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가치와 사실의 엮임을 통한 심화된 가치탐구 지향

Weber의 논의를 통해 드러난 ‘가치사실’의 의미는 분명 가치교육에 있 어서 가치논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가치의 문제와 사실 의 문제를 엄격히 구별하고, 가치 선택을 제약하는 사회적 조건을 분명히 하여 각자의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진정성 있는 가치 선택과 결단을 도울 수 있는 가치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Weber가 말하는 ‘가치사실’은 우리가 대안적 가치교육 방안에 관해 논의

하면서 필요로 하는 또다른 요소 즉, 서로 다른 가치 입장을 지닌 사람들 간의 가치갈등 문제에 관해서는 적절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이미 언급 한 것처럼 대안적 가치교육에서는 바로 이러한 가치갈등을 해결할 수 있 는 개개인의 역량을 기르는 것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Weber가 말한 ‘가치사실’을 통해 각자의 관점이 명료화되었을 때 만약 이러한 관점 이 근본적인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면 이러한 갈등 해결을 위한 요소는 적어도 Weber의 이론 내에서는 찾기 힘들다. 사실상 Weber는 가치갈등 의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옳은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특히 사 회에서 일어나는 가치갈등에 대해 Weber는 공중들의 논의를 통해 이러한 가치갈등을 해결하고 올바른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이것은 결국 Weber가 민주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은 이유와도 관련된다.

이런 점에서 ‘가치사실’ 중심 접근은 ‘가치사실’의 의미에 Weber의 아이 디어를 담아내면서도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가치입장들 간의 가 치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과 가치의 특징에 대한 이해와 그것이 구속하는 조건에 대한 철저한 이해는 수용하되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가치갈등에 있어서 Weber와 같이 회 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이것은 가치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가치의 충돌이라는 말을 통해 가치갈등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고만 보이는 두 입장 사이에 서 더 깊은 의미에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 분, 그래서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늘려가는 작업을 말한다. 즉, 가치문제 를 둘러싼 더 깊고 넓은 논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우리는 이 어려운 작업에 대한 해결의 단초를 현대 분석철학의 논의에서 사실과 가치의 문 제를 다루는 Putnam 등의 저작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① 사실과 가치의 관련성

앞서 가치명료화 접근과 가치분석의 접근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도 드러 난 것처럼 가치교육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다루는

분석철학의 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utnam(2002: 37-47)에 따 르면 논리실증주의로 대변되는 분석철학의 논의는 사실상 ‘사실에서 당위 가 추론될 수 없다.’는 흄의 논의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즉, 이러한 흄 의 명제를 바탕으로 가치에 관한 객관적 논의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했던 이모우티비즘은 사실상 가치명료화 접근과 같은 가치교육을 함축하고 있 었다. 한편 이러한 이모우티비즘과 달리 가치원리를 중심으로 사실을 근거 로 하여 합리화 가능한 가치주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Hare의 입장은 가치교육에서는 가치분석 접근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두 입장 모두 사 실과 가치가 근본적으로 구분되고, 가치문제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각각이 별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길병휘, 1996: 178). 즉, 이 두 입장 역시 크게 보면 앞서 Weber의 사실/가치 구 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분석철학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쏟아지면서 사 실과 가치의 구분,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문제시하는 여러 가지 주장들 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기존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 는 것과 달리 사실과 가치는 그렇게 간단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 치와 사실은 실제로 많은 면에서 얽혀 있으며 각각은 서로를 전제한다. 만 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존에 가치와 관련된 논의는 물론이고 가 치교육에 대한 접근은 많은 부분 새롭게 정립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왜냐 하면 그동안 우리의 논의가 가치의 문제와 사실의 문제를 분리하고, 각 영 역의 특수성에 국한하여 논의를 진행해왔다면 새로운 주장은 가치와 사실 의 연결가능성에 주목하고 서로의 관점에서 각각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먼 저 사실과 가치가 얽혀 있다는 주장의 성립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 가 있다. 이러한 검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사실의 측면 에서 가치의 연루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치의 측면에 서 사실의 연루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다.

② 사실의 가치함축성

먼저 사실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사실은 가치함축적이다. 이는 사실 판단 에 가치판단이 전제되어 있음을 뜻한다. 사실상 이러한 주장은 아주 새로 운 것은 아니다. 가치가 사실에 영향을 준다는 것, 즉, 특정한 가치 입장 을 가진다는 것이 사실의 인식이나 객관적인 결과의 도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비교적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언정 널리 인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앞서 사실과 가치 를 엄격하게 구분하면서 연구자의 가치 입장이 연구 결과로서의 사실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고자 했던 Weber의 노력은 오히려 가치가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한 Weber 역시 적어도 연구문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가치 입장이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예를 들어 평등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 비해 사회 불평등 의 문제를 탐구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넓게 보면 학문의 가치중립성을 주장하고 연구자의 가치입장이 연구결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Weber의 생각은 정확히 특정한 가치 입장을 전제하는 것이다.

즉, Weber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과학자는 과학적 진리에 헌신해야 하 며, 결과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Weber의 모습이 잘 보여주듯이 우리가 가장 실증주의적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가치가 사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Putnam, 2002: 113).

더욱이 Williams, Putnam 등을 비롯한 현대 분석철학의 논의에서 볼 때 사실이 가치함축적이라는 주장은 Weber의 논의 수준을 넘어선다. 즉, 가치판단이 사실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우리의 문화나 가치는 그 속에서 형성되는 개념을 통해 사실의 지 각이나 판단에 영향을 준다. 즉, 사실상 모든 지각에는 개념이 개입하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이 우리의 문화나 가치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은 사 실의 가치의존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지각이 개념의존적이라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이나 노란색

과 같은 색상의 지각조차도 단순히 눈이라는 기관의 감각 전달로만 이뤄 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보를 통해 색깔을 구분해낼 수 있는 색상에 대한 개념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개념은 사실상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 각할 때 그에 선행하여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사실에 대한 파악이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 개념은 많은 부 분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즉, 우리는 문화에 따라 다른 사실에 주 목하고, 그래서 동일한 사태에 대해서도 다르게 기술한다. 예를 들어 가구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문화에 사는 사람들이 기술하는 실내의 모습과 가구가 존재하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기술하는 실내의 모습은 전혀 다를 것이다(Putnam, 1981: 231).

이처럼 문화나 가치가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가치관이 다 른 입장들 사이에서 동일한 어휘가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으로도 이 해할 수 있다. Putnam은 극단적 벤담주의자의 사례를 통해 일반적인 윤 리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차이가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만을 의 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Putnam, 1981: 236). 즉, 최대 다수의 최 대 만족을 위해 때로는 거짓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벤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정직하지 못함’의 의미는 일반적인 견해에서 경 멸적으로 바라보는 ‘정직하지 못함’의 의미와 다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 록 그러한 의미의 차이는 커질 것이고, 동일한 현상을 기술할 때 근거로 삼는 기술적 원천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과 우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사는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즉, 인간에 관계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사실 에 대한 우리의 기술이 그들의 것과 상이해질 것이다. 이는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가치판단이 사실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둘째, 이처럼 개념 그 자체가 문화의존적이고 가치의존적이라고 한다면 Weber가 말하듯이 연구자가 취하는 가치 입장이 연구 결과에 영향을 주 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가장 실증주의적인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 절차를 따르는 연구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연구할 개념이 나 유형의 분류가 포함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개념이 가치함축적이라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