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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신도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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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잠재성은 명백해 보였다.

"어바인은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전후시기에 이미 형성된 주거지 였으며, 사실상 성장 지역이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행정청은 이 지역의 산업 확 장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은 이 지역에 공업단지를 구성하고, 공장 부지를 공급하며, 이주해 오는 노동자들을 위한 좋은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 등 양질의 도시환경을 마련하고 시행함으로써 실현 가능해졌다(ibid, 59)."

어바인의 경우, 인구 분산은 부수적인 목표였다. 어바인 신도시 지정의 주요 목표는 경제성장의 촉진에 있었다. 대부분의 신도시 건설 공사가 주변의 주요 중 심 도시들과 ‘인구분산 협약’을 작성하였던 것에 비해 어바인 개발공사는 글래스 고우와 이러한 협약을 맺지 않았다. 어바인이 잠재적인 투자자들에게 글래스고 우의 교외 주택단지 중 하나로 비침으로써 역동적인 성장 거점으로서의 이미지 가 탈색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어바인은 영국의 제2기에 건설된 신도시 중 가장 마지막에 건설되었지만, 위와 같은 부지 매각 방식을 사용한 최초의 도시이 기도 하다. 똑같은 전략이 포기된 스톤하우스 사업에도 이용되었는데, ‘지역 성 장거점’으로 당초 홍보되었던 것이다. 스톤하우스는 앞서 언급한대로 1970년에 신도시로 지정되었으나 1976년 사업이 중지되었다. 스톤하우스사업은 스트래스 클라이드 지역보고서(Strathclyde Regional Report)가 나온 후 중지되었는데, 이 보고서는 글래스고우의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신도시 개 발은 이미 글래스고우에 과잉 공급된 공공주택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할 수 있다 는 견해를 담고 있었다. 비록 스톤하우스는 ‘성장거점’으로 홍보되었지만, 신도시 가 여전히 주택 성장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광역 지 역의 관점에서 보자면, 스코틀랜드의 경험은 신도시가 성장 거점 이론을 현실화 하는 수단으로써 보다 큰 경제 계획 전략의 일부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도시가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두 신도시 예에서 보듯이 우리는 신도시 자체, 스코틀랜드 중부지역에 걸쳐 발생한 경제 및 산업성장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그러나 먼저 이들 신도시가 달성한 인구증가를 먼저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62년 리빙스턴이 신도시로 지정될 당 시 인구는 2,100명에 불과했으며, 신도시 지정에 따른 목표인구는 7만 명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바인은 1966년 신도시로 공식 지정될 당시 이미 상당 한 규모의 도시였다. 당시 인구는 34,600명이었으며, 목표 인구는 95,000명으로 정해졌다. 1980년대 초, 공식적인 지정해제 절차의 하나로 스코틀랜드 신도시 개 발공사들은 각각 구체적인 성과 보고서를 스코틀랜드 행정청 장관에게 제출하게 되었다. 1984년 정부는 ‘도시의 연한과 이미 시작된 개발의 범위를 감안하여’ 일 정 정도의 목표인구가 달성된 곳에 대해 지정해제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Prince, 1995: 76). 신도시개발공사의 완전 해체 당시, 리빙스턴의 인구는 46,000 명(1962년의 22배)에 이르렀고, 어바인은 57,400명(1966년의 1.7배)에 달했다. 지 정 당시의 목표인구에는 달성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았고, 신도시 건설이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 없었던 시점(두 도시의 신도시 개발 공사는 1990년대 후반에 해 체된다)에서의 이러한 수자가 보여주는 것은 리빙스턴과 어바인에 놀라울 정도 의 인구 증가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인구증가가 과연 신도시 지정과 얼마 나 관련이 있느냐 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있다. 1945년과 1966년 사이 에 이미 정해진 성장추이를 달성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와 산업 변화에 대한 평가는 개발된 신도시들과 스코틀랜드 센트럴 벨트 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영국지역사회개발부(Department for Communities and Local Government)가 2006년 발간한 자료는 주로 잉글랜드의 예를 다루고 있으나 다른 지역의 신도시 사례도 많이 인용하였고 있다. 이 보고서는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신도시 개발 정책은 제조업 고용인구의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공공투자가 이루어 진 영국의 다른 지역의 지역 정책에 비해 신도시정책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신도 시의 지역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평가한 기존의 연구들은 신도시가 중추적인 성

장 거점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늘 주변 지역과 공유된 것은 아니었으며, 낙후 지역에 입지한 신도시는 종종 주변 지역과 동떨어 져 경제적 이점을 혼자만 향유하는 섬처럼 되기도 하였다. 1960년과 1978년 사이 에 영국 전체의 제조업 고용은 11.5%가 감소하였으나 신도시에서는 25%가 증가 하였다.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제조업이 쇠퇴하던 시기에 신도시에 제조업이 집중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기존 경제적 역량이 신도시 간 성장 수준의 상대적 차이에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 중부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 도시는 성장을 위해 접근 가능한 자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앞의 DCLG 보고서는 영국 신도시를 광역 지역 정책이나 계획의 관점에서는 거의 살펴보고 있지 않다 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분석 없이 이 보고서는 ‘신도시는 생각보다 는 해당지역에 큰 경제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고 결론짓고 있다. 제조업 고 용 성장에 대한 한 연구(Fothergill et al, 1983)를 보면 광역지역 효과에 대해 다 음과 같은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신도시 개발 공사들은 지정지역 외부의 지역에도 경제 성장의 혜택을 미치 게 하는 보조 계획(ancillary schemes)을 집행하였다.

․신도시는 광범위한 배후지역에 거주하던 노동자들에게 고용을 제공하였고, 이 낙후지역에 부와 번영을 창출함으로써 노동력을 끌어들이는 지역이 되었다.

․신도시는 자족적 단위가 아니었고 인구 이동과 경제활동의 광역 네트워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DCLG 보고서는 대도시가 ‘집적의 경제 에서 얻어진 생산성 증대를 통해 산업 자본가에게 명백한 혜택을 제공’ 하며 대부분의 경제성장은 대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 한 주장은 최근의 다핵・다중심 개발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신도시를 지역 네트워크와 연계하여 평가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최근 신도시는 제조업보다는 첨단산업에 비중을 둔 다국적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비록 신도시가 광역 지역 변화의 주요 구성 요소라 할지라도 이러한 효과를 광역지역 변화에서 따로 떼어내어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도시는 성장과 확산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였으며 신도시 정책의 성공은 고용에 필요한 새로운 공간 제공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는 고용이 기존의 대도시 권역에서 신도시로 이동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신도시 정책은 기 존 중심의 약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일반적 주장에서 유의할 점은 신도시의 경제적 효과를 다른 지역 정책 이나 국가 경제의 흐름과 구분하여 살펴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낮은 인플레이션과 저금리는 경제성장을 떠받치는 주요 원인이었고 신도시 정책도 분명히 이러한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신도시 정책은 국가주의가 강조되고, 중앙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었던 시기에 시행된 정책이다.

이러한 방식의 중앙집중식 계획의 시대는 곧 막을 내리게 되는데, 신도시 정책의 경제적 효과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이에 일조를 했다. 신도시 효과를 평가하는 많은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신도시 개발의 자체 효과와 다른 경제적 조건들에 의 한 효과를 구별해 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신도시 정책은 특정 기간 동안의 고 용 성장에 초점을 두었는데 과연 신도시가, 새로운 기회와 투자, 기업을 창출하 는 ‘성장의 중심지’이었을까? 신도시에 집중된 투자는 광역지역의 번영을 이끌어 냈을까? DCLG 연구가 인용한 많은 연구들은 신도시에 집중된 성장 중 지역과 국가의 공헌에만 중점을 두고 있으며, 경제 낙후지역, 하위지역, 광역 지역과의 연계성에 대한 언급에서는 인색하다. 이는 스미스와 파머(Smith and Farmer, 1985: 59)가 정의한 성장거점의 잠재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며 최근의 다 핵・다중심 개발 이론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경우는 이러한 일반 적인 평가와는 분명히 다르다.

클라이드 밸리과 스코틀랜드 중부를 위한 광역 경제 전략에서 보듯이, 신도시 는 경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New Towns Record (NTR, 2002)는 2002년까지 지정된 영국 신도시 관련 문서목록을 제공하는데, DCLG 보고서에 인용된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목록도 신도시 내 에서 달성된 성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리빙스턴과 어바인에 대한 주요 자료들

은 지정된 지역 내의 산업 활동 확대에만 집중되어 있다. 리빙스턴의 경우 신도 시 개발은 지정 지역의 북동쪽에 위치한 휴스턴(Houston)에 산업단지를 조성하 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966년까지 9개의 새로운 공장이 지어졌고, 6개가 건설 중에 있었으며 종업원 1,200명 규모의 미국 철강회사가 1967년에 입주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개발은 휴스턴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후 산업 단지 의 개발은 딘(Dean)에서 이루어 졌다. 초기 개발이 이 두 지역에 집중된 것은 이 지역이 주요 고속도로와의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즉 이 두 지역의 개발은 광역지역계획의 결과였다. 초기에는 탈공업화 조류에 밀려 투자가 활발하지 않 았다. 특히 많은 개발 가능 지들이 혈암유(shale oil) 폐기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1981년 NEC의 투자를 등에 업고 새로운 개발이 뒤따랐고, 1980년대를 통해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1966년 이후 지정지역의 남부인 부르스필 드(Brucefield)와 윌리암스턴(Williamston)에 두 개의 산업 단지가 추가로 조성되 어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게 되었다. 1978년부터 개발공사는 새로운 투자자에게 필요한 산업단지를 계속하여 제공하였고, 이러한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신도시 에 대한 수요는 계속 이어졌고, 3개 단지와 많은 중소규모 산업단지가 개발되었 다. 기업유치는 성공적이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지정지역 외부에 대 해 새로운 투자가 계속되었다. 개발공사는 주변지역의 계획을 담당하는 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투자는 적어도 신도시의 직접 접해 있는 배후지역에 까지 확산되었던 것이다. 리빙스턴은 고용이동과 부 창출의 중심지였다. NTR 보 고서는 ‘리빙스턴은 기본계획이 예정하였던 대로 하위지역의 고용 중심지가 되 었다. 하나의 하위 지역에 불과했던 리빙스턴은 물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스코틀랜드 신산업의 중심이 되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1996년 12월, 리빙스턴에는 1,000여개의 업체와 31,000의 일자리가 있는 것으 로 추산되었다. 이중 37%는 제조업으로 추산된다(영국 평균 20%). 제조업 비중 이 높은 주요 원인은 지난 15여 년간 해외로부터 대규모의 제조업체 유치에 성공 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이 주요 해외 투자자였고, 전자산업이 이러한 성장의 중심 역할을 했다. 대규모 제조업체들이 지역 경제의 국제화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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