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4일(금) 림미인 일기
입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아니면 내가 [격리]기숙사에 있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복도에서 다른 학생이나 일하시는 분들을 우연히 마주칠 확 률도 높아졌다. 세탁하러 내려갔을 때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뵙게 되어 인사를 하였다. 아주머니는 나를 한 번 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는지는 기 억나지 않지만, 아무 소리 없이 돌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내가 불결한 존재로 여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리’의 근본 요인은 ‘오염’이 다. 타인의 시선은 주목받는 사람의 행위와 마음가짐에 영향을 준다. 요 며칠 만난 중국 학생들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몸을 움츠린 채 황급히 지 나갔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사람 눈의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2020년 2월 906동에서 자가격리했던 중국인 연구참여자 림미인이 제공 해준 당시 일기이다. 일기 속 내용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바로 몸을 움츠린 채 황급히 지나가는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묘사이다. 다들 자신 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몸을 움츠리고 지나갔지만 림미인의 눈에 는 그런 중국인 유학생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마 그 역시도 중 국인 유학생으로서 스쳐 지나가는 다른 중국인 유학생들과 같은 심정이 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신종바이러스 에 대한 진실공방은 물론이고 중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그와 동시에 해외에서의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노골적 경멸 심지 어 직접적인 증오범죄 사례들이 고스란히 중국인들에게 전해졌다. 비록 중국인들이 이러한 사건들에 공분하면서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 고 당당하게 외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전혀 상처를 받지 않은 것
은 아니었다. 해외로 나가야만 하는 이주자들, 대표적으로 유학생들은 자 신도 이러한 차별적 사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혹시 모를 상황 에 늘 대비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이 런 환경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의 신경은 곤두설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 들 눈에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이라도 이들의 뇌리에는 날카로운
‘정보’로 각인되는 것이었다.
장민 : 솔직히 말해서 저는 좀 민감했어요. 그때 우한이 일이 터졌을 때 민감했어요. 만약 누가 저한테 “중국에서 왔어요?”라고 물으면 저는 좀 당황했어요. 조금은 그랬어요. 저를 다르게 볼까봐서요.
리슈잉: 그니까 그들이 제가 중국인이라서 저를 오히려 멀리하고 싶어하 는 것 같아요. 심지어 막 들어왔을 때 한국이 엄청 심각하고 반 중 담론들이 대대적으로 나왔을 때, 저는 길 걸을 때 중국어를 큰소리로 말할 수가 없었어요. 이건 인정해요. 이건 제가 인정하 는데, 그들이 저를 다른 시선으로 볼까봐 무서웠어요. 이건 제가 인정해야만 하는 부분이에요. 저 스스로도 저를 차별했어요. 차 별이라기보다, 차별 받을까 봐 걱정됐는데 근데 동시에 저도 그 들과 같아진 거죠. 제가 이 심리를 발견했을 때 사실 저 스스로 도 한심했어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이성은 제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고 알려주는데, 나는 너희들이 격리를 필요로 하 지 않을 때도 나 자신에게 책임지고자, 너희 국가 사람들한테 책 임지고자 알아서 격리하고, 늘 손 세정제 들고 다니고 한국 사람 들이 그렇게 알콜 뿌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저는 철저 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아마 본 게 많아서 걱정됐나 봐요, 저도 그런 미친 사람들 만나게 될까봐. 친한 친구랑 밖에 나갈 때도 큰소리로 중국어를 하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왜냐 하면 [차이가] 있으니까요. 우리들이 중국어 할 때 그들이 봐요, 딱 들어도 외국인이니까요, 근데 차별은 아니고요. 그냥 제가 다 른 사람들이 못마땅한 눈길로 저를 볼까봐 무서웠어요.
왕팡팡: [학교 포스터에] 중국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중국 두 글자가 거기
에 있으니까 느낌이 중국 유학생을 겨냥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고 생각됐어요. 문에 중국유학생이라고 붙어 있으니까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죠. [중략] 저는 비교적 예민한 편에 속하는데, 금방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실 저는 마스크의 색깔에도 비교적 민감 했어요. 제가 느끼기에 한국 사람들은 보통 하얀색 마스크를 쓰 고, 중국 사람들은 파란색 마스크를 많이 쓰잖아요. 국내에서 들 어오니까 저를 중국 사람이라고 어쩔까 봐[다르게 볼까 봐] 걱정 이 많았어요. 진짜 그런 걱정이 들더라고요. 막 도착했을 때 그 랬어요. 근데 사실 지금도 저는 파란색 마스크를 별로 쓰지 않아 요. [파란색 마스크를 쓴다고] 어쩌지는 않는데 그냥 심적으로 부담이 돼요.
고프만이 제시한 낙인찍힌 집단이 사회적 정체성을 다루는 방식 중에 서,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어 하지 않기, 파란 마스크 쓰지 않기 등의 실천을 통해 정체성 비가시화를 선택했다. 리슈잉이 말한 것처럼, 그들 스스로도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코로나19가 터진 후 세계적으로 중국인을 향한 혐오의 시선과 그로 인한 폭행 사례들이 너무 많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리슈잉의 경우 서방에서 유학하는 친구로부터 그러한 사건을 직접 전해 들었다고 하였다. 한국인 연구참여자들 중 중국인 유학생과 친분이 있는 분들은 대체로 중국인들은 당당한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당당함마저 앗아가 버릴 만큼 이들에게 큰 충 격과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중국인 유학생들의 몸을 이토록 움츠러들게 만든 것은 비단 중국인 유 학생들 스스로가 ‘혐오 당할 가능성’에 불안해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후 한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직 접적인 혐오와 폭행의 소식이 별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공론장을 통해서 확산되는 혐오 분위기와 일상에서의 은밀한 회피는 부정할 수 없 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진달희: 한국의 분위기는 중국 사람들을 멀리하는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
아요. 특히 식당,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중국어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고 하면은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일 제히 그 소리를 통해서 이렇게… 그 말하는 사람을 통해서, 말하 는 사람을 보게 되는? 빨리 먹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 아요.
리계화: 그냥 주위 사람들이 제가 중국에 갔다 왔다고 하면 다들 알게 모 르게 느껴지는 게 [있어요]. 왜 하필 중국인가 싶어요. (웃음)
한풀잎(韓): [기숙사에서의 코로나19에 대한 혐오를] 제가 직접 목격하지 는 않았는데 사람들이 표현을 대놓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근 데 사실 저는 좀 무서웠어요. [감염자가] 있을까 봐. 생길까 봐 많이 무서웠어요. 지나가는. 사실 사람들끼리 많이 부딪힐 일은 별로 없거든요. 세탁실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데에서 만나면 중국 인들이 탔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보여요 표정이. “어? 혹시?” 걱 정되는 거죠, 걱정. “어? 이 공간이 폐쇄됐는데” 근데 한 편으로 는 자신의 이런 생각이 티 날까봐 엄청 조심하더라고요 오히려.
“어, 걱정은 되는데 이거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겠다.” 이게 다 보여요 얼굴에. 그때는 마스크 그렇게 안 썼으니까(웃음). 그래 서 정말 신기하다. 오히려 정말 표현 안 하려고 노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대놓고는 하지 않았어요. 저희 기숙사에 화 이트보드가 있는데 일층에 거기다가 사람들이 별거 다 써놓거든 요. 거기에도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저는 사실 의외였어요. 진짜 다 보여요. 그런 모습이. 찰나의 표정 변화들이(웃음).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닐(Daniel McNeill)은 얼굴은 소중한 정보 를 제공하는데 이 신호는 인종, 문화, 국경을 넘어 세계를 하나로 묶을 만큼 보편적이라고 보았다. 맥닐은 인류학자들이 주장한 문화가 언어를 결정하듯 얼굴도 결정한다는 문화 결정주의를 부정하였는데,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표정이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자 진행한 실험에서 오히려 얼굴은 기쁨, 분노, 두려움, 놀람, 혐오, 슬픔 등 여섯 가지 기본 신호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2003[1998]:
288-303).
그러나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J. Geertz)는 영 국의 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의 윙크와 눈꺼풀 수축에 대한 논 의로부터, 한 번의 눈 깜박임이 단순한 눈꺼풀의 수축이었는지 아니면 모종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수행한 윙크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그것의 의미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인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2009[1973]:
14-17). 다시 말해, ‘눈 깜박임’ 행위에 대한 눈을 깜박인 주체의 의도와 그것을 목격한 사람의 인식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어츠는 결국 ‘눈 깜박임’이 윙크냐 단순한 눈꺼풀 수축이었느냐에 대한 판단은 그것을 행하고 보는 사람들 속에 내재된 각각의 문화적 의미구조 에 의해 해석된다고 보았다.
본 연구에서 맥닐의 주장과 기어츠의 주장 중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가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두 사람의 논의는 모두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인을 회피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상 및 학교 내부에서 형성 되고 있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맥닐의 주장처럼 얼굴이 보편적인 신호를 나타내고 있다면, 중국인 유 학생과 한국인 학생 모두 중국인 유학생들을 향한 회피적인 태도를 감지 했기 때문에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기어츠의 주장처럼 모종의 행위는 그것을 행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의미구조 속에서 해석되는 것이라면 한국인 학생(한풀잎)과 중국인 유학생(진달희 와 리계화)의 공통된 인지는 두 집단의 당시 분위기를 해석하는 의미구 조가 일치함을 반증하기 때문에 역시나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경계가 확 실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가 이 같은 표현의 의미 여부에 이처럼 ‘집착’하는 이유는, 중국 인 유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직접적인 차별과 혐오 사건이 발생하지 않다 보니 때로 마음을 찝찝하게 만드는 경험들에 대해서 혐오를 확신하지 못 하고 스스로 예민한 것일 수 있다고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 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마땅히 이성적인 태도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속에서 크든 작든 상처받은 본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