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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유학생들의 혐오 경험 유형

국에 홍수가 났잖아요. 폭우도 내리고, 한국에서도 이걸 보도했 어요. 아래 댓글들이, 참, 천벌 받았다고. 다 이런 말들인 거예요.

“천벌을 받았는데 반성해 보지 않아?” 그리고 며칠 안 돼서 한 국에서 홍수가 났어요. 한국의 두 당이 그 4대강 방수 그것 때문 에 계속 싸우잖아요, 그때 중국 웨이보에, 물론 욕하는 사람들도 있죠. 한국빵즈[韩国棒子] 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런데 그래 도 많이 보이는 건 인류공동체라고, 우리 이웃이라고, 우리 이러 면 안 된다고. 중국에도 미친 사람들이 있지만, 어디를 가나 미 친 사람들이 있죠. 그래도 이성적인 사람들도 많아요. 그들이 다 른 키보드워리어들을 비판하면서 재난당한 사람들을 그렇게 비 난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네이버에 돌아와 보면 아무런 [좋은 말을 찾아볼 수 없어요]. 중국을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요. 그저 인도주의 관점에서 재난당한 사람들을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잖아요.

인터넷 공론장에서의 혐오표현에서 중국인 혐오를 확신하는 이유는 실 제로 한국 인터넷에서의 중국인 혐오표현은 우려스러울 정도로 수위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 심각성의 표현은 세 가지 측면으로 귀결될 수 있 는데, 첫째는 중국 관련 뉴스와 기사들의 댓글창이 중국인 혐오표현으로 도배되었다고 할 정도로 선플, 즉 좋은 댓글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의 인터넷 공간은 곧 중국과 중국인을 부정하는 공간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렇다 보니 여러 중국인 연구참 여자들은 이제 굳이 댓글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며 악플러의 존재를 무시 하는 경향을 보였다.

왕팡팡: 댓글을 보면 너무 괴로워서 그 후로는 안 봤어요. 왜냐하면 중국 에 관한 뉴스는 다 그렇잖아요. 특히 네이버의 기사에도 댓글이 있잖아요, 보면 절대 좋은 게 없어요. 지진이 났다거나 해도 댓 글에 다 죽으라고, 중국 사람은 죽는 게 제일 좋다고.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그들이 제일 많이 욕하는 것이

‘짱깨’, 맞아요. 다 이런 말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안 봐요. 아예

보지 않아요. 왜냐하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목소리는 없으니까 볼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

두 번째 이유는, 중국과 관련성이 없거나 빈약한 기사나 콘텐츠에도 중국인 혐오표현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일부러 혐오성 댓글을 피하고자 해도 인터넷을 사용 하는 한 완전하게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이에 대해, 중국인 연구참여자 류걸은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연구자: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그런 댓글을 보게 되면 느낌이 어때요?

류걸 : 그냥 그 사람들이 진짜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아무런 관 계가 없는 내용인데 왜 거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사회 뉴 스에 가서 말하면 되잖아요.

중국에 관한 기사든 중국과 관련되지 않은 내용이든, 중국과 중국인은 한국의 인터넷 공론장에서 언제나 부정적인 대상으로 나타난다. 중국인 이란 존재 자체가 낙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중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세 번째 이유이다. 그 심각한 수준은 중국인 을 지칭하는 구체적인 표현으로부터 체감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짱깨’

를 들 수 있다.

‘짱깨’는 화교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적인 역사에서 출현한 혐오표현 이다. 한국에서의 화교의 사회적 위상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시대 화교 경제역량 견제 정책의 시행과 냉전 체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급락하 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시선 역시 매우 차별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서 화교들에게는 ‘대국인’ 대신 ‘때국놈’ 혹은

‘땟놈’, ‘짱꼴라’, ‘짱꿰’와 같은 경멸적인 호칭이 붙여졌다(박은경 1986;

장수현 2002; 박경태 2004). 현재의 ‘짱깨’는 이때 사용된 ‘짱꿰’에서 변형 된 용어로 보이는데, ‘짱꿰’는 ‘돈궤짝을 장악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뜻하 는 중국어 ‘掌櫃’를 음독(音讀)한 용어라고 한다(장수현 2002: 250-251).

이 밖에도 중국인 혐오표현에는 ‘중국인이어서 욕한 것이 아니라 욕하 고 보니 중국인이다’, ‘역시 중국’ 또는 ‘중국이 중국했네’, ‘세계의 암적인 존재’, ‘made in China’, ‘바퀴벌레’ 그리고 ‘짱깨’와 ‘바퀴벌레’를 합성한

‘짱퀴벌레’ 등등이 있다. 그러나 제일 심각한 혐오표현은 단연 ‘착한 중국 인은 죽은 중국인’ 이라 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줄임말로 ‘착중죽중’이라 고도 쓰이고, ‘착한 짱깨는 죽은 짱깨’ 또는 ‘착짱죽짱’이라고도 쓰인다.

최한석(韓): ‘중국인이어서 욕한 게 아니라, 욕해보니 중국이다’ 이런 얘기 가 있어요. 그만큼 욕할 거리가 다 중국에 관련된 거라는 거겠 죠. [중략] 혐오표현이 되게 많죠. 댓글만 봐도 짱깨짱깨 그러잖 아요. 그런 것도 있어요.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이다.’

유명수(韓): 어… 제일 좀 강하게 느꼈던 건 이제 좀, 이걸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좀, 거친 말인데, 제 의견은 아니에요. (웃음) 제 의 견은 아닌데, 제가 들은 말 중에 ‘착짱죽짱’이라고 해서 진짜 엄 청난 비하죠. 딱 그 네 글자로 모든 걸 표현했던 것 같아요. 무 슨 일이 있으면 또 그 얘기하고.

‘착장죽장’ 혹은 ‘착짱죽짱’은 중국인을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존 재로 치부하면서 중국인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표 현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최대의 유대인 단체 Anti-Defamation League 는 ‘혐오의 피라미드(Pyramid of Hate)’(ADL 2018; 홍성수 2018: 84에서 재인용)를 제시하며, ‘혐오’의 제일 꼭대기에는 특정 집단을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말살하는 ‘집단학살(genocide)’이 위치한다고 하였다. 이 맥락 에서 ‘착장죽장’ 표현의 사용은 이미 그들이 중국인을 생각으로는 ‘집단 학살’ 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인 연구참여자들이 인터넷 공론장에서의 중국인 혐오표현 으로부터 혐오를 인지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앞서 서술한 리슈잉 과 왕팡팡처럼 댓글에 분개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에 도 악플러들이 많기 때문에 악플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인터넷 상

의 현상으로만 간주하고 현실 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면 된다는 중국인 유 학생들도 있었다. 아래 왕웨이는 그 후자에 속하는 연구참여자이다.

왕웨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사람이 댓글에서 말하는 게, 지금 악플 러나 키보드워리어처럼, 그가 댓글을 남기는 이유 하나는 그 문 제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겠죠. 저처럼 아예 거기에 관심이 없으 면 댓글을 남기지 않을 거예요. 두 번째는 어떤 사람들은 진짜로 거기에 비교적 정확한 건의를 남기는 데 관심이 있죠. 어떤 사람 들은 그냥 일상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자신이 밖에서 받은 스 트레스 같은 걸 쏟아내기 위해 댓글을 남기는 거예요. 다른 사람 욕하면 시원해지겠죠. 근데 저는 이건 무능력하고 나약한 표현이 라고 생각해요. [중략] 아직 충분히 바쁘지 않아서, 한가해서 그 런 것 같아요. 진짜 엄청 바쁘면 [집에] 돌아가서 그냥 누워서 자지, 뉴스를 보는 것만도 괜찮아요. 누가 정신이 남아서 댓글을 남기나요. 그러니까 모두 한가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 부 사람들은 급한 일이 없는 사람들인 거죠.

중국인 유학생들의 인터넷 혐오표현으로부터의 혐오 인지 양상이 이처 럼 분화적인 모습을 띠는 이유는 이들이 댓글을 쓰는 사람들의 실체를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으로, ‘익명성’의 보호를 받는 네티즌들은 ‘나’의 신분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동시에 상대 방의 신분 역시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중국인 유학생들의 시선에 서 인터넷에서 혐오를 가하는 사람들은 형체가 없는 형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인터넷이 오랫동안 가상으로 여겨진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 국인 연구참여자들이 현실 일상에서 인터넷 여론과의 차이를 경험했을 때, 인터넷은 더욱 가상이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었다.

제갈명: 코로나 처음에 터졌을 때, 제가 중국에 있는 동안 다른 SNS를 못하기 때문에 네이버 댓글을 되게 많이 봤단 말이에요. 그때 밑 에 댓글을 보고 저는 참, 이 나라에 실망할 정도로 좀 마음이 아 팠었어요. 제가 이렇게 사랑하는 나라[한국]인데, 제가 이미 20대

청춘을 받친 이 나라에서, 나중에 귀화까지 생각하는 이 나라에,

‘사람들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거구나’, 너무 좀 이 나라 국민들한테 배신감을 당한 느낌이에요. 왜냐하면 당시에 메르스 사태에서도 첫 환자가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치료를 받고 [중략] 치료비를 부담했는데도 ‘어떻게 한국이 이렇게 생각할 수 가 있냐?’ 그래서 그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국 친구들한 테 얘기를 했죠. [중략] 대부분 친구들이 하는 말이 “저기서 댓 글 다는 사람들이 좀 수준이 없고 안 배운 사람들이라 신경 쓰 지 마.” 이렇게 위로해줘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리하여 누군가가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폭언과 폭행을 가하 지 않는 이상, 중국인 유학생들은 댓글만 보고 혐오자들을 확신할 수가 없다. 이는 지인들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간접적인 경험]

조일식: 중국을 반감하는 사람은 있어요.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근데]

중립적인 사람도 있고 우호적인 사람도 있어요. 한국의 역사적인 배경으로 반중 세력도 있고 친중 세력도 있고. 그리고 선전적인 부분에 따라 민중이 편향적이기도 하죠. 근데 다 들은 거예요.

중국을 명확하게 싫어한다고 [다가온 것들은] 다 들은 거예요.

친구들이 말해요. 누구랑 다투는데 그 사람이 “한국에서 꺼져라 (滚出韩国).” 라고 했다든지. [제가 직접 겪은 건 아니고] 다 들 은 거예요. 근데 이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요.

간접적인 경험들은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 사람들의 중국인에 대한 혐오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또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의 불가능성을 남겨두기도 한다. 경험을 말해주는 지인은 분명한 형체를 가진 실체이지 만, 전해 듣는 경험에 대해서 연구참여자들은 제3자에 불과하기 때문이 다. 적어도 본 연구에 참여한 중국인 유학생들은 제3자인 자신이 지인들 이 말하는 일들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자격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이와 같은 간접적인 경험에 대해서 ‘거리를 두며’ 그 이상의 추측을 삼가