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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가치에 관한 사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가치교육에서 자신의 가치에 관한 사실은 각 개인 이 자신의 가치입장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가치역량을 확장할 수 있는 기 반이 된다. 이것은 순수하게 개인 자신에게 가치교육이 어떤 의미를 지니 는지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논의가 민주시민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가치교육 논의는 나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나의 가치입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타자 역시 그 자신의 가치입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는 나와 함께 가치논의 를 해나가는 상대로서 공동의 문제에 대해 공동의 결정을 내리는 존재이 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타자가 나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직면할 것을 요청한다.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 ‘타자가 나와 마찬 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가

치교육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타자의 가치에 관한 다 양한 사실을 확인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존중은 기존의 가치명료화 접근이나 가치분석 접근 에서도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두 가치교육 방 안 모두 직접적인 가치주입에 반대하며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을 지지한다.

이것은 나를 포함하는 보편적인 개인에 대한 존중을 함축하는 것으로 큰 맥락에서는 타자에 대한 존중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존중에 대한 노력이 일반적인 언명에 그치면서 구체적인 타자에 대한 존 중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이 두 접근은 타자의 가치에 관 한 다양한 사실을 고려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치명료화 접근의 경우 자 신의 가치에 대한 자기 확신의 과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타자의 가치에 관한 사실은 직접적인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가치분석 접근은 자신 이 선택한 가치에 대한 보편적 정당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타자가 제 시하거나 그와 관련된 사실들도 일부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들은 나의 가치선택이나 가치입장의 정당화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고려될 뿐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존중과는 큰 관련이 없다. 따라서 나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것과 무관한 타자의 감정이나 욕구, 그의 가치입장을 둘러싼 배경 등의 사실은 고려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가치사실’

중심의 접근에서는 타자에 대한 존중의 바탕에서 타자의 가치에 대한 사 실을 보다 폭넓게 고려한다. 특히 이러한 사실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 을 위한 주요 자원이라는 점에서 가치분석 접근이 목표로 하는 가치갈등 의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① 타자의 가치입장과 그 배경에 관한 ‘가치사실’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 보더라도 타자가 나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은 타자의 가치입장 역시 나의 가치입장과 동등한 지위에 있음을 함축한다. 따라서 타자의 가치에 관한 사실로 확인해야 할 것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치에 관한 사실과 내용 면에서 동일하다. 즉, 타자가 나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점을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타자의 가치입장 그 자체와 그러한 가치입장을 둘러싼 배경이 무 엇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타자의 가치에 관해 확인해야 할 ‘가치사실’은 타자에 대한 존중이 의미 하는 바를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상인(2014: 106)은 다원 민주 사 회에 필요한 인간 존중의 관점에 대해 논의하면서 기존의 존중관들이 대 상에 대한 평가에 기반하고 있음을 문제로 지적한다. 즉, 인간의 특성을 평가하는 존중관에 의해서는 특정한 기준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규정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해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의 타자를 존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평가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라는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이상인, 2014: 105-135). 이것은 ‘가치사실’ 중심의 접근에서 타자를 대하는 태도 와도 동일하다. 즉, 가치교육에서 타자의 삶과 그의 가치입장은 기본적으 로 나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가치사실’ 중심의 접근 에서는 타자의 가치입장을 포함하는 타자의 삶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 이고 나와 우리의 가치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자원으로 고려한다. 이처럼 타자를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는 존중의 의미는 타자의 가치에 관해 고려 해야 할 추가적인 ‘가치사실’의 의미를 드러낸다. 즉, 존재를 그 자체로 바 라본다는 것은 사람들을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고, “그 들 나름대로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이상인, 2014: 108). 이것은 정확히 앞서 자신의 가치에 관해 살펴보았던 사실의 내용과 일치한다.

먼저 타자를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존중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타자에 대한 ‘가치사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타자가 갖고 있는 가치입장의 복합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타자의 단 편적 행동 하나하나로 타자의 입장을 규정하고 그를 이해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인간은 다양한 성향을 갖고 있으며 항상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자의 가치입장을 섣부르게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타자를 “공통된 인간성의 토대가 되는 자율성과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정체성”이 엮여 있는 존재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이상인, 2014: 108-109).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그의 자율 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그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동과 그에 대한 판단을 기술하도록 함으로써 이를 하나의 사실로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사회적 정체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그가 속해 있는 문화 나 사회적 조건을 사실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사실’들은 나와 타 자가 공동의 가치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상호주관적으로 공 유된 가치 지평”(Honneth, 2011: 234)을 찾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으 로 기능할 수 있다.

다음으로 타자를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바 라보는 것 역시 타자에 대한 ‘가치사실’의 확인에서 중요한 함의를 준다.

사람들 각자가 가진 사연은 그 사람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존재 그 자체를 표현한다(이상인, 2014: 110). 이런 의미에서 앞서 자신의 가치입장에 대 해서와 마찬가지로 타자의 가치입장에 대해서도 그 배경이 되는 사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즉, 타자가 현재의 가치입장을 지니기까지 어떤 삶의 궤적을 겪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특정한 가 치입장을 지니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 등이 사실로 확인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사실들이 타자의 삶의 맥락 속에서 타자의 이야기로 서술된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이것은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내가 타자 의 가치입장을 더욱 충실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타 자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할수록 우리가 타자를 적대시할 가능성 은 줄어든다(Palmer, 2011: 37). 즉, 타자의 가치입장과 그 배경에 관한

‘가치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치갈등의 해결가능성을 더욱 높 일 수 있다.

② 타자의 시각을 이해함으로써 드러나는 ‘가치사실’

우리는 타자의 가치입장과 그 배경을 ‘가치사실’로 확인함으로써 타자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타자를 존재 그 자체로 존중할 수 있 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와 공감은 단지 나의 시각에서 타자에 대한 사실을

더 많이 확인하는 의미 이상의 것을 함축한다. 즉, 타자의 가치에 관한 사 실을 확인함으로써 나는 타자의 가치입장을 이해하고 타자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타자의 시각에서 확인할 수 있 는 다양한 ‘가치사실’을 드러나게 한다. 크게 세 가지 ‘가치사실’들을 확인 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타자의 시각을 이해함으로써 타자가 내게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에 관한 사실을 논의하면서 나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 있는 다양한 사실들이 타자에 의해 제시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타자의 시각을 이해함으로써 우리 는 굳이 타자의 직접적인 언급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가치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나는 타자의 시각을 통해 그 이전까지 미처 보지 못 했던 나의 말과 행동에 주목할 수 있다. 또한 타자의 시각을 통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나의 가치입장을 반박하는 사실이나 나의 가치입장을 보완 해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타자의 시각을 이해한다는 것 은 곧 타자가 내게 제공해줄 수 있는 ‘가치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둘째, 타자의 시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치사실’은 단지 원래 타자 가 내게 제공할 수 있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내가 타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타자와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역시 한층 더 풍부해진 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자기이해는 타자가 내 게 제시해줄 수 있는 것과 다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이미 확인한 것처 럼 타자는 내가 보지 못하는 나에 관한 다양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나의 자기이해를 넓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타자와 타자의 시각을 이해함으 로써 얻게 되는 자기이해는 타자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에 의 해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Dilthey는 “이해란 ‘너’

안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Dilthey, 1979: 17)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궁극적인 ‘이해’는 결국 타자에 대한 앎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앎 을 지향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내가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