였다. 어바인 신도시 지정의 주요 목표는 경제성장의 촉진에 있었다. 대부분의 신도시 건설 공사가 주변의 주요 중 심 도시들과 ‘인구분산 협약’을 작성하였던 것에 비해 어바인 개발공사는 글래스 고우와 이러한 협약을 맺지 않았다. 어바인이 잠재적인 투자자들에게 글래스고 우의 교외 주택단지 중 하나로 비침으로써 역동적인 성장 거점으로서의 이미지 가 탈색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어바인은 영국의 제2기에 건설된 신도시 중 가장 마지막에 건설되었지만, 위와 같은 부지 매각 방식을 사용한 최초의 도시이 기도 하다. 똑같은 전략이 포기된 스톤하우스 사업에도 이용되었는데, ‘지역 성 장거점’으로 당초 홍보되었던 것이다. 스톤하우스는 앞서 언급한대로 1970년에 신도시로 지정되었으나 1976년 사업이 중지되었다. 스톤하우스사업은 스트래스 클라이드 지역보고서(Strathclyde Regional Report)가 나온 후 중지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글래스고우의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신도시 개 발은 이미 글래스고우에 과잉 공급된 공공주택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할 수 있다 는 견해를 담고 있었다. 비록 스톤하우스는 ‘성장거점’으로 홍보되었지만, 신도시 가 여전히 주택 성장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광역 지 역의 관점에서 보자면, 스코틀랜드의 경험은 신도시가 성장 거점 이론을 현실화 하는 수단으로써 보다 큰 경제 계획 전략의 일부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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