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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 10. 나, 하느님의 도구이자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

Ⅴ. 논의

1. 결과에 대한 논의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l)! 인간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리 섬뜩하지 않고 오히 려 죽음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려고 한다. 연구참여자들은 죽음직면 사건의 구 체적인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자신들의 경험(김성봉, 오옥선, 김선미, 2011)을 심 층면담을 통하여 이야기하였다.

첫째, 연구참여자들의 죽음사건은 전 존재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자신 들의 존재의 사라짐(Greenberg, Pyszczynski, Solomon, Simon, & Breus, 1994) 을 예고하는 질병이나 사고는 명백한 죽음불안을 일으키는 경험(Yalom, 1980/2007)을 하였다. 참여자들은 죽음직면의 진행 과정에서 죽음을 인식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사후결과에 대한 불안(정운경, 2015)까지도 생각하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신은영(2005)의 연구에서와 같이 죽음불안은 죽음이라는 사건과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 인간이 보이는 공포, 혐오감, 파멸감, 거부, 부정 등의 부 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심리적 과정이다(신은영, 2005).

그리고 연구참여자들이 죽음을 직면한 상황에서 죽음불안이 계속 증폭되어 이 어지기보다는 일시적이었다. 하지만 진단결과 전이나 수술받기 직전, 고통이 심 했을 경우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높게 나타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Thorson 과 Powell(1990)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통증이나 불편감이 클수록 종교 성과 상관없이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가 더 큰 편(Thorson & Powell, 1990) 이라고 하였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은 이로 인한 사고의 혼란뿐만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와중에 존재론적인

갈등과 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였다. 본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의 연령이 중장년층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죽음이 자녀나 배우자 등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려워하였으며 그 경향이 높았다(윤가현, 오미성, 권혜란, 2007). 특히 치 료기간 중 통제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이 오래 지속되거나 심했을 경우에는 회복이 되었더라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불안이 엄습하였다. 이는 자신 의 신체나 생활에 대한 조절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여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여러 검사, 치료 등을 겪게 되면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김복순, 2007). 또 한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과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는 신 체 변화에 대한 염려 등의 불안을 경험한다는 말이다(김종남, 김종흔, 박은영, 유 은승, 이명선, 2010).

이와 더불어 연구참여자들은 최소한의 의무감이나 나름대로 책임감 있는 신앙 생활, 그리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우선시하다가 맞이한 죽음직면은 잃어버린 자신 의 본질과 비인간적인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더욱이 자신,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무의미함에 짓눌리다보니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희박해졌음을 감지 하였다.

둘째, 죽음을 망각한 채 살아왔던 연구참여자들은 이 죽음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거리가 먼 것처럼 회피하며 나중에 올 사건으로만 생각하는 죽음 사실의 부재를 확인하였다. Morin(2000)은 현대의 죽음의 세속적 신화(불멸성)에 서 죽음은 철저하게 개인화되고 부정과 기피, 나아가 망각과 억압으로 인해 이성 이 죽음에 마주하여 무능을 드러냈다고 보고하였다(Morin, 2000). 죽음이야말로 절대 타인이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실존에 가장 깊이 연관된 일회적인 사건임 에도 불구하고 실체를 가늠하거나 대비할 수 없고 존재의 부재 뒤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인지 불투명하기에 참여자들에게 있어서 죽음망각 인식은 자기 자신의 소멸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와, 죽음은 ‘언젠가’라는 식으로 얼버무려지고 다른 급 한 일들의 중요성을 핑계 삼아 자신들과 먼 이야기라며 회피(이선아, 2013)한다.

그러나 Noyes의 연구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면한 사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의 획기적인 변화(Yalom, 1980/2007)를 분명히 나타낸다. 참여자들 개인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자신의 자아(self)가 점진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경험을 하였다. 즉 죽음불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 존재가 가진 근본적인 불안임을 깨닫는다. 이로 인해서 존재 의 성장을 올바르게 식별하기 위하여 Thomas Merton이 말한 대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성취(이해윤, 2012)하도록 우선 내면에서 회심의 불, 그러니까 내적정화 (감각적 정화 포함)가 서서히 일어남을 확인하였다.

셋째, 예고 없이 달려든 질병과 사고는 연구참여자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

현실적인 고통의 직면 한가운데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가족구성원, 타인, 그리고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면서 점차적으로 치유 를 받게 되는 경험을 한다. 또한 공동체의 헌신적인 연민과 자비의 기도로 참여 자 자신들의 내면의 영성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어 타자(他者)들을 위한 기도로 확장,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성화(聖化)는 그 개인의 영성적 안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화와 맞물려 있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의 복된 고백을 통해 참여자들도 더 많은 사람들과 사랑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긴급한 위기의 순간에 연구참여자들은 유한과 무한을 넘나들며 실 존적 한계를 경험한다. 그동안 세속화된 본성적 감각이 우위에 있었는데 한계체 험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다시금 인간정신의 본래적 인 특성, 즉 종교적 인간으로 회귀하여 절대자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신비적 성사인 미사(mysterion, 성찬례), 성경말씀, 묵상생활에 더 깊이 관여하여 전 존재론적으로 마음을 열고 성장하려는 원의가 컸음을 확인하 였다. 특히 묵상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설명한대로 이 기도를 꾸준히 실천하면 본성적이고 세속적이며 일시적인 유치한 상상들과 형상들을 감각에서 비워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최준석, 2011)고 했다. 참여자들의 죽음직면 경험은 하느님께 서 자신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신 부활의 전초로서 내세의 희망을 싹트게 하는 발로(發露)가 된다.

넷째,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극적인 위협을 경험한 연구참여자들은 죽음의 불가 피성과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체험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지금-여기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자극(김정현, 2012; Yalom, 1980/2007)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참여자들도 예상치 못한 자아(self)의 변형이 일어났을까? 이러한 ‘자아의 변형’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절대자 하

느님을 인정하고 그분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초래된 새롭게 변화되어진 자아(이 창진, 2012)이다. 즉 자기를 버리고 타인과 하느님을 수용하는 자기 개방으로 말 미암아 유일회적인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좀 더 하느님과 자신, 그 리고 타인과 조화가 이루어진 평형의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안에서 참된 자기의 회복으로서 그리스도교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의 회복(Marshall, 1991)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구참여자들의 죽음직면으로 말미암은 죽음불안 사건은 신앙생활의 패 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죽음사건 초래로 신앙(삶)에 대한 공허와 무의미함을 느낀 반면에 종교에서 삶의 가치와 이상을 발견하려는 내적 움직임을 보였다. 종 교적 믿음과 신념을 통해 외롭고 어려울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며 자신 들에 대한 상실감을 줄여주고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 이게 하였다(이필선, 2006). 종교성이 내면화된, 즉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정체 감이 내재적 종교정향(고종향, 2015)으로 변화되어 이를 충실히 실현하면서 생활 화하려고 노력한다.

Allport(1960)는 외재적 종교정향을 가진 사람은 자기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종교를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고 안정감과 위로, 사고와 친목, 지위와 자기 합리화 등에서 종교의 유용성을 발견하는 반면 내재적 종교정향을 가진 신앙인 은 종교에서 삶의 중심적인 동기를 발견하고 자기가 신봉하는 교의를 내면화시 킨다고 언급하였다(류성훈, 2003; Allport, 1960). 연구참여자들은 질병과 사고를 통하여 자신의 참 모습인 내재적 종교정향을 지닌 신앙인으로 자신들의 신원(존 재목적)을 발견하여 실현시켜 나가려는 삶의 전환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참여자들은 신앙의 재발견 안에서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옮아 감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죽음교육이 가톨릭교회 내에 필요함을 인지함으로 서 죽음은 더 이상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공동체가 주축이 되어 타자(他者)들과 함께 영적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였다.

다섯 번째, 이 연구에서 죽음불안이라는 현상학적 연구 결과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체험을 찾을 수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의 경험들을 종합하면 ‘죽음망각과 마 주함으로서 인식의 변화’, ‘죽음불안과의 대면은 회심의 여정이자 정체성 회복(확 립)’, ‘신앙(삶)의 대전환으로 나-타인-하느님과의 관계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로 정리된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긴박했던 죽음 사건은 하느님께서 자신들 에게 주신 사랑의 회초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회초리로 말미암아 참여자들

존재’로 정리된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긴박했던 죽음 사건은 하느님께서 자신들 에게 주신 사랑의 회초리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회초리로 말미암아 참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