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배시퍼드(Alison Bashford)에 의하면 19세기든 21세기든 전
49) 中国国务院·新闻办公室, 2020.06.07., “抗击新冠肺炎疫情的中国行动(白皮书),” <http://
www.gov.cn/zhengce/2020-06/07/content_5517737.htm>.
염병 관리는 항상 공간적 영향을 미치고 예방, 감소, 근절의 공간적 수단 을 사용하였다(2007: 1). 질병 예방은 지정학적으로 종종 민족주의 (nationalism)와 주권 영토의 치안 유지와 연결되어 작동되었는데, 19세 기 초부터 해양과 육지 경계는 선박과 동물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교환의 상품들을 조사하기 위해 긴밀하게 규제되는 장소였다(ibid: 6). 그러다 19 세기 유럽에서의 국민국가(nation-state) 출현, 식민지 확장 그리고 관료 화된 행정정부 등 사회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질병 또한 사람들의 신체 (body), 신분(identity), 서류(documents)에 대한 국경 점검을 통해 검사 되었다(ibid: 7). 여권과 비자 같은 신분 서류가 없던 시기에는 질병이 없 다거나 질병이 없는 마을 또는 지역에서 왔음을 증명하는 건강 서류가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이와 같은 건강 서류를 포함해 몸에 나타나는 전염성 질병의 증상 여부 그리고 예방접종을 함으로써 예방조치를 했는 지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중국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방역조치도 이와 크 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의 국가이민관리국(国家移民管理局)은 2020년 1 월 29일에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조치를 실시한 국 가들의 리스트와 관련 내용에 대한 첫 번째 안내를 게시하였다50). 본 자 료에 의하면, 북한이 1월 27일에 제일 처음으로 중국에 대해서 입국금지 를 내렸고, 필리핀은 이튿날인 28일에 중국인에 대한 현지 비자 발급을 중단하였다. 싱가포르는 1월 29일부터 14일 내에 후베이성을 방문했거나 후베이성에서 여권을 발급받은 중국인들의 입국과 환승을 금지하였고,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들에서는 이때까지만 해도 입국을 제한을 하지 않고 건강 상태 질문서의 작성을 의무화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국가들에서도 잇따라 입국 조치를 결정하거나 기존의 조치를 강화 하면서 2월 3일까지 세계적으로 84개의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제한 조치 를 취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2월 2일에 국무총리 주재 '중앙사고수습본부' 범정부 대책
50) 国家移民管理局, 2020.01.29., "近期有关国家就防控新型冠状病毒肺炎疫情采取入境管制 措施列表," <https://www.nia.gov.cn/n741440/n741542/c1214251/content.html>.
회의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 관하여 중국 위험지역 으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2월 3일에 공표한 후 2월 4일부터 정식 실행하였다51).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우한시를 비롯한 후베이성 전체 지역이었다. 한국은 14일 내에 후베이성을 방문했거나 후 베이성 발급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일체 입국 금지 대상으로 분류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한총영사관에서 발급받은 기존 사증(예: 비 자)의 효력도 일시 정지하였다. 더불어 제주도의 무비자 입국도 일시 중 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림 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차단을 위한 외국인 입국제한 조치 알림 (2020.2.3. 법무부)52)
배시퍼드는 질병에 대한 일련의 검사 조치들이 관할 구역 (jurisdictional borders), 크게는 국가적 국경(national borders)에 의미를 부여하고 국경을 지도에서의 추상적인 선들이 아닌 땅(ground) 위에서의 일련의 실천으로 만든다고 보았다(2007: 7). 확실히 코로나19가 터짐으로 인해 ‘국경’은 보다 가시적이고 실제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 다. 유학생들의 경험에서 공항과 티켓은 국경을 상징하는 분명한 물질이
51) 법무부, 2020.02.0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법무부 조치," <https://ww w.moj.go.kr/moj/2599/subview.do>.
52)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2020.02.06., <https://www.immigration.go.kr/immigr ation/1473/subview.do>.
었고 국경이 의미하는 경계는 비행기 탑승 여부로 체현되었다. 공항에서 의 일련의 ‘특별’ 절차에 대한 분석은 Ⅲ장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입국 조치 자체만으로도 중국인 유학생들이 감당해야 했던 심리적 부담 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후베이성 유학생 류수란은 당시 한국에서의 입국 관련 조치 변경에 대해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류수란: 2월 3일에 한국에서 14일 내 우한을 경유했거나, 우한에 갔거나, 우한에서 발급받은 여권을 소유한 자는 모두 입국금지 한다고 선포했어요. 그리고 여행 비자를 포함한 모든 비자 발급을 중지 한다고 했어요. 2월 3일에 통지해서 2월 4일부터 실행.
연구자: 소식보고 어떤 느낌이었어요?
류수란: 절망. 처음에 아마 웨이보[중국의 대표적인 SNS]에서 소식을 접 했던 걸로 기억해요. '분투재한국(奋斗在韩国)53)' 같은 계정을 구독하고 있었는데 봤을 때 믿지 않았어요. 왠지 공식적인 게 아 닌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위챗 공식 계정이나 중앙뉴스에서 점 차 보도하니까, 그때 느낌이 “끝났다”. “나는 끝났다.” “언제 한 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네.” 그때 굉장히 절망적이었던 게, 제가 직업을 계약했었어요. 1월 달에 1차 서류 전형 통과하고 면접도 통과하고, 원래 2월 2일에 돌아오기로 되었는데 돌아와서 학교랑 계약서에 사인하고 그리고 비자, 업무 비자로 바꾸기로 되어 있 었어요. 1월 말에 봉쇄해서 언제 들어갈지 모르니까, 한국에서 아직 입국금지를 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봉쇄해서 제가 나갈 수 가 없잖아요. 곧 일하게 될 학교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사실대로 말하고 “제가 갈 수 없게 됐다.”, “언제 들어갈지 모르 겠다.”,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을 채용하는데 폐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선생님께서 저를 믿으시니까 괜찮다고, 원래 개강이 3월이니까 선생님께서 저를 기다려주시겠다고 했어요. 3 월이 돼도 돌아오지 못하니까 3월 말까지 기다려준다고 했어요.
근데 나중에 3월에 한국에서 폭발해서 수업을 할 수 없게 되고 그러니까 그냥 사태 진정되고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연락드리겠 53) '분투재한국(奋斗在韩国)'은 중국내 최대 한국 관련 사이트로 재한 중국인들이 오락
과 정보 교류를 진행하는 종합 플랫폼이다. 홈페이지: http://www.icnkr.com/
다고 했죠.
류수란은 한국이 입국금지를 하지 않았어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입국금지 소식을 접했을 때 절망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입국금지는 후베이성 유학생들에게 단지 일상생활의 유 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예정됐던 학 업 진도를 따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노력으로 쟁취한 일자리 가 '나'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그냥 떠나보내야 하는 답답함은 생활의 ' 멈춤'이 아닌 '뒷걸음질'로 다가왔다. “나는 끝났다.” 이 말 한마디는 당 시 후베이성 유학생들이 느꼈던 무력함과 절망감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같은 무력함을 후베이성 유학생들만 느낀 것은 아니었 다. 비록 한국에서 2월 3일에 후베이성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지 만 그 전부터 입국금지가 내려질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베이성에 한정하지 않고 중국 전체에 대해 입국금지를 실시하 는 국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들의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 다. 또한 1월 23일에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란 제목으로 국민청원이 올라온 후 연일 높은 화제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들의 입장에 서는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류걸 : 저는 1월 20일에 귀국했어요. 국내에서 먼저 [사태가] 폭발한 후 2월에, 원래는 1월 20일에 귀국해서 2월 3일에 다시 한국 들어오 는 표를 샀는데, 돌아오는 비행기 표가 취소돼서 그래서 2월 2일 에 돌아왔어요.
많은 중국 유학생들은 류걸처럼 예정 날짜보다 일정을 앞당겨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언제 중국인의 입국금지 조치를 내릴지 불안정한 상 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 항공사를 비롯해서 각국의 항공편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어서 빠른 시일 내로 남아 있는 표를 구매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리슈잉: 후베이를 제한한다고 하니까 긴장되기 시작했어요. 모든 중국인 의 입국을 금지하지 말아야 할 텐데 [싶어서요]. 원래 2월 말에 돌아오자고 했어요. 기숙사 추가 입주 대상이 돼서 기숙사에 들 수 있을 때 오려고 했죠. 그러면 돈 더 내고 밖에서 지낼 곳 안 알아봐도 되니까요. 그런데 상황을 보니 안 되겠는 거예요. 만약 에 시간 더 끌면 후베이처럼 들어오지 못할까봐.
후베이성 입국금지 이후 한국에서는 추가적인 입국 조치를 내놓지 않 았다. 그리하여 후베이성을 제외한 기타 지역의 유학생들은 다행히 한국 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리슈잉 같은 경우 계획보다 보름 가까이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새 학기가 되어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을 때까지 학교 밖에서 지내야 했다. 이처럼 입국금지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코 로나19 초기 중국 유학생들은 불안정한 현실과 변하는 대응 조치 속에서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연구자: 휴학을 생각해 본적이 있나요?
왕팡팡: 잠깐 했었어요. 머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죠. (웃음) 휴학할까?
아니면 인터넷 강의 들을까? 하고. 그때 아마 인터넷 강의하기 로 결정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터넷 강의 할지말지 고민하다 가, 생각해보니 안 되겠는 거예요. 책이랑 각종 자료들은 여기에 서 [구하기] 편하잖아요, 국내에서는 안 되니까.
연구자의 경우, 연구자는 원래 2월 16일 중국동방항공 MU5085 항공편 을 이용해 연길에서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월 2일 표 를 예매했던 사이트로부터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당시 연구자는 기숙사 거주생으로 한국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마련한 906동 격 리동에서 14일간의 자가격리를 거쳐야 함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새 학 기에도 기숙사에 거주하지만 방은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3월 1일 동간이동 일정을 맞추려면 늦어도 14일에는 들어가야 했다는 것이 다. 비록 후에 학교에서 기숙사 입주 시간을 늦췄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원래 일정대로 예정되어 있어서 연구자는 입국 날짜를 앞당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