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서울대학교 기숙사 격리동에서 자가격리를 거 쳤던 중국인 유학생들이 경험한 차별 이야기이다. 앞서 2장 3절에서 연 구자는 ‘집이 없는’ 유학생들이 학교에서 제공해 준 격리시설에서 ‘다행 히’ 격리기간을 거칠 수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 서술한 바 있다. 당시 언 론을 중심으로 불거진 유학생들의 자가격리에 대한 의혹에 맞서 중국인 유학생들은 사태 초기라 학교에서의 대책 마련이 완비되지 않았음에도 책임감 있게 성실한 자가격리를 거치고자 했음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그 러나 연구참여자들은 학교에서의 격리 여건과 조치에 대해서 불편한 심 정도 제기하였는데 본 소절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림 5] 자가격리 시설 906동

자가격리 시설로 운영했던 906동은 동쪽에 위치한 기숙사 운동장과 이 웃해 있는 “ㄱ”역자 모양의 건물이다. 그림에 표시했듯이, 건물이 꺾어지 는 모퉁이에 입구가 설계되어 있고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제일 끝에 엘리베이터 세 개가 위치해 있다. 현재 연구자가 거주하고 있는 902동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2개인 점과 비교하면 906동은 기숙사동 중에서도 수 용 인원이 많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2020년 2월 14일부터 연구자가 14 일간 자가격리를 한 호실 317호는 거의 남쪽 끝자락쯤에 위치해 있다.

건물은 층마다 싱크대, 인덕션, 전자레인지 정수기 그리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마련된 밥상과 걸상이 비치된 취사실이 있고, 여러 건조대가 구비 된 건조실이 있다. 세탁실은 1층과 7층, 2개 층에만 있었지만 내부에 세 탁기와 건조기가 여러 대 비치되어 있고 다리미와 다림판도 마련되어 있 어 특별히 불편할 것은 없었다. 서울대의 대학원생 기숙사동은 대체로 이러한 시설로 구비되어 있어, 906동에서 자가격리를 한 중국인 유학생 들이 원래 있었던 방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906동의 지하에는 기숙사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2층짜리 지하주차장이 있다. 사생이 신청 서류를 제출한 후 자가용을 등록하면 주차장을 자유 롭게 이용할 수 있다. 906동의 지하 1층에는 또한 900~906동의 시설물을 관리하고 카드키를 발급해주는 통합관제실과 기숙사로 오는 택배를 일괄 수령 및 보관하는 택배보관소가 위치해 있다. 지하는 모든 기숙사생을 향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906동

지하 1층의 엘리베이터와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통로 사이에는 또 하나의 출입문이 존재한다. 기숙사동들의 모든 출입문과 마찬가지로 이 문도 해 당 동에 거주하는 사생의 카드키로만 열 수 있다. 자가격리를 하고자 건 물과 호실에 들어가려면 우선 통합관제실에서 카드키를 수령 받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격리자들은 모두 이 문을 통해 906동에 처음 들어서게 된 다고 볼 수 있다.

[그림 6] 906동 임시이동 입주자 안내 및 장민이 제공해준 캡처본

통합관제실에서는 자가격리자, 다시 말해 906동 임시이동 입주자에 대 한 안내서도 책임지고 배포하였다. 안내서를 비롯한 예방수칙을 보면, 자 가격리자들은 제일 왼쪽 엘리베이터와 1층 세탁실만을 이용할 것이 명시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906동에 아직 퇴실하지 않은 거주자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 연구참여자 리계화의 말에 의하면 많은 기숙사동 중 에서 906동이 격리시설로 선정된 이유는, 906동은 방학에 임시퇴거하는 학부생들이 많아 원래 유동량이 크고 또한 다른 나라에서 오는 연수생이 나 방학에 임시 거주하는 학자들을 수용하는 동이기 때문에 격리시설로 서의 여건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태가 긴박한 만큼 906동도 급

작스럽게 격리시설로 결정되었고 그에 따라 자가격리자가 아닌 사생들도 여직 남아있게 되면서 동 안에서 자가격리자들에 대한 시설 사용 규정도 불가피했던 것이었다.

연구자는 리계화에게 906동이 격리시설로 된 데에 기존 사생들의 반발 이 없었냐고 물었다. 리계화는 906동이 기타 학부생 기숙사에 비해 호실 내부와 시설이 좋기 때문에 동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생활만족도도 다른 동에 비해 높은 편이여서 큰 반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 러나 각 동의 불만 제기는 동 조교들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리계화도 정확한 정황은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다.

기숙사 측에서는 아직 거주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관리의 편의를 위해 격리호실을 산발적으로 배정되지 않고 몇 개 층에 집중해서 배정하였다. 그러나 교차 감염이 발생할 만일의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하 여, 한 번에 한 층의 많은 호실을 지정하지 않고 주차를 단위로 나눠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원인이었던 건지, 연구자가 자가격리를 할 때 도 건물 내부와 층 복도가 몹시도 고요하였다. 마치 서로 눈치 게임을 하듯이 누군가를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었고, 다만 매번 906동의 복도를 채우는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또 한명의 격리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림미인이 제공해준 자가격리 기간 일기

2월 9일(일): 창밖으로 새 울음소리, 난방이 돌아가는 요란한 울림, 축구 공이 차지고 잔디밭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현 시각의 공기를 가로지르는 것은 오직 키보드가 두 드려지는 소리이다.

2월 12일(수): 입주한 첫날부터 매일 밤 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또 한 명의 중국에서 돌아온 학생이겠지. 또 하나의 14일이겠지.

비록 학교에서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학생 전체를 대상하여 격리동을 운영하였지만 현실적으로 906동에서 자가격리를 거친 학생은 거의 중국 인 유학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자가격리가 의무화되기 전이기도

했고, 한국인 학생들의 경우 한국에 본가가 있는데 굳이 교차 감염이 발 생할지도 모를 기숙사 격리동에서 격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차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단톡방을 통해 불만으로 제기되었다. 비록 다들 중국에서 반자발적, 반강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고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하지만,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의 전개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 다들 어느 정 도의 경각심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숙사 측에서 너무 임시방편적으로 격리시설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혹과 함께, 2 월 중순부터 한국에서는 대구를 중심으로 병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하 였고 세계 각지도 코로나19가 점차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는데 학교 측이 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지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 유학 생들 사이에서 906동은 중국인 유학생 전용 격리동이라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왕웨이: 학교에서 잘 대처하지 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중략] 유일하게 부족했던 게, 그때 사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 상황 이 더 심했는데, 그들이 유럽과 미국사람들한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저는 이건 학교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에서 그나 마 하나, 부족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그들이 이것을 인 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2020년 3월 1일부터 학교에서는 격리시설을 호암교수회관으로 옮겼고 906동에서 자가격리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호암교수회관으로 이 송했다. 906동은 개강에 맞춰 기숙사생들을 들이기 위해 그 전에 먼저 일반 기숙사동으로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가격 리 중에 이 사실을 접한 중국인 유학생 왕팡팡은 비록 호암교수회관에서 의 격리는 906동과 달리 체계적이고 음식도 무료로 제공해줘서 좋았지만 격리 장소를 옮기는 과정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왕팡팡: 일주일 격리하고… 그때 진짜 힘들었어요. 그때 국가에서 상관하

지 않잖아요. 한국에서 상관 안 하니까 다 혼자서 하는 거죠. 혼 자 기숙사에 가서 이불하고 다른 것들 챙기고, 번거로웠어요. 그 리고 일주일 후에 또 바꾸니까. 그 호텔에 가니까 또 짐을 옮겨 야 해서 엄청 피곤했어요.

그러나 호암교수회관으로 옮긴 후 중국인 유학생들 단톡방에 뜻밖의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부터 대구에서 건너온 학생들도 교수회관에 서 함께 격리한다는 것이었다. 격리 대상에 대해 알게 모르게 의구심을 품었던 중국인 유학생들은 그제야 마음의 형평성을 찾는 듯해 보였는데, 이 같은 조치의 실시에 대해 리계화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리계화: 늦은 거였어요. 초기에 [기숙사 관리자분들이] 여러 상황을 고려 하는 게 늦었어요. 지금은 당시 조치를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는 저도 왜 아직까지 대응 방안이 없는지, 기숙사생들이 여러 가지를 묻는데 [조교들도] 공식적인 입장이 없으니까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다른 방면으로는 대표조교가 여럿 날 동안 낮에도 출근하고 그랬어요. 원래는 다 저녁에 출근하는데.

며칠 동안 출근하고 야근하고. 다들 처음이니까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고. 그때는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왔다 는 거에 정체되어 있었어요. “우한이 위험하다”, “중국이 위험하 다”, 그랬죠. 그래서 대처가 신속하지 못한 면도 있었지만, 나중 에는 다 대구도 포함해서, [입주 시 설문조사] 질문들이 다 “중 국 또는 대구 지역에서 왔냐”는 식으로 변경됐어요.

한편 자가격리자들은 14일의 격리기간에 매일 몸 상태와 체온을 기숙 사 카카오톡 플러스채널을 통해 보고할 것이 요구되었었다. 그러나 매일 체온을 재려면 체온계가 필요했는데 이 부분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입국 하기 전에 소식을 받지도 못했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었다. 다행 히 기숙사 측에서 906동 매 층 취사실의 상위에 격리자들이 하나씩 챙겨 갈 수 있게 몇 개의 체온계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기숙사 측의 ‘의도’

와 달리 이 체온계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